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06화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이 펼쳐지는 이곳은 푸스발 아레나 뮌헨입니다!]
*주 (UEFA 규정에 스폰서 이름이 붙을 수 없어 UEFA 주관 경기에서 사용되는 이름)
[7만 5천석이나 되는 관중석이 만석입니다. 오늘 경기를 보러 영국에서 온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보이는군요.]
[보면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한국인들도 많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지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선수가 선발로 참전하는 경기이기 때문이겠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한국 선수가 바이에른 뮌헨과 뉴캐슬에서 7번을 달고 핵심선수로 활약하고 이렇게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게 될 줄 말입니다.]
해설이 열을 올리며 대화를 나눌 때 태양은 박민규를 마주했다.
“네가 태양이구나.”
박민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태양에게 손을 내민다.
태양은 절묘한 타이밍으로 박민규가 내미는 손을 못 본 척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윤태양입니다.”
박민규는 또 절묘하게 악수를 하려고 내민 게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고개 숙인 태양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오늘 잘해 보자.”
“네, 선배님.”
박민규는 그리 말하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태양은 고개를 들며 박민규의 축구화를 바라봤다.
묘하게 거슬리는 쇠가 땅에 부딪치는 소리 때문이었다.
“쇠뽕? 오늘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과한데.”
현대 축구에 들어서 순수하게 쇠뽕, 그러니까 SG스터드를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믹스 스터드가 나오기 전에 SG스터드만을 즐겨 쓰던 사람들이 SG스터드를 사용했다지만, 그 사람들은 다 은퇴하고 없다.
지금에 와서는 거의 대부분이 SG와 FG가 혼합된 믹스 스터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드물게 FG스터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있지만, 순혈 SG스터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저기 눈 많이 오고 비 많이 오는 지역의 선수들이라면 모를까.
“취향 독특하네.”
지영수 라인이라서 지금보다는 옛날 방식이 취향에 맞나?
근데 저거에 태클 같은 거라도 걸리면 최소 살점 뚝 떨어져 나갈 텐데.
왠지 찝찝했지만, 태양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 * *
[선수들이 입장하고 잠시 뒤 경기가 시작됩니다. 경기 시작 전에 라인업 보고 가시죠!]
바이에른 뮌헨
FW 헤메르송/살바토레/박민규
MF 헉슬/칼레/에데르
DF 두아르테/바이스티거/파워/올리베라
GK 피에르
뉴캐슬
FW 윤태양/일리뉴
MF 린데만/박스올/메넨데즈/고메즈/산체스
DF 무리시/아놀드/제나스
GK 리첼라
[양 팀 모두 최고의 전력으로 서로를 상대하는 모양새군요.]
[네, 최근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들도 보입니다만, 컨디션은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평소 사용하던 433을 들고 왔습니다만, 뉴캐슬은 352 포메이션입니다?]
[강력한 스쿼드를 자랑하는 바이에른 뮌헨의 약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게 미드필더입니다. 뉴캐슬은 중원을 장악해 승부를 보려는 것 같군요.]
[흠… 그렇군요.]
352를 들고 온 뉴캐슬에게 해설들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그건 이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뉴캐슬이 뭔 짓을 해도 우세한 건 바이에른 뮌헨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이 어떤 팀인가.
10년 동안 챔피언스 리그 16강 탈락이 단 한 번도 없는 팀이 바이에른 뮌헨이다.
반대로 뉴캐슬은 10년 동안 16강 이상 간 적이 단 두 번밖에 없는 팀이다.
그것도 역대 최고의 팀이라고 불렸던 시즌에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 챔피언스 리그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메넨데즈가 익숙하고, 그 다음 일리뉴 정도였다.
심지어 감독인 아르텔리조차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감독으로서 지휘한 경험이 없었다.
그 가운데 경기가 시작됐다.
뉴캐슬이 서서히 바이에른 뮌헨의 간을 보면서 나아간다.
중원에서 패스를 중심으로 빌드업을 쌓아가며 이렇다 할 공격을 하지 않던 어느 순간.
왼쪽으로 균형이 쏠린 듯하자 린데만이 반대쪽 산체스에게 크로스 패스를 보냈다.
산체스가 공을 잡고 질주했다.
사이드라인을 타고 높이 달리던 산체스는 앞에 두아르테가 지키고 있자 같이 올라온 고메즈에게 패스, 고메즈가 하프 스페이스를 파고들려다 바이스티거가 길을 막아서자 메넨데즈에게 보냈다.
뻥!
메넨데즈가 공을 받자마자 바이스티거가 벌려준 공간을 노리고 중거리 슛을 날렸다.
힘껏 때린 공이 단숨에 골대를 향해 나아갔다.
깡!
뻗어나간 공은 피에르가 대기하던 위치보다 옆으로 더 나아가 골대를 때리며 튕겨 나왔다.
이렇게 맞추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튕겨 나간 공이 문제였다.
페널티 박스 앞에서 통통 구르는 주인 없는 공을 향해 모두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공을 잡은 건 셰인 파워였다.
그가 공을 걷어내려는 순간 그 공을 향해 일리뉴가 발을 들이밀었다.
일리뉴의 발에 막혀 다시 튕겨 올라간 공을 향해 타이밍을 재다가 몰려든 선수들이 일제히 뛰어오른다.
일리뉴는 그 가운데에서 자신 있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생소한 경험을 했다.
자신의 몸이 밀려나는 아주 생소한 경험이었다.
볼 경합의 승자는 일리뉴마저 밀어낸 바이스티거였다.
바이스티거는 홀로 솟아올라 셰인이 있는 쪽으로 공을 떨궜다.
바이스티거와 셰인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 떠졌다.
어디 있었는지 얼굴조차 보이지 않던 태양이 나타나 떨어진 공을 잽싸게 가로채서 골대를 향해 곧 바로 슈팅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모두의 시선이 골대를 향할 때, 공은 이미 미처 반응하지 못한 골키퍼를 지나 골망을 뒤흔들고 있었다.
[골! 골입니다! 윤태양의 골!]
[끝의 끝까지 공에 집중하던 태양이 기어이 공을 차지하고 득점합니다!]
그야말로 집중력의 승리였다.
저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다 달려들지 않았다면 절대 넣을 수 없는 골이었으니 말이다.
득점한 태양이 유유히 걸어가는 가운데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던 박민규는 혀를 찼다.
“역시… 세 번째가 제일 나으려나.”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그는 힘주어 잔디를 스터드로 찧었다.
힘주어 잔디를 찧을 때마다 쇠로 된 그의 스터드가 잔디를 짓이기고 깊숙이 박혀들었다.
[앞서간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중원에서부터 압박을 가합니다.]
[뮌헨의 공이 중원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네요.]
재개된 경기, 뉴캐슬은 공을 가진 뮌헨을 상대로 중원에서부터 거세게 압박해 들어갔다.
뮌헨의 미드필더들이 전방으로 나서지 못하고 결국 공을 뒤로 돌린다.
상황을 지켜보던 바이스티거는 뉴캐슬의 수비라인까지 라인을 높이 올린 것을 확인하고 수비 뒷공간으로 롱패스를 시도했다.
공이 빠르게 나아가자 이에 맞춰 뮌헨의 공격수들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과연 박민규였다.
박민규는 SG스터드를 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관없다는 듯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공을 잡은 박민규는 습관처럼 시선을 돌렸다.
그의 옆에 무리시가 바짝 붙어 있었다.
박민규는 속도를 올려 달리려다 무리시가 쉬이 뒤처지지 않자 그 자리에 급제동했다.
쇠로 된 스터드가 땅에 박히며 멈춰선 박민규는 지나치는 무리시의 뒤로 공을 옆으로 보냈다.
아!
동시에 관중석에서 일제히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박민규가 보낸 회심의 패스는 아놀드가 가로채 전방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다시 뉴캐슬의 공격.
일리뉴가 떨군 공을 잡은 태양이 바이스티거를 마주하고 달려들다 백프리플랩을 선보이며 간단하게 그를 제쳐 버린다.
분데스리가에서 놀라운 수비력을 보여준 그가 허망하게 뚫리니 놀라울 법도 하건만, 그의 파트너인 셰인 파워와 두아르테는 당황하지 않고 윤태양을 압박해 들어갔다.
윤태양은 그 둘을 끌어내고 일리뉴에게 공을 패스했지만, 일리뉴의 슈팅은 아쉽게 골대를 지나치고 말았다.
[윤태양 무섭습니다! 오늘 폼이 바짝 오른 듯 뮌헨의 수비진영을 뒤흔드는군요!]
[저게 윤태양이죠! 분데스리가에서도 일찍이 체험해 본 적 없는 무서운 17세입니다!]
태양은 일리뉴를 잠시 노려보다 뒤돌아 달렸다.
뉴캐슬 진영에서 복귀하던 박민규는 그런 태양을 보고 눈을 빛냈다.
역시 가만히 두면 좋을 게 없는 녀석이다.
이번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앞으로 한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생각해서도 말이다.
* * *
생각보다 경기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중원이 막힌 뮌헨이 롱패스를 바탕으로 3선에서 1선으로 공을 다이렉트로 보내면서 위험한 순간이 몇 번이나 나오긴 했지만, 이럴 때 막으라고 센터백을 셋이나 둔 거 아니겠는가.
다행히 잘 막아내고 있었다.
특히 무리시는 기가 막혔다.
아놀드와 디다를 합한 기분이랄까?
진짜, 무리시는 나도 모르던 선수인데, 막상 데리고 와서 그의 플레이를 보니 얘를 왜 몰랐지 싶을 정도였으니까.
득점도 앞서 있었다.
이 악명 높은 분데스리가, 그것도 바이에른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지난 삶에서 챔피언스 리그 최고 업적은 8강이었다.
그것도 그 팀에서는 기적이라고 불렸는데.
아무튼, 이것만 이기면 내 인생 최대 업적에 근접하게 되는 거다.
리그에서 보다 뭐랄까 챔피언스 리그가 나를 더 들뜨게 만드는 기분이다.
아니, 사실 다른 선수들도 이럴 거다.
챔피언스 리그가 괜히 꿈의 무대가 아니니까.
그사이 또다시 뮌헨의 롱패스가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롱패스가 아닌 아놀드가 박스올에게, 박스올이 전진하는 린데만에게 전달했다가 반대편에서 질주하는 나에게 공을 보냈다.
나는 공을 발로 받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면서 내 뒤에 붙은 바이스티거를 상체 무빙으로 한 번 속인 뒤에 빙글 돌려서 공을 쫓았다.
이대로 한 골, 간…….
“으억!!”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잡는 게 느껴진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그래, 괜찮아 이대로 넘어져서 파울을 유도하자.
자연스럽지만, 조금은 과장되게 뒤로 넘어지는 순간, 또다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내가 뒤로 넘어지려는 타이밍에 누군가 공을 향해 슬라이딩 태클을 하고 있었다.
‘박민규……!’
쟤가 왜 여기까지 와서 태클을?
그 와중에 공을 밀어내면서 교묘하게 놈의 다리가 나를 걸고 넘어졌고, 놈의 몸은 내 유니폼을 잡아당긴 사람과 충돌한 모양이다.
셋이 뒤엉켜 동시에 바닥에 쓰러진다.
그 와중에 옆통수가 화끈해진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정신이 아득해진다.
* * *
[바이스티거! 윤태양의 유니폼을 잡……! 아! 박민규!]
[아니, 이럴 수가!]
바이스티거가 윤태양의 유니폼을 잡아당기며 윤태양이 뒤로 넘어지려는 절묘한 타이밍에 박민규는 슬라이딩 태클로 들어오고 있었다.
박민규는 바이스티거가 유니폼을 잡아당기고 있는 걸 보며 눈을 빛냈다.
혹시나 자신이 비난을 받을까 우려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 비난은 온통 바이스티거에게 쏠릴 확률이 컸다.
그는 슬라이딩 태클로 태양의 발 바깥에 공을 먼저 건드리고 당황한 듯 얼굴을 가리며 태양의 종아리를 스터드로 쓸고 지나갔다.
그 와중에 바이스티커의 다리를 팔로 잡아당기며 셋이 모두 넘어져 뒤엉키는 상황을 만들었다.
박민규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떨어지는 태양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듯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자신의 얼굴을 팔로 가렸다.
누가 봐도 본능적인 방어기제인 것처럼 말이다.
스터드에 무언가 묵직하게 충돌하는 게 느껴진다.
이 각이라면 분명 태양이겠지?
그는 팔로 가린 얼굴 사이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쇄 충격을 견뎌내고 힘겹게 일어난 그는 보았다.
머리와 다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태양을 말이다.
그는 싸늘한 얼굴로 이를 지켜보다가 남들이 볼까, 잽싸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태양을 들어올렸다.
축 늘어진 태양을 바라보며 그는 울상을 지어보이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여기 태양이가 다쳤어요!!”
당황한 듯 모국어로 한 번.
“윤이 다쳤다!!”
정신을 수습한 듯 독일어로 한 번.
그야말로 완벽한 연출, 그리고 완벽한 연기였다.
그사이 태양의 몸을 타고 잔디 위로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진다.
박민규는 속으로 웃었다.
그때였다.
“아, 씨… 게임 ㅈ같이 하네.”
쓰러져 있던 태양이 일어났다.
그리고 박민규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