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7화 (7/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7화

외국이라.

“어디요?”

“내가 알고 있는 에이전트가 독일과 연결되어 있거든.”

그것도 독일이라고?

“그런데 저를 왜…….”

“네 재능이 아까워서 그래. 너 정도 되는 재능을 한국에 두는 게 아까워.”

어떻게 보면 그저 순수한 축구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인의 재능이 아까워 본인이 소속된 구단이 아닌 더 큰 무대에서 놀도록 인도해 주는 거니까.

하지만.

“안 갈래요.”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다.

“…왜? 이건 기회야, 태양아.”

“우리 집 돈 없어요.”

“…….”

당장 나 혼자 갈 수 있다면 갈 수도 있지.

문제는 이제 중학교 1학년밖에 안 된 애를 어떤 부모가 혼자 보낸단 말인가?

하다못해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은 따라가야 하는 판이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 집에 애가 나 하나가 아니라는 거다.

엄마가 전업주부이긴 해도 당장 동생을 돌봐야 하니 날 따라갈 수 없고, 아버지가 가자니 생계가 위험하다.

그렇다고 아버지 혼자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키자니 아버지가 유럽에서 지낼 수 있게 생활비를 지원해 줄 정도로 벌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친가와 외가, 양가에서 집을 사주고 알게 모르게 물심양면 지원해 주지 않으셨다면 생활도 어려웠을지 모를 정도다.

무엇보다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한 한 동생들이 독일에 가서 적응하는 것도 문제고.

재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문제가 많았다.

물론, 유럽을 안 가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가 성인이 아니어도 프로계약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

그때가 내가 유럽으로 진출할 시기였다.

그때까지 나는 유럽에서 나를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의 유망주가 되어 몸값을 키울 생각이었다.

서울 UTD로 온 것도 그 계획 중 하나다.

학원 축구는 실적 위주이기 때문에 나를 제대로 키워줄 수 없고, 그나마 프로팀 산하 유스팀이자 독일에서 선진 유스 시스템을 가져온 서울에서는 내가 좀 더 자유롭게 잘 클 수 있겠지라는 계산이었거든.

“어, 음…….”

돈이라는 현실에 정한율 코치는 아무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괜한 말 해서 미안하다, 태양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인사하고 운동장을 빠져나오다 멈칫하고 다리를 바라봤다.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다.

예전에는 한 번 달리기만 해도 무릎이 시큰하고 발목이 저렸다.

풀타임으로 경기를 뛴 날에는 이십대 초중반에 불과한 나이인데도 무릎에 물이 차서 내가 직접 주사기로 물을 빼야 할 정도였다.

중학생 때도 매일 파스를 붙이고 살았지.

빌어먹을 고아원 형들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때는 달리면 그렇게 아픈데도 속도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빠르다.

이 정도면 나중에 커서 그 어떤 인종의 선수를 만나도 속도로 꿇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 내 몸이 내가 생각한 그대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내 계획이 어긋날 일은 없을 것 같다.

빵!

“응?”

“아들! 가만히 서서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자동차 클락션 소리에 고개를 드니 엄마가 나를 데리러왔다.

아침에는 외할아버지 집으로 알아서 오라고 하더니만.

“엉아!”

“빠!!!”

“오빠!”

차 뒤에는 동생들이 타고 있었다.

차창을 열고 손을 흔드는 가을이 옆에는 카시트에 묶여(?) 있는데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방방 뛰며 손을 흔드는 여름이와 겨울이가 보였다.

“얘들아!”

그래, 내가 이 귀여운 동생들을 두고 벌써부터 어딜 가냐.

더 커서 형을 안 찾을 때까지 옆에 있어야지.

절로 피어나는 웃음을 뒤로하고 가족에게 달려갔다.

* * *

외할아버지 집 생활도 끝나고 어느새 3주란 시간이 지났다.

훈련이라도 빡세게 하면 지루할 틈도 없었지만, 아직도 혹사 의혹이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학원 축구와 다르게 유스팀 축구는 선수들을 혹사시키지 않았다.

몸이 한가하니 몸이 근질거린다.

“태양아,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갈 건데 갈래?”

“돈 없어.”

“내가 사줄게!”

“그럼 그럴까?”

오늘도 하릴없이 빈둥거리는데 공세환과 다른 아이들이 나한테 온다.

몇 주 동안 지내다 보니 동기들이랑 나름대로 친해졌다.

결코 내 돈 안 쓰고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서 친해진 건 아니고, 내가 잘하니까 아이들이 나를 중심으로 뭉치는 느낌이다.

“그런데 우리 햄버거 먹어도 되냐? 카사마는 절대 안 먹던데?”

역시 애들끼리 있으니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 얘기가 나오는 구나.

카사마는 이번 시즌 벤피카에서 PSG로 이적한 포르투갈 선수로 제2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불리는 선수였다.

실제로 호날두를 누구보다 존경하는 그는 호날두만큼이나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했다.

“이고르 델로아는 먹고 싶은 거 다 처먹던데?”

이고르 델로아는 브라질이 낳은 이 시대 최고의 미드필더로 불리는 놈이다.

이 선수는 전형적인 브라질리언이어서 술, 담배, 여자, 음식 등, 안 즐기는 게 없는 놈인데도 불구하고 선배들과 달리 늙어서도 미친 기량을 보여준다.

아마 3년 뒤에 감독이랑 싸우고 리버풀에서 첼시로 가서도 34살까지 주전으로 뛰었던가?

은퇴하고 나서도 펠레 밑에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일한 미드필더로 남는다.

“우리는 이고르 정도는 아니지만, 이 나이 때는 뭘 먹어도 괜찮을 거야.”

햄버거를 먹어도 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감자튀김이나 콜라만 먹지 않으면 햄버거는 아주 괜찮은 음식이다.

물론, 콜라와 감튀를 포기하진 않는다.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먹어야지.

하루가 보통 이런 식이었다.

공세환이 애들을 모아서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군것질을 하고 들어와 놀다가 자고 일어나 아침 운동 하고 학교 수업 받고 축구하고 씻고.

진짜 너무 지루해서 개인훈련이라도 몰래 해야 하나 싶을 즈음.

“요번 주말이면 드디어 리그 시작이다. 알지?”

“네!!”

조봉수 감독의 말에 다들 힘차게 대답한다.

조봉수가 말하는 리그는 바로 K리그 주니어였다.

K리그 1, 2에 소속된 연령별 유스팀이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치러지는 리그로 중학생 같은 경우는 U-15와 U-14 리그가 있다.

왜 U-15랑 U-14가 있냐고?

이건 축협의 배려라고 볼 수 있다.

U-15만 존재한다면 대부분의 1학년과 2학년 일부는 경기를 뛰지 못 하거든.

오랜 시간 합을 맞추고 피지컬 적으로 성장한 16살 선배들 사이에서 1, 2학년이 뛸 자리는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경기를 뛰지 못하는 저학년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도록 U-14가 존재하는 거다.

“이제 팀을 나눌 때가 된 것 같군.”

리그를 앞둔 상황에서 조봉수의 말에 아이들 모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감독을 바라봤다.

하지만 역시 중학 유스팀의 꽃은 U-15다.

1, 2학년 중 누군가는 일찍이 체념하고 있었지만, 주전과 비주전 라인에서 왔다갔다 하던 선수들은 기대하게 된다.

U-15에 들어갈 것인가 아래 리그에서 머물 것인가.

이 고비를 넘겨도 선발 라인업에 들지 안 들지 걱정해야 할 판이지만, 애들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쓰겠어?

일단 들어가고 싶지.

나라도 그러겠다.

“자, 양원기, 임슬영, 지우준, 최태원, 김성한, 김지민…….”

그런 아이들과 달리 조봉수 감독은 감정 없이 U-15 선수 명단을 부르기 시작했다.

“공세환.”

“와우!”

자기 이름이 호명되자 공세환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쥔다.

와, 공세환은 좀 의외인데.

패스가 워낙 구려서 안 뽑아 줄 줄 알았더만.

그 가운데 U-15 명단은 계속해서 호명되고 있었다.

“자, 이제 한 명 남았지?”

그리고 마지막.

조봉수 감독은 나를 바라보고 씨익 웃더니 말했다.

“윤태양.”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라고 해야하나?

우리팀의 부실한 공격라인을 생각하면 내가 빠지면 섭섭하지.

“다들 알고 있고, U-14는 김 코치가 데려가서 교육하고, U-15는 여기 남거라.”

U-14에 선발된 아이들이 나가고 남은 U-15를 바라보며 조봉수가 말했다.

“우리 첫 상대는 성남이다.”

U-15, 18을 모두 포함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는 팀이 바로 성남이었다.

“다들 표정이 풀어졌네? 성남이 만만해 보이드나?”

조봉수 감독의 호랑이 같은 표정에 모두가 인상을 굳혔다.

그의 말대로였다.

지금의 우리는 우승 경력 없는 그 성남조차도 쉽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른바 골짜기 세대.

서울 유스팀에서 지난 4년간 이어져 온 우리 세대를 부르는 말이었다.

“최선을 다하자. 알았냐?”

“네!”

군기가 바짝 오른 선수들이 동시에 외쳤다.

“좋아. 오늘은 이만 해산!”

조봉수 감독이 그리 말하고 나가기 무섭게 공세환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U-15에서 뛴다!! 아자!!!”

그 말에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이번 U-15에서 떨어진 선배가 인상을 굳히며 말한다.

“야, 좀 조용히 하지?”

“선배! 제가 U-15라니까요?”

…미친놈.

떨어진 사람 앞에서 그게 할 소리냐?

험상궂게 변하는 선배의 표정을 보니 왠지 사달이 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벌떡 일어나 손을 드는 선배,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세환이 그 선배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U-15 등록된 기념으로 제가 쏠게요!”

“……..”

“초밥뷔페 갈 사람! 형, 초밥뷔페 갈래요?”

“어? 어. 초밥뷔페 좋지.”

한 대 때릴 거 같던 양반이 초밥뷔페 한 마디에 얌전해진다.

역시 돈으로는 못하는 게 없구나.

어제는 햄버거, 오늘은 초밥뷔페인가.

이러다가 돼지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도 공짜인데 안 먹을 수 없지.

“근데 유준이 가면 입구에서 컷 당하는 거 아니냐?”

모두의 시선이 유준이를 향한다.

중학교 1학년, 그런데 키가 184.

지방, 그것도 땅끝이나 다름없는 전남 여수에서 이사 문제로 일주일 늦게 입학한 이놈은 공세환처럼 지난 삶에서 함께 뛰어본 적이 있는 놈이었다.

“나… 나 많이 안 먹어.”

숫기 없이 수줍은 얼굴로 말하는 이놈의 이름은 진유준.

“뻥치지 마! 니 덩치를 봐라!”

“아, 아니야… 나 진짜 많이 안, 안 먹는데.”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아싸 그 자체인 이 녀석은 먼 훗날 국가대표 골키퍼이자 서울 UTD의 수호신으로 불리게 된다.

저 수줍은 행동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골대 앞에서만 서면 성격이 바뀌어서 야차나 야누스라는 별명도 지어줬다고 들었거든.

아무튼, 미래의 국가대표가 셋이나 있으니 이 정도면 우리팀도 경쟁력이 있지 않나 싶네.

물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지만.

다가오는 성남전이 기대된다.

“유준아 가면 뒤에 조용히 숨어 있어야 한다? 입밴 안 당하려면?”

“아니, 얘들아 이왕 가는 거 다 사복 입고 가자! 트레이닝 복 입고 가면 안 돼!”

“오, 그거 말 되네.”

시합 때 보다 치밀하게 준비한 아이들과 다 같이 초밥뷔페로 향했다.

그리고 1시간 뒤 제발 나가달라고 반 강제로 쫓겨났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