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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29화 (29/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29화

뉴캐슬 U-16가 타인-위어 더비를 5대1로 압승하며 한동안 펍에서 어린 툰이 화제가 된 것도 한때.

어느새 한 해가 지나고 6월이 되며 31/32 시즌도 마무리됐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유스 디렉터는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또다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윤태양 때문이었다.

태양은 뒤늦게 합류해 19경기를 뛰면서 37골 11도움으로 공격 포인트 점을 기록했다.

경기당 2.52 포인트, 1.94골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고작 13살이 만들어낸 거다.

해가 바뀌면서 이제 14살(한국 나이 15세)로 여전히 U-16에서는 어린 선수였지만, 적어도 유럽 안에서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프리델 마이어가 뉴캐슬의 메시가 될 거라는 예언은 적어도 U-16 안에서는 들어맞은 샘이다.

여기서 고민이 생긴다.

이 어린아이를..

“상위 클래스로 올려 보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둬야 할 것인가.”

가만히 생각하던 칼센은 윤태양의 정보를 확인했다.

유럽에 와서 환경이 달라진 덕분인지 몰라도 윤태양은 무서운 속도로 키가 자라고 있었다.

현재 키는 171.3cm.

짧은 시간에 무서운 속도로 자라 신체에 적응하지 못할 법도 한데 확실히 남다른 아이인지 성장하는 키에 별 탈 없이 적응하고 있었다.

“이 정도 피지컬이면 월반시켜도 될 것 같긴 한데.”

이 바닥에서 이 정도 키면 충분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시는 170cm도 안 되는 키로 전설이 됐으니까.

“생각해 보니 고민하는 게 웃기긴 하네.”

이미 작은 키로 U-16을 유린한 태양 아니던가.

그의 성장을 부추기려면 U-18 월반은 필수다.

그리고 테스트해 보고 안 되면 다시 U-16으로 내리면 그만이다.

칼센은 즉시 회의를 열었다.

그렇게 유스의 모든 스탭들이 모인 자리에서 윤태양의 승급에 대한 회의가 이어진다.

“스포츠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윤태양이 U-18에서 뛰는데 아무런 무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장도 빠르게 성장해 170cm에 육박하고 있고요. 겉보기에는 왜소해 보이고 근육량도 다소 아쉬워 보이지만, 코어 근육으로만 보면 절대 누군가에게 밀릴 수준이 아닙니다.”

스포츠 과학팀은 윤태양의 월반을 반겼다.

“에이든 감독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에이든은 윤태양의 영상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다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굉장한 선수를 더 이상 제가 가르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윤태양은 지금 팀에서 의욕을 잃고 있습니다. 수준이 떨어져 재미를 잃어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좀 더 수준 높은 상위 클래스에서 의욕을 갖추는 게 성장에 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에이든 감독과 이에 덧붙이는 코치들의 말을 들은 칼센은 U-18 감독을 바라봤다.

그는 에이든 보다도 더 젊은 감독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수치는 완벽합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이런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죠. 테스트는 해봐야겠지만요.”

그리 말한 젊은 감독은 자신의 테블릿 pc로 팀의 일정을 보고는 말했다.

“보니까 유스 아이들과 1군 팀의 훈련이 예정되어 있네요. 이때 한 번 보겠습니다.”

그 말에 유스 디렉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합시다.”

* * *

해가 넘어가고 어느덧 한국 나이로 15살.

내가 다시 회귀한 지도 어느덧 9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러고 보니 영국에 온 것도 얼추 열 달이 지났네.

그 열 달 정도 되는 시간 동안 가족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영국에 적응하고 있었다.

“아아, 알겠습니다. 한국지사에 전화해서 물건 확보하라고 전달하겠습니다. 네, 네. 문제없을 겁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도움으로 회사에 취직한 아버지는 한국에는 흔하지 않은 영국 맥주와 골뱅이와 같은 공산품, 식품 수출에 중간다리 역할을 하면서 잘나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한국과 영국 간 무역이 활발한 모양이다.

영국은 절대 야근이 없는 회사인데, 영국과 한국의 시차 때문에 아버지는 밤에도 종종 일을 해야 했다.

물론, 야근 수당은 한국보다 잘 나오는 것 같았다.

“사돈, 펍이나 갈까?”

“이이, 좋지.”

가장 놀라운 건 두 분 할아버지다.

쭉 한국에서 살아서 적응하는 데 가장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장 빨리 영국에 적응해 버렸다.

이건 순전히 펍 덕분이다.

영국의 노인정, 영국의 사랑방, 영국의 동네 미용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펍에 재미를 들린 두 분은 매일같이 펍에 출근하셨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하다보니 아는 단어가 늘었고, 그 단어를 끌어모아 대화를 하다보니 회화가 느셨다.

“또 가신다구요? 매일같이 술을 몇 잔씩 드시는 거예요? 건강도 좀 생각하셔야지!”

“아가야, 브라운 에일이 뭔 술이여. 음료수지. 사돈, 기여 안 기여?”

“맞지. 딸아, 맥주는 술이 아니다. 그걸로 취하고 건강 해쳤을 거면 사돈이랑 나는 애저녁에 죽었을 거다.”

“아버님, 아빠!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리고 맥주만 드세요? 얼마 전에는 위스키를 코가 삐뚤어지도록 드시고, 또 전에는 진, 전에는 보드카!! 종류별로 다 드시잖아요!”

“그건 우리가 원한 게 아니라 태양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쏜 건데, 어떻게 거절하냐.”

“이이, 장손이 잘나서 남들이 사주는 걸 어쩐단 말여.”

축구에 미친 툰들이 요즘 펍에서 할아버지들이 내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종종 오래 머물러 달라며 술을 사주는 모양이다.

세상에 유스팀 선수 가족이라고 술을 사주다니.

이렇게 자기 팀에 관심 많고 진심인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아무튼, 다녀오마!”

“우리 저녁은 신경 쓸 거 없어! 이?!”

“어휴!”

엄마가 한숨을 내쉬고 이내 피식 웃는다.

“엄마, 우리도 외출할까요?”

“외출? 으음… 산책이나 나갈까?”

“우리 산책 가?”

“산책 가자!”

“오늘 날씨 좋더라. 가자, 엄마.”

“으으으음…….”

의외로 적응이 느린 건 엄마였다.

엄마가 머리가 나쁜 건 절대 아닌데, 공부법이 잘못된 탓이다.

대화를 하면서 부딪쳐야 하는데 너무 한국 수능 공부 형식으로 영어를 공부해서 읽고 쓸 줄은 아는데 듣고 말하는 걸 힘들어 하셨다.

이건 뭐 시간이 해결할 문제인데도, 엄마는 이걸 좀 부끄러워하셨다.

왜냐고?

동생들이 생각보다 영어를 빠르게 익히고 있거든.

애들이라 그런지 습득력이 빨랐다.

이대로라면 내년에는 홈스쿨링이 아니라 학교를 다닐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올해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구나.

생각만 해도 귀찮다.

한국 중학교보다는 나으려나?

아니, 학교가 귀찮고 지루한 건 세계 공통이잖아?

“아들,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

“잠깐 끔찍한 상상을 했어요.”

“그나저나 우리 아들까지 산책 나가기엔 시간이 애매할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게.

이제 곧 훈련 시간이다.

잠시 고민하던 엄마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은 훈련장에 데려다주고 동생들하고만 산책 가야겠다. 아니, 장을 봐야겠는걸?”

“…괜찮겠어요?”

영어가 더딘 엄마에게는 정말 큰 결심이 아닐 수 없었다.

뭐, 동생들이 있으니 정 안 되면 애들이 알아서 엄마를 도와줄 테지만.

“까짓거 해야지. 운전도 적응했는데 영국말 따위 적응 못할까!!”

엄마가 결연한 표정을 짓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보는 게 저 정도로 결연해야 하나 싶지만, 엄마로서는 큰 모험이었다.

“응원할게요, 엄마.”

“고마워, 아들. 그런 의미에서 슬슬 갈까?”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그래도 오늘 좀 일찍 가긴 해야 하거든요.”

“응? 무슨 일 있어?”

“오늘 1군이랑 같이 훈련한데요.”

“1군이랑? 와, 벌써 1군 진입하는 거야?”

엄마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애들 동기부여 시키려는 일종에 그, 뭐랄까, 그래, 이벤트 같은 거예요. 동경하는 1군이랑 같이 훈련하면서 꿈을 키우는 뭐, 그런 거?”

“아, 그런 거야.”

“생각보다 애들한테 잘 먹혀요.”

“음, 우리 아들도 그 ‘애들’에 포함돼야 하지 않니?”

난 예외지.

속에 들어있는 건 중딩이 아닌걸.

그걸 솔직히 말할 수 없어 나는 그저 웃었다.

엄마가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스마트 폰을 확인했다.

-김효준 : 다들 살아있음? 뒤진 거 아님?

동아시아 교류전 U-15 대표팀 단톡방에 모처럼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전북의 스트라이커 김효준이었다.

-배상현 : ㅁㅊ 너 안 자냐? 한국은 지금 밤일 텐데?

-김효준 : ㄴㄴㄴ 형 나 한국 아님요

-배상현 : ?

-김효준 : 나 독일임 ㄹㅇ

-배상현 : ???

-나이엘 : 쟤 독일로 유학 갔어요 쟤 지금 레버쿠젠에 있음 테스트 잘 봤냐?

-배상현 : 올ㅋㅋ

-김효준 : 입단은 할 거 같은데

성호가 아니라 김효준이 먼저 유럽에 왔다고?

레버쿠젠이 한국과 교류가 잦아서 독일로 가는 길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이성호 보다 먼저 간 건 의외다.

-류준서 : 아 쟤가 아니라 내가 갔어야 하는데;

-나이엘 : 너네 둘 보다 나지 구단은 눈깔이 삐었음 ㄹㅇ

아, 전북에서 보내준 거구나.

-배상현 : 성호는? 성호도 독일 왔다고 들었는데

스무 살이 넘어 유럽 진출했던 이성호는 달라진 역사에서는 조금 일찍 독일로 간 모양이다.

-이성호 : 전 잘 있읍니다,,,,,독일,,,,

-배상현 : 말하는 거 ㅈㄴ 아재같네ㅋㅋㅋㅋ독일 좋지?

-이성호 : ,,,,,,,모르겠읍니다;;애덜이,,, 말하는,,것두,,,못,,알아듣겠구,,, 힘듭니다,,

-배상현 : 지내다보면 적응할 거야 그나저나 태양이는 뭐하고 사냐 이 자식 영국 가더니 연락이 없어;

-나 : 나는 잘 지냄 ㅇㅇ 내 걱정 ㄴㄴ

-배상현 : 연락 좀 해라 ㅅㅋ야 걱정되잖아

-류준서 : ㅇㅇ 연락 좀

-나이엘 : 영국서 적응하기 어렵나? ㅋ

-김효준 : ㅋㅋㅋ피시앤칩스인가 삼시세끼 처먹느라 힘든 듯

-나 : 난 ㅈㄴ 잘 지냄 ㅇ 님들 걱정이나 하길 ㅇㅇ

-배상현 : 말하는 싸가지 봐라 ㅋ 싸가지가 여전히 없는 거 보니 적응 잘하나보네 ㅋㅋ

나 : ㅋ

솔직히 얘들이 내 걱정할 때가 아니긴 하지.

동아시아 교류전에 함께했던 친구들 대부분은 U-18 월드컵에 참여해서 처참한 성적으로 토너먼트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아쉽다.

내가 갔으면 좀 달라졌으려나?

아니지, 얘들도 나이가 어려서 거의 벤치만 달궜으니 나도 벤치만 달궜을지 모르겠다.

감독이 영국에서 적응하라고 배려해 준 건데, U-21 월드컵에는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어린아이들 월드컵이라 하더라도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엘리트들의 코스여서 참가해 보고 싶거든.

“아들, 도착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어느새 훈련장에 도착했다.

“엄마, 다녀올게요.”

“그래, 잘하고 오렴.”

“엉아 잘하고 와!”

엄마와 동생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차에서 내려 훈련장으로 향했다.

U-16 클럽하우스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코치가 나에게 말했다.

“써니, 유스 디렉터에게 가봐.”

“네? 무슨 일 있어요?”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걸?”

좋은 소식이라니, 뭐지.

오랜만에 유스 디렉터 칼센의 사무실에 들렀다.

“왔니?”

예전에는 나를 보고 시큰둥하던 양반이 이제는 눈에 꿀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네, 찾으셨어요?”

“그래. 내 의사를 물을 게 있어서 불렀다.”

“어떤 거죠?”

“내부 회의 끝에 너를 U-18로 월반시키자는 결론이 나왔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월반이라니.

팀이 월반에 대해서 극도로 꺼리는 편이어서 내년 시즌 이후에나 희망이 보일 줄 알았는데, 우리 팀답지 않은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저는 좋죠.”

“가면 잘 할 수 있겠니?”

“글쎄요,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죠.”

“좋은 자세야. 오늘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월반은 더 빠르게 이뤄질 거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돌려 말하는 거다. 오늘 1군과 훈련에서 테스트를 보겠다는 소리다.

유스를 애지중지하는 우리 팀은 아이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거든.

“무리하지 말고 어른들의 축구가 어떤지 제대로 보고 오렴.”

의미심장한 그의 말에 나는 그저 웃었다.

어른들의 축구?

그거 내가 가르쳐 줘야 하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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