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189화 (189/214)

제189회 그 섬은 나도 가본 곳이다.

권마의 몸은 완벽했다.

얼굴은 마귀 같았지만, 몸은 예술이었다.

터질 것 같은 권마의 근육은 크고 두꺼웠지만 둔해 보이지 않았다. 고된 수련과 위험천만한 실전을 통해 만들어진 금강석 같은 육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위축시켰다.

그의 몸에는 생각보다 상처가 없었는데 가슴을 길게 가로지르는 검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히려 그것이 그의 몸을 더 멋있어 보이게 했다.

그의 몸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궁극의 경지에 이른 권법가의 몸이다.

과연 저 몸이 쇄도해 올 때의 압박감을 버텨낼 수 있을까? 저 큰 주먹이 날아들 때의 파괴력을 견딜 수 있을까? 과연 내 검이 저 몸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내 반응을 본 권마의 표정에 기분 좋은 기색이 살짝 스쳤다.

멋지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을 테고, 그 자신도 알고 있을 테니. 나는 다른 것을 물었다.

“이런 몸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몸을 이렇게 만들면 검술에 방해가 될 텐데?”

검술가의 몸과 권법가의 몸은 분명 차이가 있으니까.

“몸을 이렇게 키우면서 검술도 더 강해지게끔 수련을 해야죠.”

“그럼 입보다는 몸을 놀려야겠지.”

권마가 권법 수련을 시작했다.

난 사실 그가 모임에 들어와도 수련은 하지 않을 줄 알았다. 들어온 목적이 수련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는 제대로 수련을 시작했다. 내가 보고 참조하라는 듯, 흑권의 권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가 옷을 벗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도 윗옷을 벗고 권마와 나란히 서서 초식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신안술로 권마의 몸을 샅샅이 살폈다. 같은 동작을 펼쳤을 때 그의 근육과 내 근육을 비교했다.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지.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배움이 될 것이다.

이안과 천소희는 나와 권마가 똑같은 동작으로 초식을 발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천소희의 마음만은 옷을 벗어 던지고 함께 뛰어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만큼 그녀 역시 가슴에 불이 붙은 상태였으니까.

이안과 천소희도 수련을 시작했다.

심야수련모임. 이름만 들으면 농땡이들의 친목 모임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모여 있는 네 사람은 불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랬기에 그 어떤 수련보다 뜨겁게 진행되었다.

권마의 주먹이 일으키는 바람 소리와 내 바람 소리가 달랐다. 당연히 권마의 소리가 더 듣기 좋았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묵직한데도 경쾌한 소리를 내는 것일까? 권마의 주먹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순수하게 권법에 빠져들었다. 절벽을 무너뜨리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된 순간부터 나는 다른 의도나 목적으로 권마를 보지 않았다. 오직 그에게 권법을 배우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그런 내 마음을 느꼈기에 오늘 이 순간 권마가 함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련이 끝나고 난 권마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했다.

“내일은 마가촌에서 모일 겁니다.”

“마가촌에서?”

“내일은 권마님 환영회를 할 겁니다. 신입 환영회죠.”

권마는 깜짝 놀랐다. 이내 모임에 들어오려면 독문무공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했을 때보다 더 심한 눈빛이 날아들었다.

나를 위한 환영회를 한다고? 게다가 신입? 너 정말 미친놈이냐?

아마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일 것이다.

“같은 시간 풍류주점 앞에서 집합입니다. 이상, 해산!”

나를 노려보는 권마에게 ‘싫으면 탈퇴하시든지’의 눈빛으로 버텼다.

권마는 코웃음을 치고는 그곳을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돌아선 나는 흠칫 놀랐다.

이안과 천소희가 나란히 서서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내일 환영회가 싫은 사람이 권마만은 아닌 모양이다.

이안이 목청을 높였다.

“정말 이럴 거예요? 그 자리에서 술이 넘어가겠냐고요!”

“의외로 재미있을지도 모르지.”

갑자기 천소희가 이마에 손을 대며 말했다.

“아! 저 열 나는 것 같아요. 아마 내일은 불참해야 할 것 같네요.”

이안이 덩달아 말했다.

“아! 맞다. 저 내일 약속 있어요. 잊고 있었네.”

두 여인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통하겠냐? 자, 그럼 내일 풍류주점에서 봐!”

그렇게 권마가 함께한 심야수련모임의 첫날이 끝났다.

* * *

다음 날 밤.

풍류주점 주인장 조춘배는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했다.

오늘따라 손님이 없어서 일찍 문을 닫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산대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그때.

인기척에 잠에서 깬 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악!”

그가 비명을 지르고 뒤로 넘어졌다.

눈앞에 무시무시한 악귀가 서 있었다. 잠결에 헛것을 봤겠거니, 바닥에서 일어난 그가 바짝 얼어붙었다.

악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정말 이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팔뚝이 자신의 허벅지보다 더 굵었다.

그때 들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

“오랜만이오, 주인장.”

남자 뒤에서 검무극이 모습을 보였다.

“각주님!”

정말이지 죽다 살아난 기분이 들었다.

“본교의 권마님이시오. 인사드리시오.”

권마라는 말에 조춘배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권마에 대한 여러 소문을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귀한 분이 오신 줄도 모르고 제가 잠결에 실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조춘배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이 시간부로 기록이 깨졌다. 손님으로 온 마존들 중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이제부터 권마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이안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조춘배의 표정이 밝아졌다. 항상 밝게 인사를 건네는 이안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권마 옆에 서 있으니, 정말 극과 극이 함께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검무극을 제외한 세 사람이 항상 앉는 이 층 자리로 먼저 올라갔다.

“요즘 장사는 잘되시오?”

“덕분에 잘되고 있습니다. 요즘 각주님 권법 수련 중이시라더니,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요.”

“주인장도 아시는구려.”

“요즘 그거 모르면 세작이죠. 아니다, 세작이 제일 먼저 알고 무림맹에 보고했겠네요.”

조춘배의 농담에 검무극이 함께 웃었다.

아래층의 즐거운 분위기 비해 이 층 분위기는 엄숙했다.

이안과 천소희는 권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특히 천소희는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모임을 탈퇴하기는커녕 몰래 사형, 사매 하자는 말까지 들켰으니.

‘정말 차기 권마는 물 건너갔구나!’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이안이 권마에게 물었다.

“여기 와 보셨어요?”

그러자 권마가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 질문이 이렇게 무섭게 저를 쳐다보실 일인가요?’

이안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권마는 무척이나 억울해했을 거다. 그냥 봤는데, 무섭게 쳐다본다고 여겼으니.

“술 가져오라고 하게.”

“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권마의 말에 천소희가 재빨리 일어나서 일 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이제 이 층에는 권마와 이안만이 남았다.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권마님이 우리 모임에 들어오실 줄은요.”

사실 이안은 이 말을 묻고 싶었다.

정말 도련님과 싸우고 싶어서 들어오신 건가요?

권마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으냐?”

“무섭습니다.”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만약 그렇게 느끼셨다면 도련님 때문일 겁니다.”

“이공자가 왜?”

“정말 권마님이 제게 위험한 분이라면, 도련님은 저를 권마님과 단둘이 있게 하지 않을 테니까요. 애초에 모임에 못 들어오셨을 겁니다.”

권마의 시선이 일 층 계산대 앞에 서 있는 검무극을 향했다.

“믿음이 클수록 상처도 큰 법이지.”

이안은 방금 그 말을 눈을 감고 들었다면 권마가 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내용도 그렇고 부드러운 어조도 그렇고. 이안은 문득 자신이 권마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은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여자들은 다 알거든요. 모른 척 당해주느냐, 미리 도망가느냐의 선택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너는 모른 척 당해주는 쪽이냐?”

“원래 저란 사람은 보기보단 약아서 미리 도망가는 쪽이랍니다. 다만 도련님의 경우가 유일한 예외가 되겠지요.”

“그릇된 믿음이 불행을 불러오는 법이지.”

“아쉽네요. 그걸 경험해 볼 수 없어서요.”

검무극에 대한 이안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그때 검무극과 천소희가 술을 들고 이 층으로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인장을 잠시 붙잡고 있는 바람에 술이 늦어졌습니다.”

검무극이 권마에게 먼저 술을 따라주었다. 권마의 큰 손에 들린 술잔은 너무 작고 귀엽게 보였다.

검무극이 이안과 천소희에게 술을 부어주며 말했다.

“주사 있는 사람, 지금 우리가 누구와 술 마시는지 잊지 말도록!”

이안이 검무극의 너스레를 받았다.

“주사가 있는 저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자리군요.”

그러면서 천소희를 쳐다보았다.

“혹시 주사 있어요?”

“저는 주사 없어요.”

“주사 나올 때까지 끝까지 안 마셔 본 것은 아니고요?”

천소희는 절대 주사를 부릴 일 없다고 자신했다. 권마와 함께 술을 마시는데 주사를 부린다고? 그럴 일은 없다.

“자, 권마님을 환영합니다. 건배!”

검무극이 술잔을 들었고 다 함께 건배했다.

검무극은 오랜만의 술자리가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가 되도록 노력했다. 절대 안 올 것처럼 했지만, 시간 딱 맞춰 도착한 권마를 위해서도 말이다.

검무극과 이안이 주도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무공 이야기도 했고, 여자 이야기도 했고, 남자 이야기도 했다. 무림맹이나 사도맹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다른 마존들 이야기도 했다.

권마도 이 자리가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술도 잘 마셨고 간간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했다.

하지만 대화 내내 검무극은 느꼈다. 권마가 외로워한다는 것을. 이렇게 웃고 떠들고 하는 자리에 있는 권마를 보니까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넷이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지만 권마만이 아득하게 먼 곳에 홀로 있었다.

그 외딴섬은 검무극도 가본 곳이었다.

검무극도 권마와 같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언제나 그 삶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회귀대법의 재료를 구하겠다는 일념만 있었지, 자신의 삶은 없었다.

어쩌면 권마도 절벽을 무너뜨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갈 뿐, 현실의 즐거움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빠져 술을 마시는데 이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의 눈빛이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그냥 이것저것.

그때 취기가 살짝 오른 천소희가 벼르고 있던 말을 꺼냈다.

“어제 권마님께서 물으셨던 질문에 대해 밤새 생각해 봤어요. 강해지면 뭐 할 거냐는 질문 말이에요.”

그녀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동권문에 들어오기 전에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아요. 언젠가부터 이기고, 또 이겨서 권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한데 그 와중에도 이 생각만은 했어요. 권마가 되면 행복해질 거다. 행복해질 거다. 권마만 되면 이 노력 다 보상받을 거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해지면……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말해 놓고도 무안했는지 얼른 덧붙여 말했다.

“권마를 꿈꾸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본교를 위한 대업이 아니라 고작 행복해지는 것이면 안 되겠지만요.”

그녀의 말을 받아준 것은 검무극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검무극이 권마를 쳐다보며 물었다.

“권마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한심하지만 나쁘진 않군.”

“한심하면 한심하고, 나쁘지 않으면 나쁘지 않고. 둘 중 하나만 딱 정해주십시오. 그렇게 어중간하게 말씀하시면 우리 사매 밤새 고민하느라 또 한숨도 못 잘 겁니다.”

“나쁘진 않다.”

검무극이 웃으며 천소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천소희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저는 이 무인처럼 되고 싶어요.

이안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거기에 더해 자기 목숨만큼이나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까지 있다.

‘부러워요, 당신.’

우린 다 같이 술을 마셨다.

권마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검무극에게 물었다.

“강해지고 싶어서 권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

“네.”

“강해져서는 뭐할 건가?”

천소희에게 했던 똑같은 질문이었다.

“자유롭게 살 겁니다.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마존 분들하고 놀다가 혼자 있고 싶으면 천마전에 몇 날 며칠이고 틀어박히고. 그러다 답답하면 훌쩍 중원으로 나갈 겁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마을에 며칠 묵기도 하고. 경치 좋은 산에서 약초꾼들하고 술도 마시고. 적어도 아버지처럼 천마전에 갇혀서 답답하게 지내진 않을 겁니다. 좀 놀러도 다니시고 그러시지. 왜 다들 그런 표정입니까? 무섭게 왜 그래요…… 아니죠?”

어제 천소희가 했던 말을 흉내 내면서 검무극이 뒤를 돌아보았다.

들어선 것만으로도 주위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지게 하는 사람, 내내 여유롭던 권마를 경직되게 만드는 사람, 존재만으로 모두를 긴장시키는 사람, 바로 천마 검우진이 뒤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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