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37화
영상을 올린 뒤 지민은 유튜브를 확인할 틈도 없이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하교한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보미의 분유를 챙겨준 뒤 저녁을 준비한다.
집이 너무 커 집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하우스키퍼를 둘이나 고용했지만, 가족들의 식사만큼은 그녀가 책임지고 있었다.
한식을 할 수 있는 하우스키퍼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한식은 둘째치더라도 영국요리를 하는 영국인 하우스키퍼를 데려올 수는 없지 않은가.
하우스키퍼가 하는 일은 보미 때문에 바쁜 지민을 대신해 장을 봐주고 집을 관리하는 거나 지민 대신 다른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사정으로 태양이나 할아버지들의 도움을 받으며 저녁을 준비해 다 같이 먹고 난 뒤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아, 유튜브.”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이 떠오른다.
일찍이 퇴근해 옆에서 맥주 한 캔을 하던 지성은 지민의 말에 고개를 돌린다.
“뭐? 유튜브?”
“응응.”
“뭔 유튜브? 혹시 유튜브 시작했어? 뭐, 애들 동영상 올렸나?”
“응, 어떻게 알았어?”
“자기가 동영상 찍는 게 취미인 걸 모르는 사람은 이 집에 보미밖에 없을걸?”
모두가 다 안다는 태양의 말이 맞았나보다.
둔하기로 둘째가면 서러워할 남편까지 알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튼, 언제 시작했는데? 함 보자.”
남편이 옆으로 다가와 함께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지민은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갔다.
그리고 너무 놀라 핸드폰을 툭 하고 떨어뜨렸다.
“뭐야, 왜 그래?”
지성은 지민이 떨어뜨린 스마트폰을 들었다.
“보자, 오늘 처음 올렸네? 근데… 조회수가 왜 이래? 구독자는 왜 이러는 건데?”
지성은 화들짝 놀라며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나, 나도 몰라.”
[태양과 사계절]
[구독자 : 21만]
태양이의 생애 첫 놀이터 - 조회수 82만]
[우리 장남 처음 공 만진 날 - 조회수 35만]
[태양이 처음으로 달린 날 - 조회수 42만]
[따듯한 햇살 아래 햇살같이 웃는 장남 - 조회수 64만]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단 네 개의 영상은 이게 몇 시간 전에 올린 영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지성은 신기한 마음에 댓글들을 확인했다.
“댓글도 많네…….”
-세자 저하 기여어 ㅠㅠㅠㅠ
-아기가 보조개 쏙 들어가는 거 봐 ㅠㅠㅠ 너무 귀엽다 ㅠㅠㅠ
-어릴 때도 왕자님 그 자체였네 ㅠㅠㅠㅠ
-아 너무 귀엽다 ㅠㅠㅠㅠ
-엄마 부럽다 ㅠㅠㅠㅠ 나도 나중에 저런 아기 갖고 싶다 ㅠㅠㅠ
-저 아이는 커서 부모님에게 엄청난 효도(현금)를 함미다…….
-뭔 애기가 공 가지고 노는 게 심상치 않냐…….
-달리기는 왜 저리 빨라 보이누
-어릴 때부터 타고났네 ㅋㅋㅋ
-채널명 ㅋㅋㅋ 그러고 보니 진짜 태양과 사계절을 낳으셨네 ㅋㅋ
-신이네 ㅋㅋㅋ 태양과 사계절의 어머니 신 ㅋㅋㅋ
-그녀는 신인가?그녀는 신인가?그녀는 신인가?그녀는 신인가?그녀는 신인가?그녀는 신인가?
-엄신이네 ㅋㅋ
-엄GOD ㄷㄷㄷ
댓글을 본 그는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영상들 죄다 태양이인 거 알고 온 거 같은데?”
“그래?”
그때 마침 태양이 1층 거실로 내려오다 부모님을 발견하고 다가온다.
“두 분 다 왜 그리 놀라고 계세요?”
“아들, 아까 유튜브 개설한 거 구독자가 21만이야…….”
“아무래도 사람들이 이 영상이 너인 줄 알고 찾아온 거 같더라.”
그 말에 태양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 제가 홍보했어요.”
“뭐? 아니, 왜!!”
“구독자가 빵빵해야 올릴 맛 나죠. 21만? 생각보다 적네요.”
“생각보다 적다니!”
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 인스타 팔로워가 수천만인데 그 정도면 적은 거죠.”
“뭐, 수, 수천만?”
“언제 그렇게 된 거야?”
지민과 지성은 놀라서 태양을 바라봤다.
“몰라요, 계속 늘어나던데.”
아무리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스포츠 스타라고 하더라도 1년 만에 이 정도 팔로워가 늘어나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태양은 그럴 만했다.
아시아에서 10여 년 만에 나타난 세계적인 선수이자,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역대급 재능, 그 재능을 어린 나이에 만개해 프리미어 리그의 모든 기록을 경신하며 씹어먹고 있는 천재.
그것도 모자라 동서양을 초월한 뛰어난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단언컨데 그야말로 엄청난 상품성을 지닌, 세계적은 스포츠 스타로서 모든 걸 갖추고 있었다.
인스타 팔로워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낳고 키운 부모만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맞다.
그러다 보니 막상 이렇게 아들의 SNS 팔로워를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네. 아들이 SNS에다가 홍보했으면 20만은 별거 아니네. 앞으로 더 늘어나겠는데?”
“윽!”
그 말에 지민은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영상을 다 본다고?”
“브이로그 같은 거까지 찍으면 난리 날 걸요?”
“부담되는데…….”
지민이 정말 부담된다는 얼굴을 하는 사이, 오히려 지성은 신이 나서 말했다.
“나도, 내 얼굴도 나와야지. 내가 태양이 아빠인데 아무도 모른단 말이지?”
“어휴, 안 그래도 물어보고 당신 나온 것도 올리려고 했어.”
부담을 가진 것도 잠시, 부부는 신이 나서 유튜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신혼처럼 말이 많은 부모님을 보며 태양은 히죽 웃고서는 슬그머니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경기를 위해서 일찍 자두기 위해서였다.
어느덧 프리미어 리그 34라운드.
이번 상대는 브렌트포드였다.
브렌트포드는 이번 시즌 힘겨운 강등권 싸움을 하고 있었다.
우승은 첼시와 뉴캐슬만이 다투고 있지만, 강등권 팀들은 다섯 팀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하위인 프레스턴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팀은 승점 차이가 1점, 혹은 동률인 상황인지라 한 경기에서 지기라도 하면 치명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뉴캐슬을 만난 브렌트포드는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우린 망했어
-왜 하필 뉴캐슬이야
-빌어먹을
-제발 무승부만이라도
-가능하겠냐
-빌어먹을 태양이 문제지
-ㅈ같은 영국 날씨에 태양이 웬 말이야
-부상 안 당하나?
-제발 감기라도 걸려라
-돈 많은 구단이 감기도 케어할걸?
-다들 포기해 우리는 그냥 그의 프리미어 리그 득점 기록 경신의 희생양이 될 뿐이니까
-그것만은 제발…….
프리미어 리그 득점 기록 경신.
그랬다.
태양은 지금 프리미어 리그 한 시즌 득점 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브렌트포드와 대결을 포함해 남은 라운드는 다섯 라운드.
그 가운데 태양은 리그 42골로 엘링 홀란드가 가지고 있던 44골 기록에 단 두 골 뒤져 있었다.
충분히 역전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탓에 프리미어 리그의 모든 관계자와 축구 관련 언론, 커뮤니티 등 모든 곳에서 지금 태양을 주목하고 있었다.
엘링 홀란드 이전에는 그 누구도 거칠고 타이트한 프리미어 리그에서 40골 이상 넣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고, 엘링 홀란드가 44골을 넣은 이후에는 몇 십 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걸 17세 소년이 따라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34라운드.
[아, 브렌트포드 단단합니다. 절대 뚫리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 정도로 틀어막으면 아무리 윤태양이라 하더라도 쉽지 않죠!]
[아, 브렌트포드 선수들 모두가 처절할 정도로 필사적인 수비를 보여주고 있어요! 단순히 텐백이 전부가 아닙니다!]
놀랍게도 브렌트포드는 후반 20분이 되도록 단 하나의 실점도 내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공격을 포기한 채 오로지 수비에만 집중했다.
심지어 역습조차도 준비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승점 1점, 뉴캐슬이라는 재해를 어떻게든 피하고 강등당하지 않는 것만이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라인을 올리긴커녕 페널티 박스 앞을 처절하게 지키니 태양도 쉽게 골을 넣기 어려웠다.
-진짜 축구 ㅈ같이 하네
-아니 저렇게 하고 싶나?
-ㅅㅂ 저게 무슨 축구야
-축구 10이냐 ㅅㅂ놈들
-태양이 오늘 골 넣긴 글렀네
-이렇게 되면 첼시가 2점차로 따라붙는 건가?
-이번 시즌 꿀잼이네 ㅋㅋㅋ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구먼 ㅋㅋ
뉴캐슬 입장에서 무승부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찍이 리즈와 경기에서 3대1로 승리를 거둔 첼시와 승점차가 2점으로 좁혀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뉴캐슬은 남은 경기에 리버풀과 아스날이라는 강팀이 남은 반면, 첼시는 빅매치라 할 만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승점차가 2점밖에 나지 않는 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 진짜.”
태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축구는, 그리고 이곳 프리미어 리그는 상식 밖에 일이 참 많이 벌어진다.
온갖 괴짜와 기인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전술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도 그랬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극단적인 수비를 보여주는 팀이라니.
잠시 상황을 살피던 태양은 공간이 없는 최전방에서 살짝 아래로 내려왔다.
태양이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보통 두, 세 명씩 마크하는 태양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골대 앞을 지켰다.
“공 줘!”
태양은 무의미하게 옆으로 공을 돌리려던 고메즈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고메즈가 윤태양에게! 윤태양 공 잡습니다!]
공을 잡은 윤태양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골대를 바라봤다.
수많은 선수들 사이에서 골대 위 끄트머리가 보인다.
태양은 골대 위치를 가늠하며 공을 찍어 차올렸다.
마치 박격포처럼 솟아오른 공이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를 향해 떨어져 내리더니 골라인을 넘어선다.
자신의 앞에 수많은 선수들이 가리고 있어 다소 안심하고 있던 골키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공이 들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그 순간 브렌트포드를 향해 야유를 아끼지 않던 뉴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툰들이 일제히 엄청난 환호성을 내질렀다.
[골! 골입니다! 저 거리에서 골대가 완벽히 가려져 있음에도 골을 만들어내는 윤태양!]
[공이 말도 안 되는 포물선을 그리며 상상도 못한 골을 만들어냅니다!]
환호성 뒤에는 프린스 태양이 울려 퍼진다.
그 가운데 태양은 유유자적 하프라인을 향해 걸어갔다.
[후반 37분! 윤태양의 득점으로 앞서가는 뉴캐슬입니다.]
[뉴캐슬에서 선수교체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며칠 뒤면 레알 마드리드와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있는 뉴캐슬입니다. 선수들을 쉬게 할 필요가 있어요.]
킥오프 전에 메넨데즈와 일리뉴, 샬렛이 빠지고 로씨와 이젤, 실바가 투입됐다.
[아, 윤태양은 교체되지 않습니다.]
[오늘 한 골만 더 넣으면 홀란드의 44골과 동률을 이루거든요. 이 기록에 도전하도록 감독이 배려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기세라면 윤태양이 한 골을 더 넣을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기세도 기세지만, 브렌트포드의 태도가 달라졌다.
지금 이대로 경기가 끝내면 어찌 됐든 패배가 확실해지는 상황, 브렌트포드는 도박을 하기로 한 것 같았다.
전원 공격에 나서서 동점을 만들려는 도박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질 거라면 해볼 만한 도박이긴 했다.
그렇게 킥오프와 동시에 전원 뉴캐슬을 향해 돌격해 공을 탈취하려 드는 가운데, 공은 뉴캐슬의 최후방까지 도달했다.
공을 받은 무리시는 브렌트포드가 이를 악물고 몰려드는 걸 확인하고 수비의 뒷공간을 향해 롱패스를 보냈다.
쭉 뻗어나가는 공을 향해 윤태양이 달렸다.
아니, 달리려고 했다.
공과 거리가 한참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자신의 유니폼을 강하게 붙잡는 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프리미어 리그는 상식 밖에 존재와 일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직 공을 잡은 것도 아닌데 반칙을 시도하다니.
태양은 손을 뒤로 빼 유니폼을 잡은 손길을 쳐내면서 동시에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치고 나간다.
그렇게 상대를 떨쳐낸 태양은 그대로 공을 잡고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완벽하게 득점에 성공하며 두 번째 득점을 할 수 있었다.
[윤태양! 추가골!!!]
[리그 44골!! 프리미어 리그에서 절대 깨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홀란드의 44골 기록과 타이를 기록합니다!]
[그 주인공은 올해 17세!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재능의 소유자입니다!]
득점한 태양은 그대로 서서 자신의 허벅지 뒤를 바라봤다.
“음…….”
잠시 선 상태로 고개를 갸웃한 윤태양은 다시 하프라인으로 돌아가 마지막까지 필드를 뛰며 해트트릭과 시즌 최다 득점 기록 경신을 노리는 듯했지만, 아쉽게도 추가골이 나오지 않은 상태로 경기가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