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49화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2군 감독은 윤태양이 막판에 첼시를 상대로 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키는 크지만, 몸이 너무 얇아. 몸싸움에 밀릴 거야.”
스포츠 과학팀이 그럴 리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스포츠 과학을 신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신봉했다.
그가 보기에 태양은 막말로 키만 큰 계집아이나 다를 바 없다.
저런 몸으로 무슨 축구를 한단 말인가?
넘치는 피지컬로 헤딩을 따내고 사람들을 몇 명이나 달고서 드리블을 하는 게 축구 아닌가?
그걸 증명하듯 2군 감독은 상남자 그 자체, 몸 자체가 근육 덩어리였다.
어쨌든 구단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는 내키지 않지만, 첼시 다음 경기에도 후반에 태양을 출전시켰다.
이번에는 하프타임에 바로 출전시킨 가운데 상대는 토니 퓰리스식 축구를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미들즈브러였다.
피지컬을 바탕으로 단단히 걸어잠근 채 롱볼을 통한 역습을 하는 굉장히 구시대적인 축구였는데, 이게 라인을 올리고 후방 빌드업이나 게겐프레싱을 베이스로 하는 팀에게 굉장히 잘 먹히고 있었다.
감독은 오늘 경기를 통해 태양이 아직 덜 컸다는 걸 어필해 아래로 내려 보낸 뒤, 몸을 더 키워 올라와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뭐지?”
그의 생각과는 다른 상황이 연출됐다.
태양은 마초맨 가득한 필드에서 절대 밀리지 않았다.
상대를 힘으로 밀어내진 못했지만, 공을 가지고 절대 넘어지지 않았고, 뺏기지 않았다.
아무리 밀어 넘어뜨리려 해도 넘어지지 않는 오뚜기 인형 같았다.
넘어질 듯 넘어질 것 같은데 절대 넘어지지 않고 상대의 거칠고 파워풀한 플레이에도 절대 밀리지 않은 채 오히려 호기롭게 공을 끌고 계속해서 전방으로 침투했다.
“허어……!”
오히려 간단한 개인기로 무식하게 덩치만 키운 상대편을 무릎 꿇리고 지나쳐 골대 구석을 노린 날카로운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냈다.
“으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저 얇은 몸으로 저게 가능하다니?
“스포츠 과학팀에서 내놓은 리포트가 맞았네요. 코어가 강하고 유연하며 보기와 달리 근육량이 많아 피지컬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거라더니.”
코치가 옆에서 하는 말에 감독은 심기불편한 듯, 크흠, 하고 소리를 내고 팔짱을 끼고 말없이 경기를 지켜봤다.
태양은 오늘 경기에서 한 골을 더 넣고 마테오 실바에게 얼리 크로스를 시도해 도움 하나를 기록했다.
두 경기 동안 3골 1도움이라니.
이거 진짜 대단한…….
“아무리 그래도 애라고!”
감독은 태양을 인정하려던 걸 잠시 멈췄다.
그래, 이제 겨우 두 경기다.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의 문턱이라 할 수 있는 2군 무대는 그리 녹록치 않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멘탈이 약할 거야. 아이는 아이잖아?”
이제 겨우 16살.
유스팀 감독을 해봐서 누구보다 잘 안다.
어린 선수들은 작고 사소한 것에도 쉽게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라는 걸 말이다.
골을 먹혀도 흥분하고 상대가 심판 몰래 도발을 해도 흥분하고 조금만 거칠게 대하면 겁을 먹는다.
유스는 그게 문제다.
아무리 잘해도 작고 사소한 것에 크게 흔들리고 꺾여서 경기를 망친다.
대역전극이 벌어지거나 압도적인 골 차이로 경기가 마무리되는 게 바로 그 이유다.
그 어린 천재도 다를 게 없을 거다.
“그래, 다음 경기에 두고보자.”
다음 경기는 리즈 유나이티드다.
더럽고 거친 플레이로 더티 리즈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는 바로 그 팀이었다.
그 더러운 팀을 상대로 어떻게 하는지 한 번 보자고.
태양은 이번 리즈와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다.
과연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경기가 시작하기 무섭게 거세게 뉴캐슬을 들이받았다.
강력한 압박이 아니라 강력한 반칙으로 말이다.
시작하기 무섭게 시작된 세트피스 상황에서 센터백을 어깨 차지로 들이받고 은근슬쩍 팔을 휘둘러 눈을 찌르는 만행을 저지른다.
다행히 골을 먹히진 않았지만, 저 거센 플레이에 간절하기 그지없는 어른들마저도 움츠러든다.
과연 태양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역습 상황에서 후방에서 찔러준 공을 잡고 측면에서 중앙으로 호기롭게 달려간다.
저러면 안 된다.
리즈 유나이티드 2군은 1군보다 더 더럽게 플레이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간절함을 어필하려 드는 거다.
공을 가진 사람이 16살인 건 상관하지 않는다. 아마 상대가 여자여도 상관하지 않을 거다.
리즈 유나이티드의 풀백이 거침없이 깊은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한다.
가위 모양으로 다리를 높이 든 위협적인 태클.
“음……!”
저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저 어린 천재가 아직 덜 여물어 내려가길 바라는 거지 다치는 걸 바라는 건 절대 아니다.
놀란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순간.
태양은 그 속도에서 급제동하고 공을 뒤로 끌어 드래그백하며 풀백을 피해 다시 달린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상대편 센터백이 다시 한번 태클을 해온다.
이건 피하기 어렵다.
상대방의 태클이 태양의 다리를 걸었고 태양은 그대로 붕 떠버린다.
“응?”
감독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경기에서 태양은 저런 태클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공중에 떠버린 태양이 상대방 센터백 위에 떨어져 버렸다.
“악!”
단말마 비명이 터져 나온다.
태양이 아니라 센터백에게서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상황을 보니 태양은 충격을 받은 듯 고통스러운 표정이지만 멀쩡하게 일어나고 있었지만, 상대 센터백은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태양이 떨어지면서 공교롭게도 태양의 팔꿈치가 상대 센터백의 코를 짓뭉갠 모양이다.
그 가운데 주심은 단호하게 상대 센터백에게 옐로카드를 내밀었다.
다친 건 다친 거고 그걸로 발을 노린 태클을 봐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위치가 좋군.”
감독은 마테오 실바를 바라봤다.
전성기 시절에도 프리킥에 일가견이 있는 이 선수는 이제는 프리킥의 스페셜리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가 되었다.
그라면 저 정도 거리에서 직접 득점으로 연결하기 충분한 거리였다.
“응?”
의외에 상황이 나왔다.
감독의 지시와 별개로 절대 프리킥을 양보하지 않던 그가 대뜸 태양에게 공을 건넸기 때문이다.
감독은 당장 마테오 실바에게 네가 직접 차라고 지시하고 싶었지만, 2군 감독이 천하의 미스터 툰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영향력은 없었다.
아마 이야기해도 못 들은 척할 거다.
마테오 실바는 무슨 생각으로 저 어린 선수에게 이런 기회를 준 걸까?
멘탈이 약한 어린 선수들은 저런 상황에서 뭔가 해내지 못하면 멘탈에 금이 가는데?
아니, 애초에 부담 때문에 프리킥도 제대로 차지 못할 수도 있었다.
감독의 생각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태양은 저 얇은 몸에서 나오기 힘들 것 같은 대포알 같은 슈팅으로 골키퍼도 대처하지 못할 골을 만들어냈다.
태양의 활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상대가 거칠게 플레이하면 본인은 영악하게 그걸 이용했고 들리진 않지만, 입모양만 봐도 리즈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을 도발하며 성질을 자극해 흥분을 유발했으며, 그걸 이용해 리즈 유나이티드를 가지고 놀았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심판이 보이지 않게 반칙을 하며 긁는 것도 일품이었다.
“…어린 선수가 맞아?”
노련한 선수, 그래, 마치 마테오 실바가 두 명이 뛰는 것 같았다.
이맘때쯤 태양은 주급 3만 파운드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콜라쉽 계약을 채결했다.
주급 3만 파운드, 한화 약 4천7백만 원.
2034년 기준 프리미어 리그 평균 연봉이 10만 파운드(한화 약 1억 6천만 원)인 걸 생각하면 굉장히 작은 돈이지만, 유스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굉장히 파격적인 대우였다.
아마 역대 최고 대우에 근접하거나 넘는 수준일 거다.
“이 정도는… 받을 만하지.”
감독은 이 소식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은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아이였다.
돈 많은 구단에서 3만 파운드쯤이야.
3만 파운드 아끼려고 계약 안 했다가 다른 팀이 채가면 나중에는 100만 파운드를 준다고 해도 안 올 선수를 놓치게 되는 거다.
그래, 이쯤에서 감독은 태양을 인정했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태양은 재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진 아이였으니까.
그 가운데 마테오 실바가 다시 1군에 복귀하고 태양은 계속해서 2군 경기에 출전했다.
매 경기 골을 넣거나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아무런 공격 포인트를 쌓지 못하는 날에도 공격의 기점이 되는 키패스를 하거나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2군은 거쳐가는 곳이라는 것을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어느새 16살 어린 소년은 팀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 압도적인 재능에 질투하던 선수들도 결국 그를 인정하고 따랐고, 그의 플레이를 중심으로 경기가 풀려 나가자 어느새 이 선수를 마치 왕 모시듯이 하고 있었다.
감독이 지켜보기에 태양이 2군의 왕처럼 군림하기 시작한 건 단순히 경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태양은 늘 퉁명스럽고 사춘기 소녀처럼 갈피를 못 잡게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따금 2군의 어른들 보다 더 어른스러울 때가 있었다.
좌절하는 선수를 다독이거나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하고, 가끔 따끔한 일침을 하며 정신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상당히 터프하기도 해서 건드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만, 자기를 건드리면 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불과 3주 전.
자신을 아니꼽게 여겨 늘 시비를 걸던 선수가 선을 넘는 발언을 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선수에게 달려들었다.
벌금을 물더라도 이 선수와 한판 붙어서 기선을 잡을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선을 넘은 발언에 화가 난 건지 모르겠다만, 소년은 어디서 싸움을 배워오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보다 나이 많은 선수를 패버리고 건드리면 안 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이 모든 것은 소년을 왕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감독은 이제 확실해졌다.
16살이지만, 2군에서만 놀기엔 아까운 선수다.
아니, 2군이 담을 수 없는 재능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보드진에 알렸다.
-그는 16살 소년이라 보기 어렵다.
-1군 레귤러는 어려울지 몰라도, 1군의 옵션 중 하나로 고려할 만 하다.
-확신이 없다면 시즌 말미가 된 지금, 소년을 1군에 기용해 테스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것.
그 말을 적극 수용한 듯, 아니, 애초에 고려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보드진은 태양을 2군 훈련이 아닌 1군 훈련에 합류할 것을 지시했다.
경기는 2군에서 뛰겠지만, 1군에서 훈련하는 걸 지켜보고 1군 경기에 출전시키는 것까지 생각해 보겠다는 행동이었다.
그 지시를 받은 즉시 감독은 출근해 라커룸으로 들어오는 태양을 호출했다.
“태양.”
“네, 부르셨어요?”
“1군으로 가라. 앞으로 훈련은 1군에서 하게 될 거다.”
그 말에 언제나 시큰둥하기만 하던 태양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기뻐하는데 티를 내지 않으려는 듯한 그 모습은 영락없는 소년 그 자체였다.
아무리 비범한 아이라도 1군 합류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나한테 감사할 일은 아니지. 가서도 최선을 다하거라.”
“네!”
감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자기 인생에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천재를 좀 더 곁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