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59화
[윤태양, 뉴캐슬 구단주 전용기 타고 한국 입국.]
[뉴캐슬의 특급대우!]
[사우디 왕의 전용기를 타고 내리는 윤태양(사진)]
뉴스 기사를 보던 이비카 감독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뉴캐슬이 태양을 애지중지하는군.”
이비카 감독의 말에 친구이자 수석코치인 아힘 이고르비치가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나 같아도 그럴 거 같은데?”
“음.”
사실, 태양이 전용기로 오는 건 이비카 감독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팀의 중심이 될 선수가 컨디션이 좋은 상태로 뛸 수 있다는 소리인데 반기지 않을 수 없다.
“이비카, 첫 경기 선발은 어떻게 갈 건가?”
“선발이라…….”
이비카 감독은 이번에 차출한 선수 명단을 바라봤다.
항상 제일 위에 팀의 주장으로 자리잡고 있던 박민규가 명단에 없었다.
박민규는 지난 시즌 부상 이후 주전에서 완전히 밀려나 경기에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영입한 선수와 유스팀에서 콜업한 선수가 잘해주는 것도 있지만, 박민규 자체가 예전 같지 않았다.
“박은… 에이징 커브가 확실해 보이지?”
“그런 것 같더군.”
29살, 평균적으로 공격수들의 전성기인 나이였다.
하지만 박민규는 이 나이에 벌써부터 기량 저하를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지난 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에 있었다.
태클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발이 밟혀 발목이 부러진 뒤로부터 그는 그 특유의 빠른 스피드를 잃어버렸다.
물론, 박민규가 스피드가 전부인 선수는 아니지만, 속도를 잃은 공격수는 가진 능력의 절반을 잃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다만, 심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박민규는 박민규라고, 예전 감독들이라면 그를 반드시 데려왔겠지만, 이비카 감독은 과감하게 박민규를 차출하지 않았다.
한참 잘하던 시절 박민규만큼은 아니어도 대체할 선수가 있었고, 팀의 구심점이 없다는 문제를 지적하려고 해도 팀에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오른 윤태양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태양은 언제 오지?”
“뉴스 올라온 시간을 보니 이제 곧 도착할걸?”
“그렇군.”
이비카 감독은 그리 말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런다고 그가 보이지 않지만, 창밖을 보는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를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까 이 생각뿐이었다.
* * *
오랜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파주로 왔다.
아무리 이번 생에 잘나간다 해도 태극마크란 나에게 뜻깊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감회가 새롭네.
지난 삶에서 태극마크를 받고 자신의 축구 인생을 되돌아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걸 생각하면 고작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대표팀 선수가 된 게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도착했습니다, 윤태양 선수.”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나 때문에 안나 에이전시에 고용된 한국 에이전트가 운전한 차에서 내리자 파주 트레이닝 센터 정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정문 앞을 지키는 기자들도 보이네.
응? 저게 누구야?
“동호 형!”
“응? 오! 태양이 왔구나.”
국가대표에서 9번을 달고 뛰는 조동호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한다.
그나저나 이 형…….
“형… 옷이…….”
코디가 왜 이래?
“왜? 좀 멋있냐?”
조동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명품이었다. 내가 알 정도로 유명한 명품들 말이다.
그런데…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 형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소 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
누가 보면 80년대 시골 촌동네에서 사는 사람같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런 사람이 명품을 입으니 하나도 안 어울리네.
“너도 명품 좋아하는구나? 죄다 명품이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숙여 내 몸을 내려다봤다.
죄다 명품이긴 하다. 다만…….
“이거 다 계약한 곳에서 준 거예요.”
기자들이 모이는 노출된 장소에서 반드시 보내준 옷을 입어달라고 해서 입은 거다.
광고가 된다나?
“그러냐…….”
조동호가 부럽다는 시선을 보낸다. 부럽기는 거추장스러워 죽겠구만.
그리고 이거 예쁜 거 맞아?
패션의 세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깔끔하게 청바지에다가 흰티, 아니면 트레이닝 복 입으면 얼마나 좋아?
“야, 너 정도 되면 스포츠 브랜드도 아니고 명품이랑 계약하고 그러는 거냐?”
“저는 몰라요. 에이전시가 알아서 물어오는 거지.”
“부럽다, 자식아.”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기자들이 입구를 가리고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윤태양 선수! 여기 좀 봐주세요!”
“포즈 좀 취해주시죠?!”
“윤태양 선수!!”
옆에 선 조동호가 뻘쭘해질 정도로 나만을 집중해서 찍기 시작한다.
아니, 사진 찍는 건 좋은데 입구를 가로막으면 어쩌자는 거야.
난처해하고 있는 사이, 파주 트레이닝 센터에서 다급하게 직원들이 나와 길을 만들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짓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예의상 웃으며 인사를 하며 서둘러 파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배정된 방을 확인했다.
“배상현이랑 같은 방이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보다는 한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배상현이랑 같은 방을 쓰게 해준 것 같다.
가져온 짐을 풀고 쉴 겸 방으로 들어가니 이미 배상현이 와 있었다.
“여, 오랜만이다.”
“너도 오랜만이네. 근데 좀 컸다?”
오랜만에 만난 배상현은 어딘가 좀 달라져 있었다.
키도 좀 더 크고, 체격도 더 단단해졌다.
내년이면 성인이 되는 그는 이제 제법 어른 티가 나고 있었다.
“인마, 내가 너보다 나이 많아. 당연히 너보다 커야지.”
“키는 작은 거 같은데?”
“어, 그러네. 이 자식 뭘 먹고 이리 큰 거야?”
“한 50살 정도 먹으니까 이렇게 되더라고.”
“뭔 개소리야.”
개소리 아닌데.
나이는 몰라도 50년 정도는 살았는데 말이지.
“야, 근데 넌 자신 있냐?”
“뭐가?”
“이번에 우리 상대 말이야.”
이번에 우리는 세 경기를 치른다. 두 번은 친선경기고 한 번은 월드컵 예선이었다.
월드컵 예선은 지역 예선이고, 상대가 말레이시아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상대다.
배상현이 걱정하는 건 월드컵 예선전에 열리는 두 번의 친선경기다.
첫 번째 상대는 브라질, 그리고 두 번째 상대는 이란이었다.
둘 다 한국이 유난히 약하거나 까다롭게 생각하는 대륙인 남미와 중동을 대표하는 팀들이었다.
브라질이야 영원한 월드컵 우승 후보, 현 시점에서 피파 랭킹 1위의 강팀이라 우리가 어떻게 이기겠냐는 생각을 하겠지만, 한국은 브라질은 물론이고 유난히 개인기와 돌파력이 좋은 남미팀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중동은 그 특유의 침대축구 때문에 한국이 고전하는 일이 많다.
그 중동에서 가장 강한 팀이라고 볼 수 있는 이란은 일본과 더불어 한국에게 있어 영원한 아시아 라이벌이었다.
최근 10년 동안에는 두 번 붙어서 두 번 모두 지는 바람에 상대 전적이 우리가 뒤쳐지고 있었다.
“나야 뭐 항상 자신 있지.”
“그래, 네가 자신 없어 할 리가 없지.”
“근데 너는 주전 경쟁 걱정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존나 정곡이네.”
지금 국대에는 유성재와 박동근이라는 걸출한 센터백이 부동의 주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둘은 모두 유럽진출에 성공했다.
유성재는 이번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 아탈란타로 이적했고, 원래 벨기에 리그에서 뛰던 박동근은 프리메라리가 셀타 비고로 이적했다.
골대 앞을 지키는 두 명의 센터백이 모두 유럽파인 전례가 없는 상황이었다.
배상현도 유럽파로 아인트라흐트에서 종종 출전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을 제치고 주전으로 선발되는 건 어려운 일이긴 했다.
“아, 진짜 주전 경쟁 거지같네. 부럽다, 너는 주전 경쟁 안 해도 되고.”
“그러게 축구를 잘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윤태양 이전에 이 배상현이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었겠지.”
“쓰읍… 그러기엔 못생겨서 안 될 듯.”
“야, 내가 뭐 어때서 인마!”
나는 그저 히죽 웃고는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구단주 전용기로 편하게 왔다고 하지만, 비행기라는 게 완전히 편할 수는 없다.
시차도 완전히 적응한 것도 아니어서 그런가 베개 위에 머리를 뉘이자 마자 잠이 쏟아져 이내 잠들었다.
* * *
“너를 보면 욕부터 나와.”
친선경기를 위해 한국에 입국한 브라질 대표 선수단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그 안에서 멀뚱히 한국을 둘러보는 일리뉴를 바라보며 델로아가 사납게 으르렁댄다.
“나? 왜?”
“빌어먹을 뉴카슬 놈.”
“뉴캐슬이야. 발음 똑바로 해.”
“엿이나 먹어라.”
뉴캐슬, 정확히는 태양에게 악감정이 있는 델로아는 당장이라도 일리뉴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았다.
“저기 델로아, 너무 그러지 마.”
보다 못한 무리시가 델로아를 말려보지만, 이번에는 무리시를 보며 이를 드러낸다.
“너도 똑같이 빌어먹을 뉴카슬 놈아.”
“뉴캐슬이야, 일리뉴 말 못 들었냐?”
이번에는 산체스가 나섰지만, 델로아는 치와와라도 빙의한 듯 계속 으르렁거렸다.
그걸 보다 못한 같은 팀 소속 주니뉴가 델로아를 끌고 갔고, 완더레이가 세 사람에게 사과했다.
“쟤가 뉴캐슬, 아니, 윤태양에게 악감정이 많더라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완더레이의 말에 일리뉴가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
“윤태양을 욕하면 나한테 죽는다.”
그 모습을 본 완더레이가 욕할 의사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이다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윤태양이랑 싸우러 온 거 잊었냐?”
“……끄응.”
그 순간 뉴캐슬의 세 사람이 동시에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본 완더레이는 피식 웃었다.
“같은 팀인 너희도 그러는데 적으로 매 시즌마다 상대하는 우리는 어떨 거 같냐?”
완더레이는 그리 말하면서 선수단을 둘러봤다.
첼시를 작은 브라질이라고 할 정도로 브라질 선수단에는 완더레이, 델로아를 포함해 첼시 선수만 여섯 명이었다.
그리고 아스날 한 명, 바이에른 뮌헨 선수가 두 명, 바르셀로나 선수 두 명,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세 명, 밀란 선수도 한 명 있었다.
하나같이 강팀이었고, 거기 소속된 브라질 선수들은 하나같이 핵심 선수나 주전급 선수로 활약하는 선수들이었다.
같은 팀 소속까지 포함하면 총 18명, 브라질은 그 어떤 나라보다 태양을 잘 아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선수단 내에서 태양을 향한 공포심이 돌고 있었다.
마치 전염병처럼 말이다.
“그래도… 윤태양은 한 명이지.”
축구는 11명이 하는 거다.
윤태양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축구이기에 브라질이 한국에게 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이길 거야, 그지?”
완더레이가 뉴캐슬 선수들에게 묻자 뉴캐슬 선수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음… 이기기야 하겠지?”
“아무리 태양이라도… 혼자니까.”
그 가운데 일리뉴만이 고개를 저었다.
“태양이 컨디션이 최상이면 모른다. 우리가 세 골 넣을 때 혼자 네 골을 넣을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들은 완더레이는 설마, 하면서도 문득 강팀들을 상대로 해트트릭은 기본이요, 더블 해트트릭까지 해대는 태양을 떠올렸다.
“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완더레이가 일리뉴의 밤송이 머리를 짝하고 때리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오늘은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에버랜드에 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