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83화
[다시 앞서가는 뉴캐슬, 하지만 사우스햄튼은 조급하게 플레이하지 않습니다. 소신있게 자신들의 플레이를 이어가네요.]
-진짜 징하다 징해
-개노잼 축구 계속하네
-그러니 두 골이나 먹히지
-두 골이나? 두 골밖에가 아니라?
-뉴캐슬 상대로 이 시간까지 고작 두 골 먹은 팀이 이번 시즌에 있긴 함?
-심지어 한 골 넣기까지 함
-소튼 스쿼드로 이 정도면 개잘하는 거지 ㅋㅋㅋㅋ
-아스날, 맨시티보다 더 잘하는구만 ㅋㅋㅋ
-이렇게 되면 소튼이 이기는 거 함 보고 싶긴 하네 ㅋㅋ
-ㅈㄴ 강팀도 한 번쯤은 져줘야 재미있지
-아직 후반 30분이나 남았다
-아직 모른다
-소튼 세트피스 개 무섭 ㄷ
지루하다는 사람도 많지만, 뉴캐슬을 상대로 박빙의 경기를 보여주기 시작하자 소튼을 응원하는 중립 팬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바이스티거가 멘탈을 잡아가며 수비를 조율하기 시작하고 사우스햄튼의 느린 공격에 빠르게 적응한 뉴캐슬은 사우스햄튼에게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서서히 숨통을 조이며 사우스햄튼을 서서히 갉아먹어 갔다.
“하, 제길.”
반 이완 감독은 아쉬움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뭔가 더 해볼 게 없네.”
가진 카드를 모두 꺼내서 쓰고 보니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공략집 없이 중간 보스를 만나 처음에는 몇 번이고 당했지만, 패턴을 모두 습득하고 이제는 어렵지 않게 공략하는 게임 유저와 같았다.
이제 사우스햄튼에게 남은 건 더 이상 실점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리고 몇 번이고 같은 방법을 시도해서 기회를 얻어야겠지.
그래, 막말로 운에 모든 걸 맡기는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상대방이 방심이나 실수를 하기를 기다리는 거다.
사실, 지난 시즌 승리도 상대의 방심과 실수가 겹쳐서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승리를 확정지은 마지막 골은 말이다.
오늘도 과연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인가?
“기대해 볼 건 바이스티거의 실수인가?”
반 이완의 시선이 바이스티거를 향한다. 때마침 그쪽으로 공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올리 콜이 바이스티거에게 붙는다.
교묘한 반칙이 예상되며 이번에도 바이스티거가 흔들려 주길 바랐지만…….
“역시… 이제 안 통하는 건가.”
또다시 멘탈이 흔들려 주길 바랐는데 이제는 그 어떤 짓에도 바이스티거는 멘탈을 단단히 붙잡고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올리 콜이 자신에게 반칙을 거는 거에 흔들리는 척하면서 패스를 하도록 유도하더니 공을 커팅해 가로채 버린다.
[뉴캐슬! 공격합니다!]
공을 차지한 바이스티거가 중원으로 치고 달리기 시작한다.
메넨데즈의 자리를 대신하고, 메넨데즈는 베르치, 카싸마와 함께 전방으로 올라가며 최전방의 머릿수를 채워준다.
하프라인을 넘어선 바이스티거는 전방으로 올라가는 두 명의 미드필더 중에 견제를 덜 받는 베르치에게 공을 연결했다.
[베르치 공 잡습니다! 베르치를 견제하는 올리버와 그림쇼! 뒤에는 스몰이 삼각대형을 만들며 포위해 들어갑니다!]
베르치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자신이 드리블로 제칠 수 있는가?
아니, 베르치는 애초에 드리블러가 아니었다.
그는 전방을 바라봤다.
기라성 같은 동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 누구에게 패스해야 할까?
역시 태양이려나?
그리 생각하며 태양을 바라본 순간 태양이 슬그머니 팔을 들어 누군가를 가리킨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태양이 가리킨 곳을 향한다.
베르치는 그곳을 보고서 기다릴 거 없다는 듯 공을 찔러준다.
[베르치가 스몰이 있었던 자리로 공 찔러주고, 아우레가 침투해 공 받습니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진입하는 아우레!]
아우레의 위협적인 움직임에 피어스가 걸려들었다.
피어스의 몸이 아우레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치우치는 순간, 아우레도 지령을 받았다.
피어스의 뒤쪽에 위치한 태양이 뒤를 가리킨 것을 본 아우레는 왕의 지시대로 공을 카싸마에게 보냈다.
공 받은 카싸마가 피어스의 뒤로 파고드는 태양에게 공을 패스한다.
태양이 공을 받으려는 순간, 예측한 듯 맥과이어가 공을 향해 먼저 발을 들이밀었다.
맥과이어가 걷어내려는 공 앞을 태양이 왼발을 들어 그것을 막아냈다.
태양의 발을 맞고 튀어오르려는 공, 태양은 왼발을 내리지 않은 채 그것마저 제어해 오른발 쪽으로 공을 끌어온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볼터치에 피어스가 대응하기도 전, 태양은 오른발에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오른쪽으로 넘겨 버렸다.
[일리뉴! 왼발 슈우우우우우웃!]
[골! 골입니다!]
태양의 패스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든 일리뉴가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하고는 포효한다.
[스코어는 3대1! 오늘 쉬운 경기가 아니었는데, 기어코 세 번째 골을 넣는 뉴캐슬!!]
[이렇게 되면 뉴캐슬은 이번 시즌 전 경기에서 세 골 이상을 넣는 진기록을 가지게 됩니다!]
[엄청난 공격력입니다!]
[뉴캐슬! 이 팀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아… 결국 뉴캐슬 엔딩인가
-소튼 졌잘싸 ㅇㅈ?
-ㅇㅈ
-ㅇㅈ 받고 ㅇㅈ 드립니다
-ㅈㄴ 축구 쉽게 하네 뉴캐슬
-뉴캐슬은 뭔가 전술이 특별한 것도 아닌데 ㅈㄴ 잘해
-명장병 걸려서 저런 스쿼드로 개뻘짓하는 거보다 안정적인 전술로 끌고 가는 게 낫지
승부의 추가 완전히 기울어진 것 같은 상황에 반 이완 감독도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사우스햄튼의 선수들.
성자[The Saints]라 불리는 그들은 마치 축구의 신의 뜻이 있다는 것처럼 묵묵히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리첼라가 지키는 뉴캐슬의 골대 너머에 신의 뜻이 있다는 듯.
묵묵히 소리 없이 신중하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우스햄튼, 분명 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급해질 수도 있는데 한결같군요. 벌써부터 경기를 포기한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공을 앞으로 전개하고 있어요!]
“뭐해! 압박해!”
“공을 뺏어야지!”
뉴캐슬 선수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워우, 좀 살살하라고.”
그림쇼는 뉴캐슬 선수들이 참 독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더 강한 팀이고, 이기고 있는데도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공을 뺏어서 더 많은 골을 넣으려는 생각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그림쇼는 침착하게 그들을 끌어들이며 올리버에게 공을 패스했다.
그림쇼가 선수들을 끌어모으며 만든 공간으로 파고든 올리버는 그대로 골대를 향해 공을 감아찼다.
올리버의 장기 중 하나였다.
스핀을 잔뜩 먹은 공이 골대 구석을 노리고 뻗어나가는 가운데, 리첼라가 몸을 날렸다.
“와… 고릴라 폼 무엇?”
오늘 사우스햄튼의 불행 중 하나는 리첼라의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거다.
못 막을 슈팅을 몇 번이고 막더니 이번 슈팅도 기어이 골대 위로 쳐내 버린다.
“제기랄.”
회심의 득점은 실패했지만, 기회가 찾아왔다.
사우스햄튼 선수들이 세트피스를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사방에서 어떻게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페리 대신 올리버가 코너킥을 준비한다.
올리버는 양손으로 공을 빙글 돌리며 잔디 위에 공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골대 쪽을 바라봤다.
“응?”
그의 눈앞에 이상하리만치 제임스 프리스가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올리버는 눈을 비비고 다시 제임스 프리스를 바라봤다.
“착각인가?”
마냥 착각은 아닌 모양이다.
프리스의 털 하나 없는 대머리가 땀에 젖은데다가 조명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핫.”
올리버는 그 모습이 웃겨 웃음을 흘리고는 손을 들어 코너킥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그리고 휘슬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공을 차올렸다.
“이런……!”
제임스 프리스를 보고 웃은 탓인지 몰라도 공을 잘못 찼다.
스핀을 잔뜩 먹은 공이 너무 높이 떠올라 골대를 향했다.
허공에 높이 떠오른 공은 골대 즈음에서 스핀을 먹은 방향 그대로 아래로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번들거리던 제임스 프리스의 머리에 닿았다.
제임스 프리스는 머리를 휙 돌려 공의 방향을 골대 쪽으로 바꿨다.
골대에서 지키고 섰던 리첼라는 공이 아래로 떨어지자 냅다 다리를 쭉 벋어 다리로 공을 쳐낸다.
놀라운 선방, 하지만.
[올리 코오오올!]
튕겨 나온 공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든 건 올리 콜이었다.
지금 당장 무리해서 다리를 뻗다가 햄스트링이 파열돼도 좋겠다는 심정으로 뻗은 올리 콜의 다리에 공이 걸리며 공은 그대로 골라인을 넘어갔다.
[올리 콜! 골입니다! 사우스햄튼의 놀라운 집념이 만들어낸 골입니다!]
[스코어는 3대2! 위대한 축구 황제가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던 그 스코어입니다!]
득점한 올리 콜은 주먹을 불끈 쥐며 짧게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는 곧 바로 공을 가지고 하프라인으로 달려갔다.
남은 시간은 인저리타임까지 생각해도 고작 10분 정도.
그사이에 최소 동점골을 넣을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추격의 불씨가 지펴졌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반 이완 감독도 선수들의 그런 열의를 느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라인 가까이 서서 선수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와
-사우스햄튼 극장골 가나요?
-기적 이뤄지나?
-뉴캐슬 연승행진 끝내나???
-아니 나 뉴캐슬 팬인데 왜 소튼 응원하지ㅋㅋㅋㅋㅋ
-소튼 ㅈㄴ 간절하다
-그래 축구가 이래야지 요즘은 한 번 쥐어 터지면 너무 쉽게 포기해서 재미 음
-뉴캐슬 심장 쫄깃하게 만들어보자
-소튼 해보자!!
실시간 중계를 보는 사람들 중에서 사우스햄튼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났다.
그걸 지금 경기에 뛰는 선수들은 알 리가 없지만, 이곳은 사우스햄튼의 홈구장인 세인트 메리즈 스타디움이었다.
추격의 불씨를 살린 성자들을 향해 팬들의 미친 듯한 응원이 쏟아지고 있었다.
태양은 하프라인으로 걸어가면서 그런 모습을 불퉁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거야 원, 우리가 악당이라도 된 것 같네.”
세상에 악당이라니.
뉴캐슬만큼 선량한 팀이 어디 있다고.
오히려 나쁜 건 사우스햄튼이다.
“맛없는 바나나나 파는 놈들이.”
사우스햄튼의 사람들은 바나나를 모욕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그런 놈들한테 선량할 필요가 없잖아?
사실, 악당도 나쁘지 않다.
“이왕 악당인 거 대마왕이 좋지.”
윤태양은 스산하게 웃었다.
그런 태양의 웃음을 본 뉴캐슬 선수들은 느꼈다.
“저 미친 왕이 뭐에 꽂혔는지 몰라도 독이 올랐네, 독이 올랐어.”
독이 바짝 올라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는 뉴캐슬의 왕은 반드시 뭔가를 보여준다.
선수들이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경기 재개를 알리는 휘슬과 동시에 태양은 아우레에게서 공을 받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태양이 가장 손쉽게 공을 잡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공을 발아래 둔 태양은 사우스햄튼의 진영을 바라봤다.
전력을 다해 플레이를 하다 보니 지칠 대로 지친 사우스햄튼의 선수들이 보였다.
반대로 태양은 그들의 견제로 인해서 두 골을 넣을 때 빼고는 크게 움직이지 않아 체력이 남아도는 상태였다.
상대를 살피고 자신을 점검한 태양은 공을 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태양의 질주에 뉴캐슬 선수들이 허겁지겁 따라갔고, 사우스햄튼은 태양의 앞을 가로막았다.
태양은 그런 선수들을 좌우로 수시로 방향을 전환하고 따돌리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윤태양! 오른쪽 공간으로 파고들다가 왼쪽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합니다! 빠릅니다! 사우스햄튼의 진영이 어지러워지고 있어요!]
기습적인 질주에 정신없어진 사우스햄튼 선수들 사이에서 태양은 길목을 막아서는 이오안누를 라크로케타로 제쳐 버리고 이어서 옆에서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는 페리를 보고 공을 뒤로 끌어내는 드래그백 기술로 태클을 피했다.
그리고 앞을 봤다.
아주 좁은 공간이지만, 골대를 향한 길이 보였다.
태양은 지체 없이 그곳을 향해 힘껏 공을 슈팅했다.
일리뉴의 강력한 왼발 슈팅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실린 강력한 슈팅은 셋포드가 반응하기도 전에 가차 없이 골망을 갈랐다.
[고, 골! 골입니다!]
[28m 거리에서 터진 어메이징한 골! 유, 윤태양! 5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이 선수 아직도 경신할 기록이 남아있습니까? 대단하군요!]
스코어는 다시 벌어져서 4대2.
남은 시간은 아까 사우스햄튼이 골을 넣었을 때 남은 시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 골 차이와 두 골 차이의 격차를 따라잡기에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사우스햄튼의 성자들이 망연한 얼굴로 윤태양을 바라봤다.
성자라 불리는 그들 입장에서 태양은 그야말로 대마왕이었다.
사우스햄튼의 바나나에 분노한 바나나 대마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