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60화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여기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입니다!]
[잠시 후 대한민국 대 브라질, 브라질 대 대한민국의 친선 경기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브라질과 경기는 참 오랜만이죠?]
[네, 지난 6년 전 친선전이 마지막 경기입니다. 이번 브라질전은 어느덧 10번째 대결이기도 합니다.]
[상대 전적은 어떻게 되나요?]
[대한민국이 1승 9패로 열세입니다. 브라질이 세계 랭킹 1위이기고 영원한 우승후보로 불리는 나라이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개인기가 좋은 남미 국가를 상대로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유럽을 상대로는 좋은 모습으로 선전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럽의 강국을 가장 많이 이긴 나라이기도 했다.
반대로 아시아의 강국 중에서 남미와의 전적이 가장 좋지 않은 팀이기도 했다.
크랙 유형의 선수, 드리블 돌파가 좋은 선수들에게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이는 한국이었다.
어쩌면 오늘 경기도 질 수도 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거나, 기대를 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관중석이 보이십니까? 대한민국 유니폼에 태양 모양의 배지를 달고 있는 여성분들이 참 많이 보이네요.]
[저분들이 요즘 유명한 궁녀단이라는 윤태양 선수의 팬클럽 회원들인 것 같습니다.]
[윤태양 선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것 같군요. 여성 팬 분들뿐만 아니라 남성분들도 많은 거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아니, 아시아에서 이런 선수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난 시즌 그가 넣은 골만 해도 무려 77골, 공격 포인트로만 보면 100점이 넘습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선수죠. 놀라운 건 고작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소년이라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오늘도 멋진 활약을 기대합니다.]
선배 축구선수이기도 한 해설이 흐뭇한 얼굴로 말하는 사이 캐스터가 오늘의 선발 라인업을 알렸다.
[오늘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먼저 대한민국입니다!]
FW 조동호/윤태양/김현수
MF 윤진용/이현석/김호/우태현
DF 배상현/유성재/박동근
GK 신호성
[오늘 대한민국의 기본 포메이션은 343입니다. 이현석, 김호 두 선수 모두 수비적인 미드필더로 후방을 단단하게 걸어잠그고 공격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어서 브라질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FW 세자르/디네이/일리뉴
MF 에데르/델로아/앙헬로
DF 주니뉴/무리시/완더레이/산체스
GK 에바닐송
[브라질은 433 포메이션입니다. 신기한 건 오늘 브라질 선발 선수들이 윤태양 선수의 동료이거나 경기를 뛰어본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윤태양과 브라질이 묘한 인연이 있군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선수들이 나오려는 것 같습니다.]
경기장의 전광판에는 입구 통로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꺄아아아아!
그중에 태양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관중석에서 여성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이야, 10만 궁녀단이 경기장 꽉 채웠다냐?”
태양의 뒤에 선 배상현의 말에 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지. 나보고 저러는 걸까?”
“방금 카메라가 너 찍었잖냐.”
“카메라 신경 쓸 시간에 수비나 신경 써, 인마.”
“하… 그럴 생각이거든?”
오늘 선발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한 배상현은 감독이 백 쓰리를 가동하며 한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저번에 한 번 교체 출전한 적이 있었지만, 선발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애써 태연한 척하던 배상현은 신기한 동물 보듯이 태양을 바라봤다.
“넌 안 떨리냐?”
“떨릴 게 뭐 있어. 맨날 이런 경기장에서 경기 뛰는데.”
“그래도 국대는 다르잖아.”
“국대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경기해야지.”
태양은 그리 말하고 옆을 봤다. 일리뉴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 인마.”
“이렇게 있으니 어색하다.”
“어쩔 수 없지. 나라가 다르잖아.”
“그건 그래. 그래도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다.”
일리뉴와 태양의 대화를 들은 배상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리뉴가 한국말을 하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한국말을?”
“몰라, 이 자식 정상이 아냐. 영어는 잘 못 하면서 한국어는 좀 해.”
“영어 재미없다.”
일리뉴가 히죽 웃는데 그 앞에 선 델로아가 뒤돌아서며 으르렁거렸다.
“적끼리 시시덕거릴 시간이 있냐?”
태양은 그 모습에 오히려 빙글 웃었다.
“친선경기에 뭐 그리 열을 내시나.”
“빌어먹을 놈. 내가 언젠가 널 담가 버릴 거야.”
“해보시든가. 근데 첼시로? 우리한테 다 이긴 적은 있냐?”
“진짜 축구 말고 한 번 싸워볼래?”
델로아가 자신 있는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태양은 그 모습을 보고 그저 웃었다.
다혈진인 우리 블루 고블린은 그런 태양의 모습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걸 본 일리뉴는 델로아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왜, 이 자식아.”
“그만해. 싸우면 네가 져.”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너 나 이기냐?”
“…응?”
델로아는 말문이 막혔다.
일리뉴가 누구인가.
바보라는 말도 있지만, 한편으로 일리뉴는 헐크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힘이 무지막지한 것도 있지만, 한때 나쁜 친구들한테 이용당할 때 친구에게 속아 주먹 좀 쓰면서 얻은 별명이었다.
그 명성은 주변 지인으로 갱을 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태양인 나 이김. 너 까불면 쥐어터짐.”
“......”
델로아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일리뉴와 태양을 바라봤다. 태양은 그런 델로아를 보고 혀를 찼다.
“어휴, 애도 아니고.”
“선수 분들 입장하세요!”
태양이 혀를 차는 사이 드디어 입장의 순간이 찾아왔다.
선수들이 우르르 경기장을 빠져나가 서로 위치로 향한다.
델로아는 멀어지는 태양의 뒷모습을 보다가 일리뉴에게 물었다.
“진짜 저 꼬맹이한테 졌다고?”
“한 방에 갔지.”
“…정말?”
믿지 못하는 델로아를 보고 산체스가 끼어들어 말했다.
“내가 봤어. 태양이가 동양의 신비한 무술을 익힌 거 같았지. 싸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거든.”
“…….”
델로아는 더 이상 태양에게 싸움을 걸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다혈질인 그의 성격에 그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가운데 양팀의 애국가를 제창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 친선경기를 기념하기 위핸 행위를 한 뒤에 선수들이 필드 위에 섰다.
[네,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 시작됩니다! 브라질의 선축입니다!]
[브라질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델로아를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갑니다.]
대한민국은 최대한 차분하게 경기에 임하려고 노력했다.
우태현이나 윤진용처럼 K리그 선수들도 있었지만, 오늘 선발들은 유럽파가 대부분이었다.
사실상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라인업이라 할 수 있었다.
기죽지 않았다.
아니, 기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럴 수 있었던 건 한 사람 때문이기도 했다.
‘태양이 있는데…….’
‘어린애 앞에서…….’
바로 태양.
세계 최고의 선수지만, 이제 고작 고2짜리 어린애였다.
그 애가 태연하다 못해 브라질 선수들을 비웃고 반대로 브라질 선수들이 겁을 먹고 있는데, 선배 된 입장에서 브라질 선수들 보고 쫄아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거다.
그놈의 선배 가오가 뭔지.
어쨌든 그 가오가 위축되지 않은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호기롭게 브라질 선수들에게 달려드는 모습도 연출한다.
[김호가 델로아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델로아 가벼운 발재간으로 제치는데요! 김호 달라붙습니다! 델로아를 상대로 몸싸움을 하며 델로아의 전진을 저지하고 있어요!]
지난 시즌 우니온 베를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인트라흐트로 이적한 김호는 피지컬이 좋고 끈적한 수비로 이번 시즌 아인트라흐트에서 전 경기 출전하며 사랑을 받기 시작한 선수였다.
[이번 시즌 불과 2주 전에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김호가 맹활약하며 기적 같은 승리를 거뒀었죠?]
[네, 맞습니다. 그의 끈질긴 수비가 뮌헨의 중원을 저지하면서 아인트라흐트가 승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천하의 델로아를 상대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네요!]
델로아는 내심 놀랐다.
이 정도 수준이면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통할 수준이다 싶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잘 쳐줘야 중위권 팀 정도의 수준.
델로아는 작은 체구를 이용해 김호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기어이 제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최전방에 있는 디네이를 향해 공을 찔러 넣었다.
공 받은 디네이가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그 앞에는 유성재가 있었다.
알 힐랄에서 이번 시즌 세리에 A에 진출하며 제2의 김만재로 불리는 그는 디네이가 오른발잡이라는 걸 생각하고 언제든지 오른쪽을 차단하려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디네이는 그런 유성재를 무시하듯 오른쪽으로 빠르게 파고 들어간다.
유성재는 대기한 대로 몸을 돌리며 오른쪽 길을 차단하면서 디네이에게 어깨를 들이밀려 했다.
그 순간 디네이가 그대로 멈춰서며 드래그백으로 공을 뒤로 끌어내고 유성재의 등 뒤로 파고들어갔다.
[아! 유성재 뚫립니다! 그대로 골키퍼에게! 아앗!]
[배상혀어어언! 배상현이 태클로 디네이의 공을 따냅니다!]
태클로 공을 따낸 배상현은 균형을 잃어가면서도 필사적으로 공을 앞에 있는 이현석에게 패스했다.
이현석은 좀 더 내려와 공을 받고 전방을 바라봤다.
“헛…….”
헛숨이 절로 삼켜진다.
브라질 선수들의 시선이 온통 자신을 향해 있었다.
당장 공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머리가 하얗게 질리는 가운데…….
“형, 공!!”
태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현석은 태양의 목소리를 쫓았다.
윙백 역할을 하는 윤진용이 미드필더 위치로 들어와 머릿수를 채우는 사이, 그 공간으로 온 태양이 손을 들고 있었다.
쟤가 왜 저기까지 내려와 있어?
의아한 마음도 잠시.
이현석은 서둘러 태양에게 공을 패스했다.
[윤태양이 공을 잡습니다!]
와아아아아!
꺄아아악!
태양이 공을 잡자마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
그 가운데 브라질 선수들은 일제히 굳은 표정으로 태양을 바라봤다.
[윤태양, 달립니다!!]
태양이… 온다!!
윤태양이 사이드라인을 타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앙헬로가 그런 윤태양을 저지하기 위해 길목을 막아선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윤태양을 상대한 단 한 경기에서 무려 네 골이나 헌납한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 앙헬로.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수많은 관중이 오로지 태양만을 위해 기립박수를 하던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브라질의 전설 일 페노메노처럼 저돌적인 스탭오버 무빙으로 다가오는 그를 향해 용기 있게 발을 내밀었지만, 그 틈에 태양은 앙헬로의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공을 쏙 집어넣고 가뿐하게 그를 제치고 지나쳤다.
그를 놓친 앙헬로가 그를 쫓기 위해 뒤돌아섰을 때, 태양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들어가며 산체스를 마주하고 있었다.
‘산체스는 막을 수 있겠…지?’
뉴캐슬에서 누구보다 오랜 시간 태양을 지켜봤으니 그를 공략하는 방법 정도는 알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앙헬로의 착각이었다.
사실, 브라질에서 누구보다 많은 시간 동안 태양을 맞상대한 것은 다름 아닌 산체스였다.
그리고 산체스는… 훈련, 연습경기에서조차 단 한 번도…….
‘왕자를 어떻게 막아?!’
그를 막아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아! 산체스를 제치는 윤태양!!!]
[마치 유령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