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45화 (45/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45화

-와이프 : 아들 경기 잘했어? ^^

-아들 : 네, 이겼어요 저 해트트릭 했어요

-마지막 상대 뮌헨 아니었어? 와 뮌헨 상대로 해트트릭?

-아들 : 별 거 없던데요

-와이프 : 대단하네 우리 아덜 ^^^^^ 엄마가 집에서 맛있는 거 해놓고 있을게 조심히 오렴

-아들 : 네 엄마

-아빠가 집에 없어서 아쉽네 아빠 영국 돌아갈 때 뭐 사갈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들 : 동생들 한국 과자 먹고 싶다고 했어요 잔뜩 사와주세요

-와이프 : 크으… 동생 생각은 장남이 다 하네 여윽시 우리 아들 b

윤지성은 흐뭇한 표정으로 가족 단톡방을 바라봤다.

지금 그는 한국에 출장을 와서 일과 후에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살았을 때 자주 가던 곱창집에서 와 있었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소주잔을 들이밀긴커녕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그를 보고 친구 중 하나가 물었다.

“야, 뭘 그리 봐 인마.”

“가족들이랑 깨톡하고 있었어.”

“뭐? 지금 거기 몇 신데? 새벽 아니야?”

“뭔 소리야, 거기 지금 이제 점심시간이여. 이 새끼는 나이가 몇인데 시차도 잘 몰라?”

“유럽까지 나가봤어야 알지, 이 자식아. 시끄럽고 한 잔 받어.”

“이야… 곱창에 소주, 진짜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영국에는 곱창집 없나? 요즘 한식당 많다더만?”

친구의 물음에 지성은 고개를 저었다.

“나 사는 곳엔 한식당 없어. 런던이나 맨체스터같이 큰 동네는 가야 있지. 그리고 거기도 곱창은 안 팔걸?”

“와… 그럼 집밥 외엔 한식 먹을 일이 거의 없다는 거야? 어떻게 사냐. 영국 음식 드럽게 맛없다며.”

“영국 본토 음식은 맛없지. 영국인이 하는 외국 음식점은 괜찮아.”

그리 말하면서 지성은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크으… 쥑이네. 요즘 소주값이 얼마냐? 편의점 같은 곳에서 살 때 말이야.”

“천 얼마 하겠지.”

“더럽게 싸네. 맘 같아선 한 짝 사서 가져가고 싶네.”

“야, 여기 네가 사다 준 조니워커 이거, 어? 막 이런 술이 그렇게 싼데 소주가 생각이 나냐?”

“뭘 모르는 소리 하네. 소주만 먹던 사람이 어디 양주만 먹어지냐? 희한하게 소주가 생각나더라니깐?”

이딴 알콜 냄새 가득한 게 뭐라고 그리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소주를 안 찾고 자신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브라운에일을 즐기는 아버지와 장인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배부른 소리 하시네요, 아주. 우리나라는 왜 이리 양주가 비싼지 몰라. 그나저나 네 아들 잘했대? 경기? 뮌헨이랑 붙는다며?”

그 말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얼핏 뉴스 기사 보니까 진 거 같던데?”

“그건 20세 청소년 대표팀이고. 우리 아들 대표팀은 이겼어. 우리 아들이 해트트릭 해서 이겼다네.”

그 말에 모두가 오,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짜 부럽다. 나도 내 자식이 나랑 안 닮아서 축구 잘했으면 했는데, 그걸 네가 이뤘네.”

“그러니까 축구도 못하는 새끼 밑에서 축구 천재가 나오지 어떻게?”

“뭐? 야, 이 자식들 내가 축구를 왜 못해? 나 뛰던 조기축구팀 에이스가 나였는데?”

지성이 강하게 부정하자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부럽다, 부러워. 뉴캐슬에서도 애지중지한다며? 난 네 아들인 걸 떠나서, 잘 커줘서 국대에서도 잘해줬음 좋겠다. 국뽕 거하게 취하게.”

“나도 주모 찾으면서 저 애가 내 친구 아들이라고 자랑하려고.”

“난 지금도 자랑하는데?”

그 말에 지성이 물었다.

“한국에서 우리 아들이 알려졌어?”

“뉴스에 몇 번이나 나왔잖아. 축구 유튜브 채널이나 해축갤 같은 곳에서도 이야기 많이 나오고.”

윤지성은 그래? 하고는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뭐야, 네 자식 이름 하나 검색 안 해봤냐?”

“아니… 기껏해야 유스니까 한국에서는 그렇게 안 유명할 줄 알았지.”

“그럼 유럽에선 유명해?”

“최소 뉴캐슬에서는 벌써부터 스타야. 지나가면 다 알아봐.”

“이야……!”

놀라워하는 친구를 바라보며 윤지성은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잘 크면 언젠가는 프리미어 리그에도 데뷔하고 태극마크도 달겠지.

그때쯤 부모로서 인터뷰를 하는 자신을 떠올려 본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 아들 절대 월드 클래스 아니라고 겸손해야 할까?

벌써부터 고민되는 지성이었다.

* * *

뮌헨과 경기가 끝나고 우리 대표팀은 곧 바로 해산했다.

우리 17세 대표팀 분위기는 처음보다 더 좋았다.

그럴 만하지.

2승 1무 1패.

분데스리가 프로 유스팀과 붙어서 이 정도 성적을 냈는데 분위기가 안 좋을 수가 있나.

반대로 우리 윗세대 팀인 21세 대표팀 분위기는 개판이었다.

1무 3패.

정말 열심히 투지를 불태우며 싸웠지만, 우리와 비교되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선수들도 울상이지만, 형(?)들을 지켜보는 이정후 총괄 감독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올해 올림픽에서 23세 대표팀도 8강에서 그쳐서 아쉬운 판국에, 이 세대를 데리고 내년 월드컵에 2년 뒤 아시안 게임까지 해야 되거든.

꾸준히 유럽파를 배출하며 발전하는 일본, 이제는 유럽에서도 긴장해야 할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성장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의 팀들, 유럽의 피지컬을 가진 호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까다로운 중국을 상대해야 하니까.

그걸 생각하면 암담할 만하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유소년을 키워 월드컵에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지금의 프로젝트도 무산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걸 선수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정후 감독은 안 좋은 표정을 숨기고 21세 선수들을 독려했다.

참 고민이 많으시겠어.

뭐, 나랑은 A매치 대표팀이 되지 않는 이상 엮일 일이 없으니까 상관없지만.

아무튼, 선수들을 다독이며 윗세대 대표팀을 먼저 해산한 감독은 아까와 달리 밝은 표정으로 우리 앞에 섰다.

“자, 다들 고생 많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그래. 교류전 동안 정말 잘해줬다. 이제 내년이면 월드컵인 거 다들 알지? 혹시나 모를 부상 조심하고, 갑자기 키가 큰다거나 체중이 불어나는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구단에서 신경 안 써주면 내가 어떻게든 케어해 줄 테니까. 알았지?”

감독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세대는 가장 변화가 많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실력 상승이나 이런 거면 좋겠지만, 난데없이 키가 갑자기 무럭무럭 자라거나 체중이 불거나 골격이 달라지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나거나 그로 인해 안 좋은 습관이 생기거나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정말 짧은 시간에 급격히 이뤄진다.

이때 제대로 케어해 주지 못하면 말 그대로 선수가 망가진다.

팀에서 해줄 걸 굳이 감독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쉬운 건 우리나라에서 저런 부분을 과학적으로 세세하게 챙겨줄 수 있는 여건을 가진 팀이 몇 없어서 저러는 거다.

유럽은 이유가 다른데, 선수를 케어하고 투자해서 자기들 기준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없으면 방치했다가 방출하는 일이 있었다.

목적이 있는 감독은 그런 상황에서 선수들을 최대한 케어해 주겠다는 거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기가 챙겨야 할 선수들을 책임지겠다는 거지.

생각보다 멋진 감독이다.

우리 디괄도 저래야 할 텐데.

우리 팀 감독은 자기 전술에만 관심 있지 선수 개개인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다.

“니미, FM에서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응? 뭐라고, 태양아?”

무슨 껌딱지처럼 나랑 붙어 지내는 공세환이 내 혼잣말을 들은 모양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녀석을 바라봤다.

과연, 이 녀석이 대표팀이랑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려나?

유스팀은 기껏 해봤자 이코노미 석으로 갈 건데.

그걸 부잣집 도련님이 얌전히 타고 갈 수 있으려나?

“어? 아냐. 넌 대표팀이랑 같이 돌아가냐?”

공세환이 내 물음에 답했다.

“응? 아니, 김 비서 아저씨가 오기로 했어. 김 비서 아저씨랑 퍼스트 클래스 타고 갈 거야. 엄마가 이코노미 많이 타면 몸 상한대.”

그러면 그렇지.

요즘 한국 상황 보니까 나날이 부동산 시세가 오르고 있던데 얼마나 돈을 벌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돈으로 현질해서 얼마나 대단한 놈이 되련지도 궁금하고.

“가서 열심히 해라.”

“어, 나도 목표가 생겼거든. 열심히 해야지.”

“뭔데?”

“유럽 진출.”

“오, 어디?”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가고 싶어.”

“굳이? 나 때문에?”

그 말에 공세환이 씨익 웃었다.

“너랑 뛰면 재밌잖아.”

난 아직 재미없다.

얼른 어른이라도 돼야 재밌지.

“뭐, 그래. 열심히 해. 같이 뛰면 좋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나야 모르지.”

그래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풀백은 예나 지금이나 귀하니까.

“그래, 내가 노력해야지. 이제 난 간다! 김 비서 아저씨 올 시간 된 거 같아!”

“어어, 잘 가라.”

세환이를 보내고 나니 대표팀도 감독의 인솔 하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뉴캐슬 구단에서 데리러 오기로 했기 때문에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데…….

“너는 왜 안 가고 있냐? 아니, 그전에 굳이 공항까지 왜 온 거야?”

옆에 선 이성호를 바라봤다.

아니, 기차 타고 간다던 놈이 왜 여기 있는 거여.

내 물음에 이성호가 나를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태양.”

“왜?”

“사실대로 이야기해라.”

“…뭘?”

뭔데 이렇게 진지하게 쳐다보는 거야?

“영국은…. 진짜 섬인가?”

이 자식은 스마트폰은 폼인가?

“너 스마트폰 안 쓰냐?”

“쓴다.”

“그럼 검색을 해, 이 자식아.”

“스마트폰을 잘 쓸 줄 모른다.”

어휴, 진짜.

어디 쌍팔년도에서 타입슬립이나 환생이라도 한 거냐?

아니, 그럴 수도 있잖아? 막말로 나도 다시 회귀했는데, 환생 같은 거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너… 혹시 환생… 아니다. 가라. 가서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

나는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하는 이성호를 억지로 밀어내고 오늘 함께 비행기에 타기로 한 사람을 기다렸다.

“오랜만이군, 태양.”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아주 잘 지냈지.”

기다리던 나를 반기는 사람은 프리델 마이어, 나를 스카웃했던 그 사람이었다.

“바이언과 대결은 나도 멀찍이서 지켜봤지. 아주 대단하던데?”

“아, 봤어요?”

“그럼, 바이언의 괴물이 엉덩방아를 찧는 것도 아주 잘 봤다네.”

생각해 보니 이 아저씨 원래 바이에른 뮌헨 소속 스카우터였지.

“개인적으로는 자네의 활약이 좋으면서도 속이 쓰렸다네.”

“바이언의 팬이셨군요?”

“우리 집안 모두가 뮌헨의 팬이지. 그거 아는가? 뉴캐슬로 팀을 옮길 때 온 가족에게 욕을 먹었다네. 하하하.”

본인과 가족에게는 바이에른 뮌헨이 꿈의 직장이었을 수도 있겠네.

“그런데 왜 뉴캐슬로 이적하셨어요?”

“지금의 바이언보다 툰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아이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

음, 그건 인정한다.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팀의 근본을 만들기 위해서 전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거든.

“물론, 돈도 무시할 순 없지.”

그는 눈을 찡긋하니 말하고는 나를 데리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그래서 괜찮은 선수들 좀 발굴했어요?”

“샬렛과 소비올라, 제이크 린데만이 있지 않나. 그중 최고의 작품은 자네고.”

아, 그 친구들을 모두 이 아저씨가 데려온 거였어?

확실히 실력이 대단한 아저씨이긴 하다.

“그나저나 뉴캐슬 유스팀 모두가 자네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네.”

“네? 왜요?”

“지금 심각하거든. 팀을 구원할 건 자네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아니, 디괄 선생.

소비올라, 샬렛, 린데만 같은 애들 데리고 도대체 뭔 짓을 하고 계신 거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