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42화
[대한민국 U-17 대표팀, 한독교류전에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을 상대로 대승.]
[대한민국의 미래 윤태양(15, 뉴캐슬 UTD), 그는 누구인가?]
[뉴캐슬 관계자 “윤은 팀의 보물이다. 대표팀에서 소중한 경험을 얻길 바란다.”]
오랜만에 기사를 봤다.
내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기사들을 보고 혹시나 싶어서 구글에 내 이름을 검색해 봤다.
“오.”
생각보다 내 이름이 걸린 페이지가 많았다.
축구와 관련된 커뮤니티에서는 나름대로 뜨거운 감자였다.
인기글 같은 걸로 많이 올라온 걸 보면 말이다.
“이건 뭐야? 여긴 좀 의외인데.”
조금 의외인 사이트도 있었다.
-태양이 너무 잘생기지 않음?
-2222222
-3333333333
-이런 애가 아이돌 해야지 ㅠ 왜 축구 하는 거야 ㅠ
-완전 내 스타일ㅠ
-태양아 이대로만 커줄래? ㅠ
-근데 태양이 뛰는 팀 이름도 예쁘다 ㅎ 뉴캐슬이래
-우리 태양이는 뉴캐슬 왕자님이니까
-어느 나라 팀이야?
-몰?루
여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른바 여초 사이트에서 내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이름만 나오면 다행이지.
[(사진)태양이 달리는 모습]
[(사진)동료들과 걸어가는 모습]
[(사진)얼굴만 나온 사진]
내 사진이 엄청 많이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포토샵으로 보정까지 한 사진들.
“허허…….”
누가 보면 아이돌인 줄 알겠네.
내가 뭐라고 이런 사이트에서도 거론되는 거야.
거울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이렇게 보니 새삼 내 얼굴이 지난 삶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물론 기본 얼굴 베이스는 다를 게 없지만, 우울하고 험한 인생을 살아 늘 인상을 쓰고 다녀 인상 자체가 달랐고,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싸움질하고 얻어맞고 하면서 얻은 흉터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게다가 잘 먹고 자란 편이 아니고 고생을 많이 해서 피부도 탁하고 까만데다가 볼 살 없이 피골이 상접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은…
“고놈 참 잘생겼네.”
자라온 환경이 단순하게 피지컬만 다르게 만드는 게 아니라 외모에도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깨달았다.
뭐, 잘생겨서 나쁠 건 없지.
축구 선수가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들 하지만, 마냥 그렇지 않다.
축구판도 외모지상주의다.
물론, 실력이 좋으면 돈을 많이 벌지만, 실력도 좋은데 잘생기기까지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상품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이적료도 높아지고 그만큼 주급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광고 수익과 같은 기타 수입이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그걸 생각하면 이왕 이렇게 된 거 관리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이제 뮌헨인가.”
우리는 아인트라흐트와 경기 이후 레버쿠젠과 도르트문트와 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레버쿠젠과는 1대1 무승부, 도르트문트와는 4대3으로 패배했다.
나는 두 경기 모두 골을 넣고 활약했지만, 축구라는 건 결국 11명이 하는 것.
내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하더라도 모든 경기를 다 이길 수는 없었다.
문제는 수비 라인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걸출한 수비 유망주인 배상현이 있지만, 배상현 혼자 모든 적을 다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들은 집요할 정도로 우리의 약점을 파고들어 기어이 공략하니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아인트라흐트와 신승을 거두며 기세가 올랐던 대표팀 아이들은 두 번의 경기를 치르며 격차를 느끼고는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어쩔 수 없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지만, 유럽과 한국의 유스 시스템 격차는 아직도 많이 뒤처진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다들 기운 내, 국대가 프로팀 이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랬어.”
침울한 표정으로 버스에 올라탄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성호가 나서서 아이들을 달랬다.
의외였다.
언제나 혼자 무사 수행을 하는 것 마냥 지내던 놈이 동료들을 다독이다니.
“누가 그래?”
“태양이가.”
“그래?”
잠시 밝아졌던 아이들의 표정은 다시 우울해졌다.
“그럼 뮌헨한테는 개발리겠네.”
“뮌헨은 어렵지…….”
애들아 쫄지 마! 왜 쫄아!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바이에른 뮌헨이잖아.
2012년 이후 우승을 단 한 번 놓친 걸 제외하면 항상 우승을 해온 분데스리가의 공룡.
사람들은 다른 분데스리가 팀이 키운 선수를 데려와 스쿼드를 키우는 팀이라며 조리돌림하고는 하는데, 마냥 그렇지는 않다.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뮌헨에 입성해 뮌헨 스쿼드에 들지 못해 떨어져 나갈 뿐이다.
유스 출신 대표적인 선수들만 해도 토마스 뮐러나 필립 람 등, 하나같이 시대를 풍미한 월드클래스들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마 지금쯤이면 뮌헨의 괴물이라 불리던 놈이 유스에 있을 거다.
아니다, 성인팀으로 올라갔으려나?
“뮌헨에는… 괴물이 있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이성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붙어봤구나?”
“괴물이다. 그 괴물이랑은 붙기 싫을 정도였어.”
예나 지금이나 어지간하면 절대 쫄지 않는 이성호가 질린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그 괴물을 봤다면 저런 반응이 나올 법하지.
“크크크… 괴물이라고?”
그때 앞에 앉아있는 최지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괴물이라… 크크크… 괴물… 크…….”
“웃지 마, 새끼야. 하도 들어서 정들겠네.”
최지우 옆에 앉은 배상현이 뭐라 했지만, 최지우의 웃음은 더욱더 커져갔다.
“크크크크… 크크크… 우리에게도… 괴물이 있지. 크크…….”
“뭐? 나?”
“아니, 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지. 괴물은…….”
최지우가 벌떡 일어나 나를 돌아보더니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내 안에… 크크크…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한 마리 괴무르엉어억!”
배상현이 벌떡 일어나 최지우의 목을 잡고 끌어내린다.
어휴, 저 미친놈.
중2병이 더 심해졌네.
더 놀라운 건 쟤가 애니메이션 같은 걸 보는 게 아니라는 거다.
만약 만화를 봤으면… 어우, 상상도 하기 싫다.
“너 씨, 한 번 더 큭큭 거리면 진짜 마빡에 써버린다?”
“크크… 그래도 내 의지는 꺾이지 않습니다만?”
…어휴.
* * *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고 난 뒤에야 뮌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하루를 쉰 다음 날, 바이에른 뮌헨의 훈련장… 이 아닌 알리안츠 아레나에 입성했다.
세상에 아인트라흐트도 레버쿠젠도 도르트문트도 모두 유소년 훈련장에서 경기를 했는데.
과연, 분데스리가의 큰형님이라 이건가.
경기가 없는 날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경기장에서 뛰게 해주다니.
스케일이 다르다.
“여기서 뛴다니…….”
“뮌헨은 달라도 확실히 다르네.”
아이들이 입을 헤, 벌리며 경기장을 둘러본다.
“경기장 구경은 시합이 끝나고 해도 된다. 얼른 라커룸 들어가서 준비해.”
이정후 감독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정작 본인은 경기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만하지.
손꼽히는 빅클럽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장 아니던가.
나도 여기 처음 왔을 때 압도당했었다.
지금이야 관중이 없지만, 그때는 만석이었다.
그 수만 관중이 우리를 노려보는 것 같은 시선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그때 옆에 동료한테 지릴 것 같다고 했었지, 아마?
아, 바이에른 뮌헨 하고는 딱 한 번 싸워봤다.
그게 챔피언스 리그 16강 전이던가?
레알 베티스는 프리메라리가에서 챔스 단골팀이었지만, 16강 진출이 마냥 쉬운 팀은 아니었다.
치열한 경합 끝에 16강 진출했는데, 하필 상대가 뮌헨이라니.
거기서 성호가 이야기하던 괴물을 만났다.
괴물.
이따가 만나게 되겠지.
뮌헨의 괴물을 말이다.
“자자, 이제 한독 교류전의 마지막 경기다. 마지막이니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자. 알았지?”
이정후의 말에 이성호가 슬그머니 나를 툭툭 건드린다.
“왜?”
“감독님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
“어? 뭐가?”
“유종애미를 왜 거두나? 그리고 우리한테 애미라니… 말이 좀 심한 거 아닌가?”
유종애미…….
“성호야, 유종애미가 아니라, 유종의 미.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자 뭐 이런 뜻이야.”
“아……! 그런 거였나?”
진짜 충격과 공포다.
“거기 뭐하나! 이 자식들 내가 기껏 무게 잡고 이야기하는데 따로 놀고 있어?”
“죄송함다!”
“죄송합니다!”
어우.
…살다살다 경기가 아니라 성호의 말 때문에 멘탈이 흔들릴 줄은 몰랐다.
“너희들도 아까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그래, 뮌헨에서 가장 위험한 상대는 ‘괴물’이라 불리는 그 친구다. 이번 경기를 마지막으로 성인팀으로 올라간다더군.”
세상에 제발 성인팀으로 올라갔기를 바랐는데 하필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괴물이랑 붙어야 한다니.
차라리 디오스랑 붙는 게 낫지.
분명 디오스는 세계 최고가 될, 미래의 축구의 신은 맞다.
하지만 지난 삶에서나, 지금 삶에서나 꼭 피하고 싶은 상대를 고르라면 디오스가 아니라 뮌헨의 괴물이다.
특히 이번 생에서는 더더욱 피하고 싶다.
왜냐고?
디오스는 내가 라인을 내리지 않는 이상 부딪칠 이유가 없지만, 괴물은 내가 반드시 넘어야 할 상대다.
그래, 그는 수비수다.
수비수가 괴물이란 소리까지 듣는 이유가 뭐냐고?
진짜 괴물이니까.
디오스도 인정했었다. 아니, 앞으로 인정할 거다.
그는 괴물이라고, 치를 떨며 인터뷰하겠지.
그런 수비수다.
“자, 나가자.”
유니폼을 챙겨입고 필드로 나선다.
그나저나 경기장에서 뛰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유스는 이런 스타디움에서 뛸 일이 없으니까 이번 생에는 처음인가?
“으… 나 왠지 뭔가 떨려.”
옆에서 공세환이 말한다.
사람 하나 없는 경기장이었지만, 그 경기장 자체가 압박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떨 거 없다. 즐겨라, 세환.”
이성호가 공세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크크… 나를 위한… 무대군! 크크큭……!!”
최지우는 그냥 미쳐 있었고, 류준서나 김효준 같은 아이들은 어느 정도 위축된 부분도 있지만, 들떠 있었다.
그래도 분위기가 나쁘진 않다.
이정후 감독이 나름대로 괜찮은 말로 아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드로 향하는 계단에서 바이에른 뮌헨 선수단을 보는 순간.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선수를 본 순간 아이들 모두 얼굴을 굳혔다.
눈앞에 한 선수.
뮌헨의 괴물.
바이언의 수호자.
하얀 호랑이.
세바스티안 바이스티거.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얀 호랑이라는 또 다른 별명과 어울리는 새하얀 피부에 백금발, 거기에 얼음같이 차가워 보이는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단순히 이것만으로는 우리 동료들을 얼어붙게 만들진 않았을 거다.
화룡점점은 그의 피지컬이다.
206cm에 달하는 거대한 키, 그 키와 어울리는 압도적인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괴물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뭐… 저런…….”
류준서가 고개를 바짝 들어 어이없다는 듯 바이스티거를 바라본다.
내 안에 괴물이 있다던 최지우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헛소리를 하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얼어붙어 있었다.
나 역시 지난 삶에서 한 번 붙어봤지만, 나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는 기분이었다.
저 새끼… 어떻게 뚫고 골을 넣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