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44화
프리미어 리그에서 남은 경기는 이제 고작 두 경기.
실바는 자신의 은퇴가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음… 한 시즌 더 뛸까?”
부어오른 무릎에 냉찜질을 해주고 있던 실바의 아내, 리브가 어이없다는 듯 실바를 바라봤다.
“자기, 자기 지금 무릎 안 보여?”
“…무리겠지?”
“무릎 아파서 알레도 안아 들지 못하면서 더 한다는 말이 나오지?”
“그냥 해본 말이야. 두 경기 남았다니까 아쉬워서.”
리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뛰었으면서도 아쉽다니.
아마 이 세상에 남편만큼 축구에 미친 사람은 없을 거다.
“그렇게 축구가 좋으면 라이센스 공부나 하세요. 감독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이 레벨 1 따고 나서 공부를 하나도 안 하면 되나?”
“아니, 축구를 하는데 왜 책을 봐야하냐고.”
“어휴…….”
도대체 언제 철이 드시려는지.
축구밖에 모르는 바보를 데리고 사는 기분이었다.
실바는 그런 아내를 바라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 황금 동상이 완성된 거 알고 있어?”
“…그거 진짜로 해줬다고……? 구단이?”
“물론, 진짜 금은 아니지만. 해주더라고.”
“자기가 황금 동상이면 나중에 왕자님이 은퇴하면 뭘 해주려고 그러지? 축구의 남신상 같은 거라도 만들어 주려나?”
아내의 말에 실바는 입술을 비죽였다.
“그 망할놈에겐 동상도 사치야.”
“언제는 천재도 그런 천재가 없다더니 이제는 망할놈이야?”
“망할놈이 저번 경기 끝나고 나한테 뭐라 그랬는지 알아? 그만 뛰고 얼른 은퇴나 하라고 했다고!”
“어머, 진짜? 왜?”
“자기한테처럼 한 시즌 더 뛸까 물어봤거든.”
“그럴 만했네.”
“내 맘도 몰라주고 말이야, 어? 은퇴라는 게 쉬운 줄 알아?”
실바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무릎을 바라봤다.
이 망할 무릎만 아니었으면 한 시즌이 뭐야, 쉰 살까지는 뛰었을 텐데.
“진짜 아쉽다…….”
실바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리브의 말에 실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사실, 더 뛰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멋지게 퇴장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멋지게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으려나?”
“글쎄? 해트트릭이라도 하면 되려나?”
“음, 그거 멋진데?”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
실바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 * *
프리미어 리그 37라운드가 다가왔다.
툰들은 벌써 우승이라도 한 것 처럼 축제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었지만, 반대로 뉴캐슬과 우승 레이스를 하던 첼시의 분위기는 초상집 같았다.
그건 히스 조나단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팀을 만들었고, 우승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설마하니 생각지도 못한 팀이 자신들의 앞길을 막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리뉴만 데려왔었어도…….”
뉴캐슬이 가로채 간 일리뉴가 새삼 아깝게 여겨진다.
확실한 득점원인 일리뉴는 히스 조나단 감독이 만들고자 했던 팀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그를 데려오지 못하면 대체 선수라도 데려왔어야 하는데, 이미 늦은 뒤였다.
첼시는 확실한 득점원이 없어 아쉬운 전반기를 보내야 했다.
그 아쉬움은 바소모 시비로 어느 정도 채우긴 했지만, 만약 일리뉴와 바소모 시비 두 선수가 같이 뛰었다면 더 완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니, 애초에 태양이 뉴캐슬이 아닌 런던에 왔었더라면…….”
그리고 첼시 유스팀에서 성장했다면, 그렇다면 이번 시즌 우승은 압도적으로 첼시의 것이 됐을 거다.
“후우.”
가정을 하면 한도 끝도 없다.
히스 조나단은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걸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프레스턴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일으켜 줄 수도 있고, 그건 리즈 유나이티드도 마찬가지다.
“자, 나가자! 나가서 승리를 가져오자!”
히스 조나단의 말과 함께 첼시 선수들이 힘차게 필드로 나섰다.
* * *
“첼시 상대가 어디라고?”
“울브스.”
울버햄튼이라.
울버햄튼은 지금 리그 15위였다.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아마 감독은 경질당하겠지. 아니, 이미 15위로 만든 감독은 경질당했던가?
아무튼, 첼시는 아마도 이기겠군.
이기겠지?
그럼 우리는?
“자, 다들 명심해.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고. 여기가 홈이라고 해도, 상대가 리그 꼴찌 프레스턴이라고 해도 말이야. 알았어?”
실바가 똥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하고서 계속해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저게 독려인지 자기가 불안해서 채근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었다.
“자, 태양. 잘 들어. 절대 방심하지 말고, 평소보다 더 잘해야 해. 프레스턴 따위 우습다! 어? 막 이런 생각하면 되던 것도 안 되는 수가 있다? 알았어?”
…나한테까지 이럴 필요는 없는데.
“이봐, 태양. 내 말 듣고 있냐?”
“알아서 할게요.”
“아니, 그렇게 시큰둥하게 할 게 아니라고! 무려 108년 만에 우승 도전이라고! 108년!”
“우승, 그거 하면 되죠.”
“어떻게 우승에 이렇게 태연할 수 있지?”
태연하기는 무슨. 나도 프리메라리가 입성한 이후부터 리그 우승을 단 한 번도 못해서 설레고 있는 중이다.
그저 아닌 척하고 있는 것일 뿐.
“마티, 마티가 자꾸 그러니까 없던 긴장도 생겨서 다들 얼굴이 굳었잖아요. 내가 보기에 동료들 그만 보채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게 어때요?”
“뭐? 나더러 마인드컨트롤? 차암나,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인마, 너 태어나기도 전에 데뷔한 사람이야, 인마. 내가 긴장할 거 같아?”
“태어나기 전에 데뷔하면 뭐해요, 우승 도전은 처음인데.”
“…팩트로 때리니까 뼈아프다.”
“바나나나 하나 드실래요?”
“그래… 하나 주라.”
간신히 실바를 진정시키고 기다리니 아르텔리 감독이 들어왔다.
“다들 준비됐나?”
“예!”
“그래, 좋아. 이제 우리는 우승을 향해 90분 내내 전력질주를 하러 갈 걸세. 최선을 다해야 한다네. 설렁설렁 뛰었다간 1등을 할 수 없으니 말이야.”
아르텔리는 선수들을 한 명씩 바라봤다.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래, 그럴 만하다.
본인으로서도 부임한 첫 시즌에 우승을 눈앞에 둘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사실, 나도 그랬다.
나 개인적으로는 잘할 자신은 있었지만, 축구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데뷔하고 사실상 처음으로 맞이하는 풀 시즌에 곧 바로 우승을 목전에 둘 줄은 몰랐다.
챔스 4강도 그렇고, 아, 그래, FA컵 결승도 그렇다.
막상 우승을 코앞에 두니까 실감이 안 나네.
아니, 아니지.
정신 차려라.
위고 노리치가 될 샘이냐.
아직 우승한 게 아니다.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해야지.
“태양.”
마음을 다잡는데 아르텔리가 나를 불렀다.
“네, 감독님.”
“두 골만 넣으면 50골이라네. 말도 안 되는 기록이지. 달성할 자신 있나?”
그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득점보다는 승리죠. 그리고 우승이고요. 내 골이 아니더라도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거예요.”
아르텔리는 내 말에 크게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좋아, 아주 멋진 자세야. 과연 뉴캐슬의 왕자라 불릴 만하네!”
나는 그 말에 실바를 흘끔 바라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왕이죠.”
“응? 아, 이런, 허허허허! 그렇게 되는가?”
“이 자식이……!”
부들부들 떠는 실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 이제 라커룸에서 저런 모습을 보는 것도 다음 경기면 끝이구나.
우리 영감님 가기 전에 유종의 미를 장식시켜 드려야 하나?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왔다.
실바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장완장을 찼다.
우승의 향방이 놓이고 은퇴를 앞둔 지금, 리첼라가 두 경기 동안 주장 완장을 그에게 돌려줬기 때문이다.
모처럼 캡틴 실바가 된 그는 동네 영감님에서 뉴캐슬의 전설, 미스터 툰이 되어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가자.”
* * *
[프리미어 리그 우승의 향방이 걸린 37라운드가 시작됐습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프레스턴의 대결!]
[리그 1위와 리그 꼴등의 대결입니다. 사실 이 경기에서 프레스턴의 승리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미안하지만, 그렇습니다. 지금 상당히 많은 팬들이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108년 만에 잉글랜드 리그에서 우승하는 순간을 보고 싶어 합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생각보다 안티가 없는 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클럽이지만, 돈으로 무지막지하게 선수들을 사지 않았으며, 구단의 전통과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팬들인 툰을 정말 소중하게 아끼고 지역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구단을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 역시도 홀대한 적 없었다.
그리고 근본 가득한 유소년들을 키워내려 노력했다.
은근히, 아니, 대놓고 고지식한 영국인들이 라이벌 구단이 아닌 이상 이런 구단을 싫어할 리 없었다.
사실, 세계적으로 팬이 많은 구단이 아닌 탓도 있긴 하지만, 이제 그것도 옛말이다.
윤태양이라는 천재가 이끌고 우승을 하는 순간 높이 날아오를 테니 말이다.
그걸 위해 뉴캐슬 선수들이 시작부터 프레스턴을 몰아붙였다.
선축이어서 공을 가지고 시작한 프레스턴은 거센 뉴캐슬의 압박에 시작부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세계 최초로 무패우승을 이룬 팀이긴 하지만, 그것도 120년이 훌쩍 넘은 옛날 일이었고, 그들은 196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리미어 리그는커녕 2부와 3부, 심지어 4부 리그까지 오가는 팀이었다.
명장이라 불리는 지난 시즌 감독이 팀을 프리미어 리그로 이끌고 은퇴한 뒤, 그의 제자인 수석코치가 그 뒤를 이어받았으나, 팀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2승마저도 대단한 일이라며 팬들이 만족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아무리 축구공이 둥글다 하더라도 그런 팀이 리그 1위를 상대로 승리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 만큼 뉴캐슬은 당연하다는 듯이 프레스턴의 공을 따냈다.
고메즈가 빼앗은 공을 윤태양에게 밀어준다.
[윤태양! 공 받고 질주합니다!]
윤태양은 바로 앞에 선 선수를 라 크로케타로 지나쳤다.
그리고 이어서 한 명 더 라 크로케타로 제치고, 곧바로 세 번째 선수도 라 크로케타로 제쳐 버렸다.
귀신이 휩쓸고 간 듯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3연속 라 크로케타, 이제 남은 건 수비수와 골키퍼뿐이었다.
윤태양은 비장한 얼굴로 선 센터백을 상대로 달려갔다.
“이야아아아!”
센터백이 괴성을 지르며 윤태양을 향해 마주 달린다.
호승심이 불타오른 듯한 모습, 그 순간 윤태양이 멈춰선다.
뭐지?
혹시 나를 제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건가?
센터백이 의아한 얼굴로 아래를 바라보다 아연실색했다.
달려온 윤태양의 발아래에는 공이 없었다.
센터백을 바라보며 노룩으로 패스를 찔러준 거다.
그 공의 행방은?
[마테오 실바!!]
교묘하게 침투해 들어가던 실바의 발 앞에 있었다.
망가진 무릎으로 비록 속도를 잃어 단숨에 수비수가 따라붙었지만, 괜찮다.
그에게는 20여 년을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며 갈고닦은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아웃프론트로 찬 공이 역으로 회며 골대의 손을 비켜가 골망을 갈랐다.
[골! 골입니다! 마테오 실바! 미스터 툰의 득점입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한 걸음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