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86화
일명 MD의 재앙을 겪은 토트넘은 부침 끝에 새로운 시즌이 다가오기 전에 네덜란드에서 아약스 감독을 맡았던 샘 브리스를 감독으로 영입하고 새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스퍼스를 사랑하는 팬들조차도 말이다.
애초에 새로 데려온 샘 브리스의 능력부터가 의문이었다.
올해 고작 5년차 감독인 샘 브리스는 단 하나의 타이틀도 가진 게 없었고, 가장 좋은 성적이라고 해봤자 지난 시즌 아약스에서 리그 2위를 한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단도 급하게 감독을 앉히고 기대를 하지 않은 탓인지 지원도 별로 없어 영입도 빈약했다.
아탈란타에서 뛰던 23살, 이탈리아산 수비수인 알리체 몬디와 세르비아에서 온 수비수 드라간 모비치를 영입했을 뿐이다.
-이번에도 토트넘은 텄어
-망했다
-스퍼스는 병든 닭이 된 지 오래야
-언제쯤 우승할 수 있을까?
-글쎄……? 어려울 듯?
-괜찮아 애들아 뉴캐슬도 100년이 넘어서 우승했어 우리도 100년 즈음에는 가능하겠지
-욕 나오네
스퍼스들은 물론이고 프리미어 리그를 보는 사람들 모두가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토트넘은 빅7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게 빅7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조차 십여 년 전 케인과 손홍민이 있던 그 시절 덕분이었다.
토트넘의 영광의 시대는 단 하나의 우승도 거두지 못하고 초라하게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첫 경기에서 웨스트햄을 잡았다.
그래, 웨스트햄 정도야 뭐.
조금 버겁기는 해도 잡을 수도 있는 팀이지.
그다음 상대는 밀월? 이제 막 승격한 팀쯤이야.
근데 고작 한 골차 승리? 어휴, 진짜 답이 없는 팀이라니까.
세 번째 상대는 누구냐?
사우스햄튼? 근데 3대1로 져?
어휴, 등신들.
역시 닭트넘.
그런데 얘들이 돌풍의 팀이 되어버리네?
지금 우리 토트넘 꼴이면 져도 할 말이 없겠는데?
그다음에는 리버풀을 잡네? 아무리 개판인 리버풀이라도 명색이 우리 보다 우승을 더 많이 한 팀인데 잡아서 기분은 좋네.
팬들은 그렇게 매 경기 화내고 위안 삼고 기뻐하며 10라운드를 보냈다.
그 결과 토트넘의 성적은 7승 3패, 리그 6위이긴 하지만 승패만 두고 보면 괜찮은 성적이었다.
우승 타이틀 하나 없는 감독이 꽤나 좋은 성적을 내니 구단도 팬들도 신나서 어깨춤을 출 정도였다.
물론, 뉴캐슬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Fxck… 뉴캐슬이라니
-11경기 연속골의 희생양이 될 줄이야
-아니, 왜 벌써 희생양이 될 거라고 생각해? 저주가 우릴 지켜줄지도 모르잖아?
-팀 승리를 저주에 의존한다고? 너네 ㅂㅅ이야?
-누가 승리한다 그럼? 무승부만 해도 감지덕지라는 소리였는데?
-뉴캐슬을 이긴다고? 우리가? 미친 소리하고 있네
-ㅋㅋㅋㅋ ㅈㄴ 웃겼다 토트넘이 뉴캐슬을 이긴데 ㅋㅋㅋㅋㅋ
-얘들아… 축구공은 둥글잖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윤태양 : 둥근데 왜요?(새끼발가락으로 트래핑하며)
-그래 ㅅㅂ… 윤태양은 둥근 걸 지 마음대로 가지고 놀더라
-차라리 네모난 모양이었어야 해
-저주가 제발 우리팀을 지켜주시길
-오오 제이미 바디여!
-졸지에 제이미 바디가 토트넘의 수호토템이 되었네ㅋㅋㅋㅋㅋ
11경기 연속골의 저주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이 모인 뉴캐슬과 토트넘의 경기는 토트넘의 홈구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토트넘이 좋은 수비를 바탕으로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뉴캐슬이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기는 모두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전반 27분, 윤태양의 패스를 받은 일리뉴가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때린 왼발 슛이 골로 연결되면서 뉴캐슬이 앞서가기 시작했고, 경기 내내 뉴캐슬이 공을 소유한 채로 토트넘을 가둬놓고 두들겨 패는 상황이 연출됐다.
[전반… 종료됩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압도한 전반이었습니다!]
[경기를 압도하긴 했지만, 한 골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토트넘의 수비력이 무시할 수준이 아니네요.]
[슈팅 기회를 잘 막아내고 있어요.]
[아, 그리고 독감에서 이제 막 회복한 메넨데즈나 산체스의 움직임은 다소 무거워 보이는데요?]
-경기 개꿀잼이네
-역시는 역시네 잘 막아도 공격을 하지는 못하고 있누 ㅠ
-애들아 중요한 건 태양이가 골을 못 넣고 있어
-슈팅 코스 존나 잘 막네
-토트넘이 윤태양 막기 해답을 찾은 건가?
-그거보다 윤태양 몸이 좀 무거워 보이는데?
-설마 독감?
* * *
나도 사람이다.
아무리 스포츠 과학자들이나 의료팀, 피지컬 코치가 내 컨디션을 관리한다고 하더라도 한 시즌에 수십 경기를 뛰는데 컨디션이 항상 최고일 수는 없었다.
컨디션이 하늘을 찌를 때도 있고 반대로 컨디션이 바닥을 치는 날도 있다.
물론, 관리를 그렇게 받으니 컨디션이 최악인 날은 어지간하면 거의 없지.
그런데 하필 오늘 컨디션이 최악이네?
이상하게 몸이 무겁다.
그렇다고 아픈 건 아니었다.
그냥 몸이 무거웠다.
“영 컨디션이 별로면 교체해 줄까?”
감독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절대 아니에요.”
“흐음, 그래, 자네가 판단할 일이지. 뛰게 두겠네.”
“네, 감독님. 감사합니다.”
그리 말하고 컨디션이 돌아올까 싶어서 바나나를 먹었다.
역시 구단에서 주는 바나나가 최고다.
기분은 좋아졌는데 몸이 바나나 하나 먹었다고 좋아질 리는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실바가 표독스러운 눈을 하고서는 말했다.
“저주다. 제이미 바디의 저주가 너에게 내린 거야.”
“아니, 뭔 저주예요, 저주는.”
“제이미 바디의 저주도 모자라 마테오 실바의 저주도 걸렸다. 너는 오늘 골을 넣지 못하고 부상에 당할 것이다.”
이 미친 영감이…….
“자기 팀 선수한테 악담을 퍼부어도 됩니까, 감독님? 이 코치 좀 내쫓아주세요!”
“허허허.”
내 말에 아르텔리는 그저 웃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실바가 나에게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주다! 저주우우우우우!”
“아니, 리브한테 혼난 걸 왜 나한테 화풀이하고 그래요?”
“흥이다.”
어휴, 진짜 어른 되기는 글러먹은 양반이야.
“저주는 얼어죽을.”
그런 저주가 있었으면 아마 우리나라 역사는 무당이 좌우했을 거다.
저주 따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후반전.
“저주는… 실재(實在)했던 건가.”
시작은 좋았다.
토트넘의 공을 빼앗고 카싸마가 찔러준 공을 받아 두 명을 제치고 평소와 똑같이 슈팅했다.
발끝이 평소보다 둔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몇 번이고 때린 슈팅인데 설마 안 들어가겠냐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골대를 맞았다.
세상에 제이미 바디의 저주도 모자라서 골대의 저주까지?!
아니, 아니지.
나까지 저주 타령을 하면 어떻게 해.
심리적으로 말려들어서 넣을 골도 못 넣으려고 환장했냐?
정신 차려, 윤태양.
마음을 다잡고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찬스는 여러 번 나왔다.
카싸마가 찔러주거나 뒤에서 메넨데즈가 대지를 가르는 패스를 보내주거나 샬렛의 크로스가 오기도 했다.
나는 번번이 그 패스를 받아 슈팅했고, 간발의 차이로 슈팅이 빗나가거나 토트넘 골키퍼의 말도 안 되는 선방에 가로 막혀야 했다.
“아니… 시발……..”
이런, 나도 모르게 욕을 해버렸네.
하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잖아?
슈팅 9개, 그중에 유효슈팅만 7개인데 골이 하나도 안 들어가다니?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진짜 저주의 희생자가 되는 거야?
주마등처럼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펠리시아노가, 딜런 먼로가, 에링 홀란드가 SNS에다가 ㅋㅋㅋㅋ를 남발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진짜 ㅋㅋㅋㅋ를 치진 않겠지만 그런 뉘앙스로 엄청 비웃겠지.
“그 등신들이랑 동급은 안 돼!”
버럭 소리치자 옆에 지나가던 일리뉴가 흠칫하고 놀라 나를 쳐다본다.
“아, 너 말고.”
아무튼, 도저히 두 눈 뜨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등신, 아니, 등신은 좀 심했고.
딜런 먼로와 펠리시아노 그 바보들이랑 동급 취급받다니.
생각만 해도 수치심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드레날린의 마법이랄까?
전신에 활력이 도는 기분이 든다.
몸이 방금 전까지 상태와 비교하면 훨씬 가벼운 것 같다.
오늘따라 추운 겨울에 차갑게 얼어붙은 것 같던 발이 예민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래, 주인을 닮아 까칠하고 예민하기 그지없는 내 발이 내 발다워졌다.
그렇게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흥분으로 활력이 돈 몸이라지만, 신중해지자.
이제 남은 시간도 얼마 없다.
여기서 또 득점에 실패한다면 기회가 영영 날아갈지도 모른다.
일단 알리체 몬디를 라 크로케타로 제치고 달려오는 드라간과 거리를 벌리며 사선으로 달리다가 골대를 보고 왼발을 휘둘러 공을 감아찬다.
공이 포물선을 그리고 골대 왼쪽 구석으로 휘어 들어간다.
아까 저곳을 노리다가 골대를 때렸었다.
이번에는 들어갈까?
들어가나?
깡!!
“아…….”
또 골대다.
아드레날린이 돌았던 몸이 짜게 식은 것 같은 순간.
골대를 맞은 공이 스핀 때문에 오히려 골대를 타고 골라인 안으로 떨어져 들어간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환성과 동시에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았다.
와, 방금 그 골은 내 인생 가장 힘든 경기였고, 가장 어려운 득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제이미 바디와 마테오 실바의 저주를 깨버렸네.”
경기 끝나고 실바를 놀려줄 생각에 벌써부터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 * *
[뉴캐슬 유나이티드, 토트넘 상대로 2대0 승리.]
[윤태양! 11경기 연속골 타이기록!]
[윤태양, 제이미 바디의 저주를 깨다.]
[저주를 넘어 신화를 향해. 12경기 연속골 도전이 남았다.]
[기록 브레이커 윤태양, 이제는 12경기 연속골.]
제이미 바디 이후에 수많은 선수가 도전했던 11경기 연속골, 그 저주를 깬 윤태양을 향해 무수히도 많은 밈이 쏟아졌다.
성불하는 제이미 바디 사진부터, 제이미 바디의 머리를 슈팅하는 윤태양, 뒤에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홀란드, 딜런 먼로, 펠리시아노 짤 등으로 말이다.
어쨌든, 윤태양의 기록과 함께 뉴캐슬의 독주는 계속 이어졌다.
그사이 뉴캐슬 아래는 순위 변동이 있었다.
2위까지 치고 올라왔던 첼시는 승점 23점으로 5위까지 내려갔고, 토트넘과 비슷한 순위에 있던 맨시티가 승점 26점으로 단숨에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사우스햄튼은 맨시티와 승점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 밀려 3위에 자리잡았고, 4위는 2, 3위와 승점 1점 뒤지는 25점의 아스날이었다.
현 시점에서 뉴캐슬의 승점은 33점이어서 2위와 승점이 고작 7점 차이밖에 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상황이 안 좋은 팀과 선수가 있었다.
리버풀은 감독을 구하지 못하고 대행 체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14위였는데, 승점이 고작 9점밖에 되지 않아, 한 경기 삐끗하면 17위까지 밀려날 판이었다.
그리고 선수 개인으로 봤을 때 상황이 안 좋은 선수는 펠리시아노였다.
태양이라는 생태계 교란종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고, 한국에서는 세계 4대 스트라이커라는 밈으로 통하던 그가 11경기 내내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있었다.
자뻑이 심하고 승부욕이 강하지만, 축구를 향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재능까지 겸비한 그가 아무런 득점도 활약도 하지 못하는 건 맨유는 물론이고, 프리미어 리그 팬으로서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프리미어 리그, 아니,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
아무리 그가 위대한 7번을 이어 받고 팀을 위해 멋진 활약을 보여준 에이스라 하더라도 더 이상 그에게 기회를 주기에는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펠리시아노는 출전 기회를 잃었고, 그 자리를 넘보던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그는 정신과 상담을 병행하며 당분간 2군으로 내려가 회복하는 데 집중하라는 충격적인 상황에 놓였다.
벼랑 끝에 몰린 펠리시아노는…….
@FeliciaNO_7
[태양, 나야. 갑작스러운 DM에 놀랐지? 혹시 시간이 되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언제나 해시태그를 걸어 도발을 하며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던 태양에게 만나달라 부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