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193화 (193/214)

제193회 무섭지만 잘생긴.

나와 권마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 위에 서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폭포가 만들어 내는 거대한 물보라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자, 절대 내공 쓰시면 안 됩니다.”

“자네나 약속 어기지 말게.”

우리가 하려는 것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였다. 뭐, 딱히 내기에 걸린 것은 없었다. 그야말로 자존심 대결.

어릴 땐 저 아래에서 여자애들이 올려다봤었는데… 그 위험한 장난을 지금 이 첩첩산중에서 권마와 하고 있었다.

“자네의 그 얇은 몸통이 바위에 부딪혀 박살 날지도 몰라.”

“권마님의 그 큰 몸통은 두 배로 더 세게 바위에 부딪힐 겁니다.”

서로를 향한 눈빛에 절대 지지 않겠다는 결의가 담겼다.

우린 동시에 뛰어내렸다.

내 수준에 내공을 쓰지 않고 뛰어내린다고 어디 겁이 나거나 가슴이 철렁하겠는가? 그래도 난 일부러 시원하게 소리를 질렀다.

“우아아아아아!”

풍덩!

거대한 물을 튕기며 권마의 신형이 먼저 물속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권마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 나는 수상비로 물 위에 떠 있었다. 물에 빠지기 전에 내공을 쓴 것이다. 고개를 내민 권마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얄밉게 말했다.

“제가 졌습니다.”

내 얼굴에 깃든 장난기에 권마는 잠시 어이없어하더니 이내 계곡에 메아리가 울리도록 크게 웃었다.

그래, 웃겼으면 됐다.

나도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얼음장처럼 시원한 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사이, 권마는 건너편 물가의 넓적한 바위로 올라갔다.

내력 없이 폭포에서 뛰어내리기.

권마의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을까? 아니, 생각조차 한 적 없었을 거다.

“물이 정말 맑네요.”

한참을 헤엄치다 나도 권마가 있는 바위로 올라섰다.

내력으로 열기를 일으켜 옷을 말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옷을 벗어서 바위에 널어두었다.

“저 좀 눕겠습니다.”

그리고 벌러덩 드러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권마님도 누우십시오.”

“괜찮네.”

“사람들 앞에서 누워 보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기억도 나지 않는군.”

“그러니 이럴 때라도 누우십시오.”

내 권유에도 권마는 앉아 있었다.

우린 잠시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에게 쌓인 피로를 농땡이로 풀려면, 중원을 가로질러 끝까지 가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교에서 멀어질 생각이다.

“이만 가세.”

“조금만 더 있다 가시죠.”

권마는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그를 이해했다. 교에서 그의 삶은 온종일 바쁜 삶이었다. 백권부터 흑권까지 모두 가르치다니! 생각해 보면 정말 쉽지 않은 삶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권마가 벌떡 일어났다.

답답함을 못 참고 권법이라도 펼치려는 그를 내가 재빨리 제지했다.

“평생 그렇게 주먹을 내지르셨잖아요. 이번만은 참으시죠.”

“앉아만 있으니 몸이 찌뿌둥하고 뻐근해서 못 참겠네.”

“자자, 일단 앉으세요.”

그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는 이 농땡이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답니다. 한데 이렇게 멍하게 있는 게 정신 건강에는 좋다고 합니다.”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나?”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이죠.”

나를 내려다보는 권마 너머 하늘이 푸르렀다.

“권마님, 저 뒤로 흘러가는 구름 좀 보십시오.”

권마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을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에 잡념이 들어서는 것이 느껴졌다.

“수하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 속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표정으로 권마가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다들 만세를 부르고 있을 겁니다. 수하들도 긴장 풀고 농땡이 좀 치라고 하십시오. 수장도 농땡이, 수하도 농땡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럼 그 조직은 망하겠지.”

“좀 망하면 어떻습니까?”

순간 권마가 흠칫했다.

“망하면 어때? 라는 생각, 한 번도 하신 적 없죠?”

“당연히.”

“망하면 다른 마존들 있잖습니까? 망하면 아버지 있잖습니까? 욕 좀 들으면 어떻습니까? 자존심 좀 상하면 어떻습니까?”

권마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네가 뭘 아느냐는 비웃음 같기도 했고, 어딘지 모르게 속 시원한 웃음 같기도 했다.

“그냥 다 잊어버리십시오. 색깔 붙은 주먹쟁이들, 다 잊으십시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권마가 자세를 편하게 풀었다. 두 팔을 뒤로 의지한 채 몸을 살짝 눕힌 것이다. 끝까지 눕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좀 편해진 느낌이었다.

우린 그렇게 옷이 다 마를 때까지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 * *

산을 내려와서는 오솔길을 걸었다.

“경공으로 안 갈 건가?”

“경치도 좋은데 이 길 끝까지만 걸으시죠.”

역시 그는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다.

“차라리 목적지에 가서 쉬는 게 낫지 않나?”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회귀 전의 내가 자꾸 생각난다.

대법 재료를 구하러 다닐 때 내가 이랬다. 일단 목적지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달려갔다. 걷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산책이 사람에게 그리 좋답니다.”

“멍하게 있는 것도 좋고, 산책도 좋고. 대체 안 좋은 게 뭐가 있나?”

“안 좋은 것 많죠. 농땡이 치러 나와서 일 걱정하는 것. 정작 상대는 내 생각 하지도 않는데 나만 그 사람 생각하는 것. 놀러 나와서도 절벽 무너뜨릴 생각 하는 것. 많죠.”

잠시 사이를 두고 그가 물었다.

“내 삶이 그렇게 나쁘게 보였나?”

“네.”

망설임 없는 대답에 권마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빠서 나쁜 게 아니라, 너무 완벽해서 나쁘게 보였습니다.”

살짝 그의 얼굴에 스치는 안도감.

“자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네만, 나는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라네.”

“정말입니까?”

“뭐?”

“정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분이시냐고요. 어떻게 아십니까? 한 번도 무너져 보지 않으셨으면서.”

권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태사의를 보고 있으면, 권마님이 서서 수하들을 바라보는 그 단상이 떠오릅니다. 두 분 다 거기 갇혀 계시는 느낌을 받거든요.”

“!”

권마야, 그 변함없는 굳건함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좀 쉬어도 되지 않겠느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린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서 권마에게 물었다.

“해보고 싶은 것 있으십니까?”

권마는 쉽게 대답을 찾지 못하고 내게 되물었다.

“자네는?”

“저는 지금 하는 중입니다.”

권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안과 천소희는 자꾸 봐도 무섭다지만, 나는 권마의 이 얼굴이 무섭지 않다. 사실 처음부터 무섭지 않았다.

“그럼, 자네에게 맡기지.”

“자, 그럼 일단 맛있는 것부터 드시러 가시죠. 원래 여행에 먹거리가 빠지면 안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나는 먼저 달려 나갔고, 권마가 나와 함께 달렸다. 권마는 내내 참았던 속도를 쏟아부으며 앞장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여깁니다. 이백 년 전통의 맛집!”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술도 팔고 음식도 파는 송명관이란 곳이었다.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여긴 어떻게 알았나?”

“제가 아는 것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여기 대표 요리가 권마님이 좋아하시는 죽순 요리입니다.”

“그건 또 어떻게 알고?”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권마님 음식에 독 타려고 알아본 것 아니니까요. 미래의 사부님이 되실 분인데, 그쯤은 알아야죠.”

우리 앞에 줄을 서 있던 남자가 힐끗 돌아보다가 권마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가 덜덜 떨며 말했다.

“양, 양보해 드릴까요?”

“괜찮네.”

권마의 대답에 고개를 돌린 남자는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권마에게 물었다.

“평생 줄 서서 음식 사 먹어 본 적 없으시죠?”

있겠냐 하는 권마의 표정에 다시 물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권마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줄 서 있는 사람들, 뒤에 새롭게 줄을 서는 사람들, 길을 오가는 사람들, 행상들의 호객행위.

“나쁘진 않네.”

점소이 숫자만 해도 열 명이 넘는 송명관은 워낙 큰 음식점이라 줄은 금방금방 줄어들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몇 가지 요리와 술을 시켰다.

“뭘 이리 많이 시키나?”

“오랜만에 왔는데 다 먹고 가야죠.”

술이 먼저 나와서 권마에게 술을 따라주는데, 권마의 못마땅한 시선이 길 밖에 저희끼리 욕설을 내뱉으며 지나가는 무인들을 향했다.

내가 손을 뻗어서 그의 시야를 막았다.

“우린 농땡이 중입니다! 저건 돌멩이다. 저건 의자다. 아시겠습니까?”

“알았네.”

권마가 내게도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자네 나이에, 그 무공이면 혈기를 참기 어려울 텐데.”

“그래서 마존 분들과 놀고 있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사고 안 치려고.”

“우리와 어울리는 이유야 달리 있겠지만, 사고 안 치는 것은 장한 일이네.”

“오! 권마님이 제게 해주시는 첫 칭찬입니다.”

내가 술잔을 들었고 그와 건배했다.

잠시 후, 요리가 나왔다. 좋아하는 죽순 요리를 한 점 먹어본 권마가 깜짝 놀랐다.

“정말 맛있네.”

“줄 서는 집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내 시선이 주방을 향했다.

“어떻습니까? 숙수 납치해서 본교로 데려갈까요?”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는군.”

“왜 그렇게 단정하십니까? 데려가면 가는 거죠.”

잠시 나를 응시하던 권마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자네 마도는 주점의 탁자를 부수지 않는 마도라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걸 권마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도 듣는 귀가 있네.”

이래서 내가 형에게 했던 말이 맞다. 안 보는 것 같아도 마존들은 다 주시하고 있다고.

“네, 그래서 남이 줄 서면, 우리도 줄 서서 먹어야죠. 숙수가 납치되면 우린 구하러 가야죠. 이게 제 마도입니다.”

권마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에게 내 마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뭐라 말을 할까 말까 하던 권마가 다시 먹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두 여인 중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소협께서는 이곳에는 초행이세요?”

“네, 초행입니다.”

“그럼 꼭 들러보셔야 할 곳들이 있어요.”

“합석하셔서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인들이 권마를 힐끗 살피더니 이내 흔쾌히 합석했다.

나는 그녀들을 위해 새 요리를 시켜주었다.

권마의 놀람이 느껴진다. 그녀들이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이 과정이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인 모양이다.

처음 보는 여자가 먼저 말을 걸고 합석을 한다고?

그래서 그는 여인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 아닌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여인들은 그냥 놀기 좋아하는 젊은 애들이었다.

굳이 합석까지 시킨 이유는 권마 때문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권마였다. 여인과 관련된 일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외모 때문에 애초에 애정사는 포기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권마가 평소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주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며 여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재미난 이야기로 그녀들을 웃겼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권마도 나중에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 자리를 즐겼다.

간혹 권마가 더 잘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권마에게 물었다. 가령 이런 거 말이다.

“이 소저들에게 젊었을 때 무림맹 천라지망 뚫었던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물론 여인들은 믿지 않고 깔깔 웃었다. 으레 술자리에서 떠는 남자들의 허풍을 넘어선 말이었으니까. 그때 권마가 날 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해줘? 나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아무도 안 믿어요.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신나게 놀다가 여인들이 먼저 일어났다.

그건 권마에게 더 놀라운 일이었다. 저래 놓고 그냥 간다고?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도 없고?

그녀들이 떠나고 권마가 물었다.

“혹시 그 여인들에게 따로 돈을 주겠다고 전음을 보냈나? 아니면 합석 안 하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나? 아니면 우리 전낭을 노린 여인들이었나?”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할 줄이야.

“그게 아니라면 여인들이 합석하자고 할 리가 없지 않나?”

“그야 저 때문이죠.”

“그건 알겠네. 그중 한 여인이 자리 내내 자네 얼굴만 쳐다보더군.”

“맞습니다. 그래서 합석하자고 한 거죠.”

“내가 옆에 있는데도?”

“권마님 얼굴 보고 무서워서 합석 안 했을 거다?”

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권마님이 두 가지를 모르고 계십니다. 요즘 애들 모르는 사람하고도 편하게 잘 어울리고 놉니다.”

“그러다 무슨 험한 꼴을 당하려고?”

“겁 없죠, 요즘 것들.”

“자넨 아니고?”

“저 포함해서요. 저도 겁 없잖아요?”

“없어도 너무 없지. 그리고 두 번째는 뭔가?”

“권마님이 무섭게 생긴 건 사실이지만 못생긴 얼굴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잘생긴 쪽이시죠.”

권마가 깜짝 놀랐다. 날 만난 이래 가장 놀란 반응이었다. 아마 잘생겼다는 말은 평생 처음 들었을 것이다.

“아부를 해도 내가 받아들일 만한 아부를 하게.”

“제가 아부를 잘하지만, 지금 그 말씀은 아부가 아닙니다. 여자들이 볼 때는 권마님 얼굴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죠.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지켜줄 것 같은 든든함도 느낄 수 있고요.”

뭐라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를 권마에게 덧붙여 말했다.

“오늘의 결론. 권마님은 무섭지만 잘생긴 얼굴이다!”

술잔을 비운 후 권마가 결론을 내렸다.

“자넨 미친놈이야.”

“결국, 그 말을 권마님에게도 듣는군요!”

그때 한 어린 점소이가 우릴 향해 걸어왔다. 나이는 이제 겨우 열 살이나 되었을까?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지켜봤어요. 왠지 대협께는 부탁드려도 될 것 같았어요.”

아이가 권마에게 애원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아이의 눈에 맺힌 눈물에서 어른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무게가 느껴졌다.

난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권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천진한 아이 눈에는 도와달라면 도와주실 것 같은 얼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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