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91화
두 연합[UNITED] 간 대결 전반전은 무승부였다.
양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야 똥줄이 타겠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경기였다.
물론, 선수들은 마냥 재미있다고 할 수가 없었다.
“태양, 내 전반전은 어땠나? 내가 보낸 크로스는 괜찮았나?”
“크로스 빼고 다 0점.”
“…그 정도였나!!”
“어, 영양가가 하나도 없잖아.”
태양은 짜증스럽게 샬렛을 끌고와 자기 태블릿을 꺼냈다.
훈련 체크, 전술 숙지, 토론 등 훈련과 경기를 위해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구단 전용 태블릿이었다.
“봐, 내가 이렇게 들어가는데 너도 왜 따라 이리로 들어오냐고, 내가 빠진 자리로 들어가든가 아니면 여기로 가야지!”
“아.”
“아는 무슨 아야. 이 자식이 1군 오더니 더 바보가 돼서 왔어?”
“음…….”
모처럼 샬렛이 입을 다문다.
그걸 옆에서 지켜본 메넨데즈는 신기한 얼굴로 태양을 바라봤다.
얘는 나중에 감독을 해도 잘하겠는데?
그건 그렇고 자기가 공 가지고 움직이는데 같은 편 선수의 움직임까지 다 봤어?
눈이 사방에 다 달렸나?
“우리 예전에 하던 플레이 좀 생각해 봐. 크로스 빼고 나온 게 하나도 없어. 알아?”
“응…….”
“진짜 뒤진다?”
“응…….”
카리스마도 장난 없다.
샬렛도 일리뉴처럼 한 대 맞은 건가? 나이는 두 살이나 더 많은 놈이 찍 소리도 못하는군.
“메니, 너도 똑같아. 내가 기껏 빠져서 공 달라고 하는데 왜 바로 안 줘? 그 타이밍에 줬으면 두 골을 더 넣었을 거 아냐!”
“…미안.”
찍소리도 못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구나.
메넨데즈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너……!”
태양은 오늘 경기를 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 몇 명에게 잔소리를 퍼붓고는 “바나나가 없네?”라는 말과 함께 바나나를 찾으러 나갔다.
그제야 라커룸이 한산해졌다.
혼자 느긋하게 빈둥거리고 있던 실바는 흐흐,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니들이 못해서 우리 어린 왕자께서 화가 잔뜩 나셨잖아. 신하들이 일을 개똥으로 하면 쓰나.”
그 말에 아놀드가 투덜거렸다.
“저게 무슨 왕자야. 왕이지.”
실바는 그런 아놀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왕이 늙으면 왕자가 왕이나 다름없지. 어차피 곧 왕이 될 테니까.”
아놀드는 그리 말하는 늙은 왕을 바라봤다.
이 양반이 저래 보여도 자신이 이곳으로 이적 왔을 당시에만 해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왕이었다.
이렇게 보니 세월 참 야속하구나.
“뭘 봐. 늙은이 처음 봐? 아, 생각해 보니 너도 꽤 늙었구나?”
“늙었지. 당신이 이상한 거지 내년 내후년이면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고.”
그 말에 실바는 잠시 안색을 흘렸다.
뉴캐슬 수비진의 그나마 믿을맨인 아놀드가 은퇴라니.
얘까지 떠나기 전에 수비수를 영입해야하는데… 아니, 당장 1월에라도 누구든 데려와야 하는데 생각이 있나 모르겠다.
“아직 한참 남았어, 아놀드.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은퇴 전에 우승 한 번은 해봐야지.”
이 말은 자신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15년이 넘는 세월 뉴캐슬에서 우승만을 바라보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쓰읍.”
저렇게 잘하는 맨유도 쉽지 않은 걸 생각하면 우승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 * *
[후반전 시작됩니다.]
[전반전 경기는 정말 치열했죠? 많은 팬들이 정말 흥미진진하게 봤을 거라 생각됩니다.]
[윤태양이 연달아 두 골을 넣고 전반전 막바지에 와서는 펠리시아노가 득점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죠? 후반전에는 과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선수들이 다시 필드에 올라 후반이 시작됐다.
뉴캐슬로 기울 것 같던 전세가 펠리시아노의 전반 막판 득점으로 박빙의 상황이 놓이면서 양 팀은 다시 신중하게 경기를 이어갈 것…처럼 보였지만.
[아, 뉴캐슬이 적극적으로 공을 앞으로 전개합니다!]
[빠른 템포로 이어지는 전진 패스! 단숨에 윤태양에게 공이 향합니다.]
약간 처진 위치에서 공을 잡은 윤태양은 공을 끌어 맨유의 센터백을 끌어들이고 샬렛이 들어올 위치로 스루 패스를 보냈다.
샬렛은 공을 보고 부단히 쫓아갔지만, 샬렛을 마크하던 다비즈가 한발 더 빨랐다.
다비즈는 공을 잡은 즉시 걷어냈다.
샬렛은 자신도 모르게 힐끔 윤태양의 눈치를 봤다.
윤태양이 입 모양으로 ‘잘 해라…’라고 말하는 게 보였다.
아까 윤태양이 뭐라고 했더라?
그사이 반디아가 올라와 스로인을 준비한다.
샬렛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위치를 잡으니 반디아가 길게 공을 던졌다.
샬렛은 잽싸게 다비즈를 피해서 공을 쫓아 공을 차지했다.
-내가 컷인 하면 바로 공을 보내!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래, 태양이가 그렇게 말했지.
샬렛은 시선을 들어 태양이 컷 인하는 걸 보고 그대로 공을 찔러넣었다.
빠르게 뻗어나간 공을 태양은 부드럽게 터치하며 그대로 끌고 회전해 자신을 견제하는 세겔을 피하고 그대로 슈팅했다.
떵!
종이 한 장 차이로 공이 골대를 때리고 튕겨 나간다.
아까 공을 놓쳐 실점한 탓인지 집중하던 스토일리코비치가 허겁지겁 튕겨 나간 공을 향해 달려가 라인 밖으로 걷어냈다.
“에이.”
태양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고는 몸을 돌렸다.
샬렛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태양을 바라본다.
“뭐, 인마.”
“……”
“나도 사람이야. 한 번쯤은 놓칠 수도 있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쓰읍……!”
“미안하다. 사실 한 번쯤 눈칫밥 좀 주고 싶었다. 네가 하도 뭐라고 하니까 기가 죽어서 플레이가 안 나오는…….”
“어휴.”
태양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터는 샬렛을 뒤로하고 서둘러 움직였다.
이번에는 산체스의 스로인을 오마르가 잡았다.
오마르는 요리조리 움직이며 비네스빌을 뚫으려 했지만, 쉽지 않자 메넨데즈에게 공을 보냈다.
하지만 상대가 예측하고 있었다.
비엥베뉴가 공을 가로채 오히려 뉴캐슬의 뒷공간으로 공을 찔러넣었다.
모든 선수들이 공을 가로채기 위해 우르르 달려 나갔다.
가장 먼저 공에 도달한 선수는 역시나 펠리시아노였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였다.
펠리시아노가 공을 차지해 달려 나가려는 사이, 어느새 바짝 쫓아온 아놀드와 반디아가 펠리시아노의 양 옆에 서서 펠리시아노를 저지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펠리시아노는 망설임 없이 공을 옆으로 보냈다.
승부욕과 득점의 화신 같은 사람이었지만, 골을 넣겠다는 욕심 때문에 중요한 순간을 날려 버리는 얼간이는 아니었다.
펠리시아노의 패스를 받은 에거튼은 온통 펠리시아노만 견제하고 있던 리첼라가 자신에게 반응하기 전에 빠르게 슈팅했다.
정확하게 골대 하단으로 낮고 빠르게 뻗어나간 공이 골망을 흔들었다.
[아! 골! 골골골! 에거튼의 골입니다!]
[후반 팽팽했던 상황에서 앞서 나가는 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다시 앞서 나가는 맨 유나이티드!]
후반 18분, 득점한 에거튼이 포효하며 관중석으로 달려가다 무릎으로 슬라이딩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툰들은 그런 에거튼을 향해 아낌없이 야유를 보냈지만, 에거튼은 그런 것에 기죽지 않고 그대로 파이팅 포즈까지 취하며 염장을 질렀다.
[이렇게 되면 뉴캐슬은 방금 전 골대를 때린 태양의 슈팅이 아쉽겠습니다.]
[괜찮아요. 아직 1골 차이입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언제든지 동점, 역전이 나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양 팀 모두 다요.]
[새삼 양 팀의 수비력에 문제가 있다는 게 여실 없이 드러나는 경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맨유로서는 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거액의 이적을 몇 번이나 시도했고, 펠리시아노를 필두로 몇 번이나 성공적인 영입을 해왔지만, 희한할 정도로 센터백은 언제나 꽝에 가까웠다.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를 데려와도, 하위권 팀에서 포텐이 터진 선수를 데려와도, 빅클럽에서 몇 년이고 안정적인 선수를 데려와도 마치 무슨 저주에 걸린 듯 실패작이 몇 번이고 나왔다.
솔직히 아쉽긴 해도 세겔과 이녜시오가 그나마 평타는 쳤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수준이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빅클럽 치고는 가장 아쉬운 수비라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뉴캐슬이 노릴 것은 바로 그거였다.
실점을 감수하고 계속해서 몰아붙이는 것.
“그래도 불안하니까 로씨를 수비라인까지 내리고 풀백을 윙백 위치까지 올려야겠네.”
상황을 지켜보던 아르텔리의 말에 수석코치가 분주하게 로씨와 수비라인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뉴캐슬의 포메이션이 343 형태를 띄었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포메이션이 바뀌겠지만, 쓰리백 형태는 계속해서 유지될 거다.
이어서 아르텔리는 린데만과 소비올라를 준비시켰다.
린데만은 완성형 풀백에 가깝지만, 아직은 공격적인 성향이 더 강했다.
반대로 소비올라도 전천후 미드필더였는데, 수비적인 기질이 더 강한 편이었다.
이 둘을 같은 라인상에 두면 효과는 괜찮을 거다.
나이?
윤태양을 생각하면 뉴캐슬에서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아니다.
어린애들을 잔뜩 넣었으니 이번에는 늙은이를 투입해 볼까?
아르텔리는 뒤를 돌아봤다.
급박한 상황에도 다리를 꼬고 등 기대고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는 실바가 보인다.
자세는 동네 한량 그 자체였지만, 그의 눈은 예리하게 필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티.”
“네?”
“자네도 준비하게. 샬렛을 대신해서 들어가 주게.”
샬렛은 잘해주고 있지만, 긴장감이 커서 그런 건지 몰라도 지쳐 보였다.
게다가 저 라인에 어린애 세 명보다는 늙은이 하나쯤 들어가 주는 게 좋아보였다.
“알겠습니다.”
감독의 지시에 실바는 즉각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은?”
“풀타임 뛴 경기가 많지 않아서 가볍습니다.”
“아주 좋군. 자네는 오늘 뉴캐슬의 슈퍼서브가 되어줘야 하네.”
“제가 또 소싯적에 실샤르라 불렸죠.”
본인 이름에 솔샤르를 섞은 건가.
아르텔리는 실바의 농담에 웃음을 흘리고 필드를 바라봤다.
“그래, 슈퍼서브의 원조에게 현역 최고의 슈퍼서브가 우리 팀에 있다고 알려주게나.”
“네, 그러죠.”
[아, 뉴캐슬이 선수 세 명을 한 번에 바꿉니다. 린데만, 소비올라, 실바가 투입되네요.]
미스터 툰, 마테오 실바가 필드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툰들은 하나같이 그를 위한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팬들은 필드 위에 선 그를 보며 기뻐했지만, 맨유 선수들은 시큰둥하다.
다 늙은 선수가 들어와서 뭘 한다고?
느린 발에 예전 같지 않은 순발력, 균형감각, 힘까지 뭐 하나 좋은 게 하나도 없다.
공격수로서는 최악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늙은이도 장점이 있다.
그리고 활용하기 나름이었다.
누구보다 그 늙은이의 마음을 잘 알고 활용하는 필드에 가장 어린 선수, 태양은 눈짓으로 실바에게 무언가를 말하고는 슬그머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뉴캐슬이 공을 가진 시점에서 태양이 묘한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하자 모두의 이목이 태양에게 꽂혔다.
그리고 태양이 공을 잡는 순간 어지럽게 그 주변을 에워싸며 태양이 무슨 짓을 벌이든 막으려고 움직였다.
그사이 필드의 늙은 늑대는 사냥감을 찾아 숨죽이며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