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30화
요아힘 샬렛은 지난 시즌이 마무리되기 전에 적응을 이유로 U-18로 콜업됐다.
2군을 제외하면 유소년 최고 단계인 만큼 U-16의 시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고, 코치진의 훈련 수준이나 강도도 더 체계적이고 하드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재미없었다.
U-16에서 느꼈던 짜릿한 맛이 사라졌다.
말도 안 되는 플레이가 이어지며 골로 마무리될 때 느껴지는 그 쾌감.
플레이를 보면서 오는 희열.
함께한다는 즐거움.
등등.
그런 게 지금의 팀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윤태양이 없다.
U-18 그 누구도 윤태양과 같은 설렘, 즐거움, 놀라움과 같은 감정을 주지 못했다.
이 팀에서 새삼 윤태양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자기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 현역 프로선수 그 누구와 비교해도 최소 샬렛의 기준에는 윤태양이 최고였다.
물론, 돈을 쏟아부은 뉴캐슬답게 좋은 선수는 많았다.
그래서 깨달았다.
잘하는 선수는 많지만, 사람을 설레게 하는 선수는 희귀하다는 것을.
그리고 궁금해졌다.
사람을 설레게 하는 선수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걸까?
아직은 모르겠다만, 중요한 건 지금은 윤태양이 없어서 경기가 재미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팀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윤태양과 같은 선수가 다른 곳에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모처럼 윤태양과 플레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인팀과 함께 유스 모두가 다 같이 훈련을 하는 특별한 날,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윤태양이 훈련장에 보였다.
“태양!”
샬렛은 태양이 써니라는 애칭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그의 이름을 발음할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 노력의 성과를 드러내며 태양에게 달려가자 평소 그다운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왔냐?”
“어, 이렇게 오랜만에 보게 돼서 반갑군.”
“위에 공기는 어때? 숨쉴 만하냐?”
“뭐지? 비유법인가? 쉿, 조용. 내가 맞춰보지. 위에 공기라는 건 그 팀의 수준을 말하는 건가? 맞아? 그래, 그렇다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고 쉽군. 숨쉴 만하다는 건 적응했냐는 건가? 나는 잘 지내고 있지. 다만 날씨는 흐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겠어?”
샬렛은 태양의 비유법을 재미있는 놀이 정도로 인식한 듯하다.
“몰라.”
“몰라? 정답을 말해주지. 이유는 내 팀에 태양이 없어서야. 하하하핫, 어때 웃기지?”
“…독일식 개그는 어렵네.”
“음, 독일식 개그가 아닌데. 아무튼, 너도 얼른 U-18에 올라왔으면 좋겠군. 있잖아, 거기 너 같은 애는 없어도 괜찮은 선수가 몇 있기는 하거든? 그중에 말이지…….”
샬렛의 투머치토크가 시작되자 태양의 안색이 흐려졌다.
독일식 유머가 섞인 샬렛의 투머치토크는 차라리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게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어, 왔다.”
다행히 구세주가 등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구세주들이었다.
뉴캐슬의 1군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왔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유스팀 아이들이 선망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우승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지금의 스쿼드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스쿼드도 아니었다.
세계 최고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에서 5년 연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월드 클래스라 칭할 만한 선수들도 있었다.
“그거 알아, 태양?”
“뭐?”
“나는 저기 이반 레델리를 보고 여기 오고 싶어 했어.”
올해 26살, 피오렌티나에서 멋진 활약을 보이며 2년 전에 이적한 이반 레델리는 지난 시즌 38경기를 뛰면서 20골 3도움을 기록한 팀의 에이스였다.
“어쩐지 비슷하다 했다. 롤모델이 레델리였구나?”
“그래, 내 롤모델이야, 그는.”
레델리는 주로 오른쪽에서 뛰는 왼발잡이고, 샬렛은 왼쪽에서 뛰는 오른발잡이인 것만 빼면 둘의 플레이는 많이 닮아 있었다.
“기대되겠네.”
“설레고 있는 중이다. 태양, 너는 롤 모델이 있나? 저중에서?”
“아니, 없어.”
“좋아하는 선수도 없어?”
“있지. 바로 나.”
“굉장하네.”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에 코칭 스탭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포지션별로 아이들을 나눴다.
공격라인인 샬렛과 태양은 같은 조가 되어 1군 선수들을 마주했다.
샬렛이 동경하는 레델리는 물론이고, 지난 시즌 이적한 오마르 레오나르드도 있었다.
레델리도 레델리지만, 오마르 레오나르드의 인기도 상당했다.
프랑스 리그앙 만년 하위팀인 보르도에서 4천만 파운드(한화 약 650억 가량)라는 요즘답지 않은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이적한 그는 데뷔 첫 시즌인 지난 시즌에서 34경기 14골 8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하며 프랑스 국가대표까지 선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사랑받는 선수는 오마르도 레델리도 아니었다.
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는 바로 팀의 주장인 마테오 실바였다.
올해 35세, 선수 수명이 늘어난 요즘 시대에서도 노장 취급받는 그는 오일머니가 들어온 시점에 뒤늦게 재능이 만개하며 23살 늦은 나이로 1군에 콜업돼서 지금까지 팀을 지킨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로맨티스트, 원클럽맨이었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도 Mr.툰일까?
“이 친구들이 미래에 나와 함께 뛸 동료들인가?”
그의 서비스와 같은 말에도 아이들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우리가 스무 살 되면 마흔이 넘잖아요? 그때까지 뛸 수 있겠어요?”
아, 한 사람 빼고.
유스 아이들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 한 사람, 윤태양을 바라봤다.
세상에 Mr.툰에게 저런 건방진 말을 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응? 내가 벌써 그렇게 됐나?”
경악한 아이들과 달리 미스터 툰은 유쾌하게 웃었다.
“우리가 스무 살이 될 즈음에 캡틴은 마흔한 살이에요.”
“그 정도면 버틸 만하겠는걸? 우리 팀의 스포츠 과학팀은 최고니까.”
태양은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태양을 바라보며 마테오 실바는 아빠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네가 써니라는 아이구나?”
“윤.태.양이라고 해요. 써니가 아니라.”
“태양은 자기 애칭을 싫어해요. 여자 같은 별명이라고요.”
“오, 그래? 이거 미안하게 됐네. 테이요앙? 테이야앙? 음, 미안, 발음하기 힘들구나.”
“편하게 윤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윤. 좋아. 네 이야기가 1군에서도 많이 들리더라.”
태양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표정, 건방지다 느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 마테오 실바는 저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다.
“좋아, 코치! 우리 처음 하는 훈련은 뭐지?”
동년배 코치는 마테오 실바의 물음에 골대를 가리켰다.
“팀의 퍼스트 골키퍼를 두고 슈팅 연습을 할 예정이지.”
“오우.”
모두의 시선이 훈련장 골대로 향했다.
신장 2m 7cm, 마치 고릴라를 연상시키는 피지컬과 긴팔을 지녀 킹콩이라 불리는 뉴캐슬과 이탈리아의 퍼스트 골키퍼 안토니오 리첼라가 거기 있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팀의 어린 공격라인을 바라보며 히죽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이 섬뜩하기 그지없다.
“마치 네까짓 것들이 나에게 골을 넣을 수 있을까? 라고 말하는 표정 같네.”
샬렛이 질린 표정으로 말하자 다른 유스 아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말을 들은 마테오 실바는 껄껄 웃었다.
“아니야, 저래 보여도 아이들을 굉장히 사랑하는 친구란다.”
“거짓말!!”
“캡틴, 거짓말은 나쁜 거예요!”
아이들의 말에 마테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단언컨데 자기가 아는 축구 선수 중에 제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골키퍼가 정작 아이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자, 가볼까. 세계 정상급 골키퍼를 상대로 골을 넣어보자고.”
마테오 실바가 앞장서서 공격라인을 이끌어 골대 앞에 섰다.
“자, 친구들 이 슈팅연습은 골키퍼에게도 훌륭한 훈련이 된다네. 그러니 미안해하거나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슈팅해. 그지, 안토니?”
안토니오 리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슈팅한다고 골로 이어질 거란 보장은 없단다, 어린 친구들.”
그러고 씨익, 웃는데 절로 긴장감이 조성됐다.
“자, 시범을 한 번 보여야겠네. 오마르가 한 번 보여줄래?”
“알았어, 캡틴.”
마테오 실바가 발아래 공을 두고 코치가 휘슬을 울리자 페널티 에어리어 쪽으로 공을 찼다.
그 위치는 약속된 게 아니고, 임의로 찔러넣은 패스였고, 오마르 레오나르드는 공 앞에 달려가 슈팅했다.
낮고 빠르게 뻗은 공이 골대 왼쪽 아래로 향했다.
골일까?
“어림없지!”
콧김을 내뿜은 킹콩, 안토니오 리첼라가 긴 팔을 쭉 뻗으며 몸을 날려 공을 쳐냈다.
“와아……!”
누가 봐도 골이라고 생각한 슈팅을 어렵지 않게 쳐내는 걸 보고 아이들은 감탄했다.
괜히 수많은 툰들이 뉴캐슬이 5시즌 연속으로 챔스 티켓을 따낸 건 안토니오 리첼라가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안토니, 설마 애들한테도 빡세게 할 거 아니지?”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이건 내 프라이드야. 절대 골을 내줄 수 없지.”
그 말에 마테오 실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저 악당에게 도전할 용사 없나?”
하지만 안토니오 리첼라의 기세에 눌린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그걸 보다 못한 리첼라가 말했다.
“나에게서 골을 빼앗는다면 제일 좋은 축구화 열 켤레를 사줄게. 도전해 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오, 첫 번째 도전자!”
첫 번째 도전자는 U-18에 주전 스트라이커였다.
축구화를 한 번 더 단단히 조인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휘슬이 울리자 아까 오마르에게 했듯이 마테오 실바가 공을 찔러줬다.
뻥!
“아…….”
기세 좋게 달려 나가 힘껏 찬 공은 골대 안은커녕 골대 위 아주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쉽게 됐네. 다음 도전자?”
축구화라는 상품이 아이들에게 용기를 준 건지 몰라도 도전자가 줄줄이 나왔지만, 연달아 다섯 명 모두 실패했다.
한 명은 아까 그 스트라이커처럼 홈런을 날렸고, 나머지 네 명은 골대 안으로 공을 차긴 했지만 쓸데없이 힘이 들어갔을 뿐 골키퍼가 막기 쉬운 위치로 공을 슈팅해 리첼라가 너무나도 손쉽게 공을 막아버렸다.
그걸 안타깝게 여긴 마테오 실바가 말했다.
“공을 세게 슈팅한다고 해서 골이 들어가는 게 아냐. 침착하게 골키퍼가 막기 힘든 위치와 타이밍을 노려야지. 다음 도전자?”
“제가 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샬렛이 나섰다.
샬렛이 준비를 끝내고 휘슬이 울리자 마테오 실바가 공을 패스한다.
빠르게 뻗어온 공을 향해 다른 아이들은 다이렉트로 슈팅했지만, 샬렛은 공을 한 번 터치해 위치를 잡고 자신이 넣고자 하는 위치로 침착하게 낮고 빠르게 슈팅했다.
골대 오른쪽 아래 구석을 노린 예리한 슈팅.
모처럼 리첼라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발끝으로 공을 쳐냈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가장 훌륭한 슈팅에 리첼라는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아쉽네.”
샬렛이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난 뒤 연달아 도전자가 실패하며 이제 남은 건 태양이었다.
“써, 아니, 윤. 너 혼자 남았네. 자신 있나?”
마테오 실바의 말에 태양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삐익!
그리고 울리는 휘슬과 동시에 마테오 실바가 공을 찔러넣는다.
쭉 뻗어오는 공을 향해 윤태양이 달렸다.
다가오는 공을 향해 윤태양이 오른발을 힘껏 휘두른다.
다이렉트 슈팅인가?
리첼레가 오른발 슈팅을 의식해 몸을 기울이는 순간.
슈팅할 것 같은 다리는 그대로 공만 가뿐하게 튕겨내고 잔디를 짚었고, 이어서 왼다리가 휘둘러졌다.
그걸 보고 안토니오는 아차,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이내 골대 오른쪽으로 뻗어오는 것을 보고 그대로 몸을 기울였다.
그 순간.
공이 바깥쪽으로 휘었다.
골키퍼조차 눈치채지 못한 아웃프론트 슛이었다.
이미 역동작이 걸린 안토니오는 안간힘을 쓰며 몸을 쭉 뻗어봤지만, 공은 왼쪽 골대 상단 구석에 빨려 들어간 뒤였다.
골키퍼를 두 번이나 속인 슈팅에 모두가 벙 찐 표정을 지어보이는 가운데, 태양은 자신의 골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화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축구화 열 켤레 맞죠? 최고급으로?”
최고급이라 칠 만한 축구화의 가격은 기본 백만 원은 가뿐하게 넘어간다.
그런 축구화가 무려 열 켤레!
윤태양은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