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5화 (6/400)

Ep. 5

판단이 섰으면 남은 것은 행동뿐.

나는 이틀간 고양이의 생활패턴을 파악하고 조사했다.

면밀한 분석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야말로 황제구만.’

장담하건데 이 배의 선장도 저 고양이보다 편하지 않을 거다.

6일 동안 승무원을 봐 왔지만 이들 대부분은 생활수준이 평균 이하였다. 예를 들어 식사 메뉴를 보면 인공고기, 유전자 조작 곡물 등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는 식품들 중심이었다.

‘반면 저 고양이는 주인을 잘 만난 덕분에 매일 고기만 처먹지.’

그것도 당일 도축된 신선한 생고기를 말이다.

이 배에는 농사 및 목축을 담당하는 농업구역이 있다. 함선 내 고위층이나 외부에서 온 귀빈들에게 고급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인데, 겨우 고양이 따위에게 그 귀한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키사라기 유진은 일반인은 아니야.’

아마 화성의 귀족 프라임캐피탈이거나 메가콥 최상위 계층 노블캐피탈이 아닐까. 둘 다 메가콥의 핵심 지배층으로 각자 행성 단위의 지배력을 발휘하는 세력들이다.

‘귀찮은 족속들이지.’

두 계층 모두 자존심이 엄청나게 높아서 원한이 생기면 절대로 잊지 않는다. 아주 작은 불만이라도 잊지 않고 나중에 반드시 수십, 수백 배로 복수하는 잔인한 놈들이다. 그것 때문에 게임을 할 때도 엄청 고생했다.

만약 내가 키사라기 유진 대신 다른 사람을 죽이고 배에서 탈출한다 해도 그녀는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날 찾아내서 죽이려고 들겠지.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

어쨌든 주인의 위상은 그렇다 치고 저 고양이를 어떻게 죽일지가 관건이다.

“야옹.”

고양이는 지루한지 입을 쩍쩍 벌리며 하품했다. 최고급 방석 위에서 뒹굴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 한량도 이런 한량이 없었다.

이곳은 키사라기 유진의 침실.

지금 나는 침실 바닥 부근의 벽과 연결된 환풍 통로에 있다. 아까부터 철망 너머로 저 게으름뱅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빈둥거리는 꼴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둔해 보이니까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데.’

고양이는 개와 달리 가축화되었음에도 야생에서의 습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동물이다. 또한 선천적으로 뛰어난 사냥꾼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츨링에 불과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상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싸우면 지지야 않겠지만 상당한 출혈은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는데 녀석을 직접 보니까 괜한 걱정이었다. 저 뚱뚱하게 찐 뱃살을 보면 질 것 같다는 생각보다 맛있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문제는 너무 게으르다는 거지.’

녀석은 하루 대부분을 저 방석 위에서 보냈다. 밥 먹을 때, 주인과 함께 정원에 산책을 갈 때 빼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없고.’

웃기는 사실은 이곳이 화물칸보다 보안이 좋다는 거다.

내가 서 있는 환풍 통로는 겉으로 봤을 때는 다른 곳과 다른 점이 없었다.

하지만 초감각으로 보면 침실의 주인이 편집증적으로 보일 정도로 보안에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곳곳에 설치된 레이저 신호기가 불법침입자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방에 들어간다면? AI가 바로 낯선 방문객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문밖에 서 있는 경비들에게 전해주겠지.

‘그러면 난 바로 끝장이고.’

굳이 총을 쓸 필요도 없다. 경비원이 발로 차면 나는 내장이 터져서 죽는다.

‘여기에서 막히네.’

고양이 자체는 쉬워 보이지만 녀석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예상 외로 까다로웠다. 나는 짜증을 내다가 무심코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이런!’

꼬리가 통로 벽에 부딪치며 소리가 나자 고양이의 귀가 쫑긋 솟았다.

“냐앙?”

고양이가 벌떡 일어나 정확히 내가 있는 곳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비만치고는 움직임이 제법 날쌨다.

고양이의 몸이 철망과 충돌하고 레이저 신호기가 작동했다.

문 밖의 경비들이 신호를 받고 몸을 굳히는 것이 느껴진다.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철망을 벅벅 긁어대는 녀석을 한번 노려보고 나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내가 그곳을 떠나자마자 경비들이 방 안에 들이닥쳤다.

“뭐야? 뭐가 들어온 거야?”

“쯧, 고양이가 또 지랄이군.”

“또?”

“어휴, 저걸 그냥!”

경비들의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둥지로 돌아왔다.

‘내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하마터면 목숨이 위험할 뻔했다. 짜증이 난다고 꼬리를 패대기치다니 실수도 이런 실수가 없었다.

아늑한 둥지가 내 마음을 좀먹었던 것일까? 몸이 편해졌다고 자극에 둔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꼬리로 관심을 끌다니 내가 미쳤…아니 잠깐.’

자책하던 중에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아이디어의 파편들이 무작위로 하나 둘씩 튀어나왔다. 나는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퍼즐 맞추듯 차근차근 정리했다.

‘지루해 보이던 녀석, 자극, 경비들의 반응.’

핵심 키워드는 이 세 가지.

마침내 녀석을 어떻게 공략할지 가닥을 잡았다.

-

고양이 카이사르는 오늘도 방석 위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역한 냄새가 나는 쇳덩어리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믿을 수 없었다.

먹이를 주는 주인, 키사라기 유진을 근엄하게 꾸짖었지만 그녀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을 뿐 그의 의견을 묵살했다.

카이사르는 굉장히 실망했지만, 그의 고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잠자리도 영 불편한데다가 먹이도 형편없었던 것이었다.

평생을 최고급 소고기와 갓 잡은 생선을 먹으며 살아온 그에게 배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대식가인 그가 하루 동안 단식을 할 정도였을까.

주인이 그에게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빌었기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질 떨어지는 고기를 먹어 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이사르는 여행 초기의 저항이 무색하게 새로운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변화가 거의 없는 함선에서의 삶은 게으른 그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카이사르는 지루함 속에서 기지개를 켰다.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하는 그지만, 고양이다운 호기심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뭔가 재밌는 일이 없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는 그의 귀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바람이 들어오는 통로 너머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저곳에서 이상한 존재가 나와 그의 관심을 끌었다.

카이사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난번에는 성급히 달려가느라 정체불명의 존재를 놓쳐 버렸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통로 입구에 가까이 다가간 그의 눈에 작은 물체가 하나 보였다.

몸이 반쯤 절단이 난 바퀴벌레였다. 살 가망이 없음에도 벌레는 어떻게든 도망쳐보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카이사르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포식자의 본능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벌레를 덮쳤다.

앞발로 바퀴벌레를 곤죽으로 만든 카이사르는 낯선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재미있다는 감정이었다. 그의 작은 뇌가 장난감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꽉 찼다.

카이사르의 눈에 철망 너머로 또 다른 벌레가 보였다. 그는 낙담했다. 지난번에 철망을 건드려봤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철망을 툭 쳤는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철망이 앞으로 쓰러진 것이다.

그는 반색하며 벌레를 잡기 위해 통로로 기어들어갔다.

“야, 이거 또 울리는데?”

“고양이겠지. 귀찮은데 이따가 들어가 보자고.”

“하긴 고양이가 어딜 가겠어. 우리가 이렇게 지키고 있는데.”

카이사르는 고양이였기 때문에 밖에서 경비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설령 알아듣는다고 해도 그는 벌레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기에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통로에 띄엄띄엄 놓여 있는 벌레들을 따라가던 그의 눈에 밝은 빛이 들어왔다. 빛을 따라가 보니 탁 트인 복도가 나왔다.

“냐앙?”

복도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카이사르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나 싶었지만 또다시 보이는 벌레의 모습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벌레 시체 뒤에는 복도의 빛과 대비되는 어두컴컴한 공간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겁도 없이 그 공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은 화물칸이었다.

-

‘오는군.’

나는 컨테이너 위에 숨어서 녀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멍청한 고양이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벌레들을 따라서 화물칸에 들어왔다.

‘꼭 멍청하다고 할 수는 없나?’

고양이는 그저 본능에 따랐을 뿐이다.

동물에게 본능이란 것은 그만큼 절대적인 것.

인간의 손에 길들여졌다고 해도 녀석의 몸 안에 있는 야생의 유전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냥꾼, 포식자의 유전자가 말이다.

“야옹.”

녀석이 컨테이너에 가까워진다. 나는 녀석을 덮칠 준비를 했다.

혈류가 긴장에 의해 평소보다 빨라진다. 꽁무니에 있는 굵고 유연한 꼬리가 언제든지 찌르기만 하면 된다고 외친다.

4쌍의 다리를 구성하는 근육이 수축되고 몸의 자세가 바짝 낮아지며 전투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몸이 준비되는 동안, 나의 충실한 하인인 보조감각은 주인의 명을 받아 공격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다.

에이모프 특유의 초월적인 시각이 어두컴컴한 화물칸 너머를 꿰뚫고 고양이를 정확히 노려봤다. 고양이의 근육, 뼈의 움직임, 녀석의 버릇 등을 관찰한 결과 녀석의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시력이 낮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냐앙?”

녀석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다. 녀석의 떨어지는 시력으로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없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바짝 굽히고 있던 다리를 추진력으로 삼아 내 몸이 허공에 떠오른다.

날개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일부러 쓰지 않는다. 놈에게 빠르게 접근하는 것은 중력의 힘을 빌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녀석과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진다.

고양이의 귀가 바람 소리를 듣고 쫑긋 거린다. 녀석의 고개가 나를 향하고 동공이 크게 확대된다. 녀석의 몸이 위기를 감지하고 긴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내 꼬리가 암살자가 날린 비도가 되어 녀석의 옆구리를 찔렀다. 성인조차 단숨에 마비시킬 정도의 독이 녀석의 혈관을 따라 전신에 퍼져나갔다. 사람에 비해 훨씬 작은 몸을 가진 녀석이 마비 독을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독침에 맞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녀석의 심장은 멈췄다.

사냥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서 미동도 하지 않는 전리품을 밟고 작게 포효했다.

포식자가 선포하는 승리의 외침이 화물칸에 울려 퍼졌고, 거주민들은 두려움과 경외심 속에서 몸을 떨었다.

‘좋아. 이제 먹어볼까.’

세리머니도 성황리에 마쳤으니 이제 보상을 확인할 시간이다. 나는 고양이 시체를 한입 베어 물었다.

‘음?!’

벌레랑 칼로리바와는 차원이 다른 식감이 내 뇌리를 강타했다.

가장 먼저 표유류 특유의 따뜻한 피가 내 입으로 흘러들어왔다. 달콤한 피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쫄깃한 근육과 감칠맛 나는 지방이 입속으로 쳐들어와서 나의 미각을 사정없이 농락했다.

그야말로 등골이 빨려 나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동안 바퀴벌레, 거미, 칼로리바도 먹을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완전히 틀렸다.

‘맛있다’라는 감각은 바로 이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고양이를 한 번 더 깨물었다.

‘미친.’

착각이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고양이 고기만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나의 빈약한 어휘력으로는 고양이가 얼마나 맛좋은 동물인지 설명하기 힘들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데 집중했다.

나보다 덩치가 큰 고양이 시체가 사라지는 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쩝.’

뼈까지 씹어 먹고 바닥에 흘러내린 피 한 방울까지 모조리 핥아먹은 나는 입맛을 다셨다.

광란의 식사를 끝내고 냉정해진 나는 왜 에이모프가 육류에 환장하는지 알 수 있었다.

‘좆나 맛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감탄스러운 맛이다.

유전자 정수 수집이라는 목표를 제외하고도 고기가 이 정도로 맛있다면 일부러 찾아다닐 만했다.

아쉬움 속에서 앞다리에 묻은 살점과 피를 핥아먹고 있는데 갑자기 텍스트 박스가 떠올랐다.

「포식 효과 발동! ‘야생의 본능’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고양이’의 생물 특성 중 ‘야생의 본능’을 탈취.」

「‘야생의 본능’을 적용하시겠습니까?」

‘오?’

고기를 먹어 기분이 좋은데 거기다가 유전자 정수 획득이라니. 그것도 처음 잡아먹었는데 유전자 정수를 얻을 줄은 몰랐다.

‘야생의 본능이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성이네.’

애초에 고양이를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특성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고 나쁠 것은 없었기에 나는 수락을 눌렀다.

「‘야생의 본능’ 특성이 적용되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초감각’ 특성과 융합 가능.」

「‘야생의 본능’과 ‘초감각’ 특성이 융합. ‘포식자 감각’ 특성으로 진화!」

「포식자 감각: ‘초감각’ 특성이 강화됩니다. 가진 정보를 토대로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위협을 미리 감지할 수 있습니다.

*추신: 뛰어난 사냥꾼은 앞날을 읽을 줄 아는 법입니다.」

‘헐?’

나는 텍스트 박스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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