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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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메데 콜로니 출신 웨이는 자신이 처한 엿 같은 상황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프로젝트에 합류할 당시, 상관이 지구에서 온 성골 중의 성골이자 노블캐피탈이라는 사실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메가콥의 지배층 노블캐피탈, 거기다가 지구 출신의 인사면 말 그대로 왕족이나 다름없다. 그들과 연을 맺는다면 꿈에서나 봤던 화성 이주도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 배에 올랐지만, 웨이의 꿈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친 또라이 같은 년. 오늘은 쉬는 날이라며.’
웨이는 반쯤 벗겨진 머리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닦으며 옆에 서 있는 젊고 유능한 상관을 훔쳐 봤다.
그녀의 이름은 키사라기 유진. 웨이의 상관이자 지구를 지배하는 5대 가문 중 유진 가(家)에 소속된 노블캐피탈이다.
오늘은 근무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흰 가운 대신 사복을 입고 있었고, 팔에는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빌어먹을. 고양이가 산책이 왜 필요하냐고.’
웨이는 잠깐 바람이나 쐬려는 생각으로 정원에 갔던 자신을 원망했다. 키사라기는 실험실에 오기 전까지 수백 번은 더 했을 말을 다시 꺼냈다.
“도대체 26번 실험체는 언제쯤 성과를 낼 수 있는 거죠?”
“현재 반응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시간이 곧 크래딧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회사에 보고할 수 있을 정도의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회사에서 그쪽의 ‘고용’에 대해 재고할지도 모르겠네요.”
“큭?! 그, 그것만은 제발…!”
‘고용’이라는 단어가 그녀 입에서 나오자 웨이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메가콥의 선임연구원인 그는 ‘고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이 잠깐 실험관 속에 있는 뇌에 향했다. 전임자가 너도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임연구원, 아니 웨이 씨.”
“네, 네?”
차가운 표정으로 쏘아대던 유진은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저도 그런 결과는 바라지 않습니다. 저 역시 선임연구원에게 기대를 하고 있답니다. 26번 실험체에게 그 ‘적성’을 뽑아낼 수 있다면 수석연구원으로의 진급은 꿈도 아니겠죠.”
“저, 정말입니까?”
“예. 최소 수석연구원, 일이 잘 풀린다면 화성 쪽과 인맥을 틀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쪽에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으니까요.”
그 말을 듣자 웨이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그동안 구상만 하고 실제로는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을 그녀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저, 한 가지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만….”
“뭐죠?”
“사이오니움을 투여해 보는 것입니다.”
“사이오니움? 스타유니언에서 만든 마약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키사라기 유진은 말없이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가 주인의 애정 어린 손길이 마음에 드는지 그르렁 소리를 냈다.
“사이오니움에는 각성 효과가 있….”
“저도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요. 그걸로 프로젝트를 따온 적이 있으니까요. 사이오니움이라. 저희가 시도해 보지 않은 약물이네요.”
“사실 그것 말고 몇 개 더 있긴 합니다만.”
“성분상 유사한 것들은 모두 시도해봤어요. 남은 것은 사이오니움 밖에 없죠.”
키사라기의 시선이 26번 실험관을 향했다. 고양이를 만질 때처럼 부드러운 눈빛이 아니었다. 실험체를 보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공장에서 상품을 분류하는 기계 같았다.
“좋아요. 지금 당장 투여하세요.”
“네? 저, 그, 중화제를 흡수하지 않으면 생명 유지에 지장이 생깁니다만.”
“그렇게 하면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저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시간이 없다는 말. 웨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그녀도 실험이 실패하면 책임을 져야한다. 그녀는 웨이보다는 한참 높은 계층의 사람. 경력에 오점이 남았을 때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까지 살면서 실패한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첫 실패가 코앞에 다가왔으니 더욱 초조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겠지만 연구성과가 이미 나왔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원래라면 발표할 보고서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 아직 실험체로부터 유의미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죠.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웨이는 반박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당장 투여하겠습니다.”
웨이는 냉장고에서 보라색 시험관을 꺼내 왔다.
“먼저 0.01mg 투여하겠습니다.”
시험관을 호스에 연결한 웨이가 단말기를 조작하자 시험관 속 약물 중 소량이 실험관에 주입되었다.
버블아메바는 무반응이었다. 단말기 화면의 그래프에도 특별한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웨이는 비 오듯이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낸 뒤 다시 단말기의 버튼을 눌렀다.
“0.05mg 투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버블아메바는 고통스러운지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실험체에게 고통을 준 웨이는 기대했던 반응이 나타난다는 사실에 얼굴에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실험체를 지켜보고 있던 키사라기의 얼굴에도 흥미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다음은 0.07mg….”
“잠깐. 반응이 있는 것을 보니 더 늘려도 되겠어요.”
“예?”
“전부 투여하세요.”
“그, 그건 좀….”
“비키세요.”
웨이가 머뭇거리자 키사라기는 그를 밀쳐 내고 직접 투여 버튼을 눌렀다.
시험관에 있던 액체가 모두 빠져나가 실험관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윽고 버블아메바의 몸이 누가 바람이라도 불어넣은 듯 크게 팽창했다. 몸에서는 불빛이 미친 듯이 깜빡이고 피부는 팽창하는 몸을 감당 못하고 찢겨져나갔다. 누가 봐도 버블아메바가 극도의 고통이 시달리고 있음은 분명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문제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발! 조금만 더!’
웨이는 단말기 화면의 그래프가 천장을 모르고 치솟는 것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대략 5분 정도 지났을까.
그래프가 확 꺾여서 바닥에 처박혔다. 웨이는 추락하는 그래프 모양이 본인의 미래랑 똑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험관 속에 있는 26번 실험체는 더 이상 분홍색으로 빛나지 않았다. 누가 강제로 탈색이라도 시킨 듯 하얗게 변색된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깨우세요.”
“네.”
절망한 웨이와 달리 키사라기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웨이는 암담한 심정으로 전기 충격 버튼을 눌렀다.
실험관 속에서 거품이 올라오고 버블아메바가 펄쩍 뛰었다.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긴 하지만 색깔은 여전히 하얀색이어서 그저 숨만 쉬는 상태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결과네요. 26번 실험체로 좀 더 시도해 보세요.”
“괜찮습니까?”
“다시 시도해서 유의미한 결과가 있으면 제게 보고하세요.”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살아난 죄수처럼 웨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말 한마디로 한 사람을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만든 키사라기는 문득 시선을 느껴 환풍기 쪽을 바라봤다.
‘또 시선이 느껴지네.’
환풍기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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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봤던 실험은 내게도 의미가 있었다.
그들이 26번 실험체에게 주입한 사이오니움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약물이다.
‘미해금된 종족 특성을 임시로 해제시켜 주는 각성제.’
게임에서 사이오니움을 먹으면 최대 체력이 감소하는 대신, 잠겨 있는 종족 특성이 해금되어서 제한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사이오니움을 섭취하면 해츨링 단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을 짧은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유체 단계에서 얻는 산성피 특성이나 강화 외골격 특성 등을 미리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약효가 떨어지면 영구 적용되는 특성도 다 해제되고 원래대로 돌아간다.
잘 쓰면 굉장한 아이템이지만 마약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먹을 때마다 지속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후반보다는 초중반에 주로 사용되는 아이템이었다.
‘버블아메바에게 내가 모르는 특성이 있나?’
전에 수천 마리는 잡아먹었던 것 같은데 숨겨진 특성은 보지 못했다.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온 적이 없으니 아마 26번 실험체가 특이한 개체거나 현실이라서 게임과 차이점이 생긴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사이오니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성과야.’
함선의 인류들과 전면전에 돌입하게 되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둥지로 돌아온 나는 다시 몸을 뉘었다. 몸이 편해지자 일부러 생각을 피하고 있던 것들이 다시 머리 안에서 떠올랐다.
‘녀석,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지.’
대량의 사이오니움을 주입받은 26번 실험체는 내게 구원을 요청했다. 녀석이 지르는 비명이 아직도 생생했다.
녀석은 아프니까 그만두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연구원들은 그 파장을 인지하지 못했다. 설령 아프다는 것을 알아도 그만두지는 않았겠지만.
불행한 사실은 끔찍한 고문이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메가콥의 연구원은 버블아메바가 견디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사이오니움 실험을 반복할 것이다.
분명 녀석의 앞날에 어둠 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버블아메바의 유전자 정수가 쓸모없다고 판단해서 살려 둔 것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녀석도 내 먹이 후보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불쾌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지금도 내 머리 안에서는 녀석이 울부짖는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는가.
‘불쾌해. 아주 마음에 안 들어.’
이런 점을 보면 아직 난 완전한 ‘명예 에이모프’는 못 되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그들을 찢어 죽이고 싶으니 말이다.
원래는 좀 더 여유 있게 사냥을 하려고 했지만 생각이 변했다. 단순히 감정적인 이유로 그러는 것이냐고 한다면 반은 맞다.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냉정한 상태였다. 그녀를 공략해도 될 만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었다. 오늘 내가 얻은 성과 중에는 사이오니움 말고도 키사라기 유진과 관련해서 쓸 만한 정보도 있었다.
‘고양이를 길렀지.’
초감각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고양이를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뱀처럼 몸에 차가운 피가 흐를 것 같은 여자였지만 고양이를 어루만질 때만은 인간적인 감정이 느껴졌었다.
보조기관으로 심장 소리, 호흡, 고양이를 들고 있는 상체의 움직임 등을 통해 그녀가 고양이에게 적지 않은 애착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고양이가 죽으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빈틈이 많이 노출되겠지.’
당연한 얘기지만 고양이는 따로 경호를 받지 않았다. 주인이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혼자 있었다. 아끼는 고양이가 죽었을 때, 키사라기 유진이 얼마나 타격을 받을지 함선 내에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즉, 고양이를 미끼로 해서 사냥감을 유인한다는 것이 내 계획의 골자다.
‘키사라기 유진. 너는 며칠 내로 죽는다.’
불과 같은 분노와 얼음 같은 냉철함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죽음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