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회 권마가 어떤 사람인지는.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검무양의 말에 마불이 웃으며 대답했다.
“좋은 소식을 가져와서 그런가 봅니다.”
마불은 평소보다 더 밝고 활기차게 행동했다.
“권마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공자를 지지한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좋은 소식이었음에도 검무양의 표정이 확 밝아지진 않았다.
“대공자, 내가 허심탄회하게 한 말씀 드리겠소. 최근 대공자께서 내게 실망하신 일들이 있다는 것 알고 있소. 내 딴에는 잘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안 된 일들이 있었소. 하여, 공자께 사과드리오.”
마불은 일말의 가식도 없이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까 무공수련하던 검무극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의 연장선이었다.
이대로 가면 검무극을 이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가 필요했고, 그 시작은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다.
“아닙니다. 사과드려야 할 사람은 접니다.”
검무양의 반응에서 마불은 느꼈다. 검무양은 당황했고 자신의 말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검무양은 상대의 이면부터 보려는 사람이다. 상대의 말을 한 번은 걸러 듣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진심을 의심하고 있다.
어제였다면 마불은 이 반응에 화가 났을 것이다. 검무양과의 사이에 난 금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제는 인정하려 한다. 이게 검무양이란 사람의 본질이다. 이게 싫으면 자신이 떠나야 하는 거다.
이런 마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무양이 차분히 말했다.
“교로 돌아왔을 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극이가 너무 성장해 있어서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무극이는 어린 늑대였는데, 돌아와 보니 커다란 호랑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초조한 마음에 마불님께 여러 차례 무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검무양이 고개를 숙였다.
마불의 마음이 풀어졌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검무양과 자신 사이에 있던 금은 깨어져서 추락할 위험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관계를 위한 표시처럼 느끼기로 마음먹었다. 오히려 섭섭하고 힘들 때 쳐다보며 힘을 낼 금이었다.
“대공자도 호랑이십니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마음껏 포효하십시오.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불은 힘을 내고 있었다.
그래, 우리가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는 이래야 한다. 검무극이 자신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어오듯, 자신도 검무양을 향해 이렇게 성큼성큼 다가서야 한다. 그래야 이번 일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마불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오늘따라 달빛이 참 좋군요.”
하지만 검무양의 눈동자는 결코 그 좋은 달빛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달빛을 보며 눈빛이 촉촉해지는 마불로는 검무극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가 진정 나를 위한다면, 나를 호랑이라고 치켜세울 것이 아니라, 저쪽 호랑이를 잡을 덫을 가져오셔야죠.’
온갖 수를 다 써도 모자랄 판에, 무리수든 계략이든 다 동원해야 할 판에, 저런 여유나 부리고 있다니.
자신만큼 절박하지 않아서다. 어차피 후계 싸움에서 지면 죽는 것은 자신뿐이니까.
두 사람의 마음이 달랐기에 오늘의 달빛도 달랐다. 그렇게 부드럽고 따스하면서도 차갑고 외로운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 * *
달빛이 내리는 연무장에서 난 홀로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간의 수련으로 적권이 배우는 초식까지 완벽하게 익혔다. 그들은 어려워했지만, 여전히 내게는 권법의 기본처럼 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본이 튼튼해야 했기에 처음 수련한 그 순간부터 모든 시간을 권법을 연마하는데 투자했다.
그때 권마가 그곳으로 걸어왔다.
달을 등진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지자, 권마는 정말 악귀처럼 보였다.
“자넨 내가 무섭지 않나?”
“그 얼굴 보고 어떻게 안 무서울 수 있습니까?”
“안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나를 만만하게 보는군.”
“남들이 무섭게 보는 것이 좋습니까? 평생 겪으신 일일 텐데요.”
권마가 천천히 걸어와서 내 바로 앞까지 왔다.
그가 얼굴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그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악마가 현세에 태어난 것 같은 얼굴이다.
“가까이서 보니 어떤가?”
마존의 얼굴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런 느낌을 받았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
“대체 뭐가 천마신교의 마존을 이렇게 피곤하게 만드는 겁니까? 철권들입니까? 아니면 그 절벽입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 있으신 겁니까?”
순간 권마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누군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온 적이 없었을 거다. 동료 마존들은 물론이고 아버지도 마존들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니까.
“이런 식으로 마존들을 다 꼬드겼나 본데 나는 안 통할 거네.”
피곤해 보인다는 말이 그의 감정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말씀드렸다시피 애초에 그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뭔가?”
“권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권법을 익히는 것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설레고 신나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어쩌면 평생을 검법을 수련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천검법을 십이성 대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풍신사보의 대성을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딱 이 시기에 운명처럼 찾아온 권법이었다.
“가르쳐주십시오. 가르쳐주신 권법으로 권마님과 싸워보고 싶습니다!”
“!”
“그 권법으로 권마님을 이기고 싶습니다.”
순간 권마의 몸에서 기파가 쏟아져 나왔다. 권마의 기도는 바람 같았다. 세찬 바람에 눈을 뜰 수가 없고,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은 공포심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그런 기도였다.
천마호신공이 자연스레 발휘되고 호신강기도 끌어올려 그의 기도에 맞섰다.
그러자 권마의 기도는 더욱 강력해졌다.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날릴 것 같은 바람이 불었다.
나는 움켜쥔 주먹에 내력을 주입하여 하나의 초식을 발휘했다.
적권의 수련에서 배운 초식, 일권대천(一拳戴天)이었다.
파앙!
내 주먹이 박힌 허공에서 시원한 바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권마의 두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권마님이 제 몸속의 뭔가를 깨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게 무엇인지 권마는 알고 있을 것이다.
권마가 나를 압박하던 기도를 거둬들이며 내게 물었다.
“왜 이제야 찾아왔나?”
여덟 명의 마존 중 일곱 번째 인연. 그가 궁금해할 만한 질문이었다.
“내가 그만큼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나?”
“그 반대입니다.”
“반대라고?”
“권마님께서 마존 두 분의 역할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더 강해졌을 때 뵙고 싶었습니다.”
“내가 두 사람 역할을 한다는 것은 누가 한 말인가?”
“아버지십니다.”
아버지는 마존들의 숫자가 사 대 삼이지만 팽팽하다고 하셨다. 권마를 염두에 둔 말이라는 것을 취마를 통해 확인했다.
확실히 아버지가 마존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있다. 권마 역시 아버지가 언급되자 다소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교주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네. 나를 자네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말게.”
“가셔서 확인해 보십시오.”
권마의 얼굴이 더 무섭게 변했다. 정말 저 얼굴과 함께 중원에 나가면 매일 새로운 사건 사고에 재미난 일의 연속이 될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무섭게 나를 응시하며 그가 물었다.
“내 제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 진심인가?”
“진심입니다. 천마의 사부가 될 유일한 기회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천마가 된 제자를 마음대로 조종하려 들면 어찌하려고?”
비로소 나도 기도를 발출했다. 처음으로 권마에게 드러내는 기도였다.
끝없이 펼쳐진 창창한 하늘.
그 하늘이 비친 맑은 물. 얕게 보이는 물에 발을 담갔다가 깨닫게 되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해. 그 숨 막히는 두려움을 뻗어내며 준엄하게 말했다.
“그대의 천마는 고작 그러한 사람인가?”
권마는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린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긴 침묵을 깬 것은 권마였다.
“손 내밀어 보게. 그 아기 손 내밀어 보라고.”
나는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주먹을 쥐어보게.”
나는 천천히 주먹을 쥐어 보였다.
내 주먹을 살피는 권마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래, 쉽게 볼 수 있는 손은 아닐 것이다. 당신이 아기 손이라 부르는 이 손이 자그마치 하늘이 내린 천무지체의 손이었으니까.
고수가 되려면 몸 전체가 다 중요하지만, 특히 손이 중요하다. 특히 권법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신체의 약점을 병장기로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그 큰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었다. 손과 손이 만나 서로를 탐색했다.
이윽고 권마가 내 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서서 걸어갔다.
“내일부터 흑권 수련에 나오게.”
* * *
동권문을 나온 후 곧장 악인곡으로 갔다.
극악소마에게 권마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왠지 극악소마는 권마를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극악소마는 언제나처럼 온통 하얀 그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나를 본 그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이공자, 권마와 싸우고 싶군요.”
나는 깜짝 놀랐다.
“마음을 읽는 무공을 익히신 겁니까? 아니면 우리가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된 겁니까?”
“오늘은 가면을 쓰고 있잖습니까?”
“가면을 쓰고 있으면 권마와 싸우고 싶은 겁니까?”
“네, 그러면 권마와 싸우고 싶은 겁니다.”
내가 웃으며 가면을 머리 위로 올려 썼다.
“이렇게 왔으면요?”
“그럼 저와 놀고 싶어서 온 것이겠지요.”
적어도 오늘은 놀러 온 것이 아니기에 나는 다시 가면을 내려썼다.
“귀신은 속여도 소마님은 못 속이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히 인정했다.
“피가 그립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피가 그리우니 당장 소마님부터 생각납니다.”
“이공자가 권마에게 무공을 배운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은 저를 찾아올 줄 알았습니다.”
극악소마와 권마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느낌도, 분위기도, 성격도, 모두.
하지만 아무런 기준을 주지 않고 마존들을 분류해 보라고 하면, 극악소마와 권마는 같은 곳에 들어가 있을 것 같았다.
“권마가 왜 대공자를 지지하는 줄 아십니까?”
“제가 늦게 찾아가서요?”
극악소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자 승계를 지지해서요?”
“역시 아닐 겁니다.”
“그럼 왜 형을 지지합니까?”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나왔다.
“교주님 때문일 겁니다.”
“아버지 때문이라고요?”
“근래 이공자가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 모두 대공자가 후계자가 될 거라 예상했습니다. 아마 당시의 교주님 역시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는 말씀은 권마가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있다는 의미입니까?”
“맞습니다. 교주께서 대공자를 후계자로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요즘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거죠.”
“수하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요.”
“맞습니다. 만약 교주께서 이공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을 바꿔 먹을 겁니다.”
취마는 아버지가 순수하게 무공에 미친 권마를 제일 좋아할 거라 했다. 어쩌면 아버지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 역시 권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악소마가 권마에 대해 마지막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권마의 별호는 불패입니다. 그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죠. 권마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패했을 때 알게 될 겁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첫 패를 선사하는 사람은 어쩌면 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극악소마는 그런 내 열기를 읽었다.
“이공자, 왜 이렇게 강해지려는 겁니까?”
권마에게 권법을 배우려는 궁극적인 목적이 마존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해지고 싶은 열망 때문이란 것을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혹시 천하일통의 꿈을 꾸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은 겁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왜 이렇게 숨 가쁘게 달려가시는 겁니까?”
“언젠가 제 앞에 강적이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입니다. 미친 듯이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그런 강적이요. 제게 그런 불안증이 있나 봅니다.”
나는 솔직한 내 불안함을 그에게 드러냈다. 이상하게 극악소마에겐 이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편했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극악소마가 갑자기 지풍을 발출했다.
지이이이이익.
항상 그가 바라보는 하얀 벽에 지풍이 남긴 긴 선이 그어졌다. 나는 깜짝 놀랐다. 절대 훼손하지 않을 것 같은 벽에 줄을 그은 것이다.
“이공자, 우린 어디까지 왔습니까?”
정말 오랜만에 그가 선을 긋고 내게 물었다. 마지막 그었을 때 나는 생존선에 도달했다고 말했었는데.
나는 흑마검을 뽑아 예전에 그었던 생존선을 지나 줄의 마지막 부분에 세로줄을 그었다.
“저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니지만. 서로 등을 맞대고 목숨을 건 두 번의 싸움이 여기에 선을 긋게 한 것이다.
“기억나십니까?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말씀드렸죠. 가면 쓴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는다고. 이제 원칙이 바뀌었습니다. 저도 가면을 썼으니, 가면 쓴 사람과도 친구 할 겁니다.”
극악소마가 맑은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이공자가 그랬지요. 저 선까지 오면 친구가 되어 같이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같이 즐거워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위험에 빠지면 구하러 가고. 그러다 누군가 먼저 죽으면 무덤가에 술도 뿌려줄 거라고요.”
“맞습니다.”
“만약 아까 말한 그런 강적이 나타나서 이공자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면…….”
잠시 사이를 두고 극악소마가 덧붙여 말했다.
“제가 구하러 가겠습니다.”
“!”
나는 알 수 있었다. 극악소마의 선도 나와 같은 곳에 그어져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신다. 사람을 믿지 말라고. 이런 마음이 죽기 좋은 싸구려 감성이라고. 순진한 감성이라고.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좋다.
“구해주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극악소마의 눈이 맑게 빛났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돌아서 나오려다 극악소마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참, 저 벽 괜찮습니까? 수련을 위한 벽이잖습니까?”
하얀 벽을 보고 수련해야 내공을 더 얻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훼손해서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에 극악소마는 반대편 하얀 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쪽 벽은 색깔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오늘부터 이쪽 벽을 보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