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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174화 (171/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74화

전반전이 끝났다.

베르거 감독은 라커룸 안으로 들어오며 거칠게 문을 닫았다.

쾅! 하고 울리는 소리에 선수들의 시선이 감독을 향했다.

베르거 감독은 굉장히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화를 내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마이페이스를 유지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곤조곤 따지며 갈구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선수들이 조금 놀란 얼굴로 감독을 바라보자 감독은 전례없이 붉어진 얼굴로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다.

“치밀하게 준비해서 간신히 얻은 두 골이었다. 그 두 골을 순식간에 무의미하게 만들었지.”

“…….”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건 바로 너희들의 시대착오적인 마인드 때문이다. 우리 시티가 아직도 챔피언이라고 생각하나?”

감독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맨시티의 시대는 끝났다. 이미 지난 시즌에.”

“…감독님!”

“왜? 말이 심하다고 생각하나? 아니, 전혀. 너희들은 그 시대에서 무얼 했지? 그 시대에 함께했단 자부심을 가진 일부는 기껏해야 백업 선수, 어린 유망주들이었지. 너희들은 그저 호가호위했을 뿐이야. 그리고 나머진 모두 새로 들어온 선수다. 도대체 너희들 누구에게 우승 DNA가 있다는 거냐?”

일부 선수들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오랜 우승은 그들의 자랑이요, 자부심이었다.

그걸 부정하는 듯한 감독의 발언은 그들을 화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과거에 취한 팀에게 미래란 없다. 몰락만이 남을 뿐. 다시 챔피언이 되고 싶나? 영원한 왕조가 되고 싶어? 그렇다면 초심으로 돌아가서 도전해야지. 뉴캐슬을 비웃을 게 아니라!”

“뉴캐슬은……!”

“챔피언이지. 지난 시즌이 120여 년 만에 이뤄낸 우승이지만, 그들이 과거의 시티처럼 안 될 이유가 있나? 인정할 건 인정해라. 이제 뉴캐슬이 우리보다 한 수, 아니, 몇 수나 위라는 걸.”

감독은 그리 말하고 선수들을 둘러봤다.

몇몇 선수들은 현실을 수긍하는 것 같았지만, 몇몇 선수들은 감독의 말에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감독은 이 와중에 누굴 쳐내야 할지 다시 한번 솎아냈다.

일단 선수를 쳐내는 건 나중 일이고 일단은 지금에 충실해야지.

감독은 불만을 표시한 선수들 중에 지금 선발로 뛰고 있는 선수 두 명을 교체했다.

로자스를 대신해서 호세 로드리게스를 넣고 네노브를 대신해서 보가드를 투입했다.

로자스와 네노브는 당연히 반발했지만, 감독은 단호하게 그들을 외면했다.

베르거는 순한 덕장 이미지지만, 한번 마음을 먹으면 절대 바꾸지 않는 독한 사람이기도 했다.

[네,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전반전 치열하게 주고받으며 2대2 동점으로 마무리됐는데요, 후반전은 어떻게 보십니까?]

[네, 전반전 시작부터 맨시티가 기발한 방법으로 두 골을 넣긴 했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습적으로 했기 때문에 통했던 방법입니다. 그 이후 벌어진 상황을 보면 전반 내내 뉴캐슬이 주도, 아니, 지배한 경기였어요.]

[네, 그렇습니다.]

양 팀 선수들이 필드 위로 올라왔다.

어딘가 풀이 죽은 듯한 모습을 보이는 맨시티와 다르게 뉴캐슬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선수들을 보며 몇몇 맨시티 선수들은 그들에게서 여유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의 동점을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맨시티는 한 수 아래라고 생각이 그런 여유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 상대는 우리보다 강하다.’

가장 절실히 깨달은 건 에제크웸이었다.

이미 한 번 자존심이 깨지며 현실을 인지한 에제크웸은 맨시티와 뉴캐슬의 차이를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단순하게만 봐도 상대는 리그 50골을 처박는 괴물과 세리에A 득점왕, 발롱도르 위너까지 들이닥친 반면 맨시티에는 그런 선수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필요할 때 골을 넣어주지 못하는 공격수, 급발진하는 주장, 꾸역꾸역 감독의 전술과 세트피스로 넣는 골들까지.

‘왜 자기들이 챔피언이라고 우기는 거지?’

맨시티의 현실을 깨달은 만큼 지금의 경기가 버겁다.

두 골 이후로 공을 앞으로 전개하지 못하는 자신들과 다르게 뉴캐슬은 후반이 시작되기 무섭게 세 번째 골을 향해 빌드업을 쌓아가고 있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전진합니다! 메넨데즈가 샬렛에게! 샬렛 측면을 타고 올라갑니다! 다른 선수들 역시 전진하는데요!]

[샬렛, 길 막히자 곧 바로 카싸마에게! 카싸마, 로드리게스 제치고 그대로 윤태양에게!]

윤태양이 보가드를 등진 상태로 공을 받고 솜브레로로 상대 등 뒤로 공을 넘기며 몸을 돌렸다.

눈앞에 보이는 골대, 떨어지는 공, 그리고 곧 바로 달려온 쥘톤.

태양은 쥘톤을 피해 공을 한 번 더 트래핑하고는 쥘톤을 밀어내며 골대를 향해 발리로 슈팅했다.

날카롭게 뻗은 공이 골망을 갈랐다.

[골! 골입니다! 윤태양의 발리 슈팅!]

[해트트릭입니다! 지난 경기에 이어서 연속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윤태양!]

[윤태양 대단합니다!]

득점을 성공한 태양은 그대로 하프라인으로 돌아갔다.

해트트릭한 공이 회수되고 새로운 공이 수급되며 경기가 다시 시작했지만, 맨시티의 기세는 꺾인 뒤였다.

아니, 기세를 살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수비라인을 뚫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 앞을 지키는 다미아노의 수비력이 보통을 넘었다.

여기에 맨시티의 움직임에 따라 다미아노와 함께 메넨데즈가 내려와 수비라인 앞에 서면 수비라인까지 공을 전개시킬 수조차 없었다.

맨시티가 무의미한 패스만 주고받는 가운데, 뉴캐슬은 서서히 맨시티의 숨통을 조여갔다.

그리고 살며시 함정을 판다.

영리한 메넨데즈가 슬쩍 공간을 열어주는 순간, 아모로스가 그 공간으로 공을 찔러넣었다.

그리고 공의 목적지인 루크 영보다 한발 빠르게 바이스티거가 달려들어 공을 잘라냈다.

[뉴캐슬 공 빼앗습니다! 뉴캐슬의 역습이 전개됩니다! 선수들이 빠르게 전방으로 올라가는 가운데, 바이스티거 롱패스!]

공이 전방을 향해 쭉 뻗어나갔다.

그 공이 향한 곳은 윤태양. 윤태양은 로드리게스와 함께 볼 경합에 나서서 가슴으로 공을 받고는 어깨로 트래핑, 그리고 백힐로 공을 옆으로 보낸다.

윤태양의 환상적인 볼 트래핑 이후에 찔러 들어간 공을 차지한 건 일리뉴. 일리뉴는 공을 잡기 무섭게 골대를 향해 그 특유의 대포 같은 슈팅을 때렸다.

일리뉴의 이번 슈팅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정확한 타이밍, 자세, 각도, 힘, 발의 위치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지며 만들어낸 슈팅이었기 때문이다.

그 슈팅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나간다.

맥나마라가 그 공을 쳐내기 위해 손을 뻗어 막았지만, 오히려 맥나마라의 손을 쳐내며 공은 기어이 골대 안으로 쑤셔박혔다.

[고… 골!! 엄청난 슈팅이었습니다!]

[괜히 헐크나 몬스터로 불린 일리뉴가 아니죠! 대단한 슈팅!]

[스코어는 4대2로 뉴캐슬이 완전히 앞서 나갑니다!]

홈구장에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온 사방에서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함성이 퍼진다.

“아…….”

맨시티 선수들은 좌절했다.

초반 두 골은 요행이었고, 지금이 현실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모든 게 꺾여버릴 수밖에 없었다.

재개된 경기는 맨시티가 어떻게든 공을 지키며 뉴캐슬이 그 공을 따내서 추가 득점을 내려는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맨시티는 선수들이 하나같이 멘탈이 나간 탓인지 호흡이 맞지 않고 실수를 반복하기 시작했고, 뉴캐슬은 몇 번이나 기회를 찾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추가 득점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집중하자! 오른쪽이 비잖아!”

유일하게 멘탈을 붙잡고 평소보다 더 빡세게 경기에 임하는 에제크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를 지휘하고 스스로 앞으로 나서 공을 빼앗는 등 멋진 활약으로 맨시티의 골대 앞을 지켰다.

“포텐이 터지려나 보네.”

태양은 에제크웸을 보고 오, 하고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에제크웸은 훗날 프리미어 리그의 가장 위대한 수비수이자 맨시티의 수호신으로 불릴 녀석이었다.

하지만.

“아직 멀었지.”

태양은 알게 모르게 선배들까지 장악해 수비라인을 이끄는 에제크웸을 눈여겨보다 공을 받기 무섭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와라!”

에제크웸이 그런 태양을 향해 버럭 소리친다.

그 기세가 제법 살벌했지만, 태양은 콧방귀를 뀌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아, 윤태양과 에제크웸이 충돌합니다!]

[윤태양, 오버스탭으로 다가가다 그대로 왼쪽으로 파고드나요? 아, 길목을 차단하는 에제크웸!]

시저스 드리블로 달려들다 왼쪽으로 빠지려는 순간 잽싸게 자신의 앞을 막아서며 공을 향해 발을 뻗는 에제크웸을 보고 태양은 발바닥으로 공을 끌어내 발을 피하고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려했다.

그 순간을 노리고 에제크웸이 태양에게 바짝 들러붙으며 어깨를 들이민다.

전반과 다른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그래, 지금 어느 순간 뭔가를 깨닫고 각성한 기분이 들 거다.

평소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영감처럼 번뜩이고, 몸은 평소보다 더 기민하고 날렵하게 움직여질 거다.

이 순간 이후로 에제크웸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뭐가 아닐까?

‘내 적수가 되긴 일러.’

그래, 아직 태양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태양은 밀고 들어오는 에제크웸의 어깨를 버티고 들어오는 발을 피해 공을 굴리며 몸을 돌렸다.

에제크웸을 축으로 한 바퀴 돌아 에제크웸의 등 뒤에 선 태양은 에제크웸이 따라붙기 전에 발끝에 힘을 주고 잔디를 박차며 그대로 골대를 향해 달려갔다.

“못… 간다!”

에제크웸은 눈에 불똥을 튀기며 손을 뻗었다.

태양에게 또다시 굴욕적인 추가 득점을 내주느니 반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보였지만, 그의 손은 끝내 닿지 않았다.

대신 태양의 바로 앞을 보가드가 막아선다.

에제크웸은 그걸로 만족했다.

자신이 벌어준 시간 덕분에 지원이 붙어 태양의 진로를 방해해 공을 뺏을 수 있다는 것에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선 안 됐다.

태양은 보가드를 보자마자 라보나 킥으로 공을 옆으로 패스했다.

보가드는 태양의 상체를 보느라 한 박자 늦게 라보나 킥을 인지했고, 라보나로 보낸 공을 카싸마가 받는 순간 에제크웸의 표정은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그리고.

[골! 골입니다! 카싸마의 득점! 스코어는 5대2가 됩니다!]

[뉴캐슬 엄청난 공격력이에요! 지난 세 경기 멋진 경기력을 보여준 맨시티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지만, 이번 시즌 뉴캐슬은 지난 시즌보다 더 강합니다! 이번 시즌은 챔피언으로서 품격을 갖췄다고 볼 수 있어요!]

“하…….”

에제크웸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태양을 바라봤다.

뉴캐슬의 왕은 이런 건 당연하다는 듯 오만한 표정으로 하프라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급하게 공을 챙겨서 하프라인으로 뛰어갈 필요도 없다는 듯 산책하듯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제길.”

에제크웸은 이를 악물었다.

또다시 아까 같은 상황이 온다면 절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이 경기가 재개됐다.

뉴캐슬은 다시 압박에 들어갔고, 맨시티는 어떻게든 공을 뺏기지 않으려고 그저 공을 돌리면서 하염없이 시간이 흐른 끝에.

[주심, 휘슬 울리며 경기 종료되면서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승리합니다!!]

경기가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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