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95화
[여러분, 놀라운 사실을 아십니까? 뉴캐슬의 왕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세 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했다는 겁니다.]
[엄청난 기록이군요. 그렇게 되면 윤태양의 맨 유나이티드와 상대 전적은 세 경기 9골인가요?]
[윤태양 선수, 맨체스터에 유감이라도 있는 걸까요? 유독 맨체스터의 팀을 만나면 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ㅋㅋㅋㅋ 맨유 3경기 9골, 맨시티 상대전적(fa컵 포함) 4경기 13골ㅋㅋㅋㅋㅋㅋ 맨체스터 형제한테만 7경기 22골 뽑아내고 있는 중
-ㅋㅋ미친놈이네
-진짜 무슨 맨체스터랑 원수라도 졋냐? ㅈㄴ 두들겨 패네
-맨체스터 사람들은 무슨 죄냐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퍼기 경이랑 사이좋게 사진도 찍혔던데 ㅋㅋㅋ
-퍼기 경 앞에서는 공손하게 사진도 찍고 하더니 뒤에서는 맨유 두들겨 패는 거 보소 ㄷ
-퍼기 경 오늘 경기 보러 왔으려나?
-안 옴ㅋㅋㅋㅋ
-왔으면 큰일 날 뻔
괴물은 괴물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는 맨유의 감독과 코칭스탭, 보드진들은 다른 자리에서 거의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최근 언론에서 윤태양의 무득점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공격한 건 맨유 보드진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맨유와 친한 기자들을 움직여 윤태양의 멘탈을 부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거기에 다른 기자[라고 쓰고 기레기라 읽는]들이 물기 위해 몰려들어 대대적으로 윤태양의 무득점과 부진, 발롱도르로 거만해졌다는 이미지를 씌웠다.
하지만 윤태양은 멘탈이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도발하면 오히려 승부욕이 불타올라 자신의 실력을 여실 없이 보여주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처럼, 두고 보란 듯이 해트트릭을 박아 버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맨유의 감독은 활약이 없는 가리도를 빼고 브라이언을 위로 올려 공격적으로 뛰도록 한 다음에 브라이언의 자리에 알렉산드레 펜카데스를 투입했다.
펜카데스는 원래 오른쪽 수비수지만, 오른쪽 수비수들이 종종 그렇듯 자신의 포지션에 불만을 가지고 윙어나 미드필더로 뛰길 원하는 선수였다.
애초에 다재다능한 선수였고, 맨유에는 우측 자원이 넘쳐나는 반면, 미드필더와 공격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감독은 멀티 플레이어로서 자질이 충분한 그의 요구를 수용한 상태였다.
[펜카데스가 투입됩니다. 맨유는 수비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더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맞불을 놓을 생각인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한 골 뒤진 상황에서 수비를 강화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판단이죠. 저 역시 동의합니다. 오늘 펠리시아노의 컨디션이 좋아요. 그를 살려줄 수 있는 카드를 투입하는 게 더 좋습니다.]
펜카데스를 투입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더욱더 라인을 끌어올리며 빌드업에 나섰다.
이에 뉴캐슬은 지친 산체스를 빼고 가브리엘을 투입하며 맨유를 상대한다.
남은 시간은 어느덧 20분.
20분만 지나면 뉴캐슬이 맨유를 상대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맨유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윤태양이 해트트릭을 하면서 뉴캐슬이 기세를 가져올 법도 하건만, 맨유는 꺾이지 않았다.
지금 그들은 믿음이 있었다.
오늘 유난히 날아다니는 펠리시아노가 자신들을 이끌고 뭔가를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펠리시아노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움직였다.
패스가 원활하지 않으면 스스로 내려와 패스를 주도하기도 했고, 빈 공간으로 다른 선수가 파고들면 자신 역시 좋은 공간으로 파고 들어가 자신에게 공이 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뉴캐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뉴캐슬은 앞서 나가고 있다고 해서 수비적으로 나서는 팀이 아니었다.
그들은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을 누구 보다도 신봉하는 팀이었으니 말이다.
거침없이 맨유를 몰아붙였고,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진다.
어느덧 남은 시간은 3분, 인저리 타임을 고려해도 5분도 남지 않았다.
초조해지는 것은 역시 맨유의 선수들이었다.
전광판의 시간을 확인할수록 1골의 무게가 더욱더 커졌다.
하지만 계속해서 두들기다 보면 아무리 뉴캐슬을 상대하고 있다 하더라도 기회가 생긴다.
아주 작은 틈, 다른 선수에게 시선을 빼앗긴 바이스티거, 그리고 공간을 벌려주며 무리시의 발을 잠시나마 묶어주는 동료.
그 가운데 공을 가진 펠리시아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을 가지고 그대로 질주했다.
[펠리시아노 달립니다!]
펠리시아노가 공을 가지고 달리기 시작하자 메넨데즈와 다미아노가 나란히 달리며 수비라인에 붙는다.
빠른 대처로 메넨데즈와 다미아노가 자신에게 바짝 붙자 펠리시아노는 전력으로 달리다 급제동하고 한 번 접어서 다미아노의 등 뒤로 파고들어 돌파한다.
다미아노의 등 뒤로 파고들면서 자연스럽게 메넨데즈와 거리도 멀어진다.
그사이 시선이 다른 데로 끌렸던 무리시가 자신의 앞을 막아선다.
메넨데즈와 다미아노의 빠른 대처로 발이 묶였던 무리시가 자유로워지고, 처음 봤던 기회가 날아간 상황이 되었다.
아벨이나 브라이언이 받쳐주면 좋겠는데, 모두가 꽁꽁 묶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어서 펠리시아노가 스스로 돌파하거나 공을 돌려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펠리시아노는 이대로 혼자 돌파해서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기심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이번이 거의 마지막 공격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골로 연결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무시할 수 없다.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이 느낌이 들었을 때 십중팔구는 무조건 골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펠리시아노, 무리시를 앞에 두고 왼쪽으로 들어갑니다, 아, 한 번 접고 반대쪽으로!]
가벼운 페인팅으로 무리시를 제친 펠리시아노는 자신에게 호랑이처럼 달려드는 바이스티거를 피해서 드리블 치면서 골대를 향해 다가가며 골대를 바라본다.
뉴캐슬의 수호신, 리첼라가 자신의 정면에서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슈팅해 봤자 리첼라를 뚫지 못한다.
좀 더 골대를 향해 다가가는 사이, 린데만이 접근해 태클을 시도한다.
펠리시아노는 그것마저 간파하고 태클을 피해 공을 한 번 접었다가 다시 한번 또 접어서 린데만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골대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슈팅해 볼 만하다.
펠리시아노는 리첼라와 거리가 먼 골대를 향해 리첼라가 막기 까다로운 낮고 빠른 슈팅을 위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때였다.
‘네가… 왜?!’
펠리시아노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이 진영에 없어야 하는 사람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발 앞에 공을 낚아채 가고 있었다.
“윤태양!!!”
펠리시아노가 비명처럼 소리를 치는 사이, 태양은 공을 메넨데즈에게 전달하고 펠리시아노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전방으로 달려 나갔다.
[윤태양 선수, 왜 저기까지 내려갔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펠리시아노의 슈팅을 막아냅니다.]
[동점 상황을 막아낸 그야말로 천금 같은 수비였습니다.]
[뉴캐슬의 역습이 전개됩니다.]
[윤태양에게서 공 받은 메넨데즈가 카싸마에게! 카싸마 달리다가 열린 공간으로 스루패스! 일리뉴! 일리뉴! 슈티이잉! 스토일리코비치, 공 쳐냅니다!]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천만다행으로 골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코너킥 상황이 주어졌다.
양 팀 선수들이 골대 앞에 모여든다.
골대 앞에 선 펠리시아노는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2분, 2분 사이에 코너킥을 막고 역습을 해야한다.
그야말로 단 한 번의 기회였다.
그 가운데 샬렛이 느긋하게 코너킥을 준비한다.
대놓고 시간을 잡아먹겠다는 태도였다.
물론, 저렇게 잡아먹는 시간 큼 인저리 타임이 늘어나 상관없겠지만, 맨유 선수들 입장에서는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샬렛이 마침내 손을 들어 코너킥이 준비됐다고 알리는 순간, 윤태양이 샬렛 앞으로 달려갔다.
무슨 속셈일까?
공을 받은 윤태양이 라인에 서서 달려오는 맨유 선수들을 바라본다.
아, 시간끌기인가?
“치사한 자식.”
화를 안 낼 수가 없었다.
남은 시간을 코너킥 라인에 서서 시간을 잡아먹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양은 선수들이 달라붙은 가운데 그 특유의 빌어먹을 드리블로 볼을 지켜내며 맨유 선수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대단합니다, 윤태양! 비네스빌과 헉슬이 붙었는데 절대 공을 뺏기지 않아요!]
[펜카데스와 페터르스도 붙었습니다. 네 명을 상대로 버티는 윤태양!]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다.
기라성 같은 선수 넷이나 달라붙었는데 태양은 공을 뺏길 기미는커녕 밀리지 않았다.
보다 못한 마르셀로까지 달려든다.
그렇게 다섯 명의 선수들을 상대하게 된 태양은…….
[윤태양, 코너킥 라인에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개정된 룰로 인해서 한자리에서의 노골적인 시간 끌기는 주심의 제재를 당하거든요? 이를 의식한 움직임인 것 같은데요.]
아니다.
펠리시아노는 느낄 수 있었다.
저 웃음을 봐라.
잘생긴 얼굴에 멋진 웃음이지만, 왠지 모르게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저 웃음.
저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골을 먹혔는가.
펠리시아노는 위기감을 느끼고 자기 팀 골대를 바라봤다.
텅텅 비어 있었다.
아니, 우리 팀 진영에서 코너킥 상황이 펼쳐졌는데 왜 눈이 멀어 태양에게만 달려든 거지?
설마 저렇게 많이 달라붙으면 공을 뺏을 수 있거나, 윤태양이 패스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건가?
오산이다.
그렇게 당해놓고 윤태양을 모른단 말인가?
“다, 다들!! 골대 비우지 마!”
펠리시아노가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태양을 마크하던 선수들의 시선이 골대를 향한다.
“아……!!”
자신의 한마디에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태양에게서 모두의 시선이 벗어난 걸 확인한 펠리시아노는 자신이 실책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태양을 도운 꼴이 된 거다.
태양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을 마크하는 선수들 사이를 비집고 뛰쳐나왔다.
다급하게 선수들이 따라붙지만, 태양은 선 자리에서 순식간에 최고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달려 선수들과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골대 앞 선수들이 자기가 맡은 선수들을 마크하랴, 태양을 의식하랴 정신이 없는 사이.
태양은 크로스를 올렸다.
코너킥 라인에 가까이 붙어, 골대로 슈팅할 각이 없으니 견제가 덜한 중앙을 향해 크로스를 올린 듯싶다.
펠리시아노는 뒤에 일리뉴와 바이스티거를 밀어내며 공을 걷어낼 준비를 했다.
그사이 공은 일직선으로 쭉 뻗어오다 골대를 향해 휘어들기 시작한다.
크로스가 아니었다.
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태양은 공에 스핀을 잔뜩 먹여 골대를 노린 거였다.
스토일리코비치가 그걸 눈치채고 달려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공은 휘어질 대로 휘어져 골대 안으로 틀어박혔다.
와아아아아아!
[고, 골입니다! 경기 종료를 앞에 두고 윤태양이 네 번째 골을 넣습니다!]
[침몰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뉴캐슬의 왕은 오늘 또 맨 유나이티드에게 절망을 선사합니다!]
[선수들과 팬, 모든 레드 데블스가 넋을 잃었습니다!]
레드 데블스?
맨유가 악마?
아니다.
악마는 따로 있었다.
선수들을 유린하며 절망케 하는 아시아에서 온 검은 머리 악마가 저기 있었다.
[경기 재개됩니다, 아, 곧 바로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립니다! 경기 종료됩니다!]
[4대2로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합니다!]
휘슬과 동시에 펠리시아노는 고개를 들고 한숨을 푹 내쉬고 윤태양을 바라봤다.
윤태양은 오늘 경기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총총 걸음으로 유유히 팬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불교신자인 펠리시아노에게 있어서 윤태양은 번뇌 그 자체였다.
이겨내거나 떨쳐내야만 하는 그런 존재.
하지만 결국, 이겨내거나 떨쳐내지 못했다.
“졌다. 완벽하게.”
어쩌면 그러지 못하는 존재라고 인정하면 편할지도.
펠리시아노는 결국 윤태양에게 꺾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