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85화 (85/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85화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홀로 네 골을 넣은 선수는 단언컨데 없었다.

적어도 프리미어 리그가 발족한 이후로 말이다.

심지어 최근 10여 년 동안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조차 없었다.

그 정도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맨시티는 절대적인 강자였다.

아무리 팀이 흔들리고 있다 하더라도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전반이 끝나기는커녕 아직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원정석에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맨시티의 팬들이 보일 정도였다.

팬들도 고개를 돌려 버릴 판인데, 선수들은 오죽할까.

오늘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 모두 이런 처참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맨시티는 공을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고, 뉴캐슬은 그런 맨시티를 압박해 공을 빼앗으려 들었다.

뉴캐슬 선수들이 달려들 때마다 기겁을 하고 허겁지겁 공을 돌리려 했다.

당연히 정확한 패스가 나올 리가 없었다.

고메즈가 어렵지 않게 공을 빼앗아 반대쪽에 알브레히트에게 패스했다.

알브레히트는 측면으로 빠져나가 사이드라인을 타고 전진했다.

맨시티 선수는 경기 자체를 보지 못하는 듯 우르르 몰려갔다.

알브레히트는 그 상황에 페널티 에어라인 안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날카롭게 뻗은 공을 향해 선수들이 달려든다.

그 안에는 태양도 있었다.

하지만 맨시티 선수들은 대부분 일리뉴를 경계하고 있었다.

일리뉴의 피지컬과 헤딩은 정평이 난 상태고, 태양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헤딩골을 넣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도 안 붙은 건 아니었다. 네노브가 태양의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네노브는 에제크웸보다 피지컬이 좋은 선수는 아니지만, 노련한 선수였다.

요리조리 몸을 움직이다 태양을 뒤에 두고 엉덩이로 태양이를 밀어냈다.

‘몸싸움은 별로군.’

그래,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지.

이런 단점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이게 단점인가 싶지만…….

네노브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태양을 끝까지 견제하며 공을 바라봤다.

공이 떨어진다.

공교롭게도 네노브가 뛰어오르면 닿을 거리였다.

태양을 엉덩이로 한 번 더 밀어내려는데, 이상하다.

허전하다.

뒤에서 자신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던 태양의 기척이 없었다.

태양은 어느새 잽싸게 네노브의 옆으로 와 네노브 앞쪽에 다리와 팔을 들이밀며 그를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아니, 분명 몸싸움이 약한 것 같았는데? 못 버티던데?

그건 태양의 속임수였다.

태양은 노련하게 네노브를 밀어내고 그보다 먼저 뛰어올랐다.

네노브도 이에 질세라 뛰어올랐다가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진다.

“……!!”

사람이 어떻게 이리 높이 뛸까 싶을 정도로 태양의 서전트 점프는 높았다.

머리 하나 이상은 차이가 날 정도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싶어 그의 유니폼을 잡아 내리려는 순간, 태양은 이미 공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공에 머리가 닿는 순간 고갯짓으로 공의 방향을 바꾼다.

바닥에 바운드 되는 공을 향해 골키퍼가 몸을 쭉 폈을 때, 공은 골키퍼를 피해서 골라인으로 넘어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악!

아까보다 더 큰 함성이 필드를 가득 채우는 순간이었다.

[다, 다섯 번째 골!! 글러트입니다! 프리미어 리그 한 경기 최다골 타이 기록입니다! 윤태양!!!]

[뉴캐슬의 전설과도 같은 선수, 앨 런 시어러도 이 기록을 가지고 있죠! 뉴캐슬의 어린 왕자가 뉴캐슬의 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간입니다!]

해설은 말하지 않았지만, 반대로 뉴캐슬의 치욕의 순간을 되갚아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뉴캐슬은 맨시티의 전설적인 공격수 세르히오 아게로에게 다섯 골을 헌납한 기록이 있었다.

그걸 최연소 선수가, 역사상 최단 시간인 11분 만에 해냈다.

경기 도중도 아니고 경기 시작 후 11분 만에 말이다.

이 처참하다 못해 참혹한 상황에 오늘 맨시티 사령탑으로 데뷔 경기를 치르는 베르거 감독은 눈을 질끈 감았다.

원정석은 절반이나 되는 팬들이 빠져나갔고, 툰들은 일제히 윤태양을 위한 응원가를 부르짖었다.

오, 나의 태양!

오, 우리의 태양!

오, 모두의 태양!

그 노래가 마치 찬송가라도 된 듯, 신을 영접하기라도 한 듯 눈물을 흘리는 사람까지 보일 정도였다.

[앞으로 언제 또 이런 대기록이 나오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겁니다.]

[프리미어 리그, 아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소년, 윤태양입니다!]

왼발, 오른발, 그리고 머리로 퍼펙트한 상황을 만든 태양은 자신의 응원가를 부르짖는 툰들을 향해 팔을 위아래로 흔들어 보였다.

더 해 달라는 소리다.

이곳 뉴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자신의 응원가로 맨시티를 질식시켜 달라는 요구였다.

툰들은 어린 왕자의 지엄한 명령을 거역하지 않았다.

팬들의 호응을 유도한 태양은 여지없이 가족들을 찾았다.

동생들과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들과 아버지까지 자신을 바라보며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태양은 가족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야, 적당히 해.”

그런 태양을 향해 실바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적당히 하라고 인마, 상도덕이 있지. 저러다 애들 필드에서 울겠… 아니, 벌써 울고 있다. 저러다 은퇴하겠다, 애들.”

실바의 말에 태양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에제크웸이 애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저리 멘탈이 약해서야, 쯧쯧.”

“저게 정상이지, 다섯 골을 처먹혔는데. 네가 이상한 거야. 너 씨, 알고 보면 속에 16살이 아니라 한 50살 먹은 노인네 들어있는 거 아니냐?”

“…어떻게 알았어요?”

“캬, 오늘 다섯 골 넣어서 기분 좋나보네. 농담도 받아주고, 잉?”

“어휴.”

태양은 한숨을 내쉬고 하프라인으로 돌아갔다.

무려 다섯 골이나 넣었는데, 몸이 가볍다.

“아.”

고작 11분밖에 안 지났지.

다섯 골이나 넣어서 경기 끝난 줄 알았네.

태양은 그리 생각하며 유니폼으로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땀을 훔치고는 상대방이 경기를 시작하길 기다렸다.

삐익!

그리고 울리는 휘슬.

위축된 맨시티는 당연히 공을 뒤로 돌리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을 받은 루크 영이 공을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미친 건가?

아니면 본인이 윤태양이라도 된 거라고 착각하는 걸까?

지금 찬스에 선수들을 제치고 골을 넣으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한 건가?

‘어린애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태양은 혀를 끌끌 차며 루크 영에게 달려들었다.

루크 영이 멈칫했다가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공을 주춤주춤 끌어 태양에게 달려들었다.

이거 그거 맞다.

영웅이 되겠다는 심리 말이다.

루크 영이 잽싸게 공을 굴린다.

어딘가 어설픈 라 크로케타.

이걸로 태양을 따돌리면 뭔가 될 줄 알았던 모양이지만, 아쉽게도 태양은 지난 삶까지 포함한다면 드리블과 개인기로 선수를 제치는 것보다 공을 빼앗는 걸 더 많이 한 선수였다.

과거 상대한 선수들을 생각하면 어설프기 그지없는 루크 영의 공을 가볍게 뺏은 태양은 공을 수습해 루크 영을 지나치며 앞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골대는 참 멀리도 있는데, 이상하게 골대가 훤히 잘 보였다.

심지어 크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태양은 공을 가지고 달리며 한 번 더 골대를 바라봤다.

아까보다 더 잘 보였다.

조금 더 달려 나간 태양은 골대를 향한 길이 점점 좁아지는 게 보였다.

선수들이 흩어진 대형을 수습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어차피 다섯 골 넣었으니…….’

한 골 정도 무리수를 둬도 뭐라 할 사람 없겠지.

태양은 그리 생각하며 유난히 넓어 보이는 골대를 향해 전력을 당해 공을 찼다.

태양의 발을 벗어난 공이 그대로 골대를 향해 뻗어나갔다.

무서운 속도로 나아가던 공이 조금 높이 솟아오르는 듯하더니 페널티 에어리어에 접어들 무렵부터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요즘 공이 발전하면서 어지간하면 나오기 힘든 무회전이 들어간 거다.

가뜩이나 멘탈이 나간 골키퍼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무회전 슈팅은 이내 골키퍼 앞에서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뚝 하고 떨어져 골키퍼의 예상 경로를 벗어나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고, 골……! 골입니다! 또 골입니다! 골! 골입니다아!!]

[마, 맙소사……! 더블, 더블 해트트릭입니다! 윤태양이 기어이 프리미어 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합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다섯 골의 벽을 넘어 홀로 우뚝 선 윤태양!!]

[뉴캐슬의 어린 왕자가 자신의 성에서 역사적인 기록을 만들어냅니다!]

[최단 시간 다섯 골, 최단 시간 여섯 골, 최연소 네 골, 다섯 골, 여섯 골 등. 수많은 골과 관련된 기록을 태양이 경신합니다!]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이 선수는 고작 16살 하고도 280일밖에 되지 않은 선수입니다!]

“와… 이게 되네.”

골을 넣은 태양은 넋을 놓고 골대를 바라봤다.

이 위치에서 이렇게 쉽게 들어갈 줄이야.

심지어 무회전을 노린 것도 아닌데 무회전이 제대로 걸려 골키퍼를 농락하기까지 했다.

“진짜 뭘 해도 되네.”

[골대와 거리가 39m가량 된다는 군요. 엄청난 중거리 슛이 나왔네요.]

[이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일까요? 왼발로 두 골, 오른발로 두 골, 헤딩으로 한 골, 중거리 슛으로 한 골을 기록했습니다.]

[퍼펙트 더블 해트트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이제는 모든 툰들이 신을 영접한 듯 미친 듯이 환호하며 울부짖는 가운데, 태양은 터벅터벅 하프라인으로 돌아왔다.

“이 미친놈, 공 몰아달라더니 혼자 다 하네!”

“그러게요. 오늘 진짜 뭘 해도 되는데요?”

태양의 말에 실바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조금 지린 것 같았다.

언제나 사람을 놀라게 했지만, 오늘은 놀라다 못해 황홀할 지경이다.

이런 플레이를 보여주는 천재와 같이 뛰는 것 자체가 영광으로 여겨질 정도다.

문득, 갑자기 든 생각에 실바는 태양을 향해 말했다.

“야, 너 나중에 은퇴하고 자서전 쓰면 내 이름 꼭 언급해 줘라.”

“네? 아니, 이제 막 시작한 사람한테 은퇴 이야기를 꺼내고 그래요, 재수 없게.”

“아, 좀 해달라고!”

이놈 자서전에 자기 이름이 남으면 아마 대대손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반은 장난이지만, 질색하는 태양을 보니 어떻게든 이름을 넣고 싶은 오기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그 가운데 경기는 다시 재개됐다.

전반에 선수를 바꾸는 일은 드문데 맨시티 감독은 선수 교체를 단행했다.

루크 영과 에제크웸을 빼고 대대적으로 수비적인 선수를 투입했다.

그리고 단단하게 걸어 잠갔다.

하프라인을 넘을 생각 자체는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골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플레이는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태양을 담가 버릴 생각인 것처럼 말이다.

아니, 진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경기를 지켜보다 태양에게 위협적인 태클이 몇 번이나 들어오는 걸 본 아르텔리 감독은 파울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틈에 선수 교체를 단행했다.

보기 드문 전반 교체가 뉴캐슬에서도 나온 가운데, 태양은 벤치를 향해 걸어나갔다.

[상황이 거칠어지자 아르텔리 감독이 태양을 교체합니다.]

[교체해도 무방합니다. 이미 여섯 골이나 앞서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아르텔리 감독은 팀의 보물과도 같은 선수인 태양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 퇴장하는 윤태양 선수를 향해 뉴캐슬의 툰들이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저 역시 툰들과 마찬가지로 뉴캐슬의 어린 왕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경배 받아 마땅해요!]

태양이 물러난 뒤.

맨시티는 상황을 모면하지 못하고 후반 일리뉴와 실바의 득점까지 추가해 8대0이라는 최악의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프리미어 리그 10라운드는 맨시티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