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22화 (22/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22화

프리델 마이어가 빈말을 한 게 아니라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유스에 진심이었다.

애초부터 구단주가 유스 시스템에 집중하겠다, 진심이다 말했지만, 지금은 더욱더 진심이었다.

팀은 챔스 경쟁권에 안착하며 EPL의 강팀으로 자리 잡았지만, 구단주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아니, 막말로 돈이 제일 많은 구단이 우승 한 번 못한 게 말이 되는가?

심지어 이걸로 전세계적으로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는 판 아니던가.

구단주의 목표는 우승, 그리고 꾸준한 우승이었다.

유스가 그 ‘꾸준한 우승’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아는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새삼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왜?

나름대로 관심 있게 키운 ‘근본’들이 최근 3, 4년 동안 맹활약하면서 챔스 경쟁권 팀으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구단주는 팀 내부의 강력한 요청과 본인의 열정으로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뉴캐슬어폰타인 지역에 소속 유스의 부모가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타운하우스를 만들어 가족이 저렴하게 대출과 렌트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합법적인 선에서 유스를 끌어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탭도 마찬가지다.

능력 있는 유스 디렉터를 들여왔으며, 의료팀, 스포츠 과학팀, 코치진을 모두 돈으로 영입해 왔다.

그리고 스카우터도 마찬가지.

세계적으로 유스 스카우터로 유명한 선수를 모두 데려왔다.

프리델 마이어는 그중에서도 팀에서 가장 기대하는 스카우터 중 하나다.

“프리델이 한국에서 괜찮은 애를 데려왔다는데?”

그런 그가 한국에서 윤태양을 데려왔다는 이야기는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이미 쫙 퍼진 상황이었다.

“한국? 아시아에서 선수를? 괜찮은 사람이 있나?”

회의적인 한 코치의 말에 다른 코치가 말했다.

“Son이나 Park도 한국이잖아.”

“Park? 그… 바이언에?”

“아니, 맨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한국 선수가 있었나?”

“이래서 어린 친구들은…….”

꼰대처럼 혀를 끌끌 차는 코치를 뒤로하고 다른 코치가 말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Park 정도만 되도 괜찮지.”

“괜찮은 수준이 아닌데. Park은 어지간한 클럽에서도 좋아할 선수인데.”

“우리 팀에 왔다면 핵심 선수 취급당했겠지.”

“듣기로는 Park 이상이라는데?”

“마이어의 말로는 뉴캐슬의 메시가 될 수 있을 선수라더군.”

그 말에 모든 코치가 웃음을 터뜨렸다.

“메시?”

“독일 사람들은 안 웃긴 거 아니었나? 코미디언이 따로 없네.”

“아시안을 떠나서 메시 같은 선수는 다시는 나오지 않아.”

그 말에 프리델 마이어와 같이 바이에른 뮌헨에서 넘어온 코치가 말했다.

“후안 올메두를 데려왔을 때 그가 팀의 새로운 리베리를 데려왔다고 했었지. 그리고 모두가 비웃었다네.”

그 말에 모두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말했다.

후안 올메두는 바이에른 뮌헨의 핵심선수로 맹활약하고 있는 윙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마냥 틀리지만은 않았네.”

후안 올메두는 아직 팀의 전설 중 하나인 리베리만큼 공헌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5시즌 동안 활약한 그의 기록을 보면 리베리 그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었다.

프리델 마이어의 호언대로 그는 바이에른 뮌헨의 새로운 리베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걸 떠올린 코치들은 프리델 마이어가 허언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메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도 기대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과연 프리델 마이어가 호언한 대로 뉴캐슬의 메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인지 말이다.

* * *

어느덧 9월.

뉴캐슬 행을 결정하고 모든 기반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1, 2주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실제로 성인이었을 당시에는 그랬으니까.

그런데 나 하나가 아닌, 가족 전체가 이민을 가게 되는 건 내 생각과 다르더라고.

뉴캐슬에서 힘을 써서 최대한 빨리 한다는 게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우리 집은 매우 어수선했다.

한국에 모든 기반이 있는데 그 기반을 죄다 정리하고 머나먼 이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

그 탓에 할아버지 두 분은 남아서 남은 것들을 모두 처리하고 뒤에 오시기로 했다.

아, 그리고 영어가 되지 않는 동생들은 영국에 가면 홈스쿨링을 하면서 뉴캐슬에서 제공하는 영어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을 예정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부모님이 나를 천재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왜?

생각해 봐, 영어를 모를 줄 알았던 아들이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하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있나.

“도대체 영어는 언제 배웠니?”

엄마의 물음에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말했다.

“유튜브 보고 배웠어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억지고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영어 학원도 안 보낸 아들이 유튜브 보고 배웠다니 믿을 수밖에.

“우리 아들… 진짜 천재였구나?”

“그래서 축구도 그렇게 잘한 거였나봐.”

“10달 품어서 낳은 보람이 있네?”

…어떻게든 넘어갔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영국 뉴캐슬어폰타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다만,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이곳은 한국과는 완전히 딴판이었고, 내가 선수로 뛰었던 포르투갈이나 스페인과는 또 달랐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의 한국 도시와 달리 영국의 도시인 뉴캐슬어폰타인은 뭐랄까, 굉장히 고풍스러웠다.

뭐, 유럽 특유의 낡은(?) 느낌은 어딜 가나 있지만, 아무튼.

“우아…….”

동생들이 신기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뉴캐슬 중심지인 시티센터 한복판에 서서 동생들이 넋을 놓고 두리번거린다.

“누가 보면 시골 촌놈인 줄 알겠네. 애들아, 태연한 척해. 태연한 척!”

엄마가 웃으면서 말하자 여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엄마에게 물었다.

“태연한 척? 그게 머야 엄마?”

“어, 정확히 뭔 뜻이지, 자기야?”

엄마의 물음에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런 느낌 아냐?”

“맞아! 애들아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지. 처음 온 척 하면 못된 사람들이 나쁜 생각할 수도 있다?”

“나쁜 생각? 뭐?”

“도둑질을 할 수도 있고, 뭐, 그렇지?”

글쎄, 짐을 이리 바리바리 싸들고 있으니 누가 봐도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나?

그나저나 프리델은 어디 갔지?

두리번거리는데 저쪽에서 SUV 한 대가 다가온다.

“와… 차선도 적응 안 되네. 여기서 운전을 어떻게 하지?”

아버지는 한국과 달리 좌측에서 다가오는 차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건 적응 안 되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 유럽에서 좌측통행하는 나라는 영국과 아일랜드밖에 없다.

“와… 진짜 왼쪽… 어, 멈췄다.”

지나가는 줄 알았던 SUV가 멈춰선다.

차에서 프리델 마이어가 내렸다.

“뉴캐슬어폰타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어떻습니까?”

그 말에 아버지가 대표로 말했다.

“아직은 모든 게 낯서네요. 좌측통행하는 도로부터요.”

그 말에 프리델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건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터가 됐지만, 정작 이 도시에 머문 건 며칠 되지 않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네, 이 팀에 온 뒤로 줄 곳 해외에서 유망한 선수를 찾아다녔으니까요.”

그는 그리 말하며 매우 뿌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저 표정이 내가 뉴캐슬에 있는 동안 계속 유지돼야 할 텐데.

부담되냐고?

그렇진 않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되는 편이다.

꽤 오랜 시간 세계 최고의 리그로 자리매김한 이곳에서 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그게 제일 궁금하다.

“자, 일단은 가족분들이 지낼 집으로 가시죠.”

원래는 뉴캐슬에서 렌트하는 타운하우스에서 머물 예정이었지만, 우리 집을 처분하고 할아버지 두 분의 집도 처분하고 보니 뉴캐슬어폰타인에서 적당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비싸지 않냐고?

비싸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뒤에서 들어보니 10억은 훌쩍 넘는 거 같더라.

그런데 생각해 봐.

부자 동네는 아니더라도 수도권 아파트 세 채를 갈아넣었는데 못 살 리가 있겠어?

솔직히 런던만 생각하고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뉴캐슬은 생각보다 비싸진 않더라고.

“와, 여기가 우리 집이야?”

집으로 들어온 가을이의 입이 헤, 하고 벌어진다.

“그러니까. 자기야, 여기가 진짜 우리 집이야? 사기당한 거 아니지?”

“구단에서 도와줬는데 그럴 리가.”

집이 조금 낡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복도 같은 통로가 좁은 느낌인데, 방이나 거실 같은 곳은 한국의 요즘 집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컸다.

앞뒤로 작게나마 마당이 있었고, 차 두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개러지가 있었다.

1층은 부엌과 식당이 별개로 있었고, 용변만 볼 수 있는 화장실, 응접실과 패밀리룸, 세탁실, 그리고 작은 오피스룸이 있었다.

2층은 화장실이 딸린 큰 방 두 개, 작은 방 세 개, 메인 화장실로 이뤄진 곳이었다.

화장실이 달린 방 두 개는 부모님과 할아버지들이 쓰기로 하고 나와 가을이는 독방, 그리고 여름이와 겨울이가 한 방을 쓰기로 했다.

“나 이제 혼자 방 쓰는 거야?”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 살아서 자기 방이 없던 가을이는 굉장히 좋아했다.

하긴 여덟 살이라고 해도 여자애인데 자기 방에 대한 로망이 있겠지.

“겨울아 이거 바바, 여기는 이제 장난감 공간이야, 아라찌?”

“응! 조아! 침대는 어떠케 써? 짜근 오빠 나 먼저 골라도 돼?”

“끄래!”

한 방을 쓰게 된 여름이와 겨울이는 생각보다 협의가 빨랐다.

보통 저 나이면 싸우지 않나?

그나저나 화장실이 따로 있다고 해도 할아버지 둘이서 쓰기에 불편할 텐데.

그리고 여름이랑 겨울이도 크면 따로 써야 할 테고.

얼른 커서 돈 벌어서 각자 방 하나씩 쓸 수 있는 집을 구해야겠다.

뉴캐슬에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아, 구단은 내일모레 가게 된다.

일단, 뭐 검사부터 하고 시작한다는데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

일단 가보면 알겠지.

* * *

뉴캐슬 유나이티드 스포츠 과학 센터는 최첨단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곳이었다.

특히 유스와 관련된 거라면 어지간한 병원과 의학센터도 명함을 내밀기 어려울 정도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묻는다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성인 선수와 같은 경우 이 선수의 에이징 커브, 부상 확률, 재활 가능성까지 모든 걸 판단할 수 있고, 유소년 선수 같은 경우에는 선수의 발달과 관련된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태양은 뉴캐슬의 훈련장인 뉴 다즐리 훈련장-확장 및 신축 이후 New가 붙었다-에 들어오기 무섭게 스포츠 과학 센터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집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검사 결과가 없는 한 훈련도 함부로 시키지 않는 게 팀의 지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검사 결과는 가장 먼저 유스 총괄 디렉터의 손에 들렸다.

“이게 프리델 마이어가 뉴캐슬의 메시가 되어줄 아이라고 했던 그 아이 결과지?”

“네, 맞습니다.”

유스 총괄 디렉터 프랭키 칼센은 메시?라고 되뇌고 고개를 갸웃하다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키가 184cm 전후까지 성장 가능, 근육 구조로 보아 주력의 성장 가능성도 굉장히 높다?”

184cm 정도 되는 키에 빠른 속도를 가졌다면 메시가 아니라 호날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코어 근육이 발달해 신체 균형감각이 매우 뛰어나고 발목 힘이 굉장히 강하다. 그리고 근육의 유연성이 굉장히 좋아 부상 확률이 현저하게 낮다라…….”

코어가 좋고 유연성이 좋으면 단순하게 부상 문제뿐만이 아니라 축구를 하는 데 있어서 굉장한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칼센은 마지막 센터장의 소견을 확인했다.

[비록 나이가 어려 피지컬적으로 밀릴지 모르지만, 종합적인 능력으로 보아 상위 연령에서 뛰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판단됨.]

[총점 : 91]

“91?”

칼센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안경을 고쳐 썼다.

육체의 잠재력이 축구의 모든 걸 설명하는 건 아니지만,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종합 점수가 91점이라니.

이건 뉴캐슬에 스포츠 과학 센터가 생긴 이래로 가장 높은 점수였다.

문득 프리델 마이어가 ‘뉴캐슬의 메시’라고 평했던 게 떠오른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말했다.

“스포츠 센터의 의견을 수렴해서 U-16에서 연습 경기를 해보도록 하지.”

칼센은 무리한 월반으로 선수가 망가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으로, 아카데미에 오자마자 월반해서 테스트를 보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메시라…….”

항상 과거의 선수를 빗대어 유소년을 평가하고 그것이 거의 틀린 적이 없다는 세계적인 스카우터의 평가를 다시 한번 떠올린 그는 괜스레 두근거리는 가슴에 연습경기를 기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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