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26화
사이드라인을 타고 달리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어린 라이트 윙어가 얼리 크로스를 보낸다.
아슬아슬하게 수비라인을 넘지 않고 달리던 태양이 순간 가속해 반걸음 빠르게 떨어지는 공을 발등으로 띄워 올리며 옆에서 붙어오는 수비수를 넘긴 뒤 옆으로 피해 단숨에 한 명을 제치는 순간, 또 다른 센터백이 들어오는 걸 등으로 막아내고 그대로 골대를 향해 슈팅했다.
저 작은 체구로 버티는 것도 용한데 그 상황에서 오른발로 슈팅이라니.
심지어 그 슈팅은 매우 빠르고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골키퍼의 손을 피해 골망을 뒤흔들었다.
“와, 저 아시안 소년 굉장한데?”
헨릭이 흥분한 얼굴로 제이슨에게 말했고, 제이슨은 벌써부터 맥주 한 말통은 들이켠 듯 잔뜩 붉어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건 주변에 경기를 구경 온 툰들도 마찬가지였다.
천하의 맨시티를 상대로 기가 막힌 골을 보여준 아시안 소년, 태양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반대로 관중의 열렬한 환호와 다르게 아이는 침착한 얼굴로 태연하게 하프라인으로 걸어갔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윤태양 특유의 퍼포먼스였지만, 유럽에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국, 동아시아 대회에서도 그랬듯이 상대 선수를 자극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대한 팀과 다르게 맨시티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제 겨우 한 골이야!”
소년의 목소리라 생각되지 않는 묵직한 중저음에 U-16 소속의 어린 선수라고 믿어지지 않는 189cm라는 거대한 키와 체격을 자랑하는 흑인.
맨시티와 잉글랜드의 희망 엠마누엘 에제크웸이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흔들리던 맨시티의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캡틴 엠마누엘.”
그 강력한 카리스마에 캡틴이란 별명이 붙은 에제크웸은 U-16 잉글랜드 대표팀과 맨시티의 주장을 맡고 있기도 했다.
“어린 친구가 벌써 묵직하네.”
제이슨과 헨릭이 감탄하는 사이.
필드에 선 에제크웸의 시선은 윤태양을 향하고 있었다.
잠시 태양을 바라본 에제크웸은 태양에게 득점을 헌납한 수비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빌크, 쟤는 내가 맡는 게 좋겠다.”
“…어어.”
빌크는 태양을 향해 전의를 불태웠지만, 에제크웸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재개된 경기.
맨체스터 시티는 차분하게 자신들의 경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펩에서부터 내려온 후방 빌드업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말이다.
헨리 도멩게가 내려와 쓰리백 형태를 만들고 뉴캐슬을 가둔 채로 점유율을 높이고 공간을 찾아 패스를 시작한다.
맨시티 U-16에서 에제크웸이 수비라인의 중심이라면 헨리 도멩게는 미드필더의 중심이자 후방 빌드업의 핵심이었다.
평소 도멩게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후방 빌드업을 보면 이게 과연 유스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탄이 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다.
후방에서 공이 앞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뉴캐슬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전방 압박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동적으로 포지션을 바꿔가며 분주하게 맨시티를 압박해 중원과 측면의 모든 경로를 차단하니 공이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게 가능해졌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엘 하츠가 빠지고 윤태양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엘 하츠는 수비적인 역할을 단 하나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축구 지능이 떨어져 못했다.
그 탓에 뉴캐슬은 압박 시 상대보다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움직여야 했고 지금과 같은 전방 압박이 어려웠다.
하지만 윤태양은 달랐다.
한가운데에서 맨시티 후방 빌드업의 핵심인 도멩게를 틀어막고 있었다.
마치 센터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가 최전방으로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타이트한 견제에 맨시티의 패스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결국, 뉴캐슬이 공을 따냈다.
뉴캐슬에게는 절호의 기회였고, 맨시티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공을 따낸 뉴캐슬의 왼쪽 윙어, 요아힘 샬렛이 곧 바로 태양에게 공을 패스하고 빈 공간을 찾아 움직인다.
자신에게 뻗어오는 공을 바라보며 태양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에제크웸이 태양의 앞에 선다.
160cm밖에 안 되는 어린 태양 입장에서 189cm의 에제크웸은 마치 거대한 벽이나 다름없어 골대 방향으로 시야가 완전히 차단됐다.
“와, 저건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어린애가 어른이랑 싸우는 것 같은데.”
헨릭과 제이슨이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태양은 발아래 공을 두고 몸을 빙글 돌렸다.
태양은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에제크웸을 간보다가 왼쪽으로 파고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에제크웸이 그 앞을 차단하는 순간 태양은 다시 방향을 틀어 오른쪽으로 파고들었고 에제크웸이 몸을 빙글 돌리며 태양의 어깨를 밀어붙여 공을 차지하려 들었다.
태양은 왼발로 에제크웸에게서 공을 지켜내며 오른쪽 사선으로 달려 나갔고, 에제크웸은 그런 태양을 바짝 따라붙었다.
서로 전력을 다해 달리고, 양옆에는 각자의 동료가 만일을 대비해 나란히 달렸다.
신장 차이 때문인지 몰라도 태양이 전력을 다해 달려도 에제크웸은 크게 뒤쳐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추월하며 언제든지 태양의 발 앞에 공을 따낼 것 같은 그 순간.
태양은 공 앞으로 오른발을 밟아 멈추며 왼발로 에제크웸의 다리 사이로 공을 밀어넣으려 했다.
에제크웸은 여기까지 계산에 넣은 듯 침착하게 다리를 좁히며 넛매그를 막아내려는 순간.
왼발이 공 위를 밟으며 드래그백.
어정쩡한 자세로 앞으로 균형이 쏠린 에제크웸의 뒤로 공을 툭 차내며 달려 나갔다.
그 순간 뉴캐슬의 왼쪽 윙어, 샬렛을 견제하던 빌크가 사선으로 태양을 향해 달려온다.
태양은 빌크가 달려오기 전에 한 박자 빠르게 골대를 향해 왼발로 감아찼다.
골대를 벗어날 것처럼 보이던 공이 크게 휘어 들어가며 뒤늦게 반응한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와아아아아!”
“와우!”
그와 동시에 관중석에서 환호성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세상에 한참이나 작은 아이가 캡틴 엠마누엘을 손쉽게 제치며 골을 넣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관중은 물론이고 벤치에 앉지도 않은 채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에이든과 코치들도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이를 지켜보며 맨시티 벤치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 아시안은 누구지?”
“처음 보는 친구인데? 이번에 영입했나?”
“코어가 장난 아니네. 저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나오지?”
“제가 현역 시절 저렇게 하려면 분명 넘어져서 코 박았을 겁니다.”
맨시티 코치들이 감탄하는 사이 경기가 재개된다.
“이런, 다시 시작이군. 저 친구 중심으로 영상 찍어두게. 디렉터에게 보고해야겠군.”
맨시티 감독은 다급하게 코치에게 태양의 영상을 찍을 것을 지시하고 선수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개된 경기.
맨시티는 다시 한번 후방 빌드업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더욱더 간격을 좁히고 템포를 올려 패스를 주고받으며 뉴캐슬의 균열을 유도한다.
하지만 여전히 뉴캐슬의 전방 압박은 단단해 뚫지 못한 채로 전반이 마무리됐다.
* * *
“에제크웸은 어땠니?”
전반을 끝내고 들어오자 감독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반응속도가 무섭던데요? 조금 더 나이가 많았다면 꼼짝없이 공을 뺏길 뻔했어요.”
설마하니 넛매그에 반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걸 예상하고 막으려 들 줄이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것에 반응하느라 그다음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게 경험이 쌓이면 그다음, 그다음에 다음까지 예상하고 나를 막으려 들었겠지.
확실히 무서운 선수다.
아니, 무서워질 선수라고 하는 게 맞겠지.
“허허, 그래. 그렇구나. 나는 에제크웸을 그런 식으로 뚫는 애는 첨 보는데 말이지.”
“이제 자주 보실 거예요.”
내 말에 에이든 감독은 더 크게 웃었다.
내 말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나의 대한 피드백은 그게 다였다.
감독이 다른 선수들에게 개인적인 피드백을 하는 사이 상의를 벗고 땀을 닦은 다음에 이너웨어와 유니폼을 새로 갈아입었다.
“야, 너 진짜 잘하더라.”
그사이 요아힘 샬렛이 내 옆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내가 좀 잘하긴 하지.”
요아힘 샬렛은 독일 출신으로 파벌에 끼지 않은 채 혼자 조용히 지내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이 녀석 포텐은 확실하다. 아직 완전히 터지지 않아서 그렇지, 몇 년 뒤에는 맨시티에서 미친 활약을 선보일 예정이거든.
아니, 그러고 보니 가만.
이 자식 왜 뉴캐슬이 아니라 맨시티에서 데뷔했지?
아.
계약하기 전에 뉴캐슬에서 맨시티로 간 모양이다.
맨시티의 유망주 욕심과 하이재킹은 유명하다.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아, 내 뉴캐슬 청사진을 생각하면 솔렛 같은 애들은 빠지면 곤란한데.
얘한테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하나?
“그래, 잘하더라. 맨시티에서 너만 집중 촬영하던데?”
이것 봐봐.
이 녀석 맨시티 벤치에 정신이 팔려 있었네.
뉴캐슬 탈주해서 맨시티 갈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있는 거냐?
“그랬어? 난 몰랐네.”
“어어, 저러다 맨시티에서 너 데려가는 거 아니야?”
“아니, 나는 뉴캐슬이 좋은데? 넌? 맨시티가 제안하면 갈 거야?”
“글쎄…….”
말끝을 흐린 샬렛이 시선을 돌려 벤치에서 구시렁거리는 이엘 하츠와 그 무리를 바라본다.
“여긴 가망성이 없는 거 같아.”
“왜?”
“저거 봐. 실력도 별로 없는 이엘 하츠 중심으로 똘똘 뭉친 거. 이엘 하츠가 왕 노릇하는 이상 이곳은 가망성이 없어.”
잘 봤네.
지금까지 경기를 영상으로 대충 둘러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팀은 코치들 모르게 이엘 하츠의 입김이 강하다.
자기 파벌이 아니면 알게 모르게 공을 주지 않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그건 옛말이었다.
내가 영향력을 가지고 스페인 파벌이 커지고 심지어 이엘 하츠가 나 때문에 벤치로 밀려나자 팀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거든.
아직 어린 친구들인지라 팀 분위기와 권력 구조는 너무나도 쉽게 순식간에 바뀐다.
“그래, 그래서 여기 있는 거야. 아니었으면 진즉에 이 팀을 나갔어.”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다니.
뉴캐슬 청사진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이런 친구들은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
“이제 그런 일 없으니 나랑 같이 이 팀에서 축구하자.”
“…그럴까?”
“다른 건 몰라도 여기 시설 하나는 최고잖아. 여기서 잘 커서 나중에 떠나더라도 지금은 여기서 나랑 한 번 잘 해보자고.”
“그럼 패스 좀 잘 해줘. 너만 넣지 말고.”
“그건 어렵지 않지.”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후반.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상대팀에게 어그로를 끌었다.
내가 두 골을 넣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나를 향한 견제가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쉽게 낚이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순하게 왕성한 활동량만으로 공간을 만들어내긴 어렵네.
그렇다면 내가 크랙이 되어 들이받아 부수는 방법밖에 없지.
2선으로 내려와 공을 받아 직진하며 빠르게 달려 나간다.
아까 한 번 당한 도멩게가 이를 악물고 내 앞 길을 막았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려 나가 라 크로케타로 가뿐하게 도멩게를 제쳤다.
남은 건 빌크와 에제크웸.
에제크웸이 사냥개처럼 빌크를 내보낸다.
에제크웸이 전천후 수비수라면 빌크는 사냥개다.
아쉬운 건 그저 빠르기만 한 사냥개일 뿐.
고속의 시저스 무빙만으로도 시선이 어지러워지고 상체 페인트에 속아 넘어가 균형이 무너져 나를 속절없이 놓친다.
이제 남은 건 에제크웸.
에제크웸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분명 미래에는 최고의 수비수가 될 만한 녀석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호기롭게 한 번 더 에제크웸을 돌파할 수 있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흥!”
에제크웸이 성난 황소처럼 콧방귀를 뀌며 자세를 잡는다.
언제든지 와보라는 듯 나를 바라보는 놈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 나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엠마!!”
뒤따라오던 빌크가 버럭 에제크웸에게 소리친다.
“옆이야!!”
알 수 없는 소리에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에제크웸이 옆을 보지만, 이미 늦었다.
에제크웸을 바라본 채로 시도한 나의 노룩 패스가 정확하게 솔렛에게 전달된 뒤였기 때문이다.
“이런……!”
에제크웸이 당황한 사이, 솔렛은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침착하게 낮고 빠른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냈다.
골을 넣은 솔렛은 그대로 달려 나가 점프해 빙글 돌아 양팔을 크게 아래로 휘두르며 착지하며 외쳤다.
“호우!!”
…어?
호우?
설마… 노쇼와 함께 떠나는 그런 사람이 롤모델인 건 아니겠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