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204화 (204/214)

제204회 너희가 참아라.

검무극이 일선의 아혈을 풀어주자 없던 돈이 생겨났다.

“제가 깜빡했습니다. 대륙전장에 제가 따로 모아둔 돈이 있습니다.”

“얼마나?”

“사십만 냥쯤 됩니다.”

“많이 모았네?”

일선이 대륙전장의 암어도 밝혔다. 고월이 그것 역시 챙겨서 적었다.

앞서 신선채 자금 팔십만 냥에 일선이 따로 모은 돈 사십만 냥. 합쳐서 벌써 백이십만 냥을 얻었다. 그러자 이선이 화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다시 이선으로 교대.

“그동안 우리에겐 고작 오만 냥 챙겨줬으면서 혼자 사십만 냥이나 먹은 거냐?”

미안해하기는커녕 일선은 뭐라 반박하고 싶은 얼굴이었는데, 아혈이 제압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선에게 재산이 더 있소. 금을 사서 숨겨둔 것을 알고 있소.”

일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금만큼은 끝까지 모른 척하려 했던 모양이다.

자기 금으로 이선이 점수를 따자 일선이 신경질적으로 눈을 깜박였다. 두 사람의 눈 깜박이기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시 일선 차례.

“금도 말하려고 했습니다. 제 공으로 해주시오!”

“그건 안돼. 억울하면 까먹지 말고 잘 챙겨. 또 둘째 신선이 네 재산으로 생색낼지도 모르니까.”

일선은 재산을 완전히 포기했다. 일단 살아남기만 하면 돈은 얼마든지 모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사둔 땅이 좀 있습니다.”

“몇 평이나?”

“꽤 됩니다.”

사실 재산보다는 정보를 얻고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두 사람은 상황을 착각하고 있었다. 검무극 입장에서야 고마운 상황이었다.

한편 일선의 재산이 나오면 나올수록 이선의 배신감은 너무나 컸다.

“형제라고? 개새끼! 혼자서 다 해 먹고 있었구나.”

사실 해 먹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말도 없이 해 먹은 게 화가 나는 것이다.

다음 차례의 일선이 반박했다.

“애초에 네놈이 오만 냥이라도 번 것도 내 덕분이란 것 모르겠냐? 나 아니었으면 넌 지금 어디 노름방에서 칼 맞고 뒈졌을 거다. 카악, 퉤!”

충성으로 맺어졌던 관계였지만 무너지니까 한순간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죽은 삼선과 사선의 재산까지 다 밝혔다. 어떻게든 검무극에게 잘 보여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선은 거기에 꼭 일선을 죽이겠다는 복수심까지 있었고.

더 나올 재산이 없자, 검무극이 두 사람의 수혈을 눌렀다.

자기 차례만 오면 서로에게 욕을 해대던 두 사람이 잠이 들었다.

검무극이 고월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두 사람 데리고 전장부터 돌면서 재산 싹 회수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두 사람은 그냥 살려둘 생각이었다. 일선이 전장 암어를 틀리게 가르쳐줬을 수도 있으니까.

검무극이 풍천교주에게 부탁했다.

“내일 고 군사를 좀 도와주십시오.”

“알겠네.”

풍천교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욕을 한 바가지 하실 줄 알았는데요? 이렇게 악당 놈들까지 쥐어짜서 돈을 번다고요.”

“그 쥐어짠 돈으로 고월과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나?”

“죄송합니다.”

“생색내려고 한 말은 아니고. 그 악당 놈 돈, 가치 있게 잘 쓰이고 있다는 의미였네.”

이번 신선채 자금이 들어가면 어느 정도 정보조직을 구성하는 일이 마무리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저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고월에게 다 들었네. 저 새끼들 잠은 왜 재워? 거꾸로 매달아 둬!”

“알겠습니다. 깨면 손톱부터 뽑기 시작하겠습니다.”

물론, 농담이었다. 어떤 악이라도 죽음을 선사하는 것으로 끝. 그게 검무극의 정해진 철칙이었다. 저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였다.

풍천교주와 대화를 마친 검무극이 권마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이쪽 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달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검무극이 나란히 서서 함께 달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에 여행하면서 뭘 느꼈는지 아나? 내가 너무 무공에만 매몰된 인생을 살았구나. 평생을 수련만 했고, 평생을 싸움만 했구나.”

언젠가 검무극이 이안에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너무 수련만 하는 인생을 살지 말라고. 그 후회를 지금 권마가 하고 있다.

“조금 전에 깨달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달을 올려다본 적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그게 말이 되나? 평생 살면서 일다경도 달을 본 적이 없다니.”

검무극의 시선이 함께 달을 향했다.

“이제부터라도 좀 즐기고 사십시오.”

“그러려고.”

만약 저 말을 지킬 수 있다면, 권마가 오히려 무공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설 수 있다면…… 어쩌면 그는 정말 절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삶이 바뀌어야 무공도 바뀌는 법이니까.

* * *

다음 날, 고월은 풍천교주와 함께 일선과 이선을 데리고 가서 전장을 돌았다. 알려준 암어는 정확한 것이었다. 돈뿐만 아니라 맡겨둔 금도 찾았고 다른 재산들도 정리해서 회수했다.

이 많은 재산을 일선은 불과 몇 년 만에 모았다. 그만큼 더 많은 피해자가 있었다는 의미기도 했다.

일선과 이선은 어떻게든 고월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말을 늘어놓았지만, 고월은 단 한마디의 말도 받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말을 건 사람은 풍천교주였다.

물론 그 말이 너희는 지옥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에 갈 거라거나, 둘 중 누가 살아남을까 내기를 걸었다, 같은 듣기 싫은 말들만 골라서 했기에 그들도 못 들은 척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재산을 다 정리하자 검무극은 다시 두 사람을 앞에 앉혔다.

“자, 이제 전주에 대해 말해봐야겠지?”

일선은 이 대답에서 자신의 생사가 판가름 난다고 생각했다.

‘다 말하면 안 돼! 그렇다고 숨기는 기색을 보여서도 안 돼!’

이게 핵심이었다. 문제는 전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이걸 어떻게 포장해야 살 수 있을까?’

일선이 옆에 있는 이선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도 저놈은 아예 모르는 이야기니, 여기서 확실히 점수를 따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 수 있다. 재산도 내가 훨씬 많이 바쳤고, 전주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하면, 내가 산다!’

일선이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입을 열었다.

“전주는 딱 한 번 봤습니다.”

“언제?”

“처음 그와 손잡을 때였습니다.”

“그가 누군지 아나?”

“모릅니다. 그자와 저 사이에는 휘장이 내려와 있어서 얼굴을 보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목소리로 추측해볼 때, 그는 나이가 꽤 느껴지는 남자였습니다.”

“이제부터 나이가 꽤 느껴지는 남자를 찾아 나서야겠군.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되려나?”

검무극의 조롱에 일선이 당황해서 재빨리 덧붙였다.

“어제 권마님이 죽인 자들이 귀검팔수입니다. 귀검팔수가 돈만 보고 움직일 리는 없으니, 전주는 그냥 돈만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 큰 문파의 주인이거나, 큰 권력을 지닌 자입니다.”

그때, 이선이 눈을 깜박거렸다.

일선이 재빨리 말했다.

“아혈을 풀어줄 필요 없습니다. 전주에 관해서는 저놈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까? 더 나은 정보가 자네에게 있을까?”

검무극의 말에 이선이 더욱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검무극이 일선의 아혈을 제압하고 다시 이선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이선에게서 기대 이상의 말이 흘러나왔다.

“저는 직접 그 사람과 대화도 나눠봤습니다. 휘장이 없는 데서요.”

그러자 아혈이 제압당한 일선이 눈을 깜박이고 말을 하려고 신음을 냈다. 지금 저 말이 다 거짓말이라는 격렬한 신호였다.

“자세히 말해봐.”

“일선이 그를 만났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저는 장원의 마당에 세워진 마차의 마부석에서 일선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잠시 후, 전주가 먼저 나오더군요. 근데 그가 마차에 올라타면서 마부에게 슬쩍 고개를 숙이는 것을 봤습니다. 분명 예를 갖추는 행동이었습니다.”

일선이 하도 바둥거리며 신음을 내서 그의 아혈도 풀어주었다.

“거짓말입니다! 전주가 마부에게 인사를 왜 합니까?”

“사실입니다. 제가 분명히 봤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할 수 있게 되자 시끄러워졌다.

“지어낸 말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때 제게 말했을 겁니다. 왜 말 안 했지?”

“뭐라고 해? 네가 병신처럼 하수인에게 속은 것 같다고? 진짜 전주는 마부 같다고? 그럼 네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지랄하지 말라면서 날 두들겨 팼겠지. 아냐?”

일선은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랬을 테니까.

“이 새끼! 어디서 개수작이냐? 그렇게 비겁하게 살고 싶어?”

“비겁? 그건 어디서 나온 말이냐? 네 더러운 심보에서 만들어진 말이지?”

나는 일선에게 조용히 하라고 시늉한 후, 이선에게 말했다.

“계속 말해봐.”

“심지어 기다리면서 그 마부하고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동글동글 사람이 좋아 보이는 인상에, 아! 가슴에 문신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허리를 숙일 때 우연히 봤습니다.”

“어떤 문신이지?”

“황금색 돼지 문신이었습니다. 사람 몸에 돼지를 새기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아직도 그 문신만큼은 생생합니다!”

뭔가 중요한 정보를 준다고 여겼는지 일선이 나섰다.

“이놈은 거짓말이 특기입니다. 믿지 마십시오. 살려고 별 지랄을…….”

퍼어억!

이선 앞에 있던 일선이 사라졌다. 내 일격에 얼굴이 박살 난 그는 저 멀리 시체가 되어 뒹굴었다.

놀란 이선이 나를 쳐다보았다. 경악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다.

“제가 살아남았군요!”

그는 날아갈 듯 좋아했다.

“아무래도 저놈이 더 나쁜 놈이니. 네가 뒤에 죽는 것이 맞다.”

순간 이선이 흠칫 놀랐다. 뒤에 죽는 것이란 뜻이, 나중에 나이 먹고 늙어서, 그 나중을 뜻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검무극의 눈빛이 차갑기만 했다.

“살려주십시오!”

“애초에 너희 넷은 살아남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그냥 곱게 보내주는 거로 만족해라.”

“약속을 지켜라! 이 개새끼야! 너 대체 누구야? 누구길래…….”

퍼어억!

이선이 일선이 있는 곳까지 날아가서 절명했다.

검무극은 이들을 없애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들의 개과천선을 바라지도 않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혀 마교 이공자에게 죽었다는 거창한 의미도 부여해주지 않았다.

돌아섰을 때, 권마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배후 놈들까지 캘 작정 아니었나?”

“맞습니다.”

“한데 다 죽여도 되나?”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동글동글한 체형, 가슴에 황금 돼지 문신. 회귀 전에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때론 마부가 되었다가 공사판의 인부도 되었다가 주점의 점소이도 되었다가. 그는 신분을 숨기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동시에 극도로 탐욕적이었던 인물.

“놈을 죽이려면 아버지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검무극의 말에 권마가 깜짝 놀랐다.

“대체 누구기에?”

검무극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지생(池生)입니다.”

권마가 대번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설마? 사도맹의 그 황금돼지?”

“네. 바로 그자입니다.”

“그자가 이번 일의 배후에 있다고?”

권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상대가 지생이라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사도맹 소속이라서가 아니었다. 지생이 한 사람의 충복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도맹주가 가장 총애하는 인물이자 오직 사도맹주의 명령만 받는 사도맹 최정예조직 극도병단(極度兵團)의 수장.

사도맹 이인자 야율한(耶律韓).

지생은 바로 야율한이 가장 아끼는 네 명의 수족 중 하나였다. 그 수하들은 충성을 맹세하며 각자 가슴에 문신을 새겼는데 지생은 황금돼지를 새기며 평생 마르지 않는 돈을 벌어오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 돈은 결국 야율한에게 들어가는 돈이었습니다.”

검무극은 운명이 자신을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번 일 때문이 아니었다.

야율한.

그는 한 사람의 원수였다. 검무극과도 깊은 인연을 지닌 사람, 바로 마의였다.

마의가 신안술을 해주며 언젠가 한 사람을 죽여달라고 부탁한 대상이 바로 야율한이었다. 아직 이름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검무극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야율한은 마의가 보는 앞에서 가족을 몰살했다. 그날 이후 마의는 오직 야율한을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마의의 부탁을 들었을 때, 실력이 되면 움직이겠다고 다짐했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마는 내가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을 눈치챘다.

“야율한은 안 돼!”

“왜 안 됩니까?”

“잘못 건드렸다간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

“전쟁은 나지 않을 겁니다. 소동도 나고 난리도 나겠지만요.”

“너 진심이구나.”

과거 마의가 아버지에게 그를 죽여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버지는 거절했다.

사도맹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야율한은 사파의 악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물이었으니까.

“전 이번 일의 배후가 제일 악질이라 여겼습니다. 자신은 어둠 속에 숨어서 일선 같은 하수인을 이용해서 청년들의 고혈을 죽을 때까지 빨아먹었으니까요. 아마 며칠 후면 지생에게 신선들이 다 죽었다고 보고되겠죠. 그럼 지생은 또 다른 신선들을 만들어서 같은 짓을 반복할 겁니다. 설령 지생이 죽더라도 또 다른 지생이 그 일을 대신하겠죠.”

바로 이런 놈들이다. 검무극이 생각하는 절대악이다.

정파도 건들 수 없고, 보통 사람은 아예 근접조차 할 수 없는 악.

예전에 아버지가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마도가 무엇이냐고.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절대악을 때려잡는 본교만의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파조차 어쩔 수 없는 큰 악을 잡아내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마도라고. 마교란 말에 그 악들이 벌벌 떨어야 한다고. 그게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천마신교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물러나야겠죠. 참아야겠죠. 한데 우린 보통 사람 아니잖습니까? 안 참아도 되지 않습니까? 제가 죽도록 수련하고 노력한 이유는 이럴 때 안 참기 위해서였습니다. 왜 우리가 참습니까? 그놈들이 참아야지요. 사람들 그만 괴롭히고 그만 좀 지랄하라고.”

권마는 말없이 검무극을 응시했다. 검무극도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권마는 성격으로 볼 때 이 설득이 가장 잘 통할 사람이었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볼 때 가장 안 통할 상대기도 했다.

이윽고 긴 침묵을 깨고 권마가 여행의 끝을 알렸다.

“이만 교로 돌아가자. 농땡이 여행은 여기까지다.”

갑자기 시작된 여행은 갑자기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실망은 일렀다. 권마는 그 큰 등으로 돌아서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덧붙였다.

“교주 허락을 받으려면 마존들이 전부 나서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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