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31화
일리뉴의 차를 타고 서둘러 시티센터에 있는 산부인과로 향했다.
일리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태어날 동생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동생을 네 번째로 맞이하는 건데도 태연하기가 힘드네.
“태양!”
산부인과 앞에 도착해서 내리려는데 일리뉴가 나를 불렀다.
“응?”
“고맙다.”
“뭐랴.”
고맙기는 뭘 고맙다고.
나는 씨익 웃어주고는 서둘러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인구가 적은 뉴캐슬어폰타인이지만 적어도 출산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저녁 시간인데도 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부인과에 있었다.
“태양?”
“태양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다. 아, 이러다가 영국 찌라시 놈들이 내가 혼외자식을 낳았느니 뭐니 헛소문 퍼뜨리는 건 아니겠지?
“태양, 네 가족들은 저쪽으로 가면 있어!”
“동생 태어나는 걸 축하해!”
“할아버지들도 방금 들어가셨어, 얼른 가봐!”
악의적으로 찌라시를 쓰는 놈들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생각이 있는 기자라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 집 가족관계부터 사정까지 아는 사람들이 적잖게 보였다.
하여간 이 동네 참 좁다니깐?
“고마워요, 다들!”
나는 그들에게 인사하고 그들이 가르쳐 준 곳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들이 알려준 분만실 앞에는 엄마를 제외한 우리 가족 모두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왔니?”
초조한지 앉아있지도 못한 채 서서 어슬렁거리던 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고는 애써 웃어보인다.
“네, 아버지. 엄마는 언제 들어갔어요?”
“이제 한 시간 정도 됐다.”
이제 곧 태어나겠네.
사실 오늘 아이가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예정일이기도 했고, 아침에 산통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산통이 시작됐다 하더라도 가진통일 수도 있고, 본격적으로 낳기 시작하려면 한참 걸릴 거라서 일리뉴 집에 갔다와도 안 태어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빠르다.
아무래도 다섯째여서 그런가?
“이러면 금방 태어나겠네요? 다 빨리 시작했으니까요.”
“그렇지 않을까 싶어.”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버지의 긴장이 조금 풀린 모양이다.
아버지는 뭔가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봄여름가을겨울이 완성됐구나.”
“네?”
“가을이 태어날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가을에 태어나서 지은 건데 여름이 겨울이 태어나니 욕심이 나더구나.”
“아니, 이름 컬렉션 완성한다고 넷을 낳는 건 좀…….”
“짜샤, 당연히 농담이지. 뭐, 진심이 아주 조금 섞여있긴 하지만.”
진심이 8할인 거 같은데……?
“혼자보다는 형제가 많았으면 하기는 했어. 너 태어날 적에 말야.”
“그랬어요?”
“어, 엄마랑 아빠가 외동이잖냐. 형제 많은 게 어찌나 부러운지.”
그랬구나.
그런데 왜 내가 여섯 살이 되도록 동생이 없었던 걸까?
내가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아버지가 말했다.
“뭐, 먹고살기 힘들었으니까. 동생 생각은 꿈도 못 꿨지. 그리고… 네가 다 커서 하는 말인데, 그때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별로 안 좋았어.”
“…그랬어요?”
…전혀 몰랐다.
내 기억에 우리 가족은 화목하기만 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동물원 가자고 하니 간 거 아니었나?
그 기억만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서 엄마아빠는 사이가 좋다, 라고 기억하고 있었던 건가?
“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다투는 일이 많았지. 그런데 네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어른스럽게 굴기 시작한 거야.”
뭐, 내가 과거로 돌아오는 바람에 나이답지 않게 굴긴 했을 거다.
내가 아무리 아이인 척 하기는 했어도 나도 과거로 막 회귀해서 적응하는 데 시간도 걸렸을 테고, 매일같이 보던 아들이 달라진 느낌이 드니 당황하긴 했을 것 같긴 하네.
“아, 얘가 우리 때문에 조숙해진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지. 그때부터 좋은 엄마, 아빠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러다 보니 사이도 좋아지고 어쩌다 보니 가을이가 태어난 거야.”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구나.
“그저 밝고 씩씩하게 자라라고 태양이라고 했는데, 정말 네가 우리 집안의 태양이 될 줄이야.”
아버지는 그런 나를 대견하게 바라봤다.
뭔가 마음 한편이 간질간질하고 오글거리고 막 그러네.
나는 슬그머니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다 분만실을 바라봤다.
때마침 분만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아버지, 나와요.”
“어어, 그래.”
부랴부랴 분만실 앞으로 걸어가자 간호사가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편 분! 얼른 들어오세요!”
“아, 네! 들어갑니다!”
아버지가 부랴부랴 분만실 안으로 들어간다.
태어난 보미의 탯줄을 아버지가 자를 수 있도록 요청했거든.
“우리는 병실 가 있어요.”
“그랴, 우리 강아지들 어여 가자, 이?”
아버지를 제외하고 가족들 모두가 서둘러 병실로 가서 대충 정리를 하고 손을 씻고 기다렸다.
한국이랑 다르게 영국은 무조건 모자동실이었다.
여름이 태어났을 때에는 너무 늦은 밤 시간이어서 나는 다음 날 신생아실 창문 너머로 봤었는데.
가을이도 그랬나?
시간이 꽤 오래 지나서 가물가물하다.
“근디 퇴원은 언제 한댜? 사돈은 들은 거 있는감?”
“거, 집에 준비는 다 해놓은 거 같던데.”
두 분 할아버지의 대화에 내가 끼어들었다.
“이상 없으면 오늘 퇴원한다고 하던데요? 한국이랑 다르게 굳이 며칠 입원할 필요 없다고 그러네요.”
“거 뭐시여, 산후조리원 같은 건 안 혀?”
“조리원도 있긴 한데, 한국이랑 다르게 별로래요. 그래서 산후도우미랑 가정부 고용해 뒀어요.”
“잘혔네.”
우리 남매가 넷, 아니, 이제 다섯이나 되는 만큼 이런 건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지.
그것도 내 선에서 말이다.
물론, 돈이 있으니 가능한 것도 많다.
역시 돈이 최고야.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누가 그랬는지 몰라?
물론,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지만, 돈 있으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렇게 나 혼자 돈이 최고라고 만족하는 가운데 병실 문이 열리고 엄마와 막내, 보미가 들어왔다.
“엄마!”
“엄마!”
“쉿, 동생 놀라잖아, 얘들아.”
가을이가 버럭 소리치는 여름이와 겨울이를 조용히 시키는 가운데 엄마는 지친 얼굴로 병실 침대로 옮겨 누우신다.
“아이고, 애를 다섯이나 낳았는데도 힘든 건 힘드네.”
지친 기색이 완연한 엄마에게 살며시 다가가 손을 잡아줬다.
“엄마, 고생했어요.”
“응, 고마워.”
환하게 웃는 엄마의 손을 잡은 채로 아기 침대에 누운 보미를 바라봤다.
빨갛고 쭈글쭈글한 아기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데 여름이와 겨울이가 질색을 하며 말했다.
“애기가 못생겼어!”
“왜 이리 쭈글쭈글해?”
“너희도 어릴 땐 저랬어.”
가을의 말에 여름과 겨울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가을이를 바라봤다.
“거짓말!”
“진짜야. 언니도 이랬을걸? 오빠도 그랬지?”
“그럼. 엄마 배 속에서 물이랑 같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뽀얗고 예쁘게 변하지.”
“아, 그렇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는 동생들을 뒤로하고 나는 막내 동생을 바라봤다.
눈도 뜨지 못한 붉은 아이가 마치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하듯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슬그머니 주먹을 쥐고 있는 보미의 손에 손가락을 가져가니 기다렸다는 듯 보미가 내 손을 쥐었다.
“안녕, 반갑다. 보미야.”
서로의 손을 마주잡는 지금 이 순간, 비로소 나는 사계절의 태양이 되었다.
* * *
프리미어 리그 32라운드를 맞이했다.
PSG와 어려운 싸움을 하는 가운데에도 첼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앞서간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32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를 거침없이 몰아갔다.
[일리뉴 골입니다!]
[레델리 득점합니다!]
압도적인 점유율 아래 두 골을 연달아 넣는다.
그리고 윤태양.
[윤태야아아아앙! 골입니다!]
[젖병 세리머니를 합니다! 얼마 전에 막내 동생이 태어났죠?]
[동생이 부럽네요. 태어나니 오빠가 윤태양입니다!]
득점한 윤태양은 정말 이례적으로 자발적으로 득점 후에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ㅋㅋㅋㅋ 와 ㄹㅇ 태어나니 오빠가 윤태양ㅋㅋㅋㅋ
-부럽다 나도 윤태양 동생 하고 싶다
-막내니까 이쁨을 두 배로 받겠지
-???:오빠 나 용돈 좀
-???: ㅇㅋ 알았음 (100만 원 이체)
-ㅋㅋㅋㅋ 100만 원 ㅋㅋㅋ 윤태양한테 100만 원은 껌값 수준 아니냐?
-이번 시즌 끝나면 재계약 한다더라 ㅋㅋㅋㅋ
-아니 세상에 17살이 주급 1억 받는데 대우 ㅈ 같다고 욕먹을 줄이야 ㅋㅋㅋㅋㅋ
-윤태양 계약 거부하면 어케 됨?
-ㅋㅋㅋㅋ그게 두려워서라도 주급 세게 주겠지 ㅋㅋㅋ
-ㅋㅋㅋㅋ 나이 어리지만 프리미어 리그 최고 주급 받아도 뭐라 할 사람 없음 ㅋㅋㅋ
-돈 밝힌다고 욕하는 놈은 ㄹㅇ 축알못임
-근데 윤태양 몇 골 넣었냐?
현 시점에서 윤태양은 39골을 넣으며 득점 2위인 펠리시아노보다 10골이나 앞서 있었다.
남은 6경기에서 펠리시아노가 10골을 넣는 기염을 토해도 태양이 6경기 동안 딱 한 골만 더 넣으면 득점왕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득점뿐만 아니라 태양은 16개의 도움을 기록하고 있었다.
득점과 어시를 모두 합하면 무려 55점의 공격 포인트.
27경기 동안 경기당 2.03의 공격 포인트를 만들고 있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전례가 없는 기록이었다.
오죽하면 전설적인 선수들도 너나 할 거 없이 태양을 언급할 정도다.
그를 가장 많이 칭찬하는 건 누가 뭐래도 뉴캐슬의 전설과도 같은 선수인 엘런 시어러였다.
-윤태양은 득점, 아니, 축구 자체를 참 쉽게 한다. 쉽게 돌파하며 쉽게 침투하고 쉽게 패스하며, 쉽게 골을 넣는다. 메시 외에 이런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먼 훗날 태양이 은퇴할 즈음이 되면 그는 메시 그 위의 존재가 되어있을 것.
엘런 시어러의 발언은 화제를 모았다.
당연하다.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메시란 존재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었으니 말이다.
-메시랑 비교는 좀
-감히 메시를?
-메시는 오바야;;;
그 탓에 온갖 커뮤니티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생각 외로 긍정적인 쪽이 더 많았다.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세계 곳곳에서 말이다.
-지금은 몰라도 태양이 은퇴할 즈음이면 못해도 메시랑 어깨를 나란히 할 것 같음
-그래, 엘런 시어러가 지금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태양 은퇴 시점이라잖아 내가 생각해도 메시랑 비벼볼 만하다 봄
-실력적으로나 클럽 기록이나 모두 메시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봄. 다만, 국가대표 커리어가 아쉬워서 몇 십 년 후에도 사람들이 메시랑 누가 낫냐고 싸울 듯
-다른 건 몰라도 외모는 우리 세자 저하가 최고임 GOAT 그 잡채
-…위에 ㅅㅂ 남자 아니냐
-왜 뭐 설렐 수도 있지 냅둬
-사실 나도 태양이 볼 때마다 설레서 물어본 거임 ㅇㅇ
그런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메시? 그는 나조차 넘지 못했다. 내 기록을 깨고 와서 이야기할 것.
그는 다름 아닌 맨시티의 전설, 엘링 홀란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유일하게 40골 이상을 기록한 선수였다.
사람들은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홀란드의 발언에 뜨겁게 불타올랐고, 태양이 이에 응답했다.
@CHOOKTAEYANG
[지난 맨시티전 6골 넣었을 당시 공들을 앞에 둔 태양(사진)]
[한 번 더 식스 앤더 시티 ㄱ]
태양의 SNS 글에 뉴캐슬 팬들은 환호했고 맨시티 팬들이 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뉴캐슬의 다음 경기는 맨시티와 FA컵 준결승전.
무너진 맨시티 왕조에서 체면을 차리기 위해 목을 매고 있는 대회에서 두 팀이 마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