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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115화 (113/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15화

덴마크와 경기 당일이 찾아왔다.

국가대표로 합류하면서 어린 나이에 태극전사가 됐다는 뭔가 설레는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미 한 번 생활해 봐서 그런가 금방 익숙해졌다.

취재진이 지나갈 때마다 수시로 사진을 찍는 것도, 시도 때도 없이 염치를 무릅쓰고 마이크를 들이대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런 나와 달리 이비카 감독은 경기가 끝나기 전까진 그 어떤 인터뷰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선수들 모두 대환영이었다.

아, 물론, 몇몇 사람들은 인터뷰가 마려운 사람들도 있었다.

말 그대로 마려워한다.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기자들만 보면 입이 간지러운지 끙끙거리면서 쳐다본다.

대표적으로 배상현이 있었다.

“야, 너는 왜 인터뷰를 못해서 안달이야?”

“너는 팬이 넘쳐나지만, 나는 팬이 없잖아. 얼굴을 좀 팔아야 한 명이라도 생기지 않겠냐.”

“고작 팬 때문에?”

“너 팬 무시함?”

“야, 팬 같은 건 잘하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거야.”

그 말에 배상현은 턱을 긁적였다.

“아인트라흐트에서 나름 데뷔전도 잘 치르고 했는데 팬 안 늘어나던데?”

“그럼 외모 문제라고 해두자.”

“아오, 이 싸가지…….”

배상현은 은근 놀리는 맛이 쏠쏠하다.

그나저나 이제 진짜 경기구나.

라커룸에 들어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내 자리를 바라봤다.

YOON.T.Y

7

태극기와 축협의 마크인 호랑이 패치가 달려있는 새하얀 어웨이 유니폼이 걸려있다.

7번.

지금까지 박민규가 사용하던 번호였다.

이걸 내가 왜 가지고 있냐고?

감독이 준 거냐고?

절대 아니다.

감독이 바보가 아닌 이상 등번호라는 게 선수에게 어떤 건지 모를 리가 없었다.

감독도 어지간하면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게 바로 선수의 등번호다.

이건 놀랍게도 박민규가 나에게 넘긴 거다.

믿을 수 없겠지만, 진짜다.

아마 이 녀석 전략을 바꾼 듯하다.

나에게 등번호를 물려준 마테오 실바를 벤치마킹해서 미담을 만들고 친분이 있는 척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거지.

뭐, 사실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다.

저놈은 나에게 7번을 물려준 대신,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어진 선배의 10번을 차지했으니까.

저놈이라면 7번이나 10번이나 가치가 비슷하니까 미담까지 만든 지금이 더 만족스러울 거다.

와, 이 정도면 나… 박민규 박사는 몰라도 학사 학위 수준은 되지 않나?

아, 그리고 오늘 나는 선발이 아니다.

주요 전력인 내가 왜 후반 투입이냐고?

“잘 지켜보고 선수들을 파악해. 연습이나 훈련만으로는 보지 못한 부분이 분명 보일 테니 말이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지.

나는 벤치에 앉아서 경기장을 바라봤다.

파르켄 스타디움은 뉴 세인트 제임스 파크보다도 작았다.

들어올 수 있는 관중은 3만 8천 명 정도, 6만 명을 수용하는 우리 구장의 절반 수준 밖에 안 된다.

그래도 유럽은 유럽인가.

그 경기장이 온통 붉은 유니폼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덴마크의 유니폼이다.

교민 분들이나 여기까지 와서 경기를 보러온 사람도 보였다.

그들도 대부분 붉은색 한국 유니폼을 입고 있어 찾기 힘들 뻔했지만, 하나같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어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휘슬이 울린다.

덴마크는 1군 선수들이 모두 출전한 상황이었다.

주목할 선수는 아스날의 수문장인 브로리크.

사실상 덴마크 유일한 빅리거라 할 수 있었다.

필드 플레이어 중에 주목할 선수는 마티아스 피터센이 있었다.

덴마크 슈퍼리가의 미드실란에서 뛰는 선수다.

그리고 누가 있나… 아, 쟤도 있네.

프레드릭 얀센.

얘는 올해 19살 어린 선수인데, 마찬가지로 미드실란에서 뛰고 있다.

얘는 지난 삶에서 AT 마드리드에서 뛰었기 때문에 몇 번이고 붙어본 적 있다.

아직은 아니지만, 추후 AT 마드리드의 주전으로 활약할 정도로 성장할 친구였다.

음… 아직 그 정도로 크지 않았어도, 우리 팀에게는 위협적인 선수려나?

그때였다.

요주의 인물인 마티아스 피터센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얼리 크로스가 단숨에 공격수인 안데르센에게 전달됐다.

안데르센은 공을 한 번 옆으로 접고서 곧 바로 골대를 향해 슈팅했다.

그 앞에 있던 유성재가 순발력을 발휘해 다리를 들어올려 허벅지로 그걸 막아낸다.

아, 저거 아플 텐데.

허벅지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유성재는 고통을 호소할 틈도 없이 떠오른 공의 위치를 파악하고 뛰어올라 공을 걷어냈다.

과연 유성재!

그렇게 생각한 순간 걷어낸 공을 우리 팀 미드필더가 받아내기 전에 프레드릭 얀센이 공을 받아 다시 피터슨에게 전달했다.

피터슨은 공을 가지고 측면으로 진입하려는 듯 모션을 취해 윤진용을 속이고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이번에는 우리 팀의 김호가 길목을 차단하자 그는 어느새 같은 라인까지 올라온 얀센에게 공을 패스했다.

유성재와 박동근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그 탓에 중앙이 활짝 열렸고, 얀센은 골대를 향해 힘차게 슈팅했다.

신호성이 예상했다는 듯 공을 막아냈다.

아쉽다.

공을 막아낸 것까지는 좋은데 아까 같이 중앙이 열린 상황에서는 신호성이 이를 지적해 주고 조율했어야 한다.

신호성의 아쉬운 점이 여기서 보이네.

수비라인 호흡도 조금 아쉽다.

서로 위치를 파악했어야 하는데 너무 최전방 선수들에게만 맞춰져 있었다.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지.

덴마크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팀워크에 있었다.

현 시점에서 덴마크 국대의 구성은 덴마크 수페르 리가 정상을 다투는 양대산맥인 미드쉴란과 쾨벤하운 소속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필드 위에 두 팀이 아닌 선수는 고작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팀워크가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시아에서 아웅다웅하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낮은 전력으로 언제나 유럽의 강호들을 상대해야 했으니 경험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국을 상대로 3대0으로 이기는 것보다 프랑스한테 3대0으로 지는 게 더 좋은 경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모두가 제각각의 팀들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떤 전술이든 빠르게 적응하는 머리 좋은 선수라면 모를까, 다른 곳에 있다가 뭉친 선수들이 그것도 새로운 감독 부임 아래 새로운 전술로 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감독은 그걸 알고서 우리가 덴마크도 이기지 못할 거라 말한 게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면 상대 전적도 우리가 1무 1패로 밀리니까 우리가 하찮게 여길 팀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호흡이 맞지 않아도 우리 수비수들 개개인의 실력이 괜찮아 잘 막아내고 있다는 거다.

그래도 아슬아슬한 건 어쩔 수 없다.

이 맛에 FC 코리아 팬이 되는 건가.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잖아.

쫄깃하니 심장 떨어질 것 같은 그런 영화 말이야.

하지만 수비가 탄탄하고 박민규와 조동호를 중심으로 하는 공격진이 구성되어 있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우리 팀은 지금 유난히 중원이 약했다.

442 포메이션에서 중원의 두 선수, 김호와 이현석은 수비적인 롤에 특화된 선수였다.

덴마크 선수들을 잘 막아내고 있었지만, 오늘 날을 잡은 듯 미쳐 날뛰는 프레드릭 얀센이 문제였다.

중원을 마구 헤집고 미친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럴 때는 공격적인 미드필더 하나쯤은 있어줘야 할 텐데.

흘끔 옆을 바라봤다.

이 팀에서 공격적인 롤과 플레이메이커 롤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선수, 김… 현찬수가 옆에 있었다.

갑자기 그와 첫 만남이 생각난다.

처음 봤을 때 그에게 물었지.

“형은 왜 이름이 현찬수예요?”

차마 부모님이 왜 이름을 그따위로 지었냐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나? 이름 찬수인데? 성이 두 개야. 아버지 성이 김씨고 엄마 성이 현씨야.”

…그저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팀 구성을 보면 433이 나을 것 같은데 왜 감독은 442를 들고 왔을까?

내가 출전하기 전에는 최대한 수비적으로 가서 점수를 내주지 않겠다는 건가?

그것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이고, 가만 생각해 보니 2034년 월드컵에서 그 엉터리 감독이 보여준 전술이 442였다.

뭐, 아주 엉터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대패는 안 당하고 항상 최소실점으로 졌으니까.

거북이처럼 막기만 바쁘고 휘둘리다가 끝나서 그렇지.

그때였다.

“아.”

미쳐 날뛰던 프레드릭 얀센이 기어이 사고를 쳤다.

중원과 수비진을 단숨에 꿰뚫는 엄청난 스루패스를 찔러줬고, 그걸 덴마크의 공격수인 안데르센이 골로 연결한 거다.

덴마크 팬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안데르센이 포효했다.

스코어는 1대0.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전반을 마무리 지었다.

전반을 치열하게 보낸 팀은 허무한 표정으로 라커룸에 들어왔다.

다들 조금은 지친 표정이다.

하긴 그렇게 개같이 뛰었는데 안 지치는 게 이상하지.

감독은 라커룸에 모여든 선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전반을 겪으면서 느꼈을 거다. 2034년 너희들의 전술과 비슷하다는 걸 말이다.”

역시 그때 전술을 구현한 건가?

도대체 왜?

“다들 느끼다시피 실점을 많이 하지 않지만, 주도권을 뺏긴 채 휘둘리는 축구를 하고 있지. 이런 전술로는 너희들이 만만하게 본 덴마크조차도 이길 수 없다.”

감독은 잠시 선수들을 보다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 상황을 만든 이유는 하나다. 너희들의 수비 조직력을 확인하고 싶었거든. 그러기 위해선 가장 익숙한 전술을 가져와야 했지.”

그래서 그런 건가.

“후반에는 전술을 바꾼다. 433, 정확히는 4213으로 간다.”

감독은 그리 말하고 태블릿TV에 포메이션과 선수들의 이름을 옮겼다.

FW 김현수/조동호/박민규

MF 윤태양

김호/이현석

DF 윤진용/유성재/박동근/우태현

GK 신호성

투톱을 이루던 선수 하나를 빼고 미드필더 자리에 내 이름이 들어갔다.

“수비라인은 지금처럼 해주면 된다. 기죽지 마라. 단지 오늘 프레드릭 얀센의 컨디션이 좋을 뿐이고, 너희들이 아직 팀워크가 물이 오르지 않았을 뿐이니까. 이대로 최선을 다해 막아주면 된다.”

그래, 초반에 좀 아쉽긴 했지만,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잘해주긴 했어.

“공격진은 내가 별도로 지시한 것 말고는 평소 하던 플레이를 보여줘라. 더 많은 걸 지시하기에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적으니까. 그러니 평소 보여주던 플레이로 나에게 어필해라. 나에게 너라는 존재를 어필하란 말이다.”

선수들의 눈이 빛났다.

“자, 나가자. 너흰 할 수 있다.”

감독은 그리 말하고 선수들을 내보낸다.

그렇게 그들을 뒤따라 복도로 나서는데 감독이 나를 붙잡았다.

“태양.”

“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수가 있다. 혹시 아나?”

“어, 음…….”

크로아티아라면 뻔하지.

“루카 모드리치?”

“맞다.”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고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의 루카 모드리치가 돼다오.”

감독이 나에게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네.”

까짓거 해드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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