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120화 (118/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20화

[친선경기 2연승, 이비카호 1기 해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태극전사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보다. 이비카 호는 어디까지 날아오를까?]

[이비카 호의 황태자, 윤태양.]

[뉴캐슬로 복귀하는 윤태양.]

[A매치 2경기 3골 3도움, 과연 윤태양!]

이비카호가 출범하고 처음으로 가진 친선경기에서 덴마크와 강호 네덜란드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대표팀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채로 해산하게 됐다.

“제법 잘하더라. 더 잘해져서 보자고.”

나는 대표팀에서 가장 친하다고 볼 수 있는 배상현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너보다 더 잘해져서 형 소리 들을 거다.”

“그건 좀.”

“하여간 질 생각을 안 하는구나.”

축구선수가 질 생각을 하면 큰일 나지.

나는 또다시 우리 구단주 폐하의 비행기를 타고 뉴캐슬어폰타인으로 돌아왔다.

“쓰읍.”

공기가 익숙하다.

이제는 여기가 내 고향이요 집이란 생각이 든다.

“아, 한식 땡긴다.”

짧고 타이트한 일정이라서 이번에는 대표팀 전담 요리사가 오지 못한 상태로 현지 호텔 음식을 먹어야 했다.

뭐, 친선경기니까 당연한 거지만, 그 말인즉 한식을 먹을 일이 없었다는 거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고 느끼는 게 지난 삶에서는 집밥이란 걸 먹어본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내가 뛰던 곳마다 한식당은커녕 한인 마트도 찾기 어렵다 보니 한식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식생활 자체가 현지에 그냥 맞춰지는 거지. 고아가 가릴 게 뭐가 있나? 이런 심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삶은 다르다.

집에서 먹는 집밥이 있고, 그 집밥이 한식이라서 그런지 며칠 안 먹으면 한식이 그리워진다.

물론, 한식만큼 그리운 건 가족들이다.

“아들!!”

집으로 들어와 현관을 열기 무섭게 엄마가 나를 반겼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아들! 고생했네!”

엄마가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엉덩이를 두들기신다.

“어어? 우리 장손 온 겨?”

“아이고, 우리 손주 왔구나!”

두 분 할아버지가 뒤이어 현관까지 내려와 나를 반기신다.

“다녀왔습니다,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려, 그려. 이, 고생혔어. 국위선양하느라 참으로 고생혔어.”

“국위선양은 좀… 하하.”

“이? 아니지, 국위선양이지! 온 국민이 우리 장손 뛰는 거 보고 좋아했으니 말여. 안 그랴, 사돈?”

“그럼! 그렇고말고. 우리 손자가 온 국민을 기쁘게 했으니 그거야말로 국위선양이지! 암!”

국위선양이라.

요즘은 쉽게 나오기 어려운 말이었다.

해외 나가서 내가 잘하는 걸 가지고 국위선양을 운운하는 시대는 아니니까.

엄밀히 국뽕이라는 다소 안 좋은 말로 통용되는 시대지.

물론, 잘하면 국뽕에 취한다며 좋아하는 건 여전하다.

오면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니 너도 나도 주모를 찾기 바쁘더라고.

나야 기분 좋지.

그나저나 이 맛있는 냄새는?

내가 코를 벌름거리자 엄마가 씨익 웃으시면서 말했다.

“배고프지? 엄마가 그럴 줄 알고 상 차리고 있었지. 얼른 손 씻고 와서 먹어.”

“네, 엄마.”

서둘러 손을 씻고 식당으로 들어가니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꼬리곰탕, 칼칼하게 끓인 된장찌개, 갈비찜, 각종 전에다가 삼색나물… 세상에 저건 뭐야?

“꼬막무침?”

“어어, 꼬막은 아닌데, 영국도 갯벌이 있어서 비슷한 조개가 있더라? 외할아버지가 발견했지 뭐니. 그거 사다가 한 번 무쳐봤어.”

와, 이건 생각 못했다.

꼬막무침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1티어다. 거짓말이 아니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 고르라고 하면 게장이랑 꼬막무침 중에 고민할 거다.

그러고 보니 게장이 먹고 싶네.

뭐, 꼬막 무침 먹는 게 어디야.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그런데.

“어머, 하나를 안 꺼내왔네.”

믿을 수가 없게도 엄마가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가져오셨다.

“아니, 이게… 이게 왜 여기?”

내가 놀라서 묻자 엄마가 말했다.

“런던 한식당에서 게장을 만들어 팔더라. 영국 전국 배송이 가능하다 해서 배송해 봤지. 맛이 괜찮더라. 우리 아들 꼬막이랑 게장 젤 좋아하잖아?”

“역시…….”

우리 엄마다.

엄마 최고.

나는 모처럼 과식을 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과식해서 살이 좀 쪄도 좋으니 실컷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을 정도였다.

* * *

집으로 돌아오고 하루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구단에 합류했다.

“오! 윤태양 아니야?”

라커룸으로 들어오자 실바가 나를 반겼다.

“마티, 마티는 훈련도 건성으로 하면서 출근은 누구보다 빠르네요. 변함없이.”

“네가 어른이 되면 집에 있다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 거야.”

“뭔 소리에요, 그게.”

“아직은 몰라도 된단다. 그나저나 국가대표로 뛰어보니 어때? 좋디?”

“말해 뭐해요.”

그 말에 실바는 피식 웃었다.

“그래, 국가를 대표한다는 건 말로 형언할 수 없지. 햐, 나도 국대 뛰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야.”

실바가 언제 국대 은퇴를 했더라? 확실한 건 시간이 괘 많이 흘렀다는 거다.

나이를 먹을수록 국대랑 클럽을 병행하기 힘드니 선수들 대부분은 삼십대 초반 즈음에는 국대 은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그게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는 미덕 말이다.

적절하게 자리를 비켜줘야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잘 되니 말이다.

“네덜란드 놈들이 네 욕 좀 했겠군.”

“딱히. 오히려 싸인 받으러 막 오던데요?”

“이야… 그놈들은 벨도 없다냐?”

“나야 모르죠.”

실바와 시시덕거리며 아침 대신으로 바나나를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누군가 라커룸 안으로 들어왔다.

“오, 무리.”

“…무리가 아니라 무리시.”

“그래, 무리.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러고 보니 너도 요번에 국대 차출됐잖아? 잘하고 옴?”

무리시는 배상현과 비슷한 케이스로 국대에 합류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 붙박이 주전이 부상을 당해 이탈하면서 프리미어 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낸 무리시에게 기회가 주어진 거다.

A매치 기간 중에 다른 나라 소식을 듣지 못해 물었더니 무리시가 씨익,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우루과이 놈들을 짓밟아주고 왔지.”

상대가 우루과이였구나.

“이겼다는 소리야?”

“당연하지! 일리뉴가 두 골을 넣어서 이겼어!”

그래, 그러고 보니 일리뉴도 국대지. 동네 바보 같은 놈이라 잊고 있었다.

그래도 그놈 천하의 브라질 국가대표 부동의 스트라이커인데 말이야.

“일리뉴가 왔다!”

하여간, 양반되긴 그른 자식이다.

귀신같이 지 얘기하니 출근하네.

“그나저나 한국어 말고 영어 쓰라고 이 자식아.”

“오! 태양! 너! 왔을 줄 알고 썼다. 한국말!”

도대체 영어 실력은 잘 안 늘면서 한국어는 왜 이리 습득이 빠른 거냐고.

한국어 강사라도 두고 배우나?

“경기 잘하고 왔나, 태양?”

“너보다 잘하고 옴.”

“그랬겠지.”

장난으로 도발한 건데, 순순히 수긍하면 어쩌냐, 재미없게.

아무튼, 지겹게 보는 얼굴들인데 이렇게 하나, 둘 다시 보니까 반갑긴 하네.

그렇게 선수들 모두가 출근하고 훈련을 하는 일상이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온 리그 경기, 30라운드의 상대는 사우스햄튼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내 어시스트로 일리뉴와 오마르가 득점을 했지만, 작정하고 준비한 사우스햄튼의 세트피스로 후반에만 세 골을 내주며 모처럼 패배하게 됐다.

이래서 축구란 알다가도 모른다는 거다.

하긴, 아무리 휴식을 취하고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후반기에다가 A매치 때문에 장거리 이동까지 하고 온 선수들이 많은 우리 팀이 100% 활약한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걸 수도 있겠다.

문제는 첼시와 격차였다.

4점까지 벌어진 게 불과 몇 경기 전이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승점 차이가 고작 1점밖에 나지 않았다.

우리가 또 패배하고 첼시가 승리를 이어간다면 1위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거다.

아이러니한 건 이런 상황에서 31라운드 상대가 첼시라는 거다.

참 신도 얄궂기도 하지.

승점 3점이 3점 그 이상의 가치가 될 수 있는 경기를 바로 다음 경기로 점지해 주신다니 말이다.

차라리 첼시만 신경 써야 한다면 다행이지.

다음 경기는 리그가 아니라 챔피언스 리그였다.

PSG 놈들이랑 1차전을 붙고 와서 첼시와 경기를 하고 또 이어서 PSG랑 2차전을 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을 거는 죽음의 3연전이라는 소리다.

3연전 모두 허투루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우리 팀은 지금 물갈이 중이어서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도 있고 스쿼드가 얇은 포지션도 있다는 거다.

돈이 많아 선수를 창고에 재고처럼 쌓아두고 쓰지 않는 빌어먹을 PSG, 그리고 상대가 밀란이라 우리보다 여유로운 첼시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거다.

그렇다고 두 대회 중 하나를 포기해?

툰이 순식간에 흑화해서 훌리건이 되는 걸 보고 싶으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

이를 악물고 죽음의 3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거다.

솔직히 선수 입장에서도 우승이나 4강 진출이나 둘 다 놓치기 싫은 건 사실이다.

4강이 뭐야, 챔스의 빅이어를 드는 건 모든 선수들의 꿈이고, 리그 우승은 뉴캐슬이 100이나 넘는 시간 동안 간절히 바라는 건데.

감독의 머리카락이 더욱더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군.

우승 보너스라도 안겨 드려서 모발이식이라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어.

그렇게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파리로 향했다.

파리.

그야말로 허영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시다.

물론, 요즘은 그런 게 많이 줄었다지만, 누군가는 아직도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프랑스 와인을 마시는 환상을 꿈꾸고 있을 거다.

하지만 에펠탑은 심각한 붕괴 위험으로 결국 철거되고 새로운 에펠탑이 아직도 공사 중에 있는 상황이고, 프랑스 와인은 이름값만 드높을 뿐이지 요즘은 다른 나라 와인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었으며, 가장 중요한 건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뭐 같다는 거다.

심심하면 이슬람 이민자들이 사고를 치지만 그걸 수습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치안을 자랑했고, 동물권인지 뭐시기 때문인지 쥐를 잡지 않아 쥐와 공생을 하는 곳.

길을 지나가면 찌린내가 진동을 하고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가면 그 찌린내가 절정에 도달하는 최악의 도시다.

단언컨데 런던보다 더 ㅈ같은 도시는 파리밖에 없을 거다.

왜 이렇게 악담이 심하냐고?

개인적으로 프랑스가 싫다.

아니, 파리가 싫다.

아니!!! PSG가 싫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지난 삶에서 챔스에 나가기만 하면 PSG를 꼭 만났거든.

그리고 한 번은 내 팀이 7대0으로 지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

종합 스코어가 아니라 원정 1차전에서 7대0으로 개발렸다.

이제 와서 말하자니 빡치네.

빡친다. 으으으.

하지만 우리 뉴캐슬로도 쉽지 않겠지.

내가 상대했던 파리보다 지금의 파리가 더 강하니 말이다.

“자, 파리로 가자! 나폴레옹이 되는 거다!”

비행기가 이륙하며 실바가 외친다. 도대체 나폴레옹이 왜 나오냐.

이왕이면 흑태자 에드워드나 뭐 그런 사람이 언급되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내가 에드워드 이 사람은 어떻게 아는 거지?

그나저나…….

“여전히 냄새 더럽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바람을 타고 은은한 악취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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