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96화
@CHOOKTAEYANG
[(사진)침대에 엎드려 턱을 괴고 있는 셀카]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뭐야 이거 진짜 윤태양 계정인가?
-어머 왕자저하 ㅠ
-이거 맞음?
-저 사진 단 한 번도 본 적 없음 본인 아니면 불가능함
-축태양ㅋㅋㅋㅋㅋㅋㅋㅅㅂ 커뮤하는구나 우리 태양이?
-ㅋㅋㅋ계정 이름 축태양은 상상도 못했다
-세자저하ㅠㅠㅠㅠㅠ
-WOOOOOOOOW TAEYANG!!
-really?
-진짜 같은데?
-그런데 말 한 적 없다니?
-이거 축협 저격한 거 같은데?
-그러니까 갑자기 계정 만든 것도 그렇고
-대놓고 말하기 그러니까 이거 만들어서 말한 듯?
* * *
-태양, 인증도 받고 SNS 활동을 제대로 하네요?
-네, 이왕 만든 김에 제대로 해보려고요
-그렇군요
-안 말리심?
-아뇨, 저희는 연예 매니지먼트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탈선행위 같은 건… 아시죠?
안나의 말에 나는 히죽 웃었다.
탈선은 안 했지만, 논란거리가 될 떡밥 하나는 던졌다.
논란은 아닌가?
억울한 걸 바로잡는 거니까.
나랑 이야기 한 번 안 해놓고 마음대로 나랑 합의된 것처럼 기사를 올리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 있어야지.
진짜 축협 지영수 파벌은 알아줘야 한다.
어떻게 자기들 마음대로 이런 기사를 올리면 내가 알아서 입을 다물어줄 거라 생각하지?
자기들이 진짜 뭐 되는 줄 아나?
거의 대부분 뭐 되는 거 하나 없는 사람들이다.
대학 축구 라인이거나 프로팀 라인 등등.
어쭙잖은 곳에서 있다가 지영수 밑에 몰려든 어중이떠중이들이 지영수 이름으로 대가리가 커버린 거지.
뭐, 솔직히 얽히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사람들이 축협에 있는데 그들을 위해서 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들이 제대로 지원을 해줄 리도 없고.
겉으로는 영광이 남지만, 그 뒤에는 상처뿐인 선수들만 남는다.
그게 지난 삶에서 지영수 라인이 있는 축협을 위해 16강까지 진출한 우리들의 말로였거든.
이정후 감독이 요번에 연락해서 말 안 해줬음 하마터면 얘들 하는 말에 입 맞춰줄 뻔했다.
뭐, 솔직히 말하면 국가대표? 까짓거 진짜 귀화해 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다.
그래, 진짜 잉글랜드에서 귀화 제의가 오면 삼사자 군단 유니폼 입고 한국보다는 우승할 확률이 더 높은 잉글랜드 국대로 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난 삶에서 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치열하게 뛰었던 그 시절이 좋았다.
동료들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가장 좋았던 건 고아인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고아로 자라면서 실패를 거듭하다 대기만성한 나를 인간 승리의 상징, 한국 국대를 대표하는 정신으로 받들어줬다.
그때 그 고마움, 그 성취감, 국뽕의 짜릿함은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셈이지.
그러니까 태극마크를 외면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국뽕에 절여졌다고 나를 비난할 수도 있지만, 뭐, 국뽕 극혐하면서 국뽕 타령하는 놈들 중에 정상인 놈들 없더라고.
난 그냥 국뽕에 취하련다.
아니, 취하게 해줘야지.
그나저나 SNS 생각보다 재미있네.
팔로워가 늘어나는 것도 재미있고, 내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 걸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번에는 축구하는 걸 올려볼까?”
* * *
@CHOOKTEAYANG
[(영상)귤로 트래핑하는 태양]
[귤 이렇게 계속 두드려 주면 맛있어짐ㅎ]
@CHOOKTEAYANG
[(사진)잭의 정육점 앞에서 티본을 들고 있는 태양]
[고기를 먹는 건 중요합니다.
#잭 정육점]
@CHOOKTEAYANG
[(사진)할아버지, 외할아버지와 피터의 가게에서 점심 식사하는 태양]
[브라운 에일을 좋아하는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와 점심 외식 ㅎ
#만수무강 #사랑합니다]
수시로 올라오기 시작한 태양의 게시물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뉴캐슬 사람과 한국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SNS 팔로워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인스타를 시작한지 고작 이틀 만에 10만 명이나 팔로워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EPL을 초토화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팔로워 수가 적은 것 같지만 실시간으로 팔로워가 오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럴수록 태양이 처음 올린 게시물에 대한 말이 쏟아지고 있었다.
[축협, 도대체 누구랑 이야기를 나눈 걸까?]
[통보식 협의인가?]
[이렇게까지 윤태양을 국대로 데려오지 않으려는 축협의 속내는?]
[축협, 윤태양 말고 국가대표 선발을 막고 있는 선수들 더 있다.]
한동안 밀려났다가 2034 월드컵을 기점으로 간신히 축협 안으로 들어왔던 병폐 세력은 고작 반년도 안 된 시간 만에 위기에 몰렸다.
지영수가 있었을 당시에는 교묘한 언론 플레이와 유럽파 선수들은 함부로 건들이지 않았던 반면, 국가대표 프로젝트로 인해 유럽파 선수들마저 견제한 그들의 말로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만큼 A매치 단 하나도 뛰지 않은 윤태양의 입지가 한국에서 무서울 정도로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윤태양은 마침내 박싱데이를 맞이하고 있었다.
12월 26일.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경기를 치러야 하는 뭐 같은 날 말이다.
프리미어 리그는 원성이 자자한 박싱데이를 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걸까?
전통을 중시해서?
그것도 있긴 하지만, 크리스마스 특수를 누리기 위함이다.
축구에 미친 영국인들은 크리스마스만 되면 파블로브의 개처럼 축구 경기장을 기웃거린다.
구름같이 관중들이 몰리고 아이들 선물로 구단의 유니폼이나 굿즈를 산다.
한 마디로 돈이 된다는 소리다.
그 돈이 되는 경기, 뉴캐슬은 리버풀을 홈으로 맞이했다.
리버풀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공수의 균형이 완벽한 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굳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스타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걸까?
프리미어 리그의 빅 7을 차지하는 팀의 선수들이 결코 평범할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월드클래스로 불리며 발롱도르 후보에 오르거나 할 만한 선수가 없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이는 구단의 재정 문제도 있었지만, 감독의 성향도 있었다.
리버풀의 감독은 축구는 한 명이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스포츠라는 철학을 누구보다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화려한 스타 선수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전술과 팀워크를 중요시했고, 화려한 선수를 살 돈으로 프리미어 리그 주전급 선수들을 여럿 사서 탄탄한 스쿼드를 갖추는 걸 선호했다.
그 덕분에 리버풀은 박싱데이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시즌 말미 선수들이 지치는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는 것도 큰 걱정이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냐?”
실바가 구장으로 들어서며 동료들에게 물어보다 태양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오, 왕자님. 왕자님은 산타한테 선물을 받으셨나이까?”
“산타가 어디 있어요, 세상에.”
태양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하자 실바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산타는 있다.”
“그런 소리는 실바 주니어한테나 하세요.”
“실바 주니어도 산타를 안 믿어…….”
실바 주니어가 몇 살이더라? 9살이던가?
좌절한 실바를 바라보며 리첼라가 낄낄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쟤 어제 산타 복장 입고 아들한테 선물 주려다가 아들한테 한소리 들어서 저래.”
“뭔 소리를?”
“뭐랬냐고? 아빠, 산타는 없는 거 다 알아. 이제 산타 복장 그만 입어, 안 어울려! 이랬단다.”
리첼라의 폭로에 실바가 이를 악물고 리첼라를 바라봤다.
“그만해, 리첼라. 이 망할 고릴라 자식아.”
“네 와이프가 내 와이프한테 다 말했어. 그 말 듣고 방에 들어가서 혼자 울었다며?”
아들 바보가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구만.
실바는 축 처진 그대로 라커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울었다. 아들이 너무 커버렸어.”
9살이 너무 커서 울 정도면 나를 자식으로 둔 우리 아버지는 오열을 하시겠네.
“오늘 선발 아니에요? 경기 준비나 하세요.”
오늘 빅매치인데도 불구하고 태양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고, 실바가 들어갔다.
“끄응, 그래야지. 밴딩 좀 제대로 해야겠다. 어휴, 박싱데이에 하필이면 리버풀이라니.”
태양은 실바를 바라봤다.
“리버풀이 왜요?”
“너 몰라? 아, 리버풀이랑 붙어본 적이 없지?”
“왜요? 경기는 열심히 보는데. 우리 아부지가 리버풀 좋아해서.”
“그거 보면 느끼는 거 없어?”
아, 생각났다.
“맞다… 더티 레즈(Reds).”
“그래, 더티 레즈, 인마.”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라는 철학을 가진 리버풀의 감독은 멋진 사람 같지만, 사실 그다지 멋진 사람은 아니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감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안 풀리면 어김없이 축구2를 넘어 축구3을 보여주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거칠게 축구를 하는지 더티라는 별명은 리즈 유나이티드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 별명이 리버풀에게 붙을 정도였다.
그래서 자국의 콥은 물론이고 전 세계 콥들에게 지금 감독은 사랑받지 못하고 있었다.
감독 경질을 간절히 바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구단은 그를 경질할 생각은 없었다.
비싼 선수를 영입하지 않고 적당히 좋은 성적을 내며 수입이 끊이지 않게 하는데 왜 경질한단 말인가?
참고로 구단주인 기업체도 감독과 함께 욕을 먹고 있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뉴캐슬로서는 달가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것도 선수들이 갈려 나가는 박싱데이이니 더더욱 달가울 수 없다.
게다가 원정경기일수록 더 거칠어지는 게 더티 레즈였다.
“어쩐지 내가 선발이 아니라더니.”
감독은 태양을 지켜주고 싶었던 거다.
“그러니까 말이다. 너 대신 다 늙은 나를 내보내는 거지. 당장 내일 부상당해도 괜찮은.”
축하고 늘어져 말하는 실바의 뒤통수를 아르텔리가 팍 하고 때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하게.”
“아, 감독님!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거친 축구에도 능숙하게 대처할 자네의 경력을 높이 산 걸세.”
“아, 그런 뜻이군요.”
실바는 능구렁이같이 웃었다.
경기 준비를 끝내고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나갔다.
태양은 벤치에 앉았다.
쌀쌀한 날씨에 열선이 깔린 푹신한 벤치에 등을 기대고 경기를 지켜봤다.
“와, 이게 축구야 UFC야?”
태양은 감탄했다.
리버풀은 깊은 태클은 물론이고 서슴없이 몸싸움을 시도했다.
심판이 안 보는 사이에 온갖 반칙은 필수처럼 보였다.
물론,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한 이후 태양은 프리메라리가보다 프리미어 리그가 거칠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거친 경기는 태양으로서도 처음이었다.
아니다.
중국이랑 붙을 때 이랬던 것 같다.
리버풀이 중국도 아니고.
저러니 감독이 욕을 먹지.
태양은 그리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 가운데 리버풀의 코너킥 세트피스 상황이 나왔다.
리버풀은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거칠기 그지없었다.
심판의 눈을 피해 허리를 찌르고 유니폼을 잡아당기더니 점프하는 순간에는 팔꿈치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렇게 뉴캐슬의 선수들을 제압한 리버풀의 센터백이 헤딩으로 득점에 성공한다.
리버풀의 선제골이었다.
“와… 주심 뭐하냐.”
태양은 어이없다는 듯 리버풀 선수들을 바라보다 주심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저 양반이네.”
조엘 스테이너,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그 어떤 주심보다 반칙에 너그러운 주심이었다.
“뭐 됐네.”
그야말로 최악의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