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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125화 (123/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25화

“Shit!”

“Fxck!”

평소 말을 조곤조곤하게 하며 욕이라는 걸 입에 담지도 않아 심심하면 왓더퍽을 외치는 미국인이 맞나 싶었던 히스 조나단이 연신 욕을 내뱉었다.

그렇게 준비했건만, 기어이 저놈에게 골을 허락하고 말았다.

“아니, 침착하자. 그래, 다들 침착하군.”

사실 1골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고작 17살 나이로 프리미어 리그의 전설적인 공격수들의 기록을 넘어 괴물 엘링 홀란드의 기록에 도전하려는 놈이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안정되는군.

더욱이 믿음직스러운 자신의 선수들은 한 골에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의 플레이를 고수하며 뉴캐슬이 기세를 잡고 압박하는 걸 훌륭하게 잘 막아내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전반 43분, 경기가 끝나가려 하고 있었다.

라커룸으로 불러들여 무엇을 지시해야 할까?

히스 조나단이 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델로아가 공을 잡고 전진한다.

그의 앞에는 오늘 세 번이나 뚫리면서 첼시에게 기회를 만들어준 장본인, 소비올라가 있었다.

소비올라의 두 눈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델로아를 보고 겁을 먹거나, 의욕이 떨어진 모습은 아니었다.

“태양은 골을 넣었어.”

그래, 그러고도 남을 놈이라는 걸 소비올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3살 나이로 뉴캐슬에 왔을 때도 자기보다 몇 살이나 많은 상대팀 선수들을 뚫고 골을 넣던 놈이니까.

그래, 그놈은 천재니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천재.

그 재능을 보고 이곳에서 태양과 함께하면 영광의 나날을 보낼 수 있겠다 생각하여 다른 구단으로 떠나지 않고 남은 거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곳에 남은 자신이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벤치만 달구고 있다는 거다.

벤치에 없는 날도 많았다.

린데만은 반디아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샬렛도 로테이션 멤버로 뛰고 있는데, 자신은 이번 시즌 고작 네, 다섯 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이곳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아마, 팀도 자신이 델로아를 매번 막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이렇게 허무하게 몇 번이나 뚫릴 거라 생각지도 않았을 테지.

그 기대에 부응해 가능성을 보여주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

태양이 골을 넣고 증명하듯이, 지금 자신은 델로아를 막아야 한다.

소비올라의 집중력이 전에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그사이 델로아가 소비올라의 왼쪽으로 달려 들어간다.

소비올라는 몸을 빙글 돌려 델로아와 나란히 선 뒤, 어깨를 들이밀면서 오른발을 밀어넣었다.

델로아가 공을 바깥쪽으로 빼며 자신과 등을 지려는 순간, 소비올라는 델로아의 가랑이 사이로 발을 넣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델로아의 공을 걷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공은 두 사람의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린데만이 차지했다.

[소비올라! 이번에는 소비올라가 델로아에게서 공을 빼앗았습니다! 린데만! 린데만이 실바에게!]

실바는 공을 차지하고 주변을 훑었다.

그의 머릿속에 필드가 그려진다.

첼시 선수들은 좁은 간격으로 중원을 촘촘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이걸 뚫고 패스를 해야한다.

실바는 침착하게 공을 끌고 전진했다.

그런 실바에게 오렐레나와 크루즈가 달라붙었다.

실바는 가장 먼저 크루즈를 상대로 달려간다.

크루즈는 그런 실바를 보고 속으로 비웃었다.

어린 시절 보던 빠른 발의 실바는 더 이상 없었다.

자신보다 느린, 거북이 같은 실바만이 남았을 뿐.

그가 전진하는 것에 맞춰 크루즈는 길목을 막아섰다.

그 순간 실바의 스탭이 엉킨다. 넘어지는 건가?

아니다, 엇박을 타면서 갑작스레 방향을 전환한 거다.

크루즈는 발을 박차며 그 방향을 막아섰다. 그 순간 실바의 스탭이 다시 바뀌며 크루즈가 있던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스탭의 박자를 바꾸는 것만으로 크루즈를 제치며 실바가 나아가자 오렐레나가 실바의 앞을 막아서고 태클을 시도한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발에 실바는 공을 뒤로 빼 발을 피하고 오렐레나를 등져 공을 보호하더니, 앞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뚫은 거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의 간단한 턴으로 오렐레나를 제친 실바는 앞을 바라봤다.

공간이 생겼다.

그가 중원에서 크랙으로서 역할을 해낸 거다.

그 공간을 샬렛이 파고 들어간다. 실바는 그쪽으로 패스를 할 것처럼 유도했다.

그 상황에 첼시 선수들이 샬렛의 공간을 가로막고 점유하려 든다.

그렇게 벌어진 공간.

그 한가운데 일리뉴가 있었다.

실바는 그쪽으로 패스를 하려다 어떤 움직임을 보고 눈을 빛내며 그쪽을 향해 패스를 했다.

[실바, 패스합니다! 어? 높이 떠올라 일리뉴의 머리를 넘어갑니다. 이게 무슨……! 아! 일리뉴의 뒤로 윤태양이 침투합니다!]

허를 찌르는 로빙 스루패스에 일리뉴를 견제하던 완더레이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고, 데 누초는 태양을 쫓았지만, 거리가 있었다.

마지막 희망은 케이퀘였지만, 태양은 케이퀘가 오기도 전에 공을 차지해 그대로 골대를 향해 슈팅했다.

[골입니다!!! 골이에요!!]

[윤태양 선수의 골도 깔끔했지만, 실바의 허를 찌르는 패스가 기가 막혔습니다!]

[모두 일리뉴에게 패스하리라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허를 찌르는 패스였습니다. 이걸 예측한 것 같은 태양의 움직임도 돋보이네요. 뉴캐슬의 왕과 왕자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네요!]

전반 막바지에 터진 골에 뉴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히스 조나단은 그 상황에서 슬쩍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Fxck…….”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히스 조나단의 머리가 복잡해지는 가운데 전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 * *

“나…….”

라커룸 안으로 들어오는데 실바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선을 돌리니 땀에 흠뻑 젖은 실바가 보인다.

1선에서 한량처럼 어슬렁거리던 양반이 중원에서 열심히 뛰었으니 저리 땀을 흘릴 만하다.

“나 뭐요?”

“미드필더 좀 하지 않냐?”

“낫베드. 괜찮긴 하네요.”

그 말에 실바는 유니폼으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공격수가 아니라 미드필더로 시작할 걸 그랬나?”

이 양반이 패스 뽕맛 좀 보더니 헛소리를 하시네.

“아마 그러면 미스터 툰은 없었을 걸요?”

“아, 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원래 나이 먹으면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거예요. 30년이나 축구 했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누가 보면 지가 축구 30년 한 줄 알겠네.”

“들켰어요?”

“뭐래, 이 자식이.”

내가 피식 웃으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바나나를 입에 물고 있을 때 감독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 다들 잘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우리 미스터 툰이 대활약해서 이기고 있군?”

감독은 흐뭇하게 웃으며 실바를 칭찬했다.

솔직히 칭찬할 만했다.

실바가 메넨데즈 못지않은 활약을 해주지 않았다면 오늘 경기는 어떻게 될지 몰랐을 정도로 첼시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와, 공이 안 보이더라고.

후반에는 어떠려나 모르겠네.

내가 그리 생각하는데,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양키놈은 데이터를 좋아하는 만큼 변수를 싫어하지. 아마, 우리 실바라는 바이러스에 오염돼서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게야.”

감독이 껄껄 웃으며 말한다.

아무래도 우리 감독은 히스 조나단을 엿 먹이는 게 제일 즐거운 모양이다.

“낄낄낄, 그러게 말이요. 내가 이렇게 잘할 줄 몰랐을 겁니다요.”

그건 실바 영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좋네, 좋아. 이대로 후반에도 활약해 주게! 히스 조나단 감독이 퍽퍽 거리는 게 아주 보기 좋더군.”

“어렵지 않죠. 하하하핫.”

잘 논다. 잘 놀아.

저러다가 방심해서 후반에 골 먹히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원.

결과적으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후반전이 시작하기 무섭게 실바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변수에 히스 조나단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선수들조차도 휘둘리고 있었다.

실바는 나를 아주 훌륭하게 이용했다.

나에게 공간을 만들어 줄듯이 움직이다가 일리뉴에게 패스하기도 했고, 일리뉴에게 패스하려다가 샬렛에게 연결해 기회를 만들기도 했으며, 때로는 과감하게 1선으로 올라와 직접 득점하려 들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게 후반 2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실바가 계속해서 좋은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원래 공격수여서 그런지 공격의 흐름을 기가 막히게 잡아냅니다. 히스 조나단 감독, 실바를 제압하지 못하면 결국 그렇게 견제하려고 하던 윤태양도 막지 못합니다!]

[윤태양 선수, 오늘 벌써 두 골이거든요? 첼시를 상대로 최초로 해트트릭을 기록할지도 모릅니다.]

-ㅋㅋㅋㅋ 히스 조나단 아가리 털면 일케 된다니깐?

-ㅋㅋ막는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되려 ㅈㄴ게 뚫리네

-솔직히 태양인 잘 막았음 ㅋㅋㅋ 실바를 못 막았지

-실바 쟤 왜 저러냐;;; 오랜만에 나와서 월클 미드필더 코스프레하네;;;;

-실바랑 델로아 영혼이라도 바뀜?

-메넨데즈랑 퓨전한 줄 ㄷ

데이터를 통해 완벽한 축구를 꿈꾸는 히스 조나단은 변수에 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데뷔하고 바로 다음 시즌에 우승을 노릴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윤태양에게 유난히 휘둘리는 점도 그랬고, 당장 오늘 경기에서 실바라는 변수에 대응하지 못하고 막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그는 교체가 능숙한 타입이 아니었다.

이따금 이해할 수 없는 교체를 하고 심지어 패배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그의 데이터 축구가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첼시에는 그런 그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델로아였다.

공수가 모두 완벽한 선수인 델로아는 위치를 바꾸고 실바를 견제하기에 이르렀다.

실바가 델로아에게 가로막히자 서서히 숨통이 트이는 듯했지만…….

[아, 윤태양이 내려왔습니다! 지금까지 최전방에 있던 선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네요! 왜 이제야 움직이는 거죠?]

[아무래도 첼시의 2선과 3선의 머릿수가 많다 보니 처음부터 내려와 플레이를 하게 되면 체력적인 부담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첼시 선수들이 많이 지쳤어요!]

지친 선수들 사이에서, 단 두 번의 유효슈팅을 득점으로 가져간 이후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던 태양은 비축한 체력을 아낌없이 쓰기 시작했다.

중원에 실바라는 변수와 태양이라는 변수까지 가세하자 첼시 선수들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누구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그 가운데 소비올라가 좀 더 처진 위치로 내려와 빌드업의 중심이 되어간다.

태양이 계속해서 소비올라를 뒤로 물러나게 패스하자, 그 위치에 선 소비올라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어디로 공을 보내야 패스가 이어지는지 알 것 같았다.

먼 미래 그가 보여줄 찬란한 재능,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재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해서 후방에서 패스를 공급하며 한쪽으로 선수들이 몰리게 유도하다가 후반 막바지에 들어선 어느 순간 왼쪽에 생겨난 공간을 향해 메넨데즈나 실바가 보여줄 법한 대지를 가르는 패스를 시도했다.

공에 힘이 좀 많이 실리긴 했지만, 분명 날카로운 패스였다.

그 패스를 윤태양이 전력을 다해 달려가 차지하며 중앙의 수비수들에게 달려들었다.

일리뉴와 샬렛이 태양이 들어올 수 있게 컷아웃 무빙을 보이며 센터백을 끌어들이고 그 공간을 향해 비집고 들어간 태양은 골대를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 순간 누군가 뒤늦게 달려와 태양에게 어깨를 들이민다.

“아.”

영점 조준 실패다.

예측하지 못한 차징에 균형을 살짝 잃고 슈팅을 정확하게 차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으로 공이 골대 안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예상 범위 안이다.

데스타노글루가 점프하며 손을 쭉 뻗어 펀칭으로 공을 쳐냈다.

골대 앞으로 튕겨 나가는 공.

그 공을 향해 데 누초가 달려들어 걷어내려는 순간.

[아! 실바!!!]

언제 이렇게 부지런히 달려왔는지 모르겠다만, 열심히 달려온 실바가 데 누초보다 한발 더 빨리 공을 향해 발을 들이밀었다.

바닥에 한 번 바운드된 공이 데스타노글루의 손을 피해 골라인을 넘어섰다.

[골!!! 실바가 득점합니다!]

태양이 득점에 실패한 공으로 득점을 따낸 실바는 태양에게 달려와 외쳤다.

“봤냐?! 이게 왕의 축구다, 인마!”

“주워먹기잖아요. 왕이 거지예요?”

뚱한 태양의 말에 실바는 그저 껄껄 웃었다.

[다시 킥오프합니다. 아, 주심이 곧 바로 휘슬을 붑니다! 스코어는 3대1!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첼시를 상대로 귀한 승점 3점을 챙기며 승리합니다!]

[이 3점은 귀합니다! 우승 경쟁 팀인 첼시와 승점을 4점이나 벌리며 우승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3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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