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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53화 (53/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53화

-오늘 태양이 선발이냐?

-해트트릭 기세 받아서 선발 가나요?

-라인업 떴다!

-아… 선발 아니네

-그래, 17살 애가 바로 선발 나가면 좀 그렇긴 해

-그래도 벤치니까 두고봐야지

-뭔가 해줄 애들이 없어

35라운드 사우스햄튼과 경기.

손홍민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프리미어 리거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태양의 선발 여부는 모두의 관심을 끌어올 만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태양의 선발은 불발되고 말았다.

어거스트 롬멜은 태양을 선발로 세우는 대신에 오마르를 폴스나인 역할로 중앙에 두고, 그의 자리에 태양 말고 백업 윙어인 이젤 에드워드를 라인업에 올렸다.

-이젤 방출 예정 아니냐?

-이젤은 좀 에반데;;;

-이젤 방출 못함ㅋㅋㅋ 잉글랜드 산이라서 ㅋㅋ 선수등록용임ㅋ

-선수등록ㅋㅋㅋㅋ 이젤이 ㅈ같아 해야 하냐 뉴캐슬이 ㅈ 같아 해야 하냐? ㅋㅋ

-안 뛰는데도 주급 처받는 이젤이 왜 ㅈ같아 개꿀이지

27세 이젤 에드워드는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자국 선수 등록 규정을 위해 방출되지 않는다며 조롱을 받는 선수였다.

사람들의 조롱과 다르게 이젤 에드워드는 훌륭한 백업이었다.

팀에 충직하고 맡은바 임무에 충직하다.

필드 위에서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의 감초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아… 축구 지능만 있었으면 최고의 선수인데

-활동량 갑… 하지만…

-영양가가 없지 하는 게

아쉬운 건 그게 다라는 거다.

기술이 부족해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그걸 기반으로 하는 활동량은 분명 선수로서 충분히 메리트가 있었지만, 에드워드에게는 축구 지능이 없었다.

그냥 공만 보면 개처럼 쫓는 게 전부인 선수였다.

-그래도 좋은 거 하나 있음

-???

-개같이 뛰어서 상대편 지치게 만듦 ㅋㅋㅋ

-혹시 롬멜 장군 이 양반 그거 노린 거 아니냐?

-ㄹㅇ 지쳤을 때 태양이 딱 하고 내보내면 사우스햄튼 초토화시킬듯

-ㅋㅋㅋ 아직 애다 ㅋ 기대하지 마라 ㅋ 태양이 말고 다른 선수 내보낼 확률이 더 높음 ㅋ

-누굴 내보내?

-몰?루

이젤 에드워드의 대한 평가는 한국에서만 이런 게 아니다.

영국에서도, 심지어 뉴캐슬에서도 이젤의 평가는 그저 뛰기만 열심히 뛰고 공만 쫓는 선수, 그래서 사냥견인 그레이하운드와 이름을 섞어 이젤 하운드라 불렀다.

그래도 이젤 하우, 아니, 에드워드는 꿈이 있었다.

언젠가 팀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겠다는 꿈.

사냥개, 아니, 충견이 따로 없었다.

“그럼 어떻게. 어쩔 수 없지. 증조부도,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나도 모두 다 툰인 걸.”

라커룸에서 자기 자리에 앉은 이젤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젤의 옆자리인 태양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 팀에서 뛰고 있지만, 가끔 너희들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

“그래? 너라면 그럴 수도 있지. 원래부터 툰이 아니니까.”

“아무리 그래도 네 개인 영광은 뒷전이고 고작 팀에서 뭔가 하나를 해주는 게 꿈이라니. 그건 너무 소박하지 않아?”

어린 소년의 말에 이젤은 그저 웃었다.

“난 주제 파악이 확실하거든.”

“그런 자조적인 말을 웃으면서 하지 마.”

“현실이야. 윤, 나는 너 같은 재능이 없다고.”

“거참.”

태양은 고개를 젓고 자기 할 일에 몰입했다.

이젤은 그런 태양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툰으로서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럴 때가 아니지.’

오늘은 툰으로서 툰을 대표해서 뛰는 날이다.

* * *

[프리미어 리그 35라운드, 사우스햄튼과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펼쳐질 이곳은 세인트 메리스 스타디움입니다.]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는 게 보입니다. 네, 윤태양 선수도 보이네요.]

[올해 만 16세, 프리미어 리그 최연소 데뷔에 최연소 해트트릭을 기록했죠?]

생각지도 못한 한국인 출신의 프리미어 리거 등장에 프리미어 리그 중계권을 가진 N스포츠에서는 모처럼 뉴캐슬 중계에 메인 해설진을 투입했다.

지금 이 순간 새벽까지 기다린 축구팬들 모두가 이 경기를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기장에는 한국의 축구 기자들도 대거 몰려 있었고, 한국 교민들도 많이 와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한국인 모두가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손홍민 선수 은퇴 이후에 모처럼 나온 프리미어 리거였으니까.

사실, 손홍민 선수 이후에도 프리미어 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선수들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주전으로 뛰거나 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아무튼, 그 가운데 최연소 데뷔도 모자라 해트트릭을 했으니 일약 스타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외모 보소

-여초에는 벌써 팬클럽도 생겼다던데

-아이돌 뺨치네

-저 얼굴로 월드컵 나가면 팔로워 최소 수백만 거저 생길 듯

-프리미어 리그에서 유명해져도 어지간한 우리나라 연예인보다 팔로워 많을 듯?

거기에 외모도 어지간한 아이돌 못지않아, 여자 팬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게 윤태양이 모두의 관심을 끄는 가운데 윤태양 없는 경기가 시작됐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선축으로 시작된 경기는 뉴캐슬이 경기를 주도하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뉴캐슬이 점유율을 가져가고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만, 과연 사우스햄튼! 절대 뚫리지 않습니다.]

[수비와 관련된 기록만 보면 사우스햄튼은 프리미어 리그의 빅7이라 불리는 팀들과 비교해도 상위권에 있는 수준의 팀입니다. 단단히 걸어잠그면 뚫는 게 쉽지 않아요.]

사우스햄튼은 오랜 시간 공들인 수비라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이자 맨체스터 시티 주전 센터백 출신인 34살의 펫 맥과이어를 중심으로 휴고 피어스와 마틴 베이커가 백쓰리를 구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잉글랜드 국가대표 레프트 백인 크리스 페리와 스코틀랜드 국대 라이트 백인 티어니 스몰이 측면을 책임졌고, 쓰리백의 앞에는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아레드 백과 스테판 불먼이 있었다.

이들 일곱이 극단적으로 라인을 내리고 지키면 뚫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우, 공격력 약해진 뉴캐슬 상대로도 잠그고 하네

-ㅈ노잼 축구 ㄹㅇ

-진짜 제일 재미없게 축구하는 듯

-사우스햄튼 팬들은 뭔 재미로 축구보냐

다만, 이들의 극단적인 수비축구는 막말로 더럽게 재미없어서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수비만 하고 득점을 못 해 무승부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무 농장이라는 별명까지 있었다.

그래서 간절한 팀에게는 이들이 무섭다.

그들은 팀을 가리지 않고 무를 캐내기 때문이다.

지지난 시즌에는 리버풀이 모처럼 우승을 목전에 뒀었는데 이들에게 무승부를 당해 맨시티에게 우승을 내준 적도 있었다.

뉴캐슬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뉴캐슬이 아무리 두들겨도 사우스햄튼은 절대 골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아스날 미쳤는데?

-???왜

-맨시티 이기고 있음

-아스날이? 에이 그래 봤자 후반가면 두들겨 맞고 짐 ㄹㅇ 기대하지 마라

-맨시티한테 아스날은 든든한 국밥 그 수준이지

-3대0인데?

-와 그건 좀 역전하기 힘들 듯?

-아스날이 미쳤네;;;

같은 시간, 아스날이 모처럼 몇 년 만에 맨시티를 이기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간신히 1점으로 추격했던 승점이 다시 3점으로 벌어질 판이었다.

[아, 이럴 수가.]

설상가상의 상황이 나왔다.

뉴캐슬이 라인을 바짝 올려 공격을 하다 오히려 역습을 당한 거다.

지금 이 순간 사우스햄튼은 무 농장이 아니었다.

타깃의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였다. 그것도 매우 유능한.

[아! 골입니다! 역습 한 번에 무너지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사우스햄튼은 이게 있어요! 중요한 기로에 놓인 팀의 숨통을 끊는 한 방 말입니다!]

[네, 치명적인 한 방이었습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아스날과 승점 차이는 3점으로 다시 벌어집니다.]

비록 사우스햄튼이 선제골을 넣긴 했지만, 뉴캐슬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전반전일 뿐이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고, 주도권은 여전히 뉴캐슬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캐슬이 사우스햄튼을 뚫는 건 쉽지 않았다.

사우스햄튼은 한 골에 만족하고 이 스코어로 경기를 끝낼 생각인지 전방에 세 명의 선수만 둔 채 나머지 일곱 선수가 라인을 바짝 내려 더욱더 단단하게 걸어잠갔기 때문이다.

[아, 뉴캐슬 이렇다 할 공격찬스조차 만들어보지 못하고 전반전 마무리됩니다.]

[단단한 사우스햄튼을 상대로 롬멜 감독이 후반을 어떻게 준비할지 궁금해지네요. 윤태양 선수 투입도 기대해 볼 만할까요?]

[네, 아무래도 윤태양 선수가 지난 경기에서 뛰었던 위치에 있는 이젤 에드워드 선수가 이렇다 할 활약이 없어요. 크랙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윤태양 선수의 투입이 예측되는 부분입니다.]

-이젤 에드워드 전반에만 지금 7.2km 뜀 ㄷㄷ

-미친 거 아니냐?

-ㅋㅋㅋ 반올림 하면 알바즈레가 풀타임으로 뛴 만큼 뛴 거네 ㅋㅋㅋ

-알바즈레는 너무 안 뜀 ㄹㅇ

-개같이 뛰었지만 키패스도 없고 슈팅도 없고 가로채기 이런 것도 없고 뭐냐 진짜 이젤은 참…….

-안타깝다 ㅠ 차라리 마라톤 선수나 하지 ㅠ

-ㄹㅇ 마라톤 선수하면 잉글랜드한테 금메달 안겨줬을 듯

* * *

“후우.”

“여기 바나나라도 좀 먹어.”

“어? 어응, 고마워. 윤.”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 이젤이 안타까워 바나나를 건넸다.

거의 의무적으로 바나나를 입에 욱여넣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

이젤 에드워드는 누구보다 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개인의 영달보다는 팀을 위해 뛰는 어떻게 보면 요즘 프리미어 리그에 유일무이한 로맨시스트라고 볼 수 있었다.

막말로 요즘 로맨시스트니, 원클럽맨이니 불리는 양반들도 주급이나 개인 커리어와 관련된 거에 초연한 사람은 없다.

얘는 행여나 자기가 활약을 하더라도 지금 주급에 만족할 사람이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올해 24살.

이 사람은 정확히 5년 뒤 포텐이 터진다.

다른 리그에서 뛴 내가 알 정도니 나름대로 활약을 했다는 소리다.

얼마나 대단했냐면 제2의 박지송이라 불렸을 정도다.

활동량과 전술적인 이해도를 갖추며 요즘 시대에 각광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됐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단에 주급 인상을 요구하지도, 불만을 표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뛰었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 잘할 수 있는 선수가 지금은 왜 이럴까?

혹시 29살이 될 때까지 꾸준히 공부해서 그 정도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이젤! 정말 열심히 뛰어줬다. 후반에도 사우스햄튼 선수들을 계속 뛰도록 만들어주게. 알았지?”

감독은 이젤 에드워드가 왕성하게 움직여 국대급 수준이지만 나이가 많은 사우스햄튼의 수비라인을 지치게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젤은 그것에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말은 참 잘 듣는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에서 이젤 하운드라는 별명이 떠올랐다.

“그리고 태양!”

“네, 감독님.”

“오마르랑 교체다.”

“…알겠습니다!!”

좋아, 오늘도 출전이구나.

그나저나 잠깐.

이젤이 나중에 괜찮은 선수가 된 건 감독 말이라면 죽으라는 시늉도 하는 이젤의 우직함 덕분이지 않을까?

그에게 물었다.

“이젤, 너는 감독님 지시만 듣고 뛰는 거지?”

“응, 난… 나 스스로 뭔가 할 줄 모르니까. 하하…….”

나는 이젤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그래, 열심히 뛰는 건 좋은데. 내가 공을 잡으면 그 뒤부터 내 공만 보고 쫓아.”

“어?”

“아이, 그냥 공만 보고 쫓으라고. 내가 영웅으로 만들어줄게. 툰의 영웅.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영웅……? 툰의……?”

몽롱해진 그의 눈을 보고 나는 히죽 웃었다.

아무래도 괜찮은 장난감을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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