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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36화 (36/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36화

다들 알 거야.

유럽 챔피언스 리그가 축구 선수들의 꿈의 무대라는 걸 말이지.

어쩌면 월드컵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선수도 있을걸?

챔스 무대를 위해 이적을 하거나, 팀을 나가고 싶어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사실, 지난 삶에서 나도 그랬다.

유럽 챔피언스 리그라는 꿈의 무대를 뛰고 싶어 했고, 포르투갈 리그에서, 그리고 스페인에서 챔스를 뛸 때마다 행복했다.

챔스는 뭐랄까, 이력서에 대기업, 그러니까 삼성이나 LG 근무 경력 한 줄을 넣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클럽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분명, 세계 최고 리그는 20년이 넘도록 프리미어 리그가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수많은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의 선수가 되는 걸 꿈꾸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건 어느 정도 내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챔피언스 리그 빅이어 단골 클럽이라는 명함은 세계 최고 프리미어 리그라는 명함을 무색하게 만들거든.

이렇게 따지고 보면 뉴캐슬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제법 매력 있는 팀이긴 하다.

다섯 시즌 동안 챔피언스 리그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고 그중 네 번을 조별 예선을 넘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니 말이다.

이 얘기를 왜 하냐고?

우리 유스도 챔피언스 리그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UEFA 유소년 컵.

물론, 어른들의 챔피언스 리그와 달리 커리어에는 큰 영향은 없겠지만, 어린 소년들에게는 국제 경험을 통한 성장이나 뭐 꿈과 미래를 향한 열망 뭐 이런 걸 독려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어줄 거다.

UEFA 유소년 컵은 성인팀이 반드시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거머쥐어야 참가할 수 있다.

팀이 잘나야 유스팀도 덕을 볼 수 있다는 소리다.

심지어 대진표도 성인팀 대진표와 같다.

우리 뉴캐슬 1군 이번 챔피언스 리그 대진을 보자면, C조구나.

뒤셀도르프와 쾨벤하운이 한 조고 이 조의 시드팀은 모든 선수들의 꿈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였다.

심지어 첫 번째 상대네.

음, 레알 마드리드와는 스페인에서 뛸 당시에 몇 번이나 붙었던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대단한 팀이었지.

보기만 해도 사람을 설레게 하는 스타 선수들이 수두룩했으니 말이다.

우리 아버지 나이대 사람들은 페레즈 회장과 갈락티코 정책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 유스는 볼품없다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페레즈 회장이 떠난 이후 정책이 바뀌면서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다.

지금의 회장인 바모스 안테 그란씨아 회장은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그 말은 뭐냐?

라 파브리카를 다시 힘차게 가동시키겠다는 소리다.

라 파브리카가 뭐냐고?

바르셀로나의 유스가 라 마시아라고 불리듯이,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를 라 파브리카라고 부르는 거다.

농장을 뜻하는 라 마시아, 공장을 뜻하는 라 파브리카.

라이벌로서 모든 게 대척점인 이 두 팀은 유스팀의 명칭도 상반되는 대척점에 있는데, 유일한 공통점은 ‘농장’과 ‘공장’ 모두 스페인을 양분하는 최고의 시설로 거기서 ‘생산’한 선수로 팀을 꾸려왔다는 거다.

갈락티코 정책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튼, 과거로의 회귀라는 타이틀과 함께 라 파브리카는 다시 힘차게 가동됐다.

과거 라울과 이케르 카시야스와 같은 최고의 ‘제품’을 ‘생산’한 것처럼,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는 주야 3교대를 돌려 엄청난 물량을 뽑아내는 공장같이 상당한 유스를 마구 배출하고 있었다.

당장 지금도 미래에서 내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했을 때 쟁쟁한 명성을 날리던 녀석들이 여럿이 라 파브리카에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팀은 묘하게 들떠 있었다.

아니, 어려운 상대를 만났는데 왜 들뜨냐고?

“나 조만간 이적할 것 같아.”

“어디로?”

“레알 마드리드.”

“미친 소리 하네. 걔들이 너를 왜 데려가냐?”

“내가 레알 마드리드 상대로 캐리하면 당연히 데려가려 하겠지.”

“캐리 같은 소리 하네.”

…이런 분위기다.

잘하면 레알 마드리드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가망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제발 뉴캐슬에 남아주길 바라는 삼인방, 샬렛과 소비올라, 린데만은 레알 마드리드가 군침을 흘릴 만한 녀석들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런 분위기는 좋지 않다.

딱 봐도 애들 머릿속에는 혼자 다섯 명을 제치고 골을 넣어 레알 마드리드가 모셔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놈들투성이니까.

아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드리블과 개인기로 돌파하려다가 공 뺏기며 욕 처먹던 호날두가 9명이 뛰는 결과가 나올 거다.

호날두가 9명이라니.

이건 분명 진다.

호날두도 퍼거슨 감독이 교정해 한 명의 팀원이자 위대한 선수가 되고 난 뒤에야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지 혼자 하려는 시절에는 욕밖에 안 처먹었다.

이 자식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 같아서는 이 자식들 정신차 리라고 한 소리 따끔하게 해주고 싶지만, 팀 동료 입장에서 나는 축구 잘하는 꼬맹이다.

알고 보면 한국 뺨칠 정도로 꼰대기질이 다분한 이놈들이 자기보다 어린 꼬맹이가 뭐라고 하면 아, 그래, 우리가 너무 들떴구나, 미안하다. 이렇게 말할 것 같아?

내가 실력으로 완전히 눌러주고 중간에 싸움 나서 주먹질 한 번 정도 해주지 않는 이상 아직은 내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럴 때 감독이 좀 잡아줘야 하는데.

“윤, 잘 들어. 잦은 드리블과 개인기는 자제해야 해. 그리고 너무 아래로 내려올 생각하지 말고. 네 속도를 이용한 수비 뒷공간을…….”

포기하자.

이 사람은 자기가 책상머리 앞에서 구상한 전술을 구현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저럴 거면 차라리 FM을 하지.

그거 거의 15년 만에 그래픽 싹 갈아엎어서 난리더만.

사람 얼굴도 보인다나 뭐라나.

“어휴.”

이게 툰의 미래를 준비하는 장소라니 암담하다 암담해.

“허허, 레알 마드리드라니. 꿈의 구단이긴 하지. 하지만 지금같이 안일하게 생각하다간 형편없이 져버려서 레알 마드리드는커녕 우리 툰에서도 쫓겨날 것 같은데?”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정상인이 하나쯤은 있었다.

감독이 못하는 걸 대신해 주는 사람은 우리 팀의 수석코치 아담 켈링턴이었다.

당장 내일 이제 늙어서 은퇴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노인이고 언제나 사람 좋게 웃기만 하지만, 이따금 웃으면서 보여주는 살벌한 눈빛은 아이들을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웃는 카리스마라고 해야 하나.

아, 웃는 카리스마도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하다.

“레알 마드리드가 주급을 더 많이 줄까? 뉴캐슬이 주급을 더 많이 줄까?”

소비올라였다.

재미없는 것, 자유를 얽매이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생각 자체를 싫어하는 이 녀석은 알고 보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출신으로 쓰레기장을 뒤져서 먹고살던 과거를 지닌 놈이다.

쉽게 말해 나보다도 더 돈에 미쳐있는 놈이었다.

돈미새는 돈미새를 알아보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샬렛보다 이 녀석이 내 옆에 더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나에게 이따금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고는 했다.

“아무래도 레알 마드리드가 더 많이 줄 수는 있을걸?”

“그래?”

솔직한 내 대답에 녀석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다만 평균 주급으로 따지면 아무래도 우리 뉴캐슬이 더 높아.”

라 파브리카로 대변되는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는 핵심으로 분류되는 선수 두, 세 명의 주급은 예전처럼 꽤 높은 편이지만, 평균 주급으로 따지면 상당히 체계적이고 엄격해 그렇게 막 높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돈이 마구 굴러 들어오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가장 돈 많은 구단주를 두고 있는 우리 뉴캐슬의 주급이 좀 더 높을 정도다.

“그러니까 잘하면 한도 끝도 없이 주지만, 팀의 평균 수준이면 여기보다 돈을 못 벌 거란 소리네?”

“세금문제도 생각해야 하지만, 뭐, 그거 계산해도 여기가 더 높지 않을걸?”

“하… 그래도 잘되면 스페인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리인데…….”

“그건 또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해줬다.

“자, 레알 마드리드가 아무리 대단한 클럽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구단보다 돈이 많을까? 아니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잘하는 게 돈을 더 많이 줄까? 뉴캐슬에서 잘하는 게 돈을 더 많이 줄까?”

“…그렇게 따지면 이 팀에서 제일 잘했던 미스터 툰도 주급 30만 파운드(한화 약 5억원)밖에 못 받았는걸?”

“미스터 툰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다면 과연 30만 파운드를 받았을까?”

내 말에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래, 그렇네. 여기서 미스터 툰보다 더 잘한다면 30만 파운드쯤은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겠구나?”

돈에 관해서는 참 이해가 빠른 녀석이다.

“그래, 그렇지. 근데 만약에 진짜 잘해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제의가 오면?”

“구단에 알리고 이적 안 한다 말한 다음에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도 아주 잘 알고 있군.

크게 될 녀석이다.

“근데 너 걔 아냐?”

걔?

“누구?”

“요번에 레알 마드리드에 존나 잘하는 애 한 명 있던데. 너랑 동갑.”

“나랑 동갑?”

레알 마드리드 유스, 그러니까 후베닐 A에 나랑 동갑이 있다고?

거기는 뉴캐슬과 다르게 잘하면 승급이 빠르니 그러려니 한다만, 14살짜리가 후베닐 B도 아니고 A라고?

“이름이 뭐더라… 디오스?”

“아.”

걔가 있었구나.

Dios del futbol.

축구의 신이라 불리던 괴물.

심지어 이름조차도 디오스(신)이어서 근본까지 갖췄다고 들리던 메시를 능가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평가될 녀석이었다.

“아네?”

“뭐… 워낙 떠들썩하잖아.”

“그랬나? 하긴 요즘 SNS나 유튜브에서 난리더라. 스페인 뉴스에도 나오고. 근데 너도 그 정도 아니냐?”

“내가? 난 뉴스에서조차 나온 적 없는데?”

한국에서 몇 번 인터뷰 요청이 온 적은 있긴 하다만, 요즘 한국 쪽 인터넷 커뮤니티를 잘 하지 않아서 한국에서 내 인지도는 모르겠다.

유럽에서는 내 이야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기껏해야 뉴캐슬 한정 유명인 정도랄까?

생각난 김에 집 가면 네인버에서 내 이름이나 한 번 검색해 봐야겠다.

“그나저나 그 자식이 있었지.”

중요 선수들은 안 잊으려고 데스노트마냥 이름을 잔뜩 적어놓고 어디 숨겨뒀는데 그 뒤로 열어보질 않고 기억 저편에 묻어둬서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야, 왜 이리 쫄았어. 인정하기 싫지만, 너도 걔 못지않아. 넌 슈퍼 아시안이라고.”

“내가 쫄았다고?”

새삼 내가 꽤나 경직된 것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그 녀석은 나에게 있어서, 아니, 프리메라리가 모든 팀과 선수들에게 있어서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 녀석은 신이 아니라 사탄 그 자체였다.

사람에게 절망을 선사하는 악마.

넘을 수 없는 재능과 피지컬의 영역을 보여주며 절망하게 하는 악마.

어쩌면 그래서 일부러 기억 안 한 걸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쫄 것까지 있냐고?

뭐, 일종의 PTSD랄까?

지난 삶에서 나는, 아니, 내가 속한 팀은 단 한 번도 그 녀석을 이겨본 적이 없거든.

“쫄기는 뭘 쫄아. 승부욕이 불타서 그렇지.”

그렇다고 이번 생에서도 마냥 쫄 수는 없다.

이번 생에 달라진 나는 단 한 번도 놈과 싸운 적도, 그래서 져본 적도 없으니까.

어쩌면… 이번 생에 첫 번째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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