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회 우린 지옥개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놀람의 침묵이고 기쁨의 침묵이었다. 저 말은 내기에 졌다는 의미였으니까.
“조심해! 개미 밟는다!”
나는 움찔하다가 하마터면 개미를 밟을 뻔했다.
그가 왜 져주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쌓인 나와의 관계 때문인지, 그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도맹의 진독거사 때문인지, 아니면 가족을 잃은 그 소년 때문인지. 아니면 일렬로 지나가는 저 독개미들 때문인지.
아무튼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독왕님!”
나는 와락 독왕을 껴안았다. 정말 힘차게 껴안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독왕이 어느새 허리에 있던 독주머니 하나를 내 얼굴 옆에서 흔들었다.
“죽을래? 안 떨어져?”
“네!”
나는 후다닥 물러났다.
독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자. 가서 짖고, 교주에게 가자.”
그것도 당장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독왕님, 제가 대신 짖겠습니다.”
“네가?”
“이렇게 흔쾌히 허락해 주셨는데, 저도 보답을 해야지요. 지금까지 독왕님께 배우기만 했잖습니까?”
“정말 대신 짖어준다고?”
“네.”
진심 가득한 내 대답에 독왕이 웃었다.
“너무 환하게 웃으시는 것 아닙니까?”
“개에서 인간이 되었는데, 기뻐해야지.”
“가시죠.”
그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움직여야 한다.
우린 그 길로 대연무장으로 갔다.
“여기 멀찌감치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가서 시원하게 짖고 오겠습니다.”
연무장으로 가려는 나를 독왕이 붙잡았다.
“너나 있어. 내가 짖을 거다. 나 약속 어기는 사람 아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너는 괜찮냐? 너는 천마가 될 수도 있는 몸이다.”
“죽어도 절 지지하지 않는다면서요?”
“안 하지.”
나와 독왕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여전히 어리게만 보이는 그의 얼굴이지만 눈빛은 깊었다. 날 지지하진 않지만, 내가 천마가 되었을 때를 걱정해주는 어른스러움, 이게 독왕이란 사람의 본모습이다.
“내가 짖는다. 넌 있어.”
천독문 대문 밖도 나가기 싫어하는 그 독왕이 연무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삶의 원칙을 추가했다.
그 누구의 세상도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사람을 똑바로 보고, 해야 할 말이 있을 때는 미루지 않고 하며, 어떤 누구도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나는 삶의 원칙을 하나씩 추가하고 있었다.
독왕이 등장하자 일단 주위를 오가던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특별한 기도를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었다. 마존의 존재감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인들은 놀랐다. 좀처럼 얼굴 보기 힘든 독왕이 대연무장 한가운데 나타난 것이다.
발걸음을 멈춘 것은 물론이고 건물의 창가로도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점점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서는 독왕을 처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저 사람이 독왕이었어? 저렇게 젊다고? 이런 식으로 다가섰다가 뒤늦게 코와 입을 가리고 저 멀리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독왕은 사람들이 최대한 모이기를 기다렸다. 사람이 별로 없을 때 얼른 짖고 약속 지켰다 할 수도 있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도 남자 중의 남자였다.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남자일 뿐.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마군주 장호도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장호는 언제나처럼 듬직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에게 눈인사를 보냈고, 멀리서 그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소식을 들은 서대룡과 황천각 조사관들, 그리고 집행무인까지 우르르 달려 나왔다. 서대룡이 놀란 얼굴로 내게 전음을 보냈다.
―각주님, 무슨 일입니까?
―배후를 밝히러 가는 중이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자네가 사고가 난 기루에서 그랬잖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밝혀내고 싶다고.
―그랬죠.
―밝혀내러 가는 중이다.
―연무장에서요?
―그래, 여기서 출발이다.
서대룡이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더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대연무장 주위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두의 시선이 독왕에게 집중되었다. 앳된 얼굴로 뱀과 대화하던 독왕은, 독충을 보며 상념에 빠져드는 독왕은, 독주머니에 귀여운 그림을 그려 넣는 독왕은, 이 많은 마인의 시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당했다.
모두들 안다. 지금 독왕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자 마음먹는다면, 허리에 차고 있던 저 열두 개의 독주머니가 열리게 되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몰살당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일 만큼 모였다고 생각되자 독왕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이 많은 사람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던 그때.
독왕이 큰소리로 개 짖는 소리를 냈다.
다들 깜짝 놀랐다. 설마 독왕이 사람들을 모아두고 개 짖는 소리를 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놀라서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다. 독왕이 미쳐서 독을 풀 거라 생각한 것이다.
바로 그때 그곳에 울려 퍼진 또 하나의 외침.
“호부에 견자 있다!”
소리친 사람은 물론 나였다. 나도 독왕에게 걸어가며 크게 개 짖는 소리를 냈다.
독왕이 뭐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어찌 그가 혼자만 짖게 할 수 있겠는가?
“같이 짖죠.”
“안 돼! 자넨…….”
“괜찮습니다.”
나는 자신에 찬 미소를 지어주었다. 고작 이런 일이 천마가 된 나의 존엄을 결코 건드리지 못할 거라는 자존감의 미소였다.
그리고 이건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왕과의 우정이었고, 고마움의 표시였다. 홀로 그를 짖게 두진 않을 거다.
두 번째는 내가 먼저 짖었다.
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독왕이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독왕과 더 가까워질 거다. 그래서 나중에 ‘나 만독불침!’이라고 밝혔을 때, 그의 얼굴에서 다른 감정이 아닌 기쁨을 보는 것. 그게 내 목표다.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독왕과 만독불침은 상극의 관계였으니까.
우린 함께 짖었다.
기왕 짖는 것 늑대 울음처럼 길게 아주 길게, 멋있게 짖었다. 개라고 다 개냐, 우린 동네 똥개가 아니라 천마신교에 충성하는 멋진 개다! 악을 물어뜯는 지옥개다.
지켜보던 이들이 웅성거렸다.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감히 우릴 보고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 중에 누군가 우릴 따라 짖었다.
그는 바로 서대룡이었다. 서대룡이 짖자 황천각 조사관들이 짖었고, 집행무인들이 짖었다. 독아들이 짖기 시작했고, 장호도 짖었다. 마군주가 짖자 모두들 놀랐고, 충성스러운 마군들도 짖기 시작했다.
다른 마인들도 따라 짖었다. 순식간에 대연무장은 개판이 되었다.
우린 그 아수라장에서 다섯 번 사이좋게 짖었다.
독왕이 내기에서 지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이렇게 함께 짖는 이 순간이 훨씬 더 통쾌했다.
* * *
한바탕 개판을 만든 후에 독왕과 함께 천마전으로 들어섰다.
천마전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독왕은 약을 몇 개나 꺼내 먹었다.
“무슨 약을 드시는 겁니까?”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나왔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약이다.”
나는 황당한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짖으실 때는 안 드시더니요?”
“이게 연무장에 서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떨리는 일이니까. 지금 난 교주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야. 교주에게 반항하러 가는 거지.”
아버지는 독왕은 절대 내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 확신하셨다. 한데 이렇게 홀랑 넘어갔으니 반항을 넘어서 싸우자는 거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게다가 교주님은 날 싫어해.”
“아버지가 워낙 뼛속까지 무인이셔서 정통이 아니면 좀 박대하시긴 하죠. 한데 독공을 싫어하는 거지 독왕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아버지가 이런 일로 오해를 잘 사십니다.”
“위로는 사절이다.”
“위로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독왕님이 싫었다면 이번 내기를 걸어주셨겠습니까? 독왕님이라면 진짜 싫은 사람과 이런 중요한 내기를 하게 뒀겠습니까?”
그건 좀 일리가 있게 들렸는지 독왕은 뭐라 반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좀 싫어하면 어떻습니까? 미움 좀 받고 사는 거죠.”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간다.”
“걱정 마십시오. 다른 마존들은 다 솥에 넣고 삶아도 독왕님은 안 삶습니다.”
“독 때문에 못 먹을까 봐?”
“아뇨. 독왕님 안 계시면 무림맹이 당장 쳐들어올 테니까요.”
“이제 잘 보이려고 아부 안 해도 된다. 어차피 약속은 지킬 테니까.”
“싫습니다. 계속 아부할 겁니다. 오늘 제 감동 영원할 겁니다.”
“내가 오늘 못 살아남는 거 알고 그러는 거지?”
천마전으로 들어섰다.
우린 피의 길을 나란히 걸어서 아버지에게로 걸어갔다.
아버지는 이미 우리가 대연무장에서 짖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분위기는 엄숙하면서도 싸늘했다.
정중히 예를 표한 뒤 독왕이 아버지를 응시하며 정중히 말했다.
“교주님. 이공자의 부탁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버지가 무섭게 독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만은 믿었는데.”
독왕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대체 뭐에 넘어간 건가?”
아버지가 진정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독왕이 잠시 대답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공자의 애도(哀悼)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뜻밖의 말에 아버지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이번 사건으로 많은 이가 죽었습니다. 그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이공자의 애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는 독왕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닌 듯 있었지만, 그는 다 듣고 있었고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모습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앞에서는 벌벌 떨던 독왕이 아버지 앞에서 당당하게 말도 잘했다.
아버지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기분 좋냐?”
“날아갈 것 같습니다. 마존들이 함께 저를 지지해줘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뤘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겁니다.”
내 기쁨을 솔직하게 전했다.
사실 이 모든 건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따끔한 일침.
네 세상은 얼마나 열려 있어서?
이 한마디로 나는 독왕의 세상을 닫힌 세상이 아님을 깨달았으니까. 실제로도 닫힌 세상이 아니었다. 진짜 닫힌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면, 연무장에서 짖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닫힌 시선으로 그를 봤을 뿐이다.
아버지 덕분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말씀은 드리지 않았다. 지금은 아버지가 화를 내실 기회를 줘야 하는 순간이니까.
나는 믿는다. 적어도 아버지의 마음 절반은 내가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셨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는 약속을 지켰다.
“좋아. 네 부탁을 허락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도 쉬운 결정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이번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는 것도.
“네가 이런 부탁을 했다면 우리가 처리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을 자신도 있어서겠지?”
“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노력만으로 안 돼. 우리가 죽였다는 것을 절대 표 내지 않고 처리해야 한다.”
사도맹 이인자 야율한과 수족 사인방을 우리 소행인지 모르게 처리한다.
이 또한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지만, 나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그러겠습니다.”
이 허락을 받기 위해 마존들이 모두 나섰고, 극악소마는 목숨까지 걸었으며, 독왕은 연무장에서 짖었다.
그럼 해내야지, 완벽하게.
아버지는 어느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계셨다. 아버지는 한번 결정을 내리면 뒤를 돌아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뒤끝이 없는 성격이었다.
“누구와 함께 갈 거냐?”
“극악소마와 함께 갈 겁니다.”
“둘이서는 역부족일 수 있다. 셋이라면 안심할 수 있겠지.”
독왕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짓던 그 순간.
아버지의 시선이 독왕을 향했다.
“자네가 따라가서 돕도록.”
“안 됩니다! 교주님!”
독왕이 질색하며 펄쩍 뛰었다.
“안 된다고?”
아버지의 나직한 물음에 독왕이 재빨리 대답했다.
“아닙니다. 됩니다.”
아버지는 그걸 홀랑 넘어가? 맛 좀 봐라, 이런 표정이었다. 정정한다. 아버지는 뒤끝이 있으신 분이시다.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독왕은 들어라.”
아버지가 천마의 기도를 드러내자 독왕은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네, 교주님.”
“이 시간부터 십이극독(十二劇毒) 사용을 허락한다.”
“지엄하신 명을 받듭니다.”
독왕의 주독인 십이극독만큼은 아버지의 허락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만큼 독왕의 독이 무서운 것이라는 의미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정중히 인사한 후 독왕과 나는 천마전을 나왔다.
“긴장된다고 하시더니 말을 저보다도 더 잘하십니다.”
“그게 다 약빨이다.”
독왕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천독림 밖도 나가기 싫어하는 그였는데 중원에 나가게 된 것이다.
“천독림 밖은 위험해!”
“사실 독왕님이 제일 위험한 존재죠.”
독왕이 다 네 탓이라는 눈빛으로 날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난 안 갈 거다. 싫다.”
“네. 소마님과 다녀오겠습니다. 천독림에 잘 숨어 계십시오.”
“그랬다간 정말 끌려간다.”
독왕이 괜한 곳에다 신경질을 부렸다.
“나가면 다 죽여버릴 거다. 마을마다 다 들러서 몰살시켜 버릴 거다. 내가 못 할 것 같지?”
정말 어지간히도 나가기 싫은 모양이다.
“상대가 상대니 제가 걱정되셨나 봅니다. 본교 제일 비장의 무기까지 내보내는 것 보면요.”
“그 정도론 위로가 안 된다, 안 돼!”
독왕이 푹 처진 어깨로 천독림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그에게 소리쳤다.
“최대한 빨리 출발할 거니 준비하십시오. 오늘 일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독왕이 짖으면서 걸어갔다. 화가 많이 난 개였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짓던 나는 악인곡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