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89화 (89/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89화

프리미어 리그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팀은 어디일까?

20년대부터 10년이 넘도록 대부분의 우승을 차지한 맨체스터 시티?

맨시티의 우승을 두 번이나 저지하며 트로피를 따냈던 아스날?

리그 최초로 오일머니의 힘을 선보이며 파란과 함께 리그 우승을 일궈낸 첼시?

기적 같은 우승과 명가 재건이라는 드라마를 선보였던 리버풀?

아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위대한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이 은퇴한 이후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일머니가 없어도 전 세계 팬들의 사랑으로 모인 돈으로 오일머니 부럽지 않은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팀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뿐이었다.

최근 몇 년은 팬들이 더 늘어난 느낌이다.

팀을 망쳤다고 평가받는 구단주가 진짜 축구를 사랑하는 구단주로 바뀌고 팀이 예전의 근본을 되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 *

“펠리시아노는 괴물이지.”

시대가 맞지 않아 그와 붙어본 적이 없어서 실바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들었다.

“괴물?”

“그래, 아니, 괴물이 아니라 기계라고 해야하나? 득점 기계.”

“득점 기계.”

“그래, 득점을 생산하는 기계 같은 놈이야. 골만 생각하지. 걔 기록 보면 어시스트 한 기록이 별로 없어.”

“이기적인 선수인가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던 실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플레이가 이기적인 건 아냐. 맨유가 마지막 피니셔를 그에게 몰아주는 것도 있고, 걔는 어떻게든 골대 근처에서 공을 가지면 득점을 하는 것도 있고, 아, 그리고 절대 최전방에서 내려오지 않아.”

절대 팀의 수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건가?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공격수는 아니네.

하지만 그런데도 그를 원하는 팀이 많은 건, 역시 득점력이다.

축구는 골로 말하는 거니까.

“근데 이 사람은 왜 나를 언급하는 걸까요?”

“라이벌 의식 느끼나보지.”

“저를요?”

“걘 자기랑 뭐 하나 겹치기만 해도 승부욕이 불타오르는 애야. 미친놈이 홀란드한테도 들이대던 놈이니까.”

홀란드는 맨시티의 전설이자 프리미어 리그의 전설이다.

그가 대부분의 득점 기록을 다 경신했기 때문이다.

그걸 내가 빼앗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이겼어요?”

“그땐 어려서 힘들었지. 지금은… 전성기 때 홀란드랑 비벼볼 만하려나?”

딱 한, 두 시즌만 생각하면 비벼볼 수도 있겠지.

여기서 이미 은퇴한 홀란드 이야기할 게 아니고.

“이건 좀 선 넘는 발언인데요?”

“뭔데?”

실바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MU.07_VITOR 우리가 유일한 유나이티드다.]

실바의 인상이 대번 구겨졌다.

“개 같은 소리하네.”

솔직히 유나이티드? 그거 그냥 뒤에 붙어있는 이름 아니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막상 건들면 자존심이 상하는 법이다.

“가짜 유나이티드 주제에 진짜 유나이티드를 건드려?”

“그죠?”

우리 툰들은 우리만이 진정한 연합[UNITED]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부분 팀들이 노동조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뉴캐슬을 양분하던 이스트엔드, 웨스트엔드 두 팀이 하나로 연합하면서 만들어진 뉴캐슬어폰타인의 유일한 축구팀이기 때문이다.

축구팀의 진정한 연합,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절대 지면 안 된다.”

모처럼 실바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다른 건 다 참고 만사 다 귀찮아하는 노인네라고 하더라도 천하의 미스터 툰이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건드는 건 못 참겠지.

아, 그건 아마도 우리 툰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래서 그런가?

엄마가 데리러 와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커다란 현수막이 보였다.

[우리가 진정한 유나이티드]

역시나 툰들도 의식하고 있었군.

“가기 전에 고기 좀 사가지고 갈까?”

“잭네 정육점으로 가요?”

“그래야지.”

모처럼 잭의 정육점을 향한다.

그런데 이게 뭐야?

잭의 정육점 입구 바닥에 펠리시아노의 유니폼이 깔려 있었다.

“어엇! 왕자님께서 이 귀한 곳까지 행차를 하셨구만!!”

때마침 입구 쪽에서 고기를 진열하고 있던 잭이 나를 보더니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잭! 오랜만이에요!”

“뉴캐슬의 여왕 폐하도 오셨군요?”

잭은 짓궂은 얼굴을 하고 우리 엄마를 반겼다.

“어머, 제가 무슨 여왕이에요.”

“왕자님을 낳으셨으니 여왕이시죠. 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 아, 혹시 티본 있나요? 댁이 그리 좋아하는 우리 왕자님께서 티본스테이크가 드시고 싶다 하시는데.”

내가 며칠 전에 한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으셨던 모양이다.

“물론이죠. 들어오세요. 아, 잠깐.”

잭은 바닥에 펠리시아노의 유니폼을 가리켰다.

“이 빌어먹을 유니폼을 밟고 들어오셔야 합니다.”

“그래요?”

“당연하죠. 가짜가 진짜 유나이티드를 모욕한 순간 우리 뉴캐슬의 적이 되는 겁니다.”

나는 잠시 멈칫하고 펠리시아노의 유니폼을 바라봤다.

이거 밟으면 어딘가 숨어있을 파파라치들이 귀신같이 찍어서 올릴 것 같은데.

아니면 동네 사람들이거나.

그거 참…….

재미있겠네.

나는 히죽 웃었다.

“아들! 또 못된 생각하지?”

“응? 네? 아뇨? 왜요?”

“우리 아들은 꼭 장난치려고 하면 그렇게 웃더라?”

* * *

@TOONARMY_NO1JACK

[(사진)짓밟힌 펠리시아노 유니폼을 들고 웃는 태양]

[우리의 왕자께서 유나이티드를 짓밟아주실 거다. #TAEYANG #NEWCASTLE #UTD #REAL_UNITED]

-죽어

-뉴카슬 따위가 어디 감히

-너 뭐하는 새끼야

-닥쳐 거지 같은 맨유 놈들아

-맨유라고? 죽고 싶냐?

*주 (현지에서 맨유는 비료와 비슷한 발음으로 멸칭으로 통한다.)

-역시 우리 태양이 멋지다

-왕자님 저 빌어먹을 비료놈들을 응징해 주세요!

-우리가 진정한 유나이티드지!

-퍽킹 ‘뉴카슬’

-우린 ‘뉴캐슬’이야 맨체스터 비렁뱅이 같은 놈아

*주 (뉴캐슬의 영국 표준어 발음과 대부분 지역 사투리 발음으로 ‘뉴카슬’ 가깝고, 뉴캐슬 지역 발음으로 ‘뉴캐슬’에 가깝다.)

-내가 이번에 툰인지 ASSHOLE인지 하는 새끼들 대가리 깨러 간다

-왔다가 우리한테 얻어맞고 처울지나 마라

태양의 도발은 제대로 통했다.

자신들이 제일 사랑하는 선수인 펠리시아노가 모욕당하자 그들을 분연히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펠리시아노는…….

“어린 친구가 귀엽네.”

잭의 SNS를 보고 귀여운 동생의 장난을 보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선수들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표정은 여유로웠지만, 펠리시아노의 손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지금 펠리시아노는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딜런 먼로 외에는 경쟁 상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강력한 경쟁 상대가 생기고 그 상대가 도발까지 하니 당장이라도 시합을 뛰고 싶어 조급해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승부욕이 강하긴 하지만, 그의 승부욕은 결코 이기적이지 않았다.

그는 승부욕을 감정으로 풀지 않았다.

오로지 실력으로 이기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그의 승부욕에 있었다.

지지 않으려면 잘해야 하니까.

“이런 거 볼 시간이 아니지. 훈련해야지. 다들 나가자.”

한참 SNS를 보던 펠리시아노는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장으로 향했다.

“쟤 저러다 지면 우는 거 아니냐?”

“에이, 설마.”

“아냐. 전에 딜런 먼로랑 경기하고 졌을 때 울었어.”

“그래도… 16살 애 앞에서 울진 않겠지.”

글쎄, 그건 모를 일이다.

* * *

뉴캐슬의 응원가 로컬 히어로가 뉴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울려 퍼진다.

현 시점에서 팀을 대표로 하는 펠리시아노와 윤태양이 서로를 향한 도발을 하면서 팬들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오늘 경기장을 찾은 맨유 팬들은 이에 질세라 글로리 글로리 맨 유나이티드를 부르짖었다.

적은 인원이지만, 그들의 응원가는 임팩트가 컸다.

흥얼거리는 응원가 사이에서 글로리 글로리 맨 유나이티드가 더 또렷하게 들렸다.

“우리도 새 응원가 같은 거 하나 만들어야 한다니까?”

워밍업을 끝내고 라커룸으로 들어오며 리첼라가 투덜거렸다.

아놀드는 그런 리첼라에게 말했다.

“왜, 우리 응원가도 좋잖아. 정감 가고.”

“너무 올드해. 목 놓아 부르기 힘들다고.”

뉴캐슬의 응원가는 올드팝, 심하면 미국의 컨트리 음악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잔잔했다.

아무리 목 놓아 불러도 임팩트가 없다고 해야할까?

그걸 툰들이 툰아미라 불릴 정도로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불러서 커버하고 있었다.

“생각해 봐, 우리 툰들이 임팩트 있는 응원가를 부르면 어떨 거 같아?”

“아마 다른 팀 팬들은 찍소리도 못하겠지.”

“그러니까. 이봐, 마티. 네가 작곡 의뢰라도 해서 응원가 하나 만들어주는 게 어때?”

제 집 안방처럼 여유롭게 슬리퍼를 질질 끌고 라커룸 안으로 들어오던 실바는 뭔 개소리냐는 듯 리첼라를 바라봤다.

“내가 왜?”

“네가 미스터 툰이잖아.”

“난 지금 응원가가 좋아. 정겹잖아. 넌 어떠냐 태양아?”

“저요? 내 응원가는 괜찮던데.”

“에잉, 저놈은 죄다 자기 위주구만. 뉴캐슬 응원가는 안중에도 없지?”

태양은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에잉, 저저… 쯧쯧.”

어디서 배운 건지 몰라도 혀 차는 것까지 배워온 실바는 혀를 끌끌 차며 태양을 자극했지만, 태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인네가 나잇값 못하고 팀의 막내를 놀리는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 * *

[뉴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이제 곧 경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뉴캐슬

FW 샬렛/윤태양/오마르

MF 박스올/로씨/메넨데즈

DF 반디아/아놀드/제나스/산체스

GK 리첼라

맨체스터 UTD

FW 펠리시아노

MF 에거튼/문티누/브라이언/

비엥베뉴/마르셀로

DF 다비즈/세겔/이녜시오/비네스빌

GK 스토일리코비치

[뉴캐슬은 이번 시즌부터 로테이션으로 선발됐던 로씨를 처음으로 빅매치에 투입했습니다?]

[불안한 수비라인을 보호하기 위해 투입된 것 같습니다. 팀컬러와 맞지 않아서 그렇지, 로씨의 수비력은 준수하니까요.]

[그리고 샬렛이 투입됐습니다.]

[전방의 세 선수 모두 준족의 선수입니다. 뉴캐슬이 오늘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보이는 스쿼드라 볼 수 있죠.]

[뉴캐슬과 다르게 맨 유나이티드는 베스트 11이 모두 나왔습니다. 부상에서 복귀한 비네스빌도 투입됐네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금 스쿼드를 보면 사람들은 말한다.

우승을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펠리시아노는 물론이고 비엥베뉴, 비네스빌은 어느 구단을 가도 핵심선수로 분류될 월드클래스 선수들이었고, 에거튼은 21세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잉글랜드의 특급 유망주였다.

만약 윤태양이 없었다면, 그가 프리미어 리그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 받았을 거다.

아무리 뉴캐슬이 1위라고 하더라도 선수들의 네임벨류만 보면 맨유보다 뒤쳐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래서 팬들은 다른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 나의 태양!

오! 우리의 태양!

오! 모두의 태양!

그들의 응원가는 마치 너희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에겐 태양이 있다.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