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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188화 (188/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88화

미들즈브러는 선덜랜드만큼은 아니지만, 뉴캐슬의 또 다른 라이벌이었다.

아니, 선덜랜드가 오랜 시간 프리미어 리그로 올라오지 못하면서 관심도가 줄어들고 오히려 미들즈브러와 뉴캐슬의 타인티스 더비가 더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라이벌 치고는 체급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타인위어 더비나 타인티스 버디 보다는 아스날과 첼시 같은 강팀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도 뭐, 더비는 더비니까 질 수는 없지.

게다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주장 완장을 차고 있으니 더더욱 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목소리가 절로 높아진다.

“야! 공을 그렇게 주면 안 되지!”

“일리뉴! 슈팅 좀 제대로 하라고!”

…하, 회사에서 부장이니 과장이니 하는 분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완장을 찼으니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고, 뭐라도 더 하라고 다그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희한하게 하는 짓들이 마음에 안 든다.

잔소리가 마구 하고 싶어진다.

이래서 완장질이라는 말이 생긴 건가?

어린 꼰대라니.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최악이 아닐 수 없었다.

전반을 1대0으로 마무리하고 라커룸으로 돌아가면서 잔소리를 한 사람들에게 사과했다.

“내가 잔소리가 좀 심했지? 주장 완장 달았더니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네?”

그 말에 일리뉴가 뭔 개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너 평소에도 그랬다.”

“뭐? 아냐, 인마!”

내가 원래 꼰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나는 일리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왜 일리뉴한테 뭐라 그래? 너 잔소리 많은 거 몰랐어?”

허허, 샬렛 너마저.

“맞아, 젤 어린놈이 늙은이마냥 잔소리가 많긴 하지.”

“우리 엄마보다 심한 듯.”

아니, 한 사람도 아니고 몇 명이 저러니 진짜 내 잔소리가 좀 심한 모양이네.

괜히 멋쩍어져서 바나나를 입에 물었다.

“자, 오늘 주장으로 뛰고 있는 소감이 어떤가?”

아르텔리 감독은 라커룸으로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소감을 물었다.

소감?

“꼰대가 된 기분이에요.”

“하하하하.”

아르텔리 감독이 라커룸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린다.

“이런, 이런. 내가 너무 심하게 웃었군. 그래, 주장은 그런 거지. 주장으로서 뭐든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안 하던 짓을 하거든.”

“얘 잔소리는 늘 하던 짓…….”

짝.

끼어드는 샬렛의 등을 때려주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건 확실하네요.”

“어떤 거 말인가?”

“쉬운 일은 아니네요.”

“그래, 그렇지.”

주장은 나에게 있어서 미지의 영역이었다. 완장이 무겁고 힘들긴 하지만, 새로운 경험이어서 그런지 재미있다.

모처럼 시비 거는 사람도 없는데 축구가 재미있다는 느낌이 든다.

얼른 뛰고 싶네.

“자, 후반전도 잘해보자!”

“오오!”

하프타임이 끝나고 동료들에게 그리 외치며 가장 먼저 라커룸을 나섰다.

* * *

[윤태양, 주장 완장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건가요? 전반전에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키패스로 팀의 득점의 시작점이 되긴 했습니다만, 평소 그의 활약을 생각하면 아쉽긴 하죠?]

[하지만 후반전부터 달라졌습니다. 완장에도 적응한 건지, 아니면 다른 동기부여가 있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후반 20분이 흘러가는 지금 1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반전 잔소리로 일관하던 태양은 후반에 들어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윤태양이 살아난 덕분인지 몰라도 동료들 역시 전반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필드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미들즈브러는 하프라인조차 넘지 못하고 갇힌 채로 막는 데 급급했다.

[아, 윤태양 공 잡고 달립니다! 한 명 제치고 그대로 슈티이이잉! 득점합니다!]

[흔히 한국에서 손홍민 존이라고 불리는 위치에서 마치 손홍민과 같은 득점을 보여주는 윤태양!]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 저 자리에서 슈팅 연습을 안 해본 선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윤태양만큼 정확하게 저 위치에서 손홍민 선수 같은 멋진 득점을 하는 선수는 드물 겁니다!]

[아마 그건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를 따져봐도 그럴 겁니다.]

[아무튼, 대단합니다! 윤태양!]

윤태양이 팀의 세 번째 득점을 넣은 뒤, 미들즈브러는 타인티스 더비에서 라이벌로서 체면을 차리기라도 하려는 듯 한 골을 만회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경기 종료됩니다!]

[최종스코어 4대1! 뉴캐슬이 압도한 경기였습니다!]

[뉴캐슬은 12연승, 그리고 윤태양은 12경기 연속골로 마침내 프리미어 리그 연속골 기록을 경신합니다!]

해설이 언급한 것 외에도 뉴캐슬은 지금 현재 뉴캐슬은 기존에 첼시가 가지고 있던 개막전 이후 최다 연승 기록인 9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이전까지 포함하면 토트넘의 11연승까지 경신한 상태였다.

뉴캐슬이 연승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기록은 이제 리버풀과 맨시티가 가지고 있는 시즌 18연승뿐이었다.

그 말인즉, 뉴캐슬이 무적의 팀 같은 포스를 뿜어내던 17/18시즌 맨시티와 19/20시즌 리버풀과 같은 포스를 자랑하는 중이라는 거다.

그 위용은 비단 리그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라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통했다.

현재 F조에서 4승으로 1위를 달리던 그들은 12라운드 이후 사흐타르를 홈에서 맞이해 윤태양과 일리뉴의 득점으로 2대0 승리를 거머쥐었다.

한편, 같은 조 경쟁자인 PSG는 사흐타르도 모자라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에게도 덜미를 잡혀 무승부를 기록, 조 3위로 밀려났다.

2위인 사흐타르와 승점 2점 차이로, 마지막 경기에서 사흐타르에게 승리하지 않는 이상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불가능해진 상황에 놓였다.

이에 팀은 감독을 경질, 새로운 감독을 찾기에 이르렀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감독은 과거 PSG의 첫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챔피언스 리그의 사나이, 지네딘 지단이었지만, 그는 벌써 몇 년째 다른 곳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와도 고사한 채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그가 다시 PSG 감독을 할지는 미지수였다.

그 가운데 어느새 12월이 찾아왔다.

지난 2030년부터 12월 첫째 주는 축구 선수들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주였다.

바로 FIFA 발롱도르 시상식이 예정된 주였기 때문이다.

시상 기준이 년 기준이 아니라 시즌 기준으로 바뀌며 10월 즈음에 열렸던 시상식이, 또다시 FIFA 올해의 선수와 합쳐지면서 12월로 변경된 뒤로 맞이하는 6번째 FIFA 발롱도르. 후보는 총 30인이었다.

이례적인 상황은 빅이어를 들어올린 레알 마드리드에서 후보를 칸노지와 디네이밖에 배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팀 자체는 강했지만, 발롱도르를 받을 정도로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이번 시즌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프리미어 리그에 소속된 선수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델로아, 딜런 먼로, 펠리시아노는 물론이고 첼시의 수비수인 다비 완더레이, 아스날의 수비수 일카이 코작이 대표적이었다.

여기에 지난 시즌은 프랑스에서 뛰었지만, 이번에 뉴캐슬로 이적한 카싸마까지 포함한다면 최종 후보 30인의 절반에 가까운 14명이 프리미어 리그 소속이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아시아, 그것도 한국에서 무려 두 명의 후보가 나왔다.

이번 시즌에는 부침을 겪고 있지만, 지난 시즌까지는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으로 활약한 박민규, 그리고 우리의 윤태양이 바로 그 두 명이었다.

-키야 한국에서 발롱도르 후보가 둘이나?

-진짜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네

-월클이 두 명이란 소리잖아?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국뽕 때문에 주모 장사 ㅈㄴ 잘되겠네 ㅋㅋㅋ

-ㄹㅇ 윤태양 때문에 매주 샷다 내리고 장사하는 중

-박민규가 요번 시즌 나가리돼서 아쉽네

-아쉽긴 뭘 아쉬워 ㅋㅋㅋ 윤태양이 있는데

그리고 그 두 명의 한국 후보 중 윤태양은 이번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그 누구보다 유력한 수상 후보라는 것이다.

-윤태양이 타겠지?

-윤태양 아니면 발롱도르를 누가 타는데?

-리그 50골 21도움, 챔스 20골 8도움, 다른 경기까지 다 포함해서 한 시즌 77골 31도움이나 한 괴물 아니면 누가 상 탐?

-ㄴㄴㄴ 77골 아님

-???

-국대 경기까지 포함해야지 80골 34도움임

-ㅅㅂ……. 개쩐다 80골 ㄷㄷㄷ

-윤태양이 발롱도르 못 타면 어케 됨?

-발롱도르 비리 수사 해봐야지

-윤태양이 못 탄다는 게 말이 되냐?

-만약 윤태양이 못 탄다? 발롱도르가 아니라 인종차별 개ㅆ도르임

-유럽이 인종차별 은근 졸렬하게 해도 이건 안 줄래야 안줄 수가 없음

-ㅋㅋㅋㅋ 윤태양 말고 펠리시아노나 딜런 먼로 같은 애들 타봐라, 구라가 아니라 유럽에서도 들고 일어날걸?

사람들의 말대로 이견이 없는 압도적인 발롱도르 수상 후보는 윤태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은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을 하는 유럽에서 아시아 사람에게 순순히 발롱도르를 줄 것이냐는 우려였다.

아무리 그래도 상을 안 줄 수가 있겠냐만, 우승을 해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순간에도 아시안은 절묘하게 카메라를 치워 버린다거나, 아직도 서슴없이 치노라 부르거나 눈을 찢는 행위가 쉴 새 없이 나오는 곳이 유럽이기에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건… 당사자인 태양도 마찬가지였다.

* * *

“파리는 가기 싫은데 또 파리를 가네.”

“상 타려면 가야지.”

뉴캐슬에서 파리를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인 비행기를 타야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구단주의 전용기를 빌려 타고 있었다.

물론, 나 혼자 가는 건 아니다.

카싸마, 일리뉴, 메넨데즈와 함께하고 있었다.

사우디의 왕께서는 팀에서 발롱도르 후보가 무려 네 명이나 나온 것에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카싸마나 일리뉴는 몰라도 메넨데즈 넌 뭐냐?”

“내가 왜?”

“발롱도르 후보로는 좀…….”

아쉽지 않나? 라는 뒷말을 흐린다.

메넨데즈는 내 말에 욱했는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나도 할 만큼 했다고!”

“네가?”

“그래, 이 자식아.”

그래, 놀리고 있긴 하지만 메넨데즈는 지난 시즌 매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 팀이 챔스 4강, 리그 우승을 할 일은 없었을 거다.

“그나저나 바이스티거는 왜 같이 안 간데?”

“자기가 상 받을 일이 없는데 뭐하러 가냐고 하던데?”

바이스티거는 발롱도르 후보가 아니라 21세 이하 최우수 선수상인 코파상 후보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말도 안 되는 수비력을 보여주는 그를 생각하면 코파상 후보로 충분했다.

문제는 경쟁자가 빡세다는 거였다.

나와 디오스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면 디오스가 코파상을 타는 게 유력한 상황이었다.

아, 디오스는 이번 시즌 더 발전해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미쳐 날뛰고 있었다.

물론, 이번 시상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지난 시즌도 어린 나이 치고 놀라운 활약을 펼쳤으니 유력한 코파상 후보이긴 하다.

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게 내 발롱도르 수상의 불안요소였다.

이 빌어먹을 유럽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발롱도르를 주기 싫어서 나한테 코파상을 주고 퉁 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설마 그러겠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설마가 사람 잡는 곳이 이 바닥이다.

이곳 유럽은 아직도 곳곳에 무슨 사이비 종교 신자마냥 인종차별자들이 숨어있다.

거기에 감독이나 기자들이 비밀 투표를 거치다 보니 악의를 가지고서 나에게 투표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도 인종과 정치, 종교, 신념을 넘어서 축구 그 자체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 사이에도 있을 테니 공명정대하게 나에게 한 표를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아니, 솔직히 나 말고 누굴 줄 건데?

“설마…….”

“서을마아? 그게 무슨 말이지?”

“아무것도 아냐.”

의아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거는 카싸마에게 손을 휘젓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 순간 불안감 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창 밖에 보이는 달이 마치 발롱도르 트로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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