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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192화 (192/20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92화

과연, 엄마는 위대했다.

그것도 자식을 다섯이나 낳은 엄마는 더욱더 위대했다.

아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아직 애가 나오려면 얼마나 걸릴지 대충이나마 예상한 그녀는 여유롭게 태양의 차에 일리뉴와 아나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순조롭게 병실을 잡고서 아나를 눕히고 출산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침착한 태양의 엄마, 지민과 달리 초조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슬그머니 바깥으로 나온 일리뉴에게 태양이 이온음료를 건넸다.

“야, 너무 긴장할 거 없어.”

일리뉴는 그걸 받아들며 말했다.

“잘못되면 어쩌지?”

“벌써부터 재수없는 소리하네. 2세들이 태어나면 뭘 해줄지 행복한 생각부터 해.”

그 말에 일리뉴는 흘끔 태양을 바라봤다.

남 일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태양은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는 동생들 태어날 때 안 불안했냐?”

일리뉴의 물음에 태양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가을이 태어날 때는 긴장했지. 여름이까지도 그랬나? 겨울이나 보미 태어날 때는 그러려니 했어. 아니, 설렜다고 해야지.”

“가을은… 너랑 다섯 살 차이 아닌가?”

“그렇지?”

“그걸 기억함?”

태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태양은 천재구나.

5살 때를 기억하다니 말이다.

하긴, 그러니까 축구를 잘하겠지.

“별 일 없을 거야. 병원에서도 문제없다고 했잖아?”

“그렇지……? 별 일 없겠지?”

“그럼.”

태양은 만사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은 일리뉴 답지 않은 모습에 그저 웃었다.

이 자식이 아빠가 된다고 하니 달라지는가 보다.

“이름은 정했어?”

“음, 생각해 둔 건 있다.”

“뭔데?”

“일리뉴2세, 아나2세.”

“한 명은?”

“일리뉴2 다시 2세?”

아니다.

여전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태양은 일리뉴의 밤톨 머리를 짝 하고 때렸다.

“아야!”

“아나한테 욕먹다 못해 두들겨 맞아도 할 말 없는 네이밍 센스였어. 너는 절대 이름 짓는다고 하지 마라.”

“…2세는 꼭 붙여주고 싶은데.”

“요즘 누가 2세를 붙여. 주니어도 안 붙이는 판에.”

“음…….”

일리뉴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나의 병실로 향했다.

머지않아 아나가 마침내 분만실로 들어갔다.

일리뉴는 초조한 마음으로 분만실 앞을 서성였다.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일리뉴의 엄마는 아이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게다가 그 위로 배 속에서 유산된 아이도 있었고, 낳자마자 죽은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그걸 두 눈으로 본 적도 있는 일리뉴는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그때는 워낙 열악해 더러운 집에서 낳다 보니 그렇게 된 거긴 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행여나 잘못될까 봐 일리뉴는 분만실 안으로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병실의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왔다.

“2남 1녀,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하게 출산했습니다. 축하해요, 일리뉴!”

의사에 말에 일리뉴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뭐해, 안 들어가 보고.”

“그, 그래야지.”

일리뉴는 심장이 마구 뛰는 걸 느꼈다.

이건 아빠나 엄마에게 혼나기 전 뛰던 심장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래, 아나.

아나를 처음 봤을 때 그 느낌과 같았다.

“일리뉴…….”

안으로 들어가니 침대에 누워 잔뜩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나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세상에…….”

일리뉴 보다 한참이나 작은, 과장 조금 보태서 일리뉴의 팔뚝만 한 아이 셋이 얌전히 누워 있었다.

태양이 예전에 말한 대로 갓 태어난 아기는 쭈글쭈글하니 예쁘기보다는 못생겼지만, 아이를 마주하는 순간 일리뉴는 콩깍지가 마구 씌워져 쭈글쭈글하고 빨간 아기들의 모습마저도 너무나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귀엽지?”

“응? 어어… 어.”

“안아볼래?”

그 말에 일리뉴는 화들짝 놀랐다.

“아, 안아도 괜찮을까?”

왠지 아이를 안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저 작은 아이들이 자신이 안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으이그, 겁쟁이. 이렇게 조심히 안으면 되거든?”

아나는 셋 중에 한 아이를 안아서 일리뉴의 품으로 넘겼다.

일리뉴는 잔뜩 경직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아이를 품에 안았다.

“얘가 첫째야. 딸이지. 유일한 딸.”

“딸…….”

“이름은 어떻게 할까?”

아나의 물음에 일리뉴는 아나2세라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태양이 그 말했다가 아나한테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나는 생각한 이름 없어?”

“자기와 내 이름을 섞는 건 어때?”

“우리 둘 이름?”

“응, 일리아나.”

이름을 듣는 순간 이거다, 라는 느낌이 딱하고 왔다.

“좋아. 앞으로 이 아이 이름은 일리아나야.”

“으응, 형제 이름은?”

일리뉴는 두 아이를 바라봤다.

“으으으음…….”

역시나 일리뉴2세와 일리뉴2-2세 같은 말도 안 되는 이름을 말하기 어려웠다.

“아나, 도저히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난 생각해 둔 게 있는데.”

“역시, 아나야. 뭔데?”

아나는 한 아이를 가리켰다.

“얘가 둘째거든, 이 아이는 솔Sol.”

“솔… 태양.”

“그래, 우리 아이들 대부가 태양이니까.”

“응, 난 좋아. 그럼 얘는?”

“그 아이는… 레이.”

“솔, 레이.”

합치면 태양왕.

오로지 대부를 위해 지어진 이름이었지만, 일리뉴는 마음에 들었다.

일리아나를 내려두고 일리뉴는 솔과 레이를 한 번씩 안아주고는 말했다.

“꼭 태양처럼 축구를 잘했으면 좋겠다.”

“모르지? 일리아나가 얘들 둘 보다 축구를 더 잘할지도?”

“그럴 수도 있지.”

일리뉴는 그리 말하면서 세 아이를 바라봤다.

아… 나 아빠구나.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 * *

일리뉴가 아빠가 된 것과 별개로 프리미어 리그는 정신없이 돌아갔다.

아빠로서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리뉴가 휴가를 간 사이, 일리뉴의 빈자리를 샬렛과 아우레가 대신한 16라운드, 리즈와의 대결.

나는 이 경기에서 2도움을 기록했고, 팀은 2대0으로 승리했다.

무려 16연승.

엄청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프리미어 리그 연승 기록에는 아직 두 경기가 더 남아있었지만, 프리메라리가의 강팀인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가 가지고 있는 연승 기록과 같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단일 시즌이 아니라 리그 연승 기록으로만 보면 24연승으로 빅리그 기준 최다 연승 기록에 등재된 상태였다.

이어지는 경기는 리그컵.

공교롭게도 우리는 또다시 리즈를 만났는데, 리그컵에는 영 관심이 없는 우리 감독님은 출장 기회가 적었던 후보 선수들과 유스팀으로 선발을 꾸려 아쉽게 2대3으로 패배했다.

물론, 클럽 안에서 그날 경기를 뛴 선수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감독은 오히려 패배 이후 인터뷰에서 리그컵은 없어지거나 연령제한을 둬야 한다며 리그컵 혐오자다운 발언을 했다.

이어지는 일정은 프리미어 리그다.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펠리시아노의 부진으로 인해 위기가 있지 않을까 싶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지만, 그래도 빅 7은 빅 7이었다.

현재 리그 5위, 승점 34점으로 우리와는 승점 차이가 14점이나 나고 있지만, 2위인 맨시티와 불과 4점 차이밖에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펠리시아노, 이번 시즌 들어서 부진을 겪었던 그가 14라운드 노리치 시티에서 해트트릭으로 부활했다는 거다.

이어서 울브스와 경기에서 2골, 왓포드와 경기에서도 2골을 넣으며 3경기 7골이나 넣었다.

반대로 나는 최근 팀의 세 경기 동안 한 경기는 쉬고 두 경기에서는 모두 골을 대신 어시스트만 세 개를 기록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언론은 신이났다.

[발롱도르의 영향인가? 골 가뭄에 시달리는 윤태양.]

저기… 고작 두 경기 못 넣은 건데요?

[발롱도르가 어린 소년에게 독이 되었나?]

아니, 울브스랑 경기는 발롱도르 이전이지 않나?

[위기의 윤태양, 부활한 펠리시아노, 두 스트라이커의 대결.]

…15경기 27골이나 넣은 사람한테 위기라니.

역대 득점왕 역사를 봐도 한 시즌 동안 27골도 못 넣은 득점왕이 수두룩한데.

[윤태양, 부진의 원인은 열애? 곳곳에서 윤태양 열애 목격 증언 쏟아져.]

…이건 또 뭔 찌라시냐.

진짜 어딜 가나 기레기들은 미쳐 날뛰는 것 같다.

그때 의외의 기사가 무서운 속도로 기사 랭킹을 치고 올라갔다.

뭐지?

[펠리시아노, 나는 이제 다시 살아났을 뿐. 윤태양은 어리지만 무서운 상대다. 겸손한 마음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뭐야?

이 사람 죽을 때가 된 건가? 답지 않게 왜 이래?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펠리시아노 왜 이럼?

-2군까지 쫓겨나다 오더니 사람이 겸손해져서 왔네? ;;;

-뭐지? 득도했나?

-이 ㅅㅋ 멍청해서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거 아니냐?

-펠리시아노 원래 불교임

-유럽인이 불교라니 ㅋㅋㅋ 하여간 멀쩡한 건 죄다 거부하는구만

-이 미친놈 왜 이러냐 진짜;

-저러니까 더 불안하다

-뭔가 또 일 내려고 저러는 거 같은데

-겸손해진 펠리시아노를 누가 막나? ㄷㄷ

“그러게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못 막을 거 같은데.”

뭐, 마냥 이상하게 볼 일도 아니다. 펠리시아노도 기껏해야 이십대 후반이다.

아직 한참이나 젊은 나이니까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도 있긴 하겠지.

그래도 근자감과 승부욕 빠진 펠리시아노라니 왠지 거부감부터 드는데.

@CHOOKTAEYANG

[펠리시아노 왜 그래? 한판 붙자고, 이길 거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FeliciaNO_7

[잘해보자.]

…재미없게 왜 이래?

“뭐하나, 태양?”

한바탕 설전을 벌여야 빅매치 같은 느낌이 드는데 왠지 모르게 김이 새버린 것 같아 시무룩하고 있는 와중에 일리뉴가 문을 벌컥 열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브라질은 노크를 하는 문화가 없나봐?”

“내가 살던 집은 방이란 개념이 없다.”

“어휴.”

아빠가 됐지만, 어른 되기는 한참 멀었나보다.

“왜 들어왔어?”

“아무래도 내 아이들이 천재인 거 같다.”

아니, 태어난 지 며칠 됐다고 애들이 천재라는 겨?

“뭔 소리야?”

“나를 보면 웃는다.”

“웃는 게… 천재?”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울지도 웃지도 않아서 저능아인 줄 알았다고 했거든.”

“…그건 그거고, 널 보고 웃는다고 천재는 아냐.”

“그것뿐만이 아니다.”

“또 뭐?”

일리뉴는 아예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나에게 말했다.

“내가 손가락을 내밀면 애들이 하나같이 내 손가락을 굳게 잡는다. 아무래도 운동신경이 좋은 것 같다.”

“…….”

“그것뿐만이 아냐. 아이들이 시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안나가 순서대로 수유를 하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다리는 다른 애들이 운다. 자기 차례가 됐다는 거지. 조그만 게 벌써 발도 움직인다. 아무래도 축구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지?”

내 자식 천재병이 제대로 걸린 것 같다.

일리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치 샬렛이라도 된 것처럼 투머치토킹을 이어가려고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리뉴의 밤톨 머리를 짝 하고 때리고 방문을 가리켰다.

“내 개인 시간이니까 나가.”

“아니, 들어보라니까?”

“너… 아나랑 애들 냅두고 너만 내 집에서 쫓겨나고 싶어?”

“나간다! 편안한 시간 보내라!”

저, 저 기생충 같은 자식.

이러다가 우리 집 별채에 완전히 눌러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아… 그나저나 펠리시아노…….”

진짜 얘 왜 이러지?

의욕이 뚝 떨어지는데.

이거 혹시… 내 의욕 떨어뜨려서 이기려는 작전인가?

일단 경기 날 두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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