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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103화 (103/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03화

이게 축구 게임도 아니고 현실인 만큼 계속해서 한곳만 공략하다 보면 내성이 생기는 법이다.

첼시의 뉴캐슬의 왼쪽 라인 공략은 더는 통하지 않았다.

무리시는 린데만과 알브레히트와 호흡을 맞춰갔다.

메넨데즈의 넓은 시야도 첼시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조금 고전하고 있는 건 피지컬 적으로는 아쉬운 편인 아놀드였지만, 이 역시 메넨데즈와 산체스의 지원으로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변한 뉴캐슬은 공을 따내며 오히려 전방으로 공을 보내 공격하면서 기세를 잡아갔다.

그 가운데 윤태양이 또 공을 잡았다.

공을 잡은 윤태양은 주춤주춤 상황을 보다가 사이드로 빠져나갔다.

치고 달리는 그 속도가 첼시 선수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윤태양은 평소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아서 그렇지 달리기 시작하면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상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매우 빨랐다.

뉴캐슬은 아직 몸이 성장 중인 윤태양이 무리해서 속도를 내다가 무릎에 부하를 줘 부상을 당하진 않을까 우려했지만, 윤태양만큼 자기 몸을 아끼는 사람은 없었다.

필요할 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만 그는 전력을 다해 달렸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단숨에 최전방까지 올라선 윤태양은 코너킥 라인을 타고 골대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라인을 타고 달리는 윤태양을 향해 후방에서 대기하던 데 누초가 달려들었다.

태양은 데 누초를 제칠 것처럼 마주 달려들다가 왼발 아웃프론트로 공을 패스했다.

낮고 빠른 패스가 향한 곳은 골대 정면으로 달려오던 일리뉴였다.

일리뉴는 골대 왼쪽을 노리고 전력을 다해 슈팅했다.

무서운 속도로 뻗어나간 강력한 슈팅이 그대로 골망을 뒤흔들었다.

[일리뉴우우우! 골입니다아아아아! 동점! 동점골이 터졌습니다!]

[이거죠! 이게 뉴캐슬이죠! 공을 빼앗고 역습 찬스를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히스 조나단 감독은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는 주머니에서 니코틴 껌을 꺼내 거칠게 씹었다.

포효하는 일리뉴를 잠시 바라보던 히스 조나단은 선수들에게 더 이상 뉴캐슬의 왼쪽 라인을 공격하지 말라고 싸인을 보냈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약점은 오히려 반격의 기회를 줄 뿐이었다.

감독의 지시대로 재개된 경기부터 첼시는 더는 뉴캐슬의 왼쪽을 공략하지 않았다.

2선 라인에서 빌드업을 하며 수비라인의 빈틈을 노렸다.

여기서부터 린데만과 산체스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두 선수 모두 인버티드 풀백으로 언제든지 중앙 지원이 가능했고 필요에 따라 어디에 머리를 채워야 할지 판단력이 좋은 선수들이었다.

둘이 서로 교차하듯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첼시를 막아섰다.

메넨데즈도 오늘 뉴캐슬에서는 처음으로 3선과 2선, 그리고 그 가운데를 오가며 수비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이제야 뉴캐슬의 수비 체제가 갖춰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첼시는 라인을 더더욱 올릴 수밖에 없었다.

델로아가 공격수 라인까지 올라가고 코작과 오렐레나가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까지 올라서 뉴캐슬을 압박했다.

델로아는 오늘만큼은 뉴캐슬과 만나기만 하면 제 기량을 발휘 못하고 패배하던 지난 경기를 떨쳐내겠다는 듯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알브레히트와 메넨데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린데만을 끌어내고는 그 공간으로 공을 찔러준다.

날카로운 패스를 시비가 받고서 몸을 빙글 돌리며 골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앞을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무리시.

두 선수 모두 겨울 이적시장에서 양 팀의 아쉬운 부분을 채워준 선수들이었다.

벨기에의 사냥꾼 시비가 골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움직였고, 브라질의 젊은 철벽 무리시가 게걸음을 치며 시비의 길목을 계속해서 막아섰다.

시비는 주춤주춤 스탭을 밟다가 박자를 빠르게 가져가며 왼쪽으로 빠지는 무빙을 보였다.

무리시의 다리가 슬쩍 움직이는 순간, 시비는 잽싸게 엇박을 타며 오른쪽으로 파고든다.

무리시는 즉시 움직인 다리로 땅을 박차고 시비가 들어가던 자리로 다리를 뻗어 정확하게 공을 걷어냈다.

시비가 무리시의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이, 시비의 발을 떠난 공을 아놀드가 차지했다.

아놀드는 즉각 메넨데즈에게 패스했고, 메넨데즈는 몸을 빙글 돌리며 전방을 향해 롱패스를 보냈다.

나날이 발전하는 뉴캐슬의 역습이 시작됐다.

피지컬로 데 누초와 코작을 밀어내며 공을 차지한 일리뉴는 가까운 레델리에게 바로 패스했다.

공 받은 레델리는 일리뉴 덕에 만들어진 하프 스페이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 순간 공간을 가로막는 주니뉴와 케이퀘.

레델리는 그대로 케이퀘의 머리 뒤로 공을 차올렸다.

케이퀘의 등 뒤로 잔디를 빠르게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케이퀘는 등골이 다 서늘했다.

뒤늦게 몸을 돌려보니 태양이 공을 가지고 골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다.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레델리의 공을 받고 몇 걸음 달려간 태양은 골키퍼가 각을 좁혀오는 걸 확인하고는 그대로 공을 차올렸다.

태양의 로빙슛이 곡선을 그리며 골키퍼의 머리를 넘겨 골대 안으로 통통 튕기며 들어갔다.

와아아아아아아!

[골입니다! 윤태양의 동점골!!]

[윤태양! 멀티골입니다! 첼시를 상대로 첫 멀티골을 만들어냅니다!]

첼시가 야유를 부리고 원정석의 뉴캐슬 선수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태양은 멍하니 골대 앞에 우뚝 서서 잠시 있다가 손뼉을 마주쳤다.

“아, 그러고 보니…….”

쟤들이 원수같이 굴어서 그렇지 첼시를 상대로 1골 이상 넣어본 경기가 없네.

태양은 그걸 상기하고는 냉큼 골대로 달려가 공을 챙겨 하프라인으로 달려갔다.

[윤태양 선수! 서둘러 하프라인으로 달려갑니다. 후반에 와서야 시동이 걸린 건가요? 승부욕에 불타오른 것 같습니다!]

[후반도 어느덧 15분가량 남았습니다.]

[네, 한, 두 골이 터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첼시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죠. 경기의 승패는 끝날 때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시 휘슬이 울린다.

첼시가 공격하고 뉴캐슬이 막아선다.

델로아가 코작에게, 코작이 세레티에게, 세레티가 공간을 열며 시비에게 시비가 슈팅하려는 듯하다가 뒤에서 달려온 델로아가 슈팅!

[리첼라 막습니다!!]

양손으로 가뿐하게 델로아의 슈팅을 막아낸 리첼라가 전방으로 공을 찬다.

빠르게 뻗어나간 공을 일리뉴가 헤딩으로 따내고 윤태양에게 패스했다.

“해트트릭, 해트트릭!”

윤태양은 해트트릭을 중얼거리며 달렸다.

주니뉴와 데 누초 사이를 빠른 발과 유려한 드리블로 빠져나간 뒤 케이퀘를 두고 옆으로 굴려서 그대로 오른발 슈팅, 간발의 차이로 골대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씨.”

마음이 조급해진 건지, 감기약 때문인지 영점이 잘못 맞았다.

태양은 머리를 북북 긁고는 뒤로 물러섰다.

다시 첼시의 공격이 이어진다.

그걸 막아낸 뒤에는 뉴캐슬의 반격이 시작되고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공수가 바뀌는 가운데 추가골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가는 가운데 어느덧 시간은 인저리 타임까지 포함해도 4분 남짓 남은 상황.

태양은 머리를 긁적였다.

“하, 이상하게 첼시랑 하면 공이 안 긁힌단 말이지.”

벌써 날려 버린 슈팅만 세 개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였다.

그걸 좀 더 안으로만 했으면 세 골은 더 넣은 건데.

열심히 뛰어서 그런지 몰라도 약빨도 빠르게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콧물이 나기 시작하고 재채기가 나려고 한다.

“응? 막았어? 우리 차례구나.”

태양은 다시 골대 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에는 기필코 골을 넣으리라 마음먹고 위치를 잡아가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후방에서 달려온 메넨데즈가 중거리 슛을 때렸는데, 그게 데스타노글루의 펀칭에 맞고 태양이 있는 쪽으로 날아온 거였다.

태양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당장 붙어있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태양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을 차지했다.

슈팅이다, 슈팅.

그 순간이었다.

주니뉴가 악착같이 달려와 태양의 옆에 붙었고, 데 누초가 태양의 앞을 막아섰다.

아, 이러면 슈팅하기 힘든데.

해트트릭은 물 건너간 건가.

아니, 해트트릭 이전에 무승부로 전, 후반이 마무리 될 판이었다.

이러면 재경기다.

첼시도 뉴캐슬도 원하지 않는 상황이 된다 이거다.

‘그럴 수는 없지.’

태양은 데 누초를 제칠 듯이 달려들며 데 누초의 발을 묶어둔 채 공을 옆으로 패스했다.

패스 대상을 보지 않은 노룩 패스에 데 누초의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태양이 패스한 공은, 일리뉴의 발 앞에 있었다.

일리뉴는 오른쪽에 케이퀘를 달고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왼발을 휘둘렀다.

깡!

일리뉴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때린다.

아, 실패인가.

재경기구나.

그 찰나의 순간 상황을 본 모두가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 사이, 골포스트 옆을 때린 공이 튕겨서 골라인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골입니다!]

[골이에요!]

일리뉴는 골을 넣고 크게 포효하며 세리머니했다.

[아, 첼시 선수들이 허망한 표정으로 일리뉴를 바라보네요.]

[시간상 마지막 골이니까요. 이미 인저리 타임이거든요? 주심이 아무리 관대해도 추가 시간은 1분도 안 내줄 겁니다.]

해설의 말대로였다.

위치로 돌아가 첼시 선수가 힘없이 공을 굴리자 주심은 곧 바로 휘슬을 불렀다.

[경기 끝났습니다!]

[FA컵 4라운드! 승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입니다!]

경기가 끝난 순간 태양은 잔디에 주저앉았다.

그동안 경기 뛰라고 참아준 감기 기운이 한 번에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 * *

[화제의 FA컵 4라운드 첼시 VS 뉴캐슬 UTD, 승자는 뉴캐슬!]

[감기인 상황에서 멀티골로 팀의 승리를 견인한 윤태양.]

[히스 조나단, 우리 선수는 완벽했다, 내가 부족했을 뿐. 하지만 리그에서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아르텔리, 축구의 여신이 우리를 향해 웃어줬다. 역시 축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

-윤태양 감기라니 ㄷ 그래도 멀티골이네

-해트트릭 할 줄 알았는데 아쉽다

-첼시 수비가 대단하긴 해

-축태양, 아직 스탬퍼드 브릿지 갖지 못해

-세자 저하 ㅠㅠㅠ 아픈데 몸조심하세요 ㅠㅠㅠ

-내가 감기 치료해 주고 싶으다ㅠㅠ

-머리색 너무 잘 나왔다 ㅠ 왜케 어울림? ㅠㅠㅠ

-세자 저하 기다리세요 ㅠ 우리 조공 조만간 도착할 거예요 ㅠ

-조공? ㄷ

-와 조공 그거 아니냐 연예인이나 아이돌이 받는 거? 윤태양 팬클럽이 그 정도나 됨?

-10만 넘은 지 오래됐다 장난 아님

* * *

FA컵이 끝나고 일주일이나 시간이 비었다.

나는 이틀이나 쉬고 감기가 다 나은 뒤에야 훈련장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태양이 어머님! 이것 좀 가져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구단 스탭이 우리 엄마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세요?”

“윤태양 선수에게 온 팬들이 보낸 선물이 너무 많아서요, 가시기 전에 싣고 가셔야 할 거 같습니다.”

“선물이요?”

선물?

한국에서 과자 같은 거라도 보냈나?

선수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초코파이 이런 거 많이 보내더라고.

지난 삶에서도 그랬거든.

역시나 과자였다.

아니, 과자뿐만이 아니라 온갖 것들이 뉴캐슬에 내 이름으로 보내졌다.

“어머… 이거 우리 차로 다 가져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막상 선물을 다 꺼내온 스탭들은 산더미같이 쌓인 선물을 보고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엄마는 멍하니 선물을 바라보다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태양아, 이거 봤니? 선물로 살림을 차려도 될 거 같은데?”

“…그러게요.”

아니, 이게 뭐야.

왜 지난 삶에서 못 받은 것들을 이렇게 받는 건데?

뭐가 다른데?

벌크업 잘못해서 마동석 같았던 거 빼고, 고생 안 해서 안 늙은 거 빼고, 잘 먹고 잘 커서 피부 고와진 거 빼고…….

아니, 생각보다 많이 달라진 모양이다.

그나저나 저거 어떻게 가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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