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02화
[이번 시즌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첼시와 뉴캐슬의 경기입니다.]
[특별히 접점이 없던 두 구단입니다만, 어쩌다 보니 이번 시즌 가장 뜨거운 관계가 됐네요.]
프리미어 리그는 오랜 시간 맨시티가 지배하고 다른 한, 두 팀이 도전하는 구조였다.
그 구조가 모처럼 깨지고 우승을 쉬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이번 시즌은 다른 지난 시즌보다 흥행하고 있었다.
우승 레이스의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벌어지는 FA컵의 관심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승을 예측해 볼 수 있는 빅매치였기 때문이다.
[오늘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첼시
FW 세레티/시비/바우프티니
MF 코작/델로아/오렐레나
DF 주니뉴/데 누초/케이퀘/크루즈
GK 데스타노글루
뉴캐슬
FW 레델리/일리뉴/윤태양
MF 알브레히트/메넨데즈/고메즈
DF 린데만/무리시/아놀드/산체스
GK 리첼라
[첼시에서는 완더레이가 부상으로 결장하고, 뉴캐슬 같은 경우에는 박스올과 반디아가 부상으로 이탈했군요.]
[첼시의 미드필더 라인을 생각하면 뉴캐슬 입장에서는 박스올의 이탈이 아쉬울 것 같습니다.]
[네, 어린 린데만 선수와 알브레히트 조합이라니, 왼쪽 라인이 다소 불안해 보이기는 합니다.]
알브레히트는 메짤라 스타일의 미드필더이다 보니 측면으로 빠지는 일이 많았다.
이 부분을 린데만이 메꿔줄 일이 많은데, 린데만이 어리다보니 사람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뉴캐슬 자체적으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린데만에게 부족한 건 경험이지, 실력이 아니니까.
그리고 경험은 없다만 린데만은 경기에 임하는 데 있어서 긴장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다.
본래 스타일대로만 플레이하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아르텔리의 판단은 그랬다.
“뉴캐슬의 왼쪽 라인, 여기가 공략점이다.”
아르텔리는 알브레히트와 린데만을 믿었지만, 히스 조나단은 두 선수가 뉴캐슬의 구멍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알브레히트와 린데만의 성향이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이 둘의 움직임에 따라 잘 공략하면 첼시가 이득을 볼 수 있으리라.
“문제는 수비다.”
히스 조나단 감독은 경기를 시작하기 위해 자기 자리에 선 태양을 바라봤다.
데이터로 예측할 수 없는 유일한 인물.
그야말로 측정불가 그 자체.
히스 조나단에게 있어서 통계 축구를 부정하게 만드는 태양은 바이러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태양을 잘 막고 뉴캐슬의 왼쪽을 잘 공략해야 이긴다.
후자는 자신 있는데, 전자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더 많은 골을 넣어 이겨야 한다는 거겠지.
그때 마침 휘슬이 울렸다.
자신의 선수들이 공을 굴리며 공격적으로 올라간다.
한편, 뉴캐슬 벤치 앞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아르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맞불작전인가.
뉴캐슬을 상대하는 대부분의 강팀이 그랬다.
의도했든, 아니든 어쨌든 더 많은 골을 넣은 팀이 이기는 구도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쉽지 않을 거다.
첼시가 공격을 구사하자 알브레히트와 린데만이 동시에 미드필더 라인에 섰다.
그리고 메넨데즈가 후방으로 빠진다.
뉴캐슬이 워낙 공격적인 팀이고 그 공격의 시작점이 항상 메넨데즈이기에 사람들이 잊고 사는 게 있는데, 메넨데즈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은퇴한 옛 선배들, 그러니까 추아메니나 카마빙가, 발데르데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였다.
오늘 아르텔리는 이 셋에게 후방을 맡겼다.
이들이라면 빈약한 첼시의 공격을 막아설 수 있겠지.
하지만 아르텔리도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바소모 시비라는 존재였다.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하자마자 3경기 다섯 골을 기록한 이 선수는 클럽 브뤼헤에서 뛰던 어린 선수라고 얕볼 수 없는 존재였다.
물론, 아르텔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충분히 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선수가 아직 자신의 장점을 모두 보여주지 않았다는 걸 그조차도 몰랐다.
마르고 175cm 정도밖에 안 된 이 선수가 몸싸움이 강하고 서전트 점프가 굉장히 높다는 걸 몰랐다.
짧은 시간에 경기를 준비하다 보니 그의 대한 자료가 부족했던 탓이었다.
[바우프티니! 공 올립니다!]
[아놀드와 시비가 뛰어오릅니다! 시비 헤딩!]
시비가 아놀드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이 뛰어올라 골대를 향해 헤딩했다.
[골!!]
[첼시의 선제골입니다! 전반 18분 만에 선제골이 나오네요!]
[시비 선수, 서전트 점프가 도대체 얼마나 나오죠? 굉장한 점프력입니다. 아놀드를 압도했어요!]
골을 넣은 바소모 시비는 그대로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다가 관중석을 향해 달려가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쳤다.
[팬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는 바소모 시비! 이적 후 활약을 생각하면 팬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을 만합니다!]
[대단한 선수예요. 어디서 저런 선수를 구해왔는지, 첼시는 스카우터팀에게 보너스라도 챙겨줘야 할 거 같습니다.]
바소모 시비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반 35분, 알브레히트의 공을 빼앗은 첼시가 다시 역습에 나섰다.
히스 조나단의 공략대로 뉴캐슬의 왼쪽 라인으로 타고 오르던 크루즈가 바우프티니에게 연결했고, 바우프티니는 무리시를 끌어내고 그사이에 시비에게 공을 찔러 넣어줬다.
시비는 공을 흘리며 아놀드의 뒤로 파고들어 그를 제친 뒤 슈팅해 득점에 성공했다.
[바소모 시비! 벨기에에서 건너온 스트라이커가 또 해줍니다! 이 선수 대단합니다!]
[바소모 시비!]
바소모 시비는 이번에는 헐크 포즈로 세리머니했다.
그렇게 포효한 그는 흘끔 윤태양을 바라봤다.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첼시 선수들 입에서 지겹게도 나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이곳 프리미어 리그의 이번 시즌 최고 득점자이지 않은가.
그는 아직까지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우리 수비가 잘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보다 별것 아닌가?”
하지만 그 생각은 전반이 끝나고 후반전부터 달라질 예정이었다.
* * *
“푸에취.”
라커룸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재채기가 났다.
솔직히 오늘 나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감기에 걸렸거든.
감기는 잘 안 걸리는 편인데, 여름이가 걸려서 온 바람에 안 옮을 수가 없었네.
“아, 빡세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지 첼시의 수비가 빡세다.
수비의 모체인 완더레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히스 조나단이 철저히 훈련을 시켰다는 소리겠지.
우리 팀 감독도 수비훈련만큼은 철저한 양반인데, 히스 조나단이 이 부분은 한수 위인 듯싶다.
그 와중에 첼시는 우리를 상대로 두 골이나 넣었네.
아직 무리시와 아놀드의 호흡이 완전히 맞지 않은 점도 있었고, 바우프티니와 바소모 시비의 호흡이 잘 맞는 것 때문도 있다.
바소모 시비.
일리뉴를 우리 뉴캐슬이 데려온 나비효과가 이렇게 일어날 줄이야.
저놈은 이번 시즌까지 클럽 브뤼헤에서 뛰다가 AT 마드리드로 이적해서 맹활약하고 AT 마드리드 역대 최고의 이적료를 안겨주고 리버풀로 이적하는 놈이었다.
잘하는 놈이다.
디오스의 시대에서 인간계 최강 중 하나로 꼽혔던 친구니까.
물론, 그런 친구가 한두 놈이 아니긴 하지.
“야, 비시인지 시비인지 하는 놈은 두 골이나 넣는데 넌 뭐하냐? 감기 심한 거야?”
실바가 툭하고 나를 치며 묻는다.
나는 재채기를 한 번 더 하며 말했다.
“훌쩍, 몸이 좀 무겁긴 하네요.”
“감기약이라도 먹지 그랬어?”
“금지된 성분을 뺀 감기약을 찾으니 약효가 별로더라고요.”
“저런.”
실바는 고개를 젓고는 나에게 바나나를 내밀었다. 바나나도 숨기던 양반이 내가 안타까웠나 보다.
“엄청 다네, 이거.”
오늘 바나나는 유난히 달았다.
내가 단 음식이 땡겼던 건가?
그러고 보니 감기 때문에 입맛이 없어서 뭘 제대로 안 먹었구나.
바나나 하나를 먹고 입맛이 돌아 한 개 더 먹었다. 그리고 또 먹었다.
단숨에 세 개를 먹어치우니 좀 살 것 같다.
약빨도 이제야 도는 것 같았다.
몽롱하던 정신이 또렷해진 기분인데.
“태양, 괜찮나?”
아르텔리 감독이 나에게 와서 묻는다.
지고 있으니 똥줄이 타고 계신 모양이다.
“네, 이제 약빨이 도는 거 같네요. 후반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다행이군. 부탁하네.”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일리뉴 앞에 섰다.
“너-는 진짜 내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네가 좀 해줘야 할 거 아냐.”
일리뉴는 내 말을 듣고 말했다.
“일리뉴, 아직, 여기, 어렵다. 적응 중.”
“아니, 한국어 말고 영어를 배우라고, 이 자식아.”
이 자식이 포르투갈어랑 한국어를 섞어서 말하고 있다.
도대체 왜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 배우는 데 열성적인지 모르겠네.
“한국, 갈 거다. 나중에.”
“아니, 지금 사는 곳에 집중하라고. 경기에 집중하고.”
“열심히 하는 중.”
하긴, 한 시즌 만에 적응하긴 어렵지.
근데 첼시에서는 제법 잘해줬었단 말이지.
뉴캐슬보다 첼시의 색깔이 맞는 건가? 아니면 지난 삶에서는 히스 조나단 감독이 하나부터 열까지 조종해 줘서 금방 적응한 건가?
아무래도 우리 감독은 공격에 있어서는 자율적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자, 이제 나가자! 내 선수들! 후반에는 팬들을 기쁘게 해주길 바란다!”
아르텔리의 말을 뒤로하고 라커룸을 나와 필드로 향한다.
첼시 선수들과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데 델로아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밖에 못하냐? 네가 그 정도 밖에 안 될 놈은 아닌데?”
“남 걱정도 다 해주고, 친절하구만?”
“흥.”
뭐야, 왜 갑자기 츤데레인데.
이 녀석도 정상은 아니라니깐.
“후반에는 보여줄게,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
“따, 딱히 보여줄 필요는 없다구.”
응, 싫어.
보여줄 거야.
* * *
[후반전이 시작되고 뉴캐슬의 플레이가 살아난 느낌입니다.]
[윤태양 선수가 전반전에는 좀 무거운 것 같은데, 후반 들어서 움직임이 가벼워 보이네요.]
[시동이 늦게 걸렸나요?]
시작된 후반에서 윤태양은 서서히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시작은 주니뉴를 가볍게 제치고 사이드를 타고 올라가다가 크로스를 올리는 걸로 시작했다.
일리뉴의 헤딩이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벗어나 어시스트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첼시 입장에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위축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두 골이나 앞서있고, 태양은 전반 내내 무력한 반면에 자신들의 스트라이커는 지금 당장 해트트릭이라도 해줄 것 같았으니까.
데스타노글루의 골킥으로 경기가 재개된다.
데스타노글루는 데 누초에게 공을 보냈고, 데 누초는 델로아에게 패스했다.
델로아가 코작과 오렐레나와 공을 주고받으며 서서히 올라가더니 전방에서 1선과 2선끼리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간을 찾아 공격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적절한 찬스에 다시 바우프티니가 공을 잡았고, 바우프티니는 조금 처진 위치에서 골대 쪽으로 얼리 크로스를 올렸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떨어지는 공, 그 공을 향해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은 무리시였다.
무리시는 부지런히 달려 공을 등진 상태에서 바소모 시비의 위치를 확인하고서는 몸을 돌려 공을 걷어내기엔 시간이 걸린다 생각했는지 냅다 오버헤드킥으로 공을 걷어내 버렸다.
무리시가 걷어낸 공을 내려와 있던 메넨데즈가 차지했다.
메넨데즈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최전방으로 롱패스를 보냈다.
빠르게 뻗어나간 공은 일리뉴에게 전달됐고, 일리뉴는 자신에게 붙은 데 누초를 벗겨내며 앞으로 공을 찔러줬다.
일리뉴가 찔러준 공은 윤태양의 발에 정확하게 안착했다.
윤태양은 자신의 뒤에 붙은 케이퀘를 등으로 버텨내며 발등으로 머리 위를 넘기는 플릭과 동시에 케이퀘를 축으로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러고는 불규칙하게 바운드되는 공의 타이밍을 맞춰서 발리로 슈팅했다.
철썩!
공이 바나나처럼 휘어서 골망을 갈랐다.
“와, 잘 휘었네. 바나나를 먹어서 그런가.”
놀라운 골을 선보인 태양은 으레 그렇듯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총총 걸어가 공을 챙겨 하프라인으로 걸어갔다.
델로아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미친놈…….”
설마하니 보여준다고 했다고 진짜 보여줄 줄이야.
도대체 전반에는 왜 못한 거야?
알 수 없는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