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화 (4/400)

Ep. 3

에이모프가 된 지 4일째,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첫 번째, 나의 둥지가 완성되었다.

무기질로 이루어진 통로에 불결한 생명력이 열매를 맺었다. 내가 뱉어낸 점액들은 단단하게 굳어 고체화되었고, 그중 일부는 뭉쳐져서 포자를 형성했다. 포자에 난 구멍으로부터 점액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왔다. 내가 건드리지 않아도 둥지는 느릿느릿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이제는 함선 전체를 감시할 수 있어.’

직경 200m에 달하는 타원형 연구선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내게 전달되었다. 바퀴벌레처럼 크기가 작은 생물까지 감시할 수 없지만, 적어도 사람에 한해서는 그들의 활동 대부분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화물칸과 둥지를 오가면서 바퀴벌레와 거미를 잡아먹다 보니 새로운 특성을 하나 더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종족: 미확인 적대적 우주생물

상태: 해츨링

목표: 생존하라.

보유 특성: 초감각, 날개, 키틴질 외피, 강인한 생명력, 마비 독침」

‘마비 독침’은 거미를 통해 얻은 특성이었다. 후반부에 가면 몸이 에너지로 이루어진 존재나 몸이 금속처럼 무기물로 이루어진 생물 등 별별 괴수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무용해지는 특성이지만, 초반 한정으로는 괜찮은 능력이다.

‘약한 몸으로 강한 자를 사냥해야 하는 내게는 안성맞춤의 능력이야.’

엉덩이에 힘을 주는 느낌으로 의식을 꼬리에 집중하자 끝의 침에서 노란색 액체가 한방울 떨어졌다. 이걸로 성인 한 명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 지속 시간은 길어 봐야 5분 정도에 불과하나, 그 정도 시간이면 사람 하나 죽이는데 무리가 없다.

일용할 양식뿐만 아니라 귀한 선물까지 준 거미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나는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을 사냥할 조건은 거의 갖춰졌으니 목표를 찾을 시간이다.

현재 연구선에 탑승한 승무원은 총 222명. 그중 함선 방위를 담당하는 병사와 장교가 96명, 지휘부에 속하는 고급 인력이 21명이었다. 나머지는 연구원이나 정비사, 요리사 등의 민간인들이었다.

‘문제는 누구를 노리느냐 인데.’

처음에는 선장을 노려서 지휘체계를 교란시킬까 생각했다. 그러나 몇 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리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선장을 대신할 부관들이 있어서 큰 피해를 주기 힘들어 보였다.

‘약하지만 배에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인물.’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대상은 둘뿐이었다.

‘의료팀장과 연구팀장.’

이 중 내가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사람은 연구팀장이다.

함선 내 인원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팀장 대신 연구팀장이 살생부에 오른 이유는 간단했다.

‘내 생존에 위해가 되는 존재니까.’

며칠간 실험실을 염탐한 뒤 얻은 결론이었다.

연구팀장의 이름은 ‘키사라기 유진’. 그녀는 내가 살인을 저질렀을 때, 곧바로 추적 장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틀 전에 실험체 한 마리가 탈출했는데, 그녀는 2시간 만에 추적 장치를 만들어서 실험체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놈 때문에 나도 걸릴 뻔했지.’

녀석이 환풍구를 이용했다면 나도 위험했을 테지만 다른 곳으로 도망친 덕분에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실험체 탈출 사건 이후, 키사라기 유진은 내 마음속 위험 순위의 상위권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치고는 희한하게 감이 좋단 말이야.’

한번은 그녀가 내가 있던 환풍구를 올려다보는 바람에 걸릴 뻔했다.

이후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감시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가 내 존재를 느끼고 쳐다보는 바람에 수시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사이킥 파워 재능이 있나?’

사이킥 파워. 흔히 알려진 염동력, 텔레파시, 정신지배 등의 초능력과 비슷한 개념의 힘이다.

사이킥 파워가 있으면 손 안 대고 물건을 옮기는 간단한 염동력부터 빛을 왜곡시켜 함선을 스텔스 상태로 만드는 마법 같은 일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했다.

‘게임할 때도 사이킥 파워 때문에 컬트를 엄청 잡았었는데.’

사이킥 파워를 얻기 위해 주로 노린 대상이 바로 컬트였다. 컬트 종족은 종족 고유 특성으로 모든 개체가 사이킥 파워를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서 유전자 정수를 노리기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간혹 인류 중에서도 드물게 사이킥 파워 잠재력을 타고나는 개체가 나오기도 했다.

키사라기 유진이 그런 희귀한 사례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냥꾼의 시점에서 보면 똑똑하고 예민한 사냥감은 까다로운 상대다.

내 정체를 모르더라도 내 흔적을 발견하면 분명 어떠한 방식으로든 추격하는 장치를 만들어내겠지.

‘치고 빠지는 전략을 쓸 거라면 추적은 최대한 피해야 해.’

에이모프가 유체로 진화하면 해츨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다. 그렇지만 함선의 군인들과 전면전을 벌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유전자 정수를 충분히 확보하기 전까지는 철저한 게릴라전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따라서 키사라기 유진은 내 진화를 위해서가 아니어도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이었다.

‘그럼 어떻게 사냥할까.’

둥지에 누운 상태로 앞다리로 머리를 긁으며 고민했다.

연구팀장은 여성이고 민간인이므로 1대1 상태일 때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딱 하나 난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경호원.’

그녀가 어디를 가든 호위를 맡은 군인이 따라붙었다. 심지어 밤에 침실에서 잠들 때도 경비원들이 교대를 해가며 수시로 그녀를 지켰다. 본인은 약하지만 주변에서 지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키사라기 유진 공략의 난점이었다.

‘고민만 해서는 답이 안 나올 것 같네.’

감시를 계속하면서 빈틈을 노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작은 몸으로 머리를 맹렬하게 굴리니까 배가 고파졌다. 나는 안락한 둥지를 뒤로하고 칙칙한 화물칸으로 향했다.

화물칸 문 앞 복도 환풍구에서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기에 철망을 열고 폴짝 뛰어내렸다.

바닥에 사뿐히 착지한 나는 문 옆에 있는 단말기로 기어 올라갔다.

‘매번 환풍기 날을 피하면서 갈 수는 없지.’

나는 고양이가 아니므로 목숨이 9개나 되지 않는다. 매번 식사할 때마다 목숨을 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화물칸은 다른 주요시설과 달리 출입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둥지에서 강화된 감각으로 확인해 봤는데, 담당자를 제외하고는 출입하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담당자는 하루에 한 번 정기검사 차원에서 방문하는데 그 시간만 피하면 걸리지 않고 출입이 가능했다.

‘열려라 참깨.’

단말기에 번호를 입력하자 단단한 철문이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어두컴컴한 화물칸에 들어간 나는 늘 가던 플라스틱 박스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포식자의 침입에 화물칸의 거주민들이 술렁거린다. 금속이 부식하면서 나는 퀴퀴한 냄새, 작은 벌레들이 천적의 등장을 경고하기 위해 남발해대는 페로몬, 작고 날카로운 16개의 발톱이 그물 모양의 합금 판 위를 걷는 소리가 뒤섞인다.

에이모프만이 감지할 수 있는 이면(裏面) 세계의 자극을 즐기며 박스 위로 올라갔다. 늘 하던 대로 박스를 연 나는 칼로리바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우고, 다른 하나는 봉지만 뜯고 앞다리로 집어 들었다.

‘그럼 가 볼까.’

남은 껍질은 박스 안에 고이 모셔두고 화물칸을 나섰다. 왔던 방식 그대로 통로로 돌아온 나는 실험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험실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26번 실험관 앞에 갔다.

축 처져 있던 버블아메바가 나를 보자 파장으로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인사뿐만 아니라 몸도 반짝 빛내면서 기쁨을 표시하니 나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오늘도 밥 가져왔다.’

「밥.」

녀석이 부르르 떨더니 좀 전보다 더 강하게 발광(發光)했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고 녀석에게 먹이를 줄 준비를 했다.

이틀간 키사라기 유진을 감시하면서 실험실을 자주 찾다 보니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실험실에서는 버블아메바에 잠재된 미지의 특성을 임의로 각성시키는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저 무해한 마스코트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구원들은 제법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임상에서는 별다른 능력은 없었는데. 얘만 다른 건지 종족이 달라진 것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26번 실험체는 특별 대우를 받고 있었고, 나는 녀석과 관계를 긍정적으로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함선을 정복할 때 나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뭐 반쯤 취미지만.’

나는 26번 실험관에 먹이를 지급하는 실험관으로 가서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최소한의 생명 유지만을 위한 영양액이 들어 있었다.

통째로 넣으면 막힐 것이 분명하기에 앞다리로 조금씩 잘라서 시험관에 떨어뜨렸다. 조각은 두 실험관을 연결한 호스를 통과해서 녀석 앞으로 배달되었다. 버블아메바는 온몸으로 칼로리바 조각을 감쌌다. 녀석을 지켜보다가 다 소화한 것 같으면 다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칼로리바 하나를 다 먹은 녀석이 빛을 천천히 점멸하면서 배가 부르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마음에 드나보네.’

게임 할 때는 몰랐는데 왜 사람들이 버블아메바를 찾는지 알 것 같다. 물속에서 특정 리듬에 맞춰 빛을 내뿜는 녀석을 보면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바라만 볼 것 같으니까 말이다.

‘사람?’

그때 내 인지범위 내로 누군가가 침입했다. 실험실에 들어오려는 연구원들이었다.

나는 재빨리 환풍구로 올라가 몸을 숨겼다.

잠시 후 그들이 연구실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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