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181화 (178/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81화

“만만치 않네.”

태양은 입맛을 다시며 눈앞에 선수를 바라봤다.

“흐흐.”

피어스가 태양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는 볼을 향한 끝없는 집착으로 기어이 발끝을 들이대 태양의 슈팅 경로를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28세, 상당히 늦은 나이에 반 이완 감독을 만나 뒤늦게 포텐을 터뜨리긴 했지만, 그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수비의 한 축이 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너무 늦게 터지는 바람에 명성을 떨친 시기가 너무 짧아,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잊혀진 아쉬운 선수였다.

좀 더 일찍 반 이완 감독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얼마나 더 컸을지 모를 사람이기도 했다.

“재밌네.”

태양은 자신을 바라보며 해냈다는 듯이 웃는 피어스를 보고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골대를 맞고 뒤로 벗어난 공으로 사우스햄튼의 골키퍼 셋포드가 짧게 패스하며 경기가 재개된다.

사우스햄튼은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신중하게 전진해 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단점을 잘 알았다.

마지막을 장식할 피니셔가 없다는 것.

확실하게 골을 넣어줄 피니셔가 없다는 건 축구팀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대신 그들은 최전방에 공이 끊이지 않게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연계형 공격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 뒤에 있는 선수들과 끝없이 패스를 주고받으며 뉴캐슬의 빈 공간을 계속해서 공략해 들어간다.

여기서 공간을 허락하면 사우스햄튼에게 골을 먹힌다.

아무리 피니셔가 없다 한들, 연계가 뛰어난 공격수라 하더라도 슈팅을 안 하는 게 아니고, 그 슈팅이 골로 연결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뉴캐슬은 쉬이 공간을 열어주지 않았다.

“대단하네.”

올리 콜은 혀를 내둘렀다.

뉴캐슬은 지난 시즌과 확연하게 달랐다.

아놀드를 중심으로 몇 번이나 센터백이 바뀌다가 무리시가 자리잡고, 이어서 조금 아쉬운 아놀드를 대신해서 바이스티거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뉴캐슬의 수비벽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수비라인만 단단하면 다행이다.

더 이상 전진하기 어려워 공을 뒤로 돌리려면 항상 메넨데즈를 의식해야 했다.

거기다 아직 정보가 많지 않은 베르치도 골치가 아팠다.

이 프리미어 리그 이적생은 오늘 자신의 모든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 어느 때 보다 악착같이 뛰고 있었다.

올리 콜은, 그리고 사우스햄튼 선수들은 더욱더 템포를 죽이고 신중하게 패스했다.

여기서 공을 뺏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공을 뺏기는 순간 뉴캐슬의 역습이 시작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역습이었다.

프리미어 리그는 물론이고 세계 유수의 팀들도 막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꿇게 만든 역습을 사우스햄튼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우스햄튼의 신중한 움직임은 뉴캐슬을 답답하게 만들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재미가 없었다.

전반 중반까지 지지부진하게 느린 템포로 끌고 가는 걸 누가 좋아할까?

-아 경기 ㅈ노잼;;;;

-축구냐 저게

-애무축구네 그냥 ㅈㄴ게 비비다가 끝나겠누;;;

-사우스햄튼 원래 이렇게 축구하냐?

-저게 뭐야 ㅅㅂ

-잠 안 자고 기다렸는데 그럴 가치가 없네 ㅅㅂ

-난 퇴근하자마자 자고 인나서 보는 건데 화난다;

-내 치킨이 식어간다 맥주도… 재미없어서 맛이 없누

경기를 보는 사람들 모두가 야유를 보내기 시작할 때, 오로지 사우스햄튼의 팬들만이 팀이 이기길 바라며 목이 터져라 그들을 응원했다.

팬들의 응원을 받아서일까?

사우스햄튼의 이오안누가 홀린 듯 베르치를 제치고 기습적으로 린데만의 뒤쪽으로 공을 찔러넣었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공을 향해 린데만보다 한발 더 빠르게 페리가 공을 차지해 달려 나갔다.

찬스다.

정말 힘들게 얻은 찬스였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페리는 그 어느 때 보다 높은 집중력으로 이를 악물고 주위를 훑었다.

중앙에는 어느새 올리 콜과 제임스 프리스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되려나?’

사실 이 루트는 사우스햄튼의 몇 안 되는 득점 루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유난히 높이 솟아오른 바이스티거를 보니 과연 저 거대한 수비수를 상대로 자기 팀 공격수가 득점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에이, 몰라.’

되겠지.

페리가 크로스를 올렸다.

‘오우?’

크로스를 올린 본인이 의아할 정도로 정교한 크로스였다.

평소보다 더 정확하게 올라가는 공을 바라봤다.

적당한 높이에 빠르게 뻗어나간 공을 향해 중앙에 있던 선수들이 경합에 들어갔다.

무리시가 골대 한쪽을 막는 사이, 공의 낙하 예상 지점에는 바이스티거와 올리 콜, 프리스가 있었다.

‘이거 뭔…….’

‘얘가… 19살?!’

올리 콜과 프리스는 질린 얼굴을 했다.

뉴캐슬에는 최전방에만 괴물이 있는 게 아니라 후방에도 있었다.

이런 괴물을 범인(凡人)이 상대하려면 정정당당해선 안 된다.

언제부터 프리미어 리그가 정정당당했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곳이 바로 여기다.

마치 미리 짜고 왔다는 듯 프리스가 바이스티거에게 바짝 붙으면서도 주심의 시야를 가렸고, 바이스티거 뒤에는 올리 콜이 바짝 붙어 슬그머니 바이스티거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윽……!”

바이스티거가 움찔한다.

그리고 눈에 불을 켜고 뒤를 돌아본다.

그사이 프리스가 뛰어올라 공에 머리를 가져갔다.

프리스의 헤딩이 골대를 향한다.

‘이건 골이다!’

프리스는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하지만 뉴캐슬의 골대는 녹록치 않았다.

[리첼라! 놀라운 선방입니다!]

골대 앞 킹콩, 뉴캐슬과 이탈리아의 수호신, 리첼라가 득점이나 다름없는 헤딩을 막아냈다.

골대 뒤로 공을 쳐낸 리첼라는 프리스를 바라보며 포효했다.

“아, 저 괴물.”

그래, 지금 뉴캐슬의 괴물들이 등장하기 이전에 일찍이 뉴캐슬에는 골대 앞을 지키는 괴물 하나가 있었지.

프리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뒤로 돌아섰다.

“자, 코너킥 준비하자!”

그림쇼의 외침과 함께 사우스햄튼 선수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림쇼, 피어스, 맥과이어, 프리스가 골대 앞에서 볼경합에 나서고 살짝 뒤쪽에서 올리 콜과 제임스 프리스가 기회를 노린다.

페리가 코너킥을 준비하고 후방에는 올리버, 스몰, 베이커가 대기한다.

원래는 올리버까지 볼 경합에 가세하지만, 상대가 역습에 특화된 팀이다 보니 후방에 세 명이나 배치했다.

그런 사우스햄튼을 상대로 뉴캐슬도 자리를 잡았다.

바이스티거와 무리시, 그리고 최전방에 있어야 할 일리뉴까지 골대 앞에 나선다.

사우스햄튼의 몇 안 되는 득점루트인 세트피스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사우스햄튼 득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이 세트피스였다.

공격력이 부족한 팀으로 골을 얻어내기 위해 반 이완 감독은 세트피스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시즌 뉴캐슬이 사우스햄튼에게 패배했던 것도 결국, 세트피스였었죠?]

[맞습니다. 사람들은 세트피스의 기적이라 생각하겠지만, 반 이완 감독은 코너킥 상황이라는 무대에서 잘 짜여진 각본으로 골을 만들어내는 승부사입니다.]

아르텔리 감독은 굳은 얼굴로 상황을 지켜봤다.

많은 걸 준비했지만, 아마 건너편 벤치 앞에 선 젊은 감독은 자신보다 더 많은 걸 준비했을 거다.

머리가 굳어버린 늙은 자신과 달리 젊은 상대는 창의력이 넘쳐난다.

그걸 감당하기 버거워 지난 경기에서는 어이없이 졌었다.

물론, 핑계거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지난 시즌은 수비가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든든한 바이스티거와 무리시가 중앙을 지키며, 혹시 몰라 일리뉴까지 가세하도록 하고 다른 사우스햄튼 선수들을 모두 1대1로 마크하다시피 했다.

역습?

역습은 어차피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축구력을 자랑하는 윤태양이 알아서 해줄 거다.

일단, 골만 막으면 된다.

그사이 필드 안 선수들은 수시로 몸싸움을 해가며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프리스가 슬그머니 맥과이어와 피어스에게 말했다.

“바이스티거 있잖아.”

“왜?”

“공중전 장난 없었냐? 잘하긴 하지?”

“그래, 잘해. 근데 말이야.”

“시간 없어 뜸들이지 말고 말해.”

“애는 애다.”

“애는 애라고?”

프리스는 바이스티거를 바라봤다.

분명 뛰어난 선수였다. 어쩌면 저 어린 나이에 프리미어 리그 정상의 수비수들 못지않은 기량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약점은 있었다.

바로 경험.

그는 심판의 눈을 속이고 들어오는 반칙에 격하게 반응했다.

어린 선수들이 흔히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멘탈이 약점이야. 반칙하고 이런 걸 못 견뎌 하더라고.”

“애송이로군.”

“어, 축구 존나 잘하는 애송이야.”

그 말을 들은 선수들이 음흉하게 웃었다.

“일단 바이스티거부터 무너뜨린다.”

바이스티거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맥과이어와 피어스는 바이스티거에 바짝 붙어서 위치를 지키기 위해 버티는 바이스티거를 공략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이스티거는 지금 상황에서 굉장히 위협적인 선수였다. 사우스햄튼 입장에서는 이 선수만 무력하게 만들어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저리 꺼져!”

바이스티거가 신경질적으로 말했지만, 행동은 신사였다.

“숙녀가 따로 없네.”

“꺼지라고 꺼지겠냐?”

사우스햄튼 선수들은 행동은 물론이고 말로도 바이스티거를 뒤흔들었다.

그사이에 휘슬 소리와 함께 페리가 코너킥을 찼다.

날카로운 코너킥이 골대 바깥쪽으로 떨어진다.

바이스티거는 그 공을 쫓으려고 했지만, 사우스햄튼 선수들의 방해에 움직일 수 없었다.

대신 일리뉴가 공을 향해 머리를 가져갔다.

일리뉴의 머리를 맞은 공이 골대 반대쪽으로 멀리 튕겨 나간다.

[일리뉴의 머리에 닿은 공이 골대 반대로 향합니다! 공을 향해 달려드는 선수들! 아! 대기하던 그림쇼가 공 잡았습니다! 슈티이이잉!]

그림쇼가 낮고 빠른 슈팅을 시도했다.

절묘하게 선수들 사이를 파고들어 골대를 향하는 슈팅.

골일까?

[오오!]

[오!]

우우우우우!

아니었다.

선수들에게 시야가 가려 슈팅을 보지도 못했던 리첼라가 공이 보이기 무섭게 짐승 같은 반사신경으로 공을 품에 안았다.

[놀라운 선방입니다! 오늘 리첼라가 평소보다 폼이 더 좋네요!]

[최상의 컨디션과 집중력입니다!]

공을 잡은 리첼라는 곧 바로 움직였다.

사우스햄튼의 지루한 경기는 이제 끝이다.

뉴캐슬의 시간이 찾아왔다.

[리첼라 공을 멀리 차냅니다!]

[공을 향해 윤태양이 달려 나갑니다!]

대기하던 사우스햄튼의 선수들과 윤태양이 동시에 공을 향해 달려 나갔다.

주력은 어느 정도 타고난 부분이 있지만, 성장하면서 더욱더 빨라지는 법이다.

윤태양은 이제 겨우 17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주력도 그에 따라 더욱더 빨라졌다.

뉴캐슬이 대놓고 공개하지 않았지만, 전력을 다해 뛰는 윤태양의 주력은 공식적으로 속도가 집계된 역대 빅리그 선수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현역 프리미어 리거 중에서는…….

[윤태양!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저 정도였나요?!]

제일 빠른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허허허, 태양이 뿜어내는 빛을 따라잡을 건 아무것도 없지.”

아르텔리 감독이 웃음을 터뜨렸다.

축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가진 저 천재는 잔인하게도 주력마저도 가졌다.

그야말로 빛살처럼 달려간 태양은 다른 선수들 보다 한참이나 앞서 공을 차지하고 골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공을 가지고 달리고 있는데도 주력이 거의 줄어들지 않은 채 태양은 골키퍼를 마주했다.

사실, 굳이 그를 상대로 뚫고 갈 필요도 없다.

공을 한쪽으로 치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골키퍼를 제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태양은 그러지 않았다.

사우스햄튼 선수들, 특히 골키퍼의 기를 죽일 필요가 있었다.

비장하게 달려드는 셋포드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든다.

셋포드의 두 눈이 의아함으로 물든다.

진짜 충돌할 생각인가 싶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을 즈음.

셋포드는 순간 태양이 사라졌다는 착각이 들었다.

환영이었나, 아니면 귀신이었나?

아니다.

귀신 같은 드리블이었다.

메시가 봐도 혀를 내두를 것 같은 신의 경지의 다다른 라 크로케타로 골키퍼를 제친 태양은 사람들의 함성을 받으며 유유히 골대를 향해 공을 치고 달려가다 툭 하고 공을 밀어넣었다.

[고, 골입니다!]

[고오오오오오올!]

태양은 그 자리에 섰다.

모두가 태양의 등 뒤를 바라보는 가운데 태양은 오연하게 서서 양 팔을 들어 엄지로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YOON

7

일순, 모두가 홀린 듯 침묵한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하, 뉴캐슬의 왕이 사우스햄튼의 모든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군요.]

[누가 감히 야유할 수 있겠습니까!]

[상대는 뉴캐슬의 왕, 공포의 침략자이자 위대한 정복 군주입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