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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41화 (41/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41화

“우리 첫 상대가 아인트라흐트 맞지?”

“프랑크푸르트 아니야?”

“아니야, 아인트라흐트던데?”

“난 프랑크푸르트로 봤는데?”

가만 보면 공세환과 이성호는 수준이 비슷한 듯하다.

상식적인 측면에서는 이성호가 더 부족한 것 같긴 하다만.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가 정식 이름이다 이 멍청한 자식들아.”

아인트라흐트 소속의 배상현이 둘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하자 둘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입을 오, 하고 벌리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이네요.”

“몰랐습니다, 죄송해요, 형.”

아인트라흐트는 대충 유나이티드와 비슷한 뜻이다.

그러니까 영어로 직역하면 프랑크푸르트 유나이티드 뭐 이런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느그 팀에서 제일 잘하는 애가 누군데?”

내 물음에 배상현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스트라이커가 괜찮아. 다비드 케림이랑 브리스 음보요. 아, 그리고 나랑 같이 센터백하는 다니엘 프레스도 잘해.”

다비드 케림은 얼핏 들은 기억이 나고, 음보요는 모르겠다.

다니엘 프레스는 기억이 난다.

이십대 후반쯤에 포텐이 터져서 국대도 차출되고 뮌헨까지 간 놈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붙어봐서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뮌헨에서도 좀 하다가 에이징커브가 너무 빨리 와서 몇 시즌 안 돼서 도로 돌아갔던가 했던 기억이 나네.

“그래서 분데스리가에서 좀 치나, 아인트라흐트?”

그 말에 배상현은 어색하게 웃기만 한다.

내 물음의 대답은 이성호에게 나왔다.

“못하던데.”

“야. 말을 해도…….”

“사실이잖아요, 형.”

그 말에 배상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못하긴 해. 내가 에이스야.”

“배상현이가 에이스면 말 다 했네.”

내 말에 성호와 공세환이 피식 웃음을 흘린다.

“웃냐? 이 자식들이…….”

“아니, 수비수가 에이스라니까 그렇죠.”

웃고 있긴 하지만, 사실, 배상현 정도면 그럴 만하다.

유럽에서 그것도 빅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한 유일무이한 수비수 아니던가.

“자자, 그만 떠들고 가서 자. 컨디션 조져서 만만하게 생각한 팀한테 지지 말고.”

“넵.”

“다들 좋은 밤 되십쇼.”

배상현의 말에 다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와 공세환, 이성호는 같은 방을 써서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프랑크푸르트는 이길 수 있겠지?”

공세환의 말에 이성호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렵진 않을 걸.”

“그지? 헤헤, 골 넣었음 좋겠다.”

“웃기고들 있네. 분데스리가 팀이 조스로 보이냐?”

이 단순한 친구들에게 현실을 알려줘야겠다.

“아인트라흐트가 만만한 팀이 아니에요, 이 친구들아.”

내 말에 이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붙어보니 별 거 없던데?”

“그건 네 팀이 도르트문트라서 그런 거고.”

“그래?”

국가대표와 클럽팀이 붙게 되면 누가 이길까?

무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클럽팀이 이긴다에 걸 수 있다.

설령 국대가 상대적으로 전력이 앞선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매일 수십 경기를 같이 뛴 애들이 만만해 보이냐? 급조된 팀으로 이기는 게 쉬운 게 아니야.”

“그것도 그렇네.”

“긴장해야겠군.”

친구들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일침하고 있는 가운데.

“크크크…….”

어디선가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최지우.”

최지우였다.

“오랜만이군, 윤태양. 너의 활약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크크크… 역시 나의 라이벌이군.”

“뭐야, 너도 있었어? 어디 짱박혀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어?”

“…최근에 나의 존재감을 지우는 훈련을 하고 있지. 내 안에 그림자가 나를 지배하는 순간이랄까… 크크큭.”

미친놈.

원래 중2병이었던 녀석은 진짜 중2가 되더니 완전체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내일 시합… 네놈 말대로 방심은 금물이지. 하지만.”

“하지만, 뭐?”

“반대로 그놈들이 방심한다면?”

그게 뭔 개소리야?

…라고 말했는데.

“진짜 방심하네.”

바로 다음 날.

아인트라흐트 훈련장에서 시작된 경기는 전반이 끝날 즈음에 우리가 2대0으로 앞서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도 해외파인 나와 이성호, 배상현과 김효준을 뺀 상황에서 말이다.

대표팀이 클럽팀과 비교하면 조직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해외파를 제외한 국내파 아이들은 월드컵 예선인 아시안컵에서 호흡을 맞추며 나름대로 조직력을 다져놓은 상황이었다.

물론, 국내파를 기준으로 아인트라흐트가 이를 압도할 실력과 조직력을 겸비했지만, 아인트라흐트는 축구 변방인 아시아 팀인 우리를 얕잡아 봐도 너무 얕잡아 봤다.

그 결과 빠른 시간에 한국이 선제골을 만들어냈고, 어린 선수들이 멘탈이 으레 그렇듯 당황한 아인트라흐트 아이들은 한국에게 휘둘리다가 추가골까지 헌납하게 된 거다.

최지우는 이걸 어떻게 예측한 걸까?

전반이 끝나기 무섭게 그에게 물어보니 최지우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예전에 당해봤지. 유럽놈들은 우리를 하층민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축구 하층민.”

“예전에?”

“유럽으로 잠시 축구 유학을 간 적이 있었지… 그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깨어날 뻔했지. 크크크… 그때 그놈이 나왔다면… 그놈들은… 크크… 크크크크큭…….”

뭐라는 거야.

대충 유럽으로 유학 왔다가 인종차별 비슷한 거 이거저거 당하고 돌아왔다 이런 건가?

내가 이해한 게 맞나?

“크크… 이제 놈들은 전력을 다하겠지. 자존심 강한 게르만이 열등한 민족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크크크크…….”

독일인들이 자존심이 강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놈들이 이제 진심축구를 보여주긴 할 거다.

교류전이라고 하더라도 자존심이 상한 채로 끝내지는 않을 테니까.

“자, 후반에는 배상현, 공세환, 이성호, 윤태양이 나간다. 준비해.”

“감독님! 저는요?!”

“효준이는 대기.”

“…네…….”

유럽까지 진출했음에도 효준이는 후보가 될 팔자인가 보다.

“오랜만에 같이 뛰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경기를 준비하는데 공세환이 내게 말했다.

“그래, 너 좀 하더라.”

“진짜?”

공세환이 좋다고 웃는다.

솔직히 기술적으로는 패스가 향상된 것 빼고는 별다른 걸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좋아진 피지컬만큼이나 체력이 굉장히 좋아졌다.

그 체력을 바탕으로 활동량이 어마무시하다.

단순하게 사이드를 오가는 클래식한 윙백이 아니라 필드를 전반적으로 오가며 빈자리를 채우고 빌드업의 중간 다리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고 있었다.

그 말은 시야가 넓어졌고, 전술적인 식견이 늘었다는 소리다.

현질도 현질이지만, 본인의 노력이 어마어마했다는 소리지.

결론적으로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

뭘 해도 어중간하던 공세환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한국에서는 귀하디귀한 풀백으로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잘하자.”

나는 대견한 얼굴로 공세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필드로 나섰다.

* * *

7

T.Y.YOON

“나왔다.”

“나왔네.”

아인트라흐트 스탭들의 시선이 한 소년에게 꽂힌다.

일견 보기에는 가냘픈 체격과 곱상한 외모 때문에 귀한 집에서 곱게 큰 것 같은 아이.

보기에는 과연 저런 체격으로 축구를 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겉으로 봐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저 소년이 라 파브리카로 대변되는 현 시점 최고의 유스팀인 레알 마드리드 후베닐 A를 홀로 제압하다시피 한 괴물이기 때문이다.

“도르트문트의 LEE나 우리 팀인 BEA도 그렇고 이 세대 대한민국 팀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야.”

“문제는 저 아이들이 나오지도 않은 한국팀에게 두 골이나 먹힌 우리 팀에 있네.”

그 말에 스탭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트라흐트는 역대급으로 유스 가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수비라인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배상현이 없으면 유지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 배상현이 상대편 수비라인에 서서 선수들을 조율하는 걸 씁쓸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경기가 시작됐다.

주전이 대거 투입된 대한민국은 전반과 또 달랐다.

기세를 몰아 두 골을 넣긴 했지만, 아인트라흐트가 본 한국은 전체적으로 뭔가 아쉬운 팀이었다.

수비라인은 전체적으로 발은 빠르고 오른쪽 풀백의 왕성한 활동량이 점유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지만, 단순하게 수비적인 측면만 보면 조직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배상현이 투입된 수비라인은 또 달랐다.

오른쪽 풀백, 공세환이 필드 전체를 아우르며 왕성하게 움직이게 둔 상태로 왼쪽 풀백과 함께 백쓰리 형태를 이루며 자신 있게 라인을 올려 아인트라흐트를 압박했다.

수비수들의 빠른 발도 빠른 발이지만, 어디까지 배상현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반전 심기일전에 공격해 들어간 아인트라흐트는 수비라인을 넘지 못하고 공을 한국에게 넘겨줘야 했다.

그 공을 가지고 움직이는 미드필더 라인은 전원 한국에서 뛰는 아이들로 구성됐지만,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뭔가 창의적인 플레이는 하지 않았지만, 어린 친구들이 안정적인 플레이를 할 줄 알았다.

여기서 이어지는 공격라인.

톱쓰리로 구성된 공격라인은 전반까지만 해도 뛰어난 연계력을 보여줬지만, 결정력이 아쉬운 팀이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이성호, 그리고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윤태양이 가세한 톱쓰리는 그 수준이 달랐다.

마치 어제 경기를 같이한 것처럼, 류준서, 이성호, 윤태양의 팀워크는 환상적이었다.

아인트라흐트의 수비 수준이 떨어져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빈번히 뚫리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윤태양은 독보적이었다.

후방에서 길게 뻗어온 롱패스를 백힐로 연결해 이성호의 득점을 도왔고, 난데없이 2선까지 내려와 공을 받아 단숨에 세 명을 제치고 득점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스코어를 4대0으로 만든 뒤에는 느슨하게 뛰면서 상황을 보는 듯하더니 마지막에는 25M 거리에서 나온 프리킥 찬스를 무회전 슈팅으로 득점을 넣으며 마무리 지었다.

아인트라흐트 선수들과 스탭들의 안색이 흐려졌다.

요주의 인물을 제외하면 해볼 만한 팀이라고 생각했던 대한민국에게 된통 당했으니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아인트라흐트 선수단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인트라흐트의 U-18은 흉작이군.”

“한국팀 수준도 의외로 높습니다. 이 정도면 레버쿠젠도 해볼 만하겠는데요?”

“레버쿠젠은 또 다르지. 일단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야. 선수들을 봐야지.”

“아인트라흐트는 건질 만한 선수들이 없는데요?”

그 말에 상사로 보이는 사내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저 경기장에 아인트라흐트만 있었나?”

“한국 선수들 말인가요? 음… 한국은 거의 한국 에이전시가 독점하다시피 해서…….”

어느 시점부터인지 모르지만, 한국 선수들은 해외 진출하는 선수들까지 포함해서 자국의 에이전시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한국의 에이전시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들 역시도 에이전시였다.

주로 젊고 어린 선수들과 계약해서 명문팀과 연결해 주는 역할로 유명한 에이전시였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지.”

“…그래도 상대가 너무 약했으니 좀 더 지켜보는 게 어떨까요?”

“그것도 그래. 다음 경기가 뮌헨이던가? 뮌헨과 경기를 지켜보도록 하지.”

“뮌헨은 쉽지 않죠.”

“바이언은… 그렇지. 일단, 괴물이 있으니까.”

바이에른 뮌헨의 괴물.

디오스나 윤태양이 이름을 알리기 전, 바이에른 뮌헨에는 일찍이 1군과 함께 훈련하면서 1군 데뷔를 목전으로 둔 이른바 괴물로 불리는 선수가 있었다.

“쉽지 않겠지만, 궁금하긴 하네요. 써니와 괴물의 대결이라니.”

다음 경기를 고대하며 에이전시는 슬그머니 아인트라흐트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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