소설리스트

절대회귀-181화 (181/214)

제181회 오르는 절벽이 아니다.

권마는 대연무장에 있었다.

수십 명의 철권이 권법을 연마하고 있었고, 권마는 그 앞에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불패권마 단우강(段佑强).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다고 알려진 권법의 최강자.

그는 나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키가 컸고 온몸이 근육질이었다. 그의 구릿빛 피부는 그야말로 강철처럼 단단해 보여서 도검이 박히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특히 주먹이 유난히 컸는데, 과장 하나 없이 여인의 머리통만 한 크기였다.

몸 자체가 무기란 말은 바로 불패권마에게 써야 할 말일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권마는 정말 무섭게 생겼다. 본교의 그림이나 석상에 있는 마귀들의 모습은 이 권마의 얼굴을 본떠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정대전이 벌어지면 선봉장은 꼭 권마로 내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얼굴. 무림에서 감히 이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권마가 스윽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는 상관없다. 생긴 것 자체가 워낙 섬뜩해서, 지금도 최소 나와 싸우자는 표정이었다.

물론, 나는 생김새에 어떤 선입견도 없다. 평생을 살면서 생긴 것과 심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던가? 웃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놈 중에 멀쩡하게 생긴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권마님을 뵙습니다.”

하지만 권마는 내게 인사하지 않고 다시 철권들을 바라보았다. 철저히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예전이라면 이 행동 자체에 의미를 담고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발끈하지 마라. 제발 발끈하지 마라.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다.

첫 방문에 이렇게 나온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나는 옆에 서서 철권들이 권법을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뙤약볕 아래에서 철권들이 하나의 자세를 취한 채 석상처럼 서 있었다. 마치, 움직이면 세상이 끝장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긴, 저 무서운 권마가 쳐다보고 있는데 감히 힘들다고 몸을 움직일 사람은 없겠지.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지만, 다행히 권마의 눈에 띄는 실수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무인의 기합에 철권들이 다음 자세를 갖췄다. 내뻗은 두 주먹 중 하나가 허리춤으로 향하며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다시 그들은 또 다른 자세를 취하며 언제 끝날지 모를 석상이 되었다. 그들은 한 동작 한 동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는 제대로 된 수련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수련이 지닌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별개의 일이지만.

그렇게 한 시진에 걸친 수련이 끝이 났다.

철권들은 모두 해산했고, 권마도 자신의 거처로 걸어가 버렸다. 그는 마지막까지 철저히 나를 무시했다.

최근 나에 관한 여러 소문이나 소식을 들었을 테니, 이 철저한 무시도 일종의 대화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저 무서운 얼굴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와 농담을 주고받는 상상을 했다.

권마야, 나를 이렇게 대하면 나는 이런 상상을 하는 사람이다.

다음 날에도 권마를 찾아갔다.

하지만 오늘도 첫날과 마찬가지로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본 후 묵묵히 철권들의 무공수련을 지켜보았다.

어제처럼 무시당했지만, 아무도 그런 나를 비웃지 않았다. 권마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기강이겠지만, 지금까지 봤던 마존들의 수하 중 가장 기강이 제대로 선 이들이 철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공수련이 끝났을 때 비로소 권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공자.”

그 무서운 얼굴에 비해 목소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묵직하고 차가운 목소리일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 그는 입만 벙긋거리고 뒤에서 누군가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것만 같았다.

“어제는 내가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혹 제가 무공수련 시간에 방문해서 그렇습니까?”

그러자 권마는 대답이 틀렸다는 듯 그대로 돌아서 성큼성큼 가버렸다. 그냥 쉽게 가지 않으시겠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나는 다음 날에도 다시 권마를 찾아갔다.

찾아가는 것은 나였지만, 나의 방문을 유도한 것은 권마였다.

오늘은 또 시간을 달리해서 무공수련을 하기 전 시간에 찾아갔다. 집무실이 있는 건물 앞 난간에 걸터앉아 있으니 지나가던 철권들이 나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권마에게는 무시당하고 있지만, 철권들은 그 누구도 무시하는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한 호의와 존경심이 담겼다. 막 회귀했을 무렵의 이공자와 지금의 이공자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때 건물에서 권마가 나왔다.

“잘 주무셨습니까?”

그는 나를 힐끗 쳐다본 후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대연무장으로 향하는 그를 따라붙었다.

“어제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혹 제가 마존분들 중에 처음으로 찾아뵙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다른 마존과는 어쨌든 다 만나고 인연을 맺었으니, 독왕을 제외하고 일곱 번째인 그였다.

권마가 발걸음을 멈추고 무서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그렇게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이나?”

“그럼 제가 속이 좁은가 봅니다. 저라면 화가 많이 날 것 같아서요.”

권마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멀어져 가는 그를 보며 내가 소리쳤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에는 권마를 볼 수 없었다.

연무장에서는 철권들만 수련했다. 권마 대신 그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 돌아왔다.

그렇게 사흘을 연속해서 허탕을 쳤다. 일부러 나를 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볼 일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하여튼 이놈의 마존들은 하나같이 껄끄럽고 까다롭다. 정말이지 쉬운 상대가 없다.

누가 이기나 보자, 하면서 그렇게 돌아서 나오는데, 철권 하나가 지나가면서 슬쩍 내게 말했다.

“마존께서는 지금 소연무장에 계십니다.”

왜 내게 그걸 알려주냐는 표정을 짓자, 그가 나직이 말했다.

“최근 황천각에서 처리해준 일로 저희 일가가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말을 하곤 꾸벅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겠지만, 황천각 일이 많이 고마웠던 모양이다.

-고맙소.

저 멀리 가는 그에게 전음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나는 그길로 소연무장을 찾아갔다.

권마는 그곳에 홀로 앉아 사색에 잠겨 있었다. 이 크고 우락부락한 사람과 사색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의외로 가부좌를 한 채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의외로 잘 어울렸다.

나는 그의 뒤에서 나직이 말했다. 사흘이나 허탕 친 일이라거나, 이곳을 어떻게 찾았는지는 일체 생략한 채, 마치 어제 봤던 사람처럼 그에게 말했다.

“혹 저를 멀리하시려는 이유가 형 때문입니까? 이미 형을 지지하겠다고 마음을 먹으셨으니, 그 신념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잠시 사이를 두고 눈을 뜬 권마가 말했다.

“그게 뭐 대단한 신념이라고 그런 이유로 사람을 박대하겠나? 세상을 망치는 인간들은 모두 그릇된 신념을 가진 자들이지.”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생긴 것만 봐선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죽을 때까지 지킬 것 같은 모습인데.

“그럼 형 대신 저를 지지해 주실 수도 있겠군요.”

그러자 권마는 더는 대화를 나누지 않겠다는 듯 다시금 눈을 감았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내일은 꼭 답을 찾아서 오겠습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일종의 시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지 않다면 단칼에 오지 말라고 내게 말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쁘지 않다. 자주 보다 보면 관계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동권문을 나온 나는 혈천도마를 만나기 위해 남도종으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혈천도마 역시 마당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었다.

“오늘 마존들 단체로 사색하는 날입니까? 그럼 저도 사색 좀 해야겠습니다.”

나는 그의 옆에 가서 나란히 앉았다.

혈천도마가 눈을 감은 채 나직이 말했다.

“죽으라 칼질만 하다 보니, 주먹질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지?”

혈천도마는 지금 내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떻게 알긴? 자네 요즘 동권문에 들락거린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

“어찌나 소문이 빠른지. 입 싼 마인들 같으니라고!”

“그러다 잡은 물고기 다 놓친다.”

“괜찮습니다. 또 잡으러 가죠. 일곱 마리밖에 안 되는데, 또 잡는 재미라도 있어야죠.”

“왜 일곱 마리냐?”

나는 가만히 혈천도마를 쳐다보았다.

“난 이미 잡아드셨냐?”

혈천도마의 말에 난 큰소리로 웃었다. 혈천도마도 자신이 말해 놓고도 우스웠는지 따라 웃었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찾아뵈었습니다. 권마는 어떤 사람입니까?”

“보통 주먹 쓰는 놈들은 무식하기 마련인데, 권마는 똑똑해. 아주 똑똑한 자다.”

똑똑한 권마라. 취마가 어지간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쉽게 이길 수 없다고 말한 부분이나, 아버지가 사대삼이지만 팽팽하다고 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똑똑한 사람 주먹이 더 아픈 법이죠.”

“후회되느냐? 이 늙은이보다 그놈을 먼저 잡을 걸 하고.”

“우선 이 말씀부터 드려야겠군요. 권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건 확실합니다. 먼저 얻은 도마, 열 권마 안 부럽다!”

혈천도마에게 하는 아부신공은 아깝지 않다. 원래 아부도 하다 보면 내가 뭐 하는 건가 싶은 순간이 오기 마련인데, 혈천도마에게 만큼은 그렇지 않다.

혈천도마는 걱정하지 않는다. 잡은 고기 취급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를 진심으로 좋아해서다. 왼쪽 날개가 되어 달라고 할 때만 해도, 마존이 필요해서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마존이 아니라도 상관없고, 본교 마구간지기라도 상관없다. 내가 후계자가 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혈천도마란 사람 자체가 좋다. 이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그와의 관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교주가 권마를 왜 좋아하는지 아느냐?”

“아버지가 권마를 좋아하십니까?”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아마 마존들 중에 제일 좋아할 거다.”

“왜 좋아합니까?”

“권마는 무공에 미친 놈이거든.”

그럼 더 말할 필요 없다. 아버지가 좋아할 최우선 조건에 부합했으니까.

“그냥 미친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미쳤지.”

“그런데도 똑똑하다는 말씀이죠? 멋진데요?”

“멋지긴. 임자 제대로 만난 거지.”

“어르신이 계셔서 괜찮습니다. 정말 어르신이 안 계셨으면 이런 조언을 누구에게 듣고, 또 제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잘만 살겠지. 취마랑 술 마시고, 극악소마랑 놀러 다니면서.”

역시 다른 마존들을 질투하는 혈천도마였다. 그러면서도 아낌없이 권마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었다.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

“사색이 필요하면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땐 권마도 데려오겠습니다.”

“행여나!”

그렇게 혈천도마의 거처를 나섰다.

* * *

다음 날, 또 불패권마를 찾아갔다.

그는 대연무장에도 없고, 소연무장에도 없었다. 여기저기 탐색하다가 그를 발견한 곳은 동권문 내에 있는 절벽 앞이었다. 본교가 워낙 넓어서 호수도 있고 별의별 것이 다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절벽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잘 주무셨습니까?”

오늘도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자유롭게 동권문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만 해도, 내가 찾아오는 것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는 의미였으니까.

나는 그의 옆에 나란히 서서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드디어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대신 약속 하나 해주십시오. 대답을 듣고 화내지 않으시겠다고요. 아니, 화는 낼 수야 있겠지만, 그 주먹으로 저를 때리진 않겠다고요.”

권마가 천천히 나를 쳐다보았다. 말로 약속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를 바라본 것으로 충분했다.

“수하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으셨던 겁니다. ‘나는 이공자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도 아니고, ‘나는 대공자를 지지하고 있으니 너희도 그렇게 알아라’도 아니고, 진짜 하고 싶었던 말씀은 나는 너희 후계자 싸움에 아무 관심이 없다, 이거 아니셨습니까?”

정답이었을까? 다른 때처럼 나를 쫓아내지 않고 그의 시선이 다시 절벽을 향했다.

나도 더는 정답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교내에 이런 절벽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저 위에 올라가면 교가 전부 다 보이겠군요.”

“이 절벽의 용도는 오르는 데 있지 않네.”

“그럼 어떤 용도입니까?”

그러자 놀라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이 절벽은 이 주먹으로 무너뜨릴 절벽이지. 단 일격에!”

진심으로 한 말임을 느꼈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되는 목표라고 생각하지?”

아무리 권마라고 할지라도 이 절벽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버지도 불가능할 것이다.

“아뇨, 왜 저는 이런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공에 있어 구체적인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다. 물론, 그 자리를 화무기가 차지하고 있어서 그랬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무인이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말하는 것을. 그것이 내 가슴을 격동하게 했다.

“이 목표에 저도 동참해도 되겠습니까?”

“일검에 이 절벽을 잘라 보겠다?”

“아뇨. 저도 주먹으로 무너뜨려 보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권마가 깜짝 놀랐다. 설마 내가 그런 대답을 할 줄 상상도 못 했으리라.

한데 지금 나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이 절벽을 주먹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면, 화무기도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화무기를 떠나 무인으로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악귀처럼 무서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권마에게 더 놀라운 말을 전했다.

“제게 권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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