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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55화 (55/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55화

[아, 이젤 선수! 저건 패스인가요 슈팅인가요?]

무회전 슈팅을 만들었던 힘으로 때린 패스는 낮고 빠르게 뻗어나갔다.

그 덕에 중간에 그 누구도 그 패스를 건드리지 못했고, 기민하게 움직인 태양만이 반응할 수 있었다.

“에잉.”

태양은 혀를 차면서도 아웃프론트로 공을 받았다.

이게 과연 그 어마 무시하던 슈팅 같은 패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얌전하게 태양의 발아래 떨어졌다.

[놀라운 볼 트래핑! 그 앞을 가로막는 펫 맥과이어!]

한때는 맨체스터 시티의 주전 수비수이자 잉글랜드 국가대표 붙박이었던 펫 맥과이어다.

비록 나이가 들어 맨시티에서 밀려나 주전으로 뛰기 위해 사우스햄튼까지 오게 됐지만, 그 경험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나이가 든 지금에도 아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프리미어 리그 그 어떤 수비수보다 1대1 상황에서 뚫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태양은 그 앞에서 주춤주춤 볼을 끌다가 왼쪽으로 빠졌다.

빠르다.

펫은 그리 느끼면서도 다리 하나만 쭉 뻗었다.

그걸 놓치지 않고 태양이 펫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보내는 순간, 펫은 기다렸다는 듯 다리를 좁히며 자기 다리 사이로 들어오려는 공을 향해 발을 들이밀었다.

태양이 유스팀 때부터 넛매그를 즐겼다는 걸 미리 연구한 결과였다.

‘애송아, 멀었다.’

거의 아들뻘인 어린 소년을 보며 펫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짜게 식는 건 순식간이었다.

상대는 겉보기와 달리 펫 맥과이어보다 더 오랜 시간 축구를 해온 요괴였다.

그 요괴가 굴러가는 공을 발바닥으로 끌어들이더니 옆으로 툭하고 밀어냈다.

이에 펫이 한 번 더 반응하는 순간 태양은 프리플랩으로 기어이 펫의 다리 사이에 공을 밀어넣었다.

예측하고 준비하던 아까와 달리 무게 균형이 앞으로 쏠린 펫은 반응하지 못했고, 태양은 펫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말이 길었지만, 찰나의 시간.

훤히 뚫린 전방에 남은 건 골키퍼 하나뿐, 태양은 골키퍼를 향해 달려갔다.

이미 중간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골키퍼는 빠르게 달려와 큰 덩치로 태양의 골대 각을 죽였다.

태양은 옆으로 공을 한 번 접으며 골키퍼를 피하고 그대로 오른발을 휘둘렀다.

[골! 윤태양! 골입니다!]

[팀의 두 번째 골로 앞서가는 윤태양!]

[이젤 에드워드는 득점에 이어서 어시스트까지 기록해 주는군요!]

-에드워드 찔러주는 거 뭐냐 개 쩌네

-저렇게 할 줄 알면서 지금까지 왜 안 한 거임?

-솔직히 그냥 골대로 중거리슛 때린 게 얻어걸린 거 아니냐?

-태양이 볼터치 뭐냐

-순두부 트래핑 쩌네

태양이 득점하기 무섭게 이젤이 무섭게 달려왔다.

“태양! 다음은?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해?”

“이대로 계속 똑같이 하는 거야. 날 보다 내가 공을 차면 쫓고, 내가 달라하면 주고. 알았지?”

“어, 알았어!”

오늘부로 이젤하운드는 태양의 충직한 사냥개가 되었다.

[이젤, 평소처럼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무서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골 1도움, 그리고 남은 시간 다시 열심히 뛰는데 움직이는 순간마다 위협적입니다.]

[윤태양이 찔러주는 공을 아주 잘 보고 있어요.]

[두 선수의 캐미가 좋은 것 같군요.]

-ㅋㅋㅋ 캐미 ㅇㅈㄹ ㅋㅋㅋㅋ 가만 보니 뛰는 내내 이젤 저 ㅅㅋ 태양이만 보고 있음

-경기장에서 태양이 소리 지르는 거 들어보면 이젤한테 슈팅해! 뛰어! 이렇게 명령하고 있음

-근데 그거 귀신같이 듣고 시키는 대로 함 ㅋㅋ

-알고 보니 봇이었네 ㅋㅋㅋㅋ 태양이가 조종하는 거였음

-시키는 대로 하니 다 되는 게 사기 아니냐

-아니, 애가 시키는데 자존심도 없나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골 넣고 어시스트 하는데 너 같으면 안 들음? 이젤만큼 간절한 애가 없다

-ㄹㅇ 이젤 ㅈㄴ 간절할 거임 팀 떠나기 싫거든

-아니 그래도 나 같음 주전 보장 받는 팀 가겠는데 주급도 안 높다며 쟤

-이젤 하운드가 그저 개같이 뛰어서 생긴 별명인 줄 아냐? ㅋㅋㅋ

-뉴캐슬의 충견이다 이거야

이젤은 신이 났다.

자신이 활약해서 신난 게 아니다. 팀을 위해서 뭔가를 했다는 게 신이 난 거다.

그가 영웅이 되고자 하는 것도 뉴캐슬을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뉴캐슬에 죽고 뉴캐슬에 사는 진성 툰인 가족들을 위한 거지만, 그게 그거였다.

툰은 팀과 이 지역에 사는 모두를 뜻하는 말이니까.

그렇게 이젤은 달리고 또 달렸고 태양의 공을 쫓으며 몇 번이고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어냈다.

[남은 시간은 3분, 인저리 타임까지 고려하면 5분 정도 남은 것 같은데요. 스코어는 여전히 2대1으로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앞서고 있습니다.]

사우스햄튼은 교체 카드를 모두 다 쓰면서 수비라인은 안정적으로 바꿨지만, 공격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면 사우스햄튼은 유로파 컵 진출 레이스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윤태양 선수 공 잡고 돌파합니다! 한 명! 두 명!]

프리플랩으로 한 명, 상체 무빙 후 왼쪽으로 치고 달리면서 한 명을 제친 태양은 자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빈 공간으로 공을 찔러넣었다.

오늘 경기 내내 그랬던 것처럼 태양을 지켜보던 이젤 에드워드가 그대로 공을 쫓았다.

“바로 때려!”

공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들리는 태양의 목소리에 이젤은 다이렉트로 슈팅했다.

대포알같은 슈팅이 곧게 뻗어가 골망을 뒤흔들었다.

[이젤 에드워드-!!! 골! 골골골!]

[이젤 에드워드 커리어상 첫 멀티골이 터집니다!]

[오늘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는 이젤 에드워드! 대단합니다!]

-ㅋㅋㅋㅋ 나 들었다 태양이 때리라고 하네

-우리 태양이 비선실세 뭐 그런 거냐 ㅋㅋ

-근데 저렇게만 해줘도 뭔가 해주네 ㄷ

[사우스햄튼, 후반 들어 세 골을 내주면서… 경기… 끝납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소중한 3점 챙겨갑니다!]

[아쉽게도 아스날이 5시즌 만에 맨체스터 시티를 잡으면서 승점 차이는 1점 그대로 유지합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과 함께 이젤 에드워드는 그 자리에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이젤 에드워드 대단합니다. 무려 15.234km를 뛰면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던 이젤이었지만, 오늘만큼은 폐가 당길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좋았다.

에디!

에디!

에디!

뭐지?

이젤은 고개를 들어 원정석을 바라봤다.

원정석에서 툰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와…….”

태어나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욕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열심히 뛰는 선수.

그게 전부인 선수.

그래서 아쉬운 선수.

그래도 팀을 사랑해서 미워할 수 없는 선수.

이젤은 거기에 만족하는 ‘척’했다.

하지만 아니라는 걸 오늘 깨달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수록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떠냐? 기분이?”

이젤은 시선을 돌렸다.

오늘 출전하지 않은 마테오 실바가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젤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말했다.

“짜릿해요.”

“그래, 짜릿하지.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건 말이지.”

“그러게요.”

“그러게 내가 말 했잖아. 몸만 노력하지 말고 머리도 노력하라고.”

이젤 에드워드는 실바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공부는 좀…….”

“아니, 오늘 느끼지 못했어? 16살짜리 꼬맹이가 너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데 다 되잖아? 그걸 니가 해야 한다니까? 꼬맹이 말 듣는데 자존심 안 상하냐?”

“어… 공부 말고 이거해라 저거 해라 시키는 대로 해도 될 것 같…….”

말끝을 흐리는 이젤을 바라보며 충격을 받은 건 마테오 실바도 아니고, 태양이었다.

“와, 시발, 공부하기 싫어서? 실화냐? 이거 완전 놈팽이 새끼였네?”

“응? 태양? 뭐라는 거야? 너네 나라 말이냐?”

“아, 욕 좀 했어요. 마티.”

“…그럴 만해.”

“나이 때문에 참은 거예요.”

“오, 동양의 예의범절.”

“그런 거죠.”

“저기… 그래도 공부는 좀.”

공부하기 싫어 전술 머리가 없다는 듣도 보도 못한 초유의 상황에 태양은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 * *

우리 구단은 경기 다음 날은 무조건 휴식이었다.

휴식이니까 침대에서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스마트폰하면서 말이지.

오랜만에 웹서핑을 해본다.

2경기나 뛰었는데 한국 반응도 좀 봐주고 해야지.

[18호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의 등장]

[윤태양, 2경기 연속골 대활약.]

[최연소 프리미어 리그 선수가 한국인?!]

[윤태양, 그는 누구인가?]

-17살에 프리미어 리거? 와, 나 고1 때 뭐했지?

-고작 2경기 활약한 거 가지고 ㅤㅇㅙㄹ케들 설레발이냐? ㅋㅋㅋㅋ

-ㅋㅋㅋㅋ 2경기 4골 2도움인데 설레발 좀 치면 안 되냐? ㅋㅋ

-2경기 4골 2도움 ㅅㅂ ㅋㅋ 이만큼 해준 애가 역대 20명 중에 몇 명이나 있냐?

-데뷔전 해트트릭은 윤태양이 최초임

-그것도 최연소 ㅋㅋㅋ 최연소도 국내 최연소가 아니라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연소 ㅋㅋㅋㅋ

-우리 태양이 존잘 ㅠ

-위에 뭐냐 게이냐?

-게이게이야…….

-태양아 누나가 애정해 ㅠ

-태양이 사랑해 ㅠ

-게이가 아닌가보다

-뭐야 태양이 여자 팬들 있냐?

-ㅇㅇ팬카페도 생김ㅋㅋ

-ㅅㅂ 팬카페 있음 팬카페 가서 처놀으라 그래 왜 해축갤 와서 저 ㅈㄹ들이야

-위에 ㅅㅋ는 왜 급발진이냐?

-모쏠이겠지;

-모쏠은 아님;

“모쏠 맞는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팬카페가 생겼다고?

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려나?

보자…….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을 검색하고 카페를 살피니 진짜 팬카페가 생겼다.

“와……. 와…….”

지난 삶에서도 늦게나마 대기만성 형태로 프리메라리가 진출하고 국대에서 나름 활약해 주고 했을 때도 없었던 팬카페가 고작 2경기 뛰고 생기다니.

뭐, 그때랑 비교하면 얼굴의 결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자들이 팬카페를 만들어주다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런 거 자랑하고 싶은데 어이다가 하지?

아, 거기가 있지.

-나 : 애들아 나 팬카페 생김 ㅋ

-나 : [링크]

-김효준 : 뭐야

-김효준 : 팬카페?

-김효준 : 사람들이 눈이 삐었나 얘 뭘 보고 팬카페를 만들어줌?

어디긴 어디야, 유스 국대 단톡방이지.

-류준서 : 와… 뭐여 팬카페 ㄹㅇ 부럽네 ㅠ

-공세환 : 역시 태양이냐 b

-이성호 : 팬카페가 뭐지?

-김효준 : 나는 뭐 빠지게 뛰어도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ㅠ

-배상현 : 쟤랑 너랑 같냐 ㅋ 프리미어 리거잖아 주급 얼마 받냐? 이런 식으로 세 경기 정도만 뛰어줘도 재계약 각 아니냐? ㅋㅋ

-나 : 몰라 아무튼 부러워하라고 링크 보냄.

역시 김효준이 부들부들 댈 줄 알았다.

저렇게 열폭하는 걸 보니 휴식날 힐링이 되는 기분이네.

댓글 보는 것도 힐링되는 것 같고. 좀 더 볼까?

-야 근데 언제까지 가겠냐 꼬맹이가 해봤자지 두 경기는 뽀록이야

-ㄹㅇ ㅋㅋㅋ ㅈㄴ게 빨아주네 진짜

-봐라 다음 경기에서 ㅈ박는다 쟤

-거품이야 ㄹㅇ

-저런 식으로 반짝했다가 망한 애가 어디 한둘이냐

그래.

좋은 댓글만 있을 리가 없지.

축구선수에게 악플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 국대라면 더더욱 말이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17살한테 악플을 다냐.

악플 보고 빡치냐고?

당연히 화가 나지.

하지만 화가 나서 멘탈이 망가지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악에 받쳐서 엿을 먹이는 사람이지.

그나저나 다음 팀이 어디지? 첼시?

…출전시켜 줄려나?

새삼 얼른 더 커야지 싶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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