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80화
“저것 봐.”
지노는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손을 휘저었다.
“축구를 쉽게 한다니까?”
빌어먹을 동양인 같으니라고.
같은 심정인지 관중석에는 야유가 가득했다.
태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프라인에 공을 두고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라고.
지노는 이를 악물고 휘슬과 함께 공을 돌렸다.
후방 미드필더 둘이 다시 공을 돌리기 시작하며 밀란은 서서히 라인을 올렸다.
그런 선수들을 바라보며 답답한 표정을 지은 지노가 버럭 소리쳤다.
“빨리! 더 빨리!”
그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밀란의 패스가 빨라진다.
뉴캐슬이 간격을 좁히고 거세게 압박하기 시작하자 페르난데즈는 공을 뒤로 돌리기보다 롱패스로 공을 앞으로 보냈다.
수비라인으로 떨어지는 공을 향해 아놀드와 제나스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밀란에서는.
[비도비치!! 아놀드와 제나스 사이에서 뛰어 오릅니다!]
동유럽에서 데려온 초장신의 공격수 비도비치가 두 센터백과 볼 경합에 나섰다.
무려 2m에 가까운 키에 곰과 같은 힘을 가진 그는 아놀드와 제나스를 찍어누르며 솟아올라 공을 떨궜다.
[비도비치가 떨군 공을 지노가 잡습니다! 알베르토 지노!]
비도비치에게 밀려 뛰어오르지도 못한 아놀드가 즉각 지노에게 달라붙었다.
지노가 빙글 등을 돌리며 달라붙는 아놀드를 등으로 맞이하고는 왼쪽으로 들어가려는 모션을 취하다 빙글 돌려 오른쪽으로 파고든다.
이번에 발을 들이민 건 제나스.
제나스의 다리를 맞이한 지노가 발등으로 공을 띄워 제나스의 다리를 피하고는 어깨를 들이미는 아놀드를 마찬가지로 어깨로 맞이해 그 반동으로 반대쪽으로 치고 들어간다.
그 순간 반디아가 슬라이딩 태클로 들어온다.
알베르토 지노는 반디아를 맞이해 공과 함께 반디아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착지하는 순간 지노는 망설이지 않고 슈팅했다.
예측하지 못할 한 박자, 아니, 두 박자는 더 빠른 슈팅.
리첼라도 미처 반응하지 못할 슈팅이 골망을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아!
아까의 야유와 달리 산 시로가 떠나갈 듯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다.
[골입니다!]
[지노! 알베르토 지노! 윤태양이 골을 넣자마자 바로 득점합니다!]
득점한 지노는 관중석으로 달려가 사방에 키스를 날렸다.
그 특유의 키스 세리머니를 한 뒤에도 그는 여유롭게 뉴캐슬 선수들을 둘러봤다.
같잖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이다.
그렇게 느긋하게 하프라인으로 걸어간 뒤에야 경기가 재개됐다.
뉴캐슬이 일제히 라인을 올리며 빠른 템포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을 앞으로 보냈다.
[밀란의 선수들이 메넨데즈를 압박합니다. 플레이메이커는 메넨데즈라 이거죠.]
[뉴캐슬의 패스가 끊기는 것 같은데요, 아, 메넨데즈가 공을 측면으로 보냅니다. 공 잡는 박스올! 박스올 그대로 얼리크로스!]
[일리뉴 공 잡습니다!]
루카스 지오반니가 일리뉴를 막아섰다.
지오반니는 무리해서 일리뉴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라이벌 팀인 인테르에서 득점왕까지 하던 선수를 모를 수가 없었다.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 지오반니를 보며 일리뉴는 씨익 웃으며 오른쪽으로 파고들었다.
지오반니는 속지 않았다.
왼발밖에 쓰지 않는 일리뉴는 절대 공이 전면으로 노출될 상황인 오른쪽 돌파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가는 시늉만 하며 일리뉴가 방향을 전환하는 타이밍을 노리려는 순간.
일리뉴의 발에서 공이 떠나갔다.
“엇!”
왼발밖에 못 쓰는 애가 무슨……?
의아해하며 옆을 바라봤을 때.
그곳에는 컷인해서 들어오는 윤태양이 있었다.
아니, 어떻게?
분명 세 명이나 되는 선수가 윤태양을 CCTV처럼 감시하고 있었을 텐데?
[아, 윤태양 선수 사이드로 빠질 것 같은 컷아웃 무빙을 하다가 순식간에 안으로 파고듭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산 시로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야유가 쏟아진다.
선수를 기죽이려는 듯한 야유 속에서 태양은 다른 선수가 달라붙기도 전에 감아찼다.
굳이 힘을 싣지 않고 공을 깍듯이 차서 우아한 곡선을 만들어내는 태양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감아차기가 골키퍼의 손을 피해서 골대 구석에 빨려 들어갔다.
[아! 또다시 골입니다!]
[뭔가요 이 상황은?! 한쪽이 득점을 하면 또 한쪽이 득점을 합니다!]
[스코어는 2대1! 전반 15분 만에 세 골이나 나오는 경기를 다 보네요!]
[그나저나 윤태양 선수 정말 빠르군요?]
[윤태양이 전력질주를 하지 않는 편이어서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윤태양은 뉴캐슬, 아니,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발이 빠른 선수입니다. 거기에 모두를 속일 줄 아는 선수죠! 컷 아웃하기에 측면을 견제하려던 밀란의 선수들 모두를 속여 버립니다.]
득점을 한 뒤, 산 시로의 모든 팬들이 미친 듯이 야유를 쏟아부었다.
태양은 그런 관중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는 것 같을 때마다 태양에게 온갖 욕설을 내뱉는다.
“아, 거 시끄럽네.”
아무래도 뭔가 더 해줘야 입을 닥치려나?
태양은 고개를 저으며 하프라인으로 걸어갔다.
* * *
초반 15분 사이에 다 합해서 세 골을 주고받은 양 팀은 추가 득점 없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어느덧 전반 38분.
몇 번의 위기 상황이 나왔지만, 무서운 소년들에게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골을 먹은 선수들이 정신을 바짝 차린 모양인지 아슬아슬하게나마 공을 막아냈다.
그 가운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지노였다.
“아, 제기랄.”
돌파를 시도하다 제나스의 태클에 공을 놓치고 넘어진 지노는 신경질적으로 땅을 때렸다.
“골을 넣어야 하는데.”
윤태양은 두 골을 넣었는데 자기는 고작 한 골이다.
이러면 자신이 윤태양보다 못하다는 걸 인증하는 꼬라지가 아닌가.
산 시로에서 그런 망신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조급해진 지노는 뒤를 돌아봤다.
뉴캐슬이 빠른 템포로 공을 전방으로 보내고 있었다.
“막아! 그리고 앞으로 보내!”
그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밀란의 선수들은 그의 외침과 별개로 전력을 다해 뉴캐슬의 빌드업을 막아서고 있었다.
오늘 왼쪽 포워드로 나선 오마르는 사방에서 자신을 압박해 들어오자 공을 뒤로 돌렸다.
공을 잡은 박스올은 중앙의 메넨데즈에게 공을 패스했고, 메넨데즈는 고메즈와 패스를 통해 탈압박하며 앞으로 나섰다.
페르난데즈와 토마리를 제치며 그들이 수비라인에 합류하기 전에 메넨데즈는 윤태양에게 보냈다.
제후니와 피에르마티 앞에서 공을 받은 태양은 몸을 빙글 돌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곧 바로 달려 나갔다.
제후니가 오른쪽에서, 피에르마티가 정면에서 태양을 막아서자, 태양은 왼쪽으로 공을 가지고 달려갔다.
그리고 일리뉴에게 패스.
피에르마티가 지오반니와 협력하기 위해 그대로 일리뉴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일리뉴는 공을 앞으로 찔러넣었다.
“피에르!”
제후니가 버럭 소리치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피에르마티는 공을 쫓아 몸을 돌렸다.
아, 이미 늦었다.
제후니를 뒤에 달고서 태양이 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록 한발 늦었어도, 거리를 보면 사선으로 달려오는 태양보다 직선으로 달려가는 피에르마티가 공을 한발 더 빨리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에르마티는 그 사실을 알고 전력을 다해 달렸다.
이번에 먹히면 해트트릭이다.
그만큼 치욕적인 상황이 어디 있겠는가.
그 생각하나만으로 이 악물고 달린 피에르마티는 공을 발 앞에 둘 수 있었다.
이제 이걸 골라인 바깥으로 걷어내면…….
“!!”
피에르마티는 찰나의 순간 생각한 것을 후회했다.
공을 앞에 둔 순간 바로 걷어냈어야 했다.
그 찰나의 순간 태양이 발을 들이밀어 자신의 공을 차지할 줄 어떻게 알았는가.
이 얄미운 꼬맹이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공에 발을 들이밀어 빙글 돌았다.
어떻게 저렇게 달리면서 공을 부드럽게 터치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턴을 하는 순간 태양의 등번호 7번이 보인다.
마치 홀린 것처럼 피에르마티는 태양의 유니폼을 잡아당겼다.
슈팅을 하려던 태양이 뒤로 발라당 넘어진다.
삐익!
그 순간 울려 퍼지는 휘슬.
“아……!”
이런.
피에르마티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위치를 확인했다.
빌어먹을 페널티 라인 안이다.
“이 병신아!”
골대 앞에서 튀어나오던 골키퍼 마테오 파세리니가 신경질적으로 피에르마티에게 욕을 했다.
“아, 이런… 미안.”
파세리니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달려올 줄 알았으면 굳이 유니폼을 잡을 필요가 없었는데.
뭔가 홀린 것처럼 사고를 친 피에르마티는 파세리니에게 사과하고 물러나려고 했다.
그런 피에르마티 앞에 주심이 달려와 카드를 내민다.
옐로카드였다.
“아니, 이게 옐로카드라고요?!”
“노골적인 반칙을 하지 않았나.”
그 말을 들은 피에르마티는 억울해졌다.
유니폼? 잡아당기긴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저렇게 뒤로 넘어질 정도로 세게 당기진 않았다.
버티면 충분히 버틸 수 있고 슈팅도 할 수 있었을 거다.
그걸 어필하려 했지만, 상황이 너무 명백해 주심은 단호하게 나갈 것을 종용했다.
다른 선수들이 달려와 주심에게 항의하는 사이, 피에르마티는 태양을 바라봤다.
씨익.
태양이 그런 피에르마티를 보고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새끼……. 헐리우드 액션이었냐?”
“뭔 헐리우드 액션이야. 그런 거 당하기 싫었으면 유니폼을 잡지 말았어야지.”
피에르마티의 말을 들은 메넨데즈가 옆에서 피에르마티를 비웃었다.
피에르마티는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그래, 애초에 유니폼을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페널티 킥이 주어집니다. 페널티 킥은… 윤태양이 직접 준비하는군요.]
[페널티 킥을 만든 당사자이자, 해트트릭을 앞둔 상황이니 그가 차는 게 마땅하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윤태양 선수는 프로 무데 데뷔 이후 페널티 킥을 차는 건 처음이지 않나요?]
[네, 기록상 페널티 킥 득점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아, 중압감이 상당할 텐데 과연 득점을 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보통 어린 선수라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말할 테지만, 윤태양입니다. 어린 선수라고 믿을 수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그라면 왠지 PK도 성공할 것 같습니다.]
태양은 공을 내려놓고 골대를 바라봤다.
파세리니가 긴 팔을 위 아래로 흔들고 몸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날카로운 눈으로 태양을 살폈다.
태양은 주심의 휘슬과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가 공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다 순간 멈칫.
자세를 잡던 파세리니의 타이밍을 한 번 빼앗는다.
그리고 즉각 달려들어 다리를 휘두른다.
태양의 자세를 보면 이건 왼쪽이다!
찰나의 순간 판단을 끝낸 파세리니가 몸을 날렸다.
파세리니가 몸을 날리는 와중에도 태양의 발은 공에 닿지 않았다.
그걸 확인한 파세리니는 절망적인 얼굴로 태양을 바라봤다.
악마와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태양은 가볍게 공을 툭하고 찍어찼다.
타이밍을 두 번이나 속이며 선보인 건 다름 아닌 파넨카 킥이었다.
골키퍼를 바보로 만들기에 가장 완벽한 페널티 킥 슈팅이었다.
붕 떠올라 골라인을 넘어 통통 튀기는 공을 바라보며 태양은 관중석을 둘러봤다.
마치 자신들이 골키퍼라도 된 것처럼 관중들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태양이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