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27화
어린 툰들이 맨체스터 시티의 새싹들을 짓밟아 버렸다!
그것도 3대1로!
그런데 그걸 아시안 소년이 혼자 거의 다 했다!
이런 이야기가 뉴캐슬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이게 그렇게 소문날 이야기냐고?
그건 툰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들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관련된 거라면 정말 사소한 거라도 술자리 안주거리로 삼았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유스팀에서 괜찮은 선수들이 수급되어 활약하다 보니 유스팀에 대한 관심도도 많이 올라온 게 한몫하고 있었다.
“그렇다니까? 나는 메시를 보는 줄 알았어. 그 커다란 에제크웸이 바보가 됐다고!”
“이야, 맨시티 놈들 표정 볼만했겠네. 지금 맨시티 감독, 왕년에 우리 팀 상대로 해트트릭했던 그놈 아니야?”
“그건 아니야. 군침을 질질 흘리던데?”
제이슨의 말에 펍에서 제이슨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사람들 모두가 인상을 굳혔다.
“그 근본 없는 쓰레기 새끼들은 이제 애들한테까지 장난질을 하지.”
“근본 없이 벼락부자가 된 구단다운 행동이군. 천박해.”
“억지로 근본을 사려니 어린 애들을 탐낼 수밖에 없는 거야.”
역사는 오래 됐을지 몰라도 오일머니 이전에는 우승컵도 변변치 않는 팀을 신나게 씹은 툰들은 다시 유스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런데 걔 들어온 지 얼마나 된 거야?”
“이번이 첫 경기라는데?”
“뭐야, 고작 한 경기 가지고 이리 호들갑인 거야?”
“아니, 그 한 경기가 기가 막히다니까? 한 번 가봐.”
츄라이를 외치는 사람들의 말에 하나, 둘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심지어 이후 한동안 유스 경기와 정규 리그가 겹치지 않아 리틀 벤튼을 향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리고 다음 라운드 약 2천 명 정도 수용 가능한 작은 경기장 절반이 찼다.
상대는 에버튼 U-16.
“오!”
“쟤가 그 아시안이야?”
태양은 경기가 시작되고 뉴캐슬의 공격 찬스가 생기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숨에 두 명을 제치고 골을 성공했다.
사람들은 어린 툰이 득점하는 걸 보며 환호하며 서로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야?”
“태요앙? 태야앙?”
“우리 말로 SUN이라는데?”
“와우!”
그날 1골 1도움을 기록하고 몇 번이나 놀라운 드리블로 에버튼을 뒤흔든 어린 소년을 향해 툰들 사이에 SUNY라는 애칭이 생겼다.
그 다음 라운드는 리버풀 U-16.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인연은 없으나, 마찬가지로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제라드와 같은 위대한 선수를 배출한 이 팀과 경기를 기대하며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날 태양은 지난 경기보다 더 미쳐 날뛰어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어린 툰들의 3연승을 위하여!”
“툰의 희망들을 위하여!”
“미래의 툰의 태양에게!!”
그날 경기를 본 사내들은 펍으로 모여 어린 툰과 태양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
“3연승이라니! 차라리 어린 툰을 응원하는 게 재미있겠는데?”
그들이 뉴캐슬 U-16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3연승을 기록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번 시즌 뉴캐슬은 영 별로야.”
“세대교체 실패가 크지.”
이번 시즌 뉴캐슬 유나이티드 전반기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승은 몰라도 챔스 진출을 두고 다투던 강팀이 비록 전반기라 하더라도 고작 12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응원할 맛이 안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결국 뉴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향할 그들이지만, U-16 경기에 관심이 갈 만했다.
게다가 다음 경기는 모든 툰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성인팀에서는 볼 수 없는 더비라.”
“이건 귀하지.”
“가야겠네.”
뉴캐슬 유나이티드 최대의 라이벌, 선덜랜드와의 타인-위어 더비였다.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는 두 도시는 무려 천 년 가까이 대립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그 감정이 축구로 이어져 왔다.
20여 년 전부터 선덜랜드가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성인팀에서는 컵 대회에서나 이따금 볼 수 있는 더비였다.
하지만, 유스팀은 달랐다.
유스팀은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참가를 신청한 팀 위주로 경기가 펼쳐졌고, 북부에 그 어떤 도시보다 가까운 두 팀 역시 북부 리그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더비 경기가 그리운 사람들은 리틀 벤튼을 찾고는 했다.
그 탓에 더비를 그리워하는 툰들을 배려해 유스팀 경기장에 관중석까지 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통 2군 경기인 프리미어 리그2나 U18을 봤지만, U-16에 대한 지분도 작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했다.
모처럼 유스팀에서 연승 경기가 나오자 U-16의 타인-위어 더비에 관중석이 꽉 차다 못해 넘치기까지 했다.
“오늘도 보여줘 써니!”
“선덜랜드 놈들한테 해트트릭 부탁한다!”
“써니!!”
그리고 경기장에는 태양의 애칭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아졌다.
* * *
써니라.
왠지 여자 같은 호칭이라 별로인데.
경기장에서 들리는 별명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가뜩이나 엄마 닮아 곱상하단 소리 듣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말이지.
얼른 커서 선이 좀 굵어졌음 좋겠다.
“우리 써니, 오늘도 잘 할 수 있지?”
문제는 엄마도.
“써니야 아빠도 왔으니 잘 해야 해. 알았지?”
아빠도.
“써니 오빠 화이팅!”
“써니 엉아!! 잘해!”
“써니 자래라!!”
동생들도.
“우리 장손, 우리 써니 잘혀 . 이?”
“써니 부르는 소리가 많구나. 좋구나, 벌써 별명도 생기고 말이다. 허허허.”
할아버지들까지 모두 나를 써니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러다가 이름이 윤써니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한국에도 윤태양이란 이름보다 써니라는 이름이 유행하는 건 아니겠지?
쏘니가 활약하던 리그에 써니가 활약하다 이런 뉴스 기사 나오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는 건가?
뭐, 어쨌든 좋다.
어른들마저 관심을 가지는 경기가 흔치 않다.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더비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활약해서 사람들 기억에 남는 것도 좋지.
“여기서 이기면 혹시 월반하는 거 아닐까?”
샬렛이 설레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나보다 세 살이나 많지.
“아, 월반하면 너랑 같이 경기 못하겠지? 그건 좀 재미없는데. 너랑 경기하는 게 재미있단 말이지. 요즘은 네 패스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재미가 생겼거든. 높고 잡기 어려운 패스가 오면 차분하게 시작하라는 거고 낮고 빠른 패스가 발 앞에 오면 얼른 다시 패스하라는 거고, 거리를 두고 오면 그대로 달리라는 거고 그지? 내 말이 맞지? 어떻게 패스에 그렇게 다양한 메시지를 담을 수가 있는 거지? 놀랄…….”
아… 맞다.
나와 친해지기 시작한 샬렛은 내성적인 성격 속에 숨겨왔던 본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투머치토커의 화신이었다.
말 드럽게 많았다.
샬렛 옆에 앉아있으면 귀에서 피가 나올 정도였다.
아니, 독일인이 이렇게 말이 많은 종족이었나?
중요한 건 독일인답게 말하는 게 소름 돋을 정도로 재미없다는 거다.
본인은 중간중간 재미있는지 피식 웃기까지 하는데 말이지.
“자자, 수다는 거기까지 하고. 다들 여기 봐라.”
수다 지옥에서 나를 꺼내준 건 에이든 감독이었다.
“오늘은 타인-위어 더비다. 뉴캐슬에게 이 더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든 스탭들이 몇 번이고 얘기했을 거다. 그지?”
“네!”
에이든 감독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탓인지 리틀 벤튼이 가득 찼다. 솔직히 우리 연령대 경기에서 리틀 벤튼이 만석인 건 몇 번 보지 못 했거든?”
“…….”
“그래서 떨리는가?”
감독의 말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둘러봤다.
떨리는 것 같은 아이들도 있었고 나처럼 시큰둥한 아이도 보였다.
감독은 그런 우리를 보고 말했다.
“떨릴 수도 있지. 하지만 필드 위에서는 모두 잊어라.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해라.”
비선출 아니랄까봐 아주 쉽게 말씀하시네.
모두 잊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온실 속 화초처럼 애지중지 큰 뉴캐슬의 아이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좋군. 표정들이 살아있어.”
…혹시 우리 감독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표정을 읽을 줄 모르는 걸까?
그, 뭐냐, 전두엽 어딘가 망가졌다거나 그런 건가?
“좋아, 그 자세 그대로 나가라. 나가서 빌어먹을 선덜랜드 놈들 콧대를 눌러주고 와.”
우리는 필드로 달려 나갔다.
맞은편에 선덜랜드 아이들이 섰다.
뭐랄까 우리 아이들이 귀하게 자란 도련님 같다면 저기는 가난한 달동네에서 거칠 게 큰 아이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야, 뉴캐슬 새끼들 기름 처먹더니 이제는 퍽킹 아시안도 경기장에서 뛰는 거야?”
하프라인에 서니까 그 거친 녀석들이 거친 입담을 과시한다.
거울을 보고 한 건 아니지만, 최대한 화사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답해줬다.
“너넨 돈 없어서 나 같은 애들도 못 데려오잖아? 죄다 잉글랜드 사람이네? 아니,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에서도 못 데려오는 거야?”
“……빌어먹을 돈만 많은 새끼들. 돈으로 챔피언스 리그밖에 못 가는 놈들.”
“응, 돈 없었을 때도 우린 너네처럼 나락 안 감.”
“이 자식…….”
누구한테 감히 입으로 싸우려 들어.
고아원에서 주먹만 키운 게 아니라 입담도 키웠다 이 말이지.
삐이이익!
녀석이 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이 휘슬이 울렸다.
기다렸다는 듯 관중석에서는 뉴캐슬의 응원가인 커밍 홈 뉴캐슬을 부르기 시작했고, 내가 공을 굴리면서 경기가 시작됐다.
감독의 주문은 초장부터 라인을 바짝 올려 선덜랜드를 가둬놓고 두들겨 패라 말했다.
감독의 지시대로 우리는 라인을 올리며 적들을 하프라인 아래로 가뒀다.
나는 그 안에서 2선과 나란히 서며 패스를 주도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샬렛을 바라봤다.
지금 우리 팀은 나와 샬렛이 공격을 주도하고 있었고, 내가 샬렛을 의식하자 선덜랜드 역시 샬렛을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샬렛은 익숙하다는 듯 간격을 벌리며 사이드라인을 탔고 나는 샬렛에게 얼리 크로스를 보냈다.
내가 아까부터 샬렛을 의식한 탓에 풀백과 수비수가 움직이며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을 향해 내가 달리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샬렛이 뒷공간으로 패스를 찔러넣었다.
지난 세 경기 동안 나와 샬렛이 골을 만들어가면서 생긴 하나의 공격 패턴이었다.
이를 예측한 듯 선덜랜드는 가장 뒤에 스위퍼처럼 수비수 하나를 두고 있었고, 그 수비수가 나를 막아섰지만, 너무 후방에 붙어 있었다.
프랭크 리베리처럼 수비수를 피해서 옆으로 달리다가 반대쪽 골대를 향해 감아찼다.
철썩!!
유난히 힘이 들어간 공이 골망을 뒤흔드는 순간.
와아아아!
“써니!!”
“잘한다!”
기다렸다는 듯 관중석의 툰들이 뉴캐슬 응원가 중 하나인 로컬 히어로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자랑해야지.
나는 가장 열렬하게 환호하는 툰에게 달려가 뒤돌아서서 양손으로 내 등을 가리켰다.
YOON
7
세 경기를 활약한 뒤에야 받을 수 있었던 내 등번호 7번.
이 팀의 7번 윤태양을 기억하라는 내 세리머니에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넘버 7!! 써니!!”
…써니 말고 윤이라고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