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6화 (7/400)

Ep. 6

‘포식자 감각?’

나는 텍스트 박스에 기록된 특성들을 재확인했다.

「종족: 미확인 적대적 우주생물

상태: 해츨링

목표: 생존하라.

보유 특성: 포식자 감각(융합), 날개, 키틴질 외피, 강인한 생명력, 마비 독침」

스페이스 서바이벌에 특성 융합 시스템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 연관성이 있는 특성 2개 이상을 하나로 합쳐서 하나의 강화된 특성으로 만들어 주는 시스템이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특성들도 융합에 의해 강력한 특성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나 역시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하도 많이 써먹다 보니 이 게임에 존재하는 특성들과 융합을 위한 조합식을 몽땅 외울 정도였다.

‘그런 내가 모르는 특성이 있다고?’

몇 번을 다시 봐도 처음 보는 특성이었다.

‘위협을 미리 감지한다라.’

미래 예측과 관련된 특성은 게임에도 존재했지만 대개 회피율을 올려주는 식으로 구현되었다.

까놓고 말해 허울만 좋을 뿐 유용한 특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현실이지. 과연 어떨까?’

나는 초감각을 사용할 때처럼 보조기관에 감각을 집중했다.

내 턱에 달린 가느다란 촉수 형태의 보조기관이 꿈틀대며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들을 읽어냈다.

이전보다 강화된 덕분인지 수집하는 정보량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준이 높다.

화물칸 안에 무슨 곤충이 있는지, 컨테이너 속의 무기들이 어떤 형태인지까지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다만 기대했던 미래 예지 효과는 발동하지 않았다. 나한테 위협이 닥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패시브형인가.’

자동으로 발동하는 패시브형이라고 꼭 나쁘다고 볼 수 없었다. 위협이라는 것이 불시에 닥칠 수도 있는 것이니 이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저나 포유류를 먹으니까 에너지가 훨씬 많이 들어오네.’

몸 안에 도는 활력도 활력이지만 포만감 하나는 확실히 월등했다. 배와 등을 덮고 있는 외피가 살짝 당기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나는 기분 좋은 포만감을 안고 둥지로 돌아갔다.

-

역사가들이 말하길, 메가콥은 과거 지구와 화성에 있던 7개의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합한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정부는 상인나부랭이가 자기 지위를 넘보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7대 기업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피가 바다를 이룰 정도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희생된 후, 최종 승자는 7대 기업이 되었다.

태양계 내의 모든 행성이 단 하나의 거대 회사 연합체, 즉 메가콥(Mega Corp)의 통솔을 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후, 메가콥의 근간이었던 7개의 기업 중 지구에 본사를 뒀던 5개의 기업은 노블캐피탈의 5대 가문, 화성에 있던 2개의 기업은 화성의 귀족 프라임캐피탈이 되었다.

지구를 호령하는 노블캐피탈의 5대 가문 중 유진 가(家)는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작은 농업회사로 출발했다.

유진의 선조들은 일찍부터 유전자 조작 식품이 가진 잠재력을 알고 있었고, 유전공학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우주시대가 된 뒤에도 그러한 가풍은 유지되었다. 덕분에 유진 가문은 은하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유전공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키사라기 유진이 뛰어난 유전공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가문의 배경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천재성을 보인 그녀였기에 가문에서는 그녀에게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런 성장 배경 덕분에 그녀는 살면서 결핍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원하는 것은 무조건 이루었고, 당장 이루지 못하는 것이라도 잠시 기다리면 곧 손에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난생처음 소유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언제쯤 카이사르를 볼 수 있는 거죠?”

“병사들이 찾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벌써 2시간이나 지났어요! 카이사르는 식사시간은 반드시 엄수하는데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키사라기를 아는 사람이 그녀를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잘 관리된 검은색 생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평소의 얼음장 같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의 그녀는 그야말로 광인(狂人)이었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그녀를 보면서 선장 유성 사뮤엘은 한숨을 쉬었다.

“이곳은 함선입니다. 고양이가 구조선을 조종해서 탈출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배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당장 찾아오라고 하는 거잖아요!”

“제 말은 기다리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유성은 위성 타이탄 출신의 서드캐피탈이었다. 절대 낮은 계층은 아니었지만 앞에 있는 노블캐피탈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녀가 그에게 선장을 관두라고 하면 그대로 직위를 반납해야 할 정도로 둘 사이의 격차는 컸다.

본인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인간이 반쯤 미쳐 있으니 유성도 미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깟 고양이가 뭔데!’

유성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냐고 소리치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경비, 경비들은 어떻게 됐죠?”

“모두 구금된 상태입니다. 적법한 절차는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

“당장 처형하세요.”

“예?”

유성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선장이면 즉결처분권을 갖고 있죠? 그 권한, 바로 행사하세요.”

“이런 일로 처형한다면 다른 병사들이 동요할 것입니다.”

“이런 일?”

그녀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한 유성은 헛기침하며 정정했다.

“크흠, 제 말은 수색이 어느 정도 진척된 뒤에 처분을 논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의미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이게 전부 병사들이 일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잊으셨나요?”

유성은 알고 있다. 함선 내의 병사들이 고양이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솔직히 선장인 그조차도 생고기는 일주일에 한 번 먹고 나머지 식사는 배양육으로 때우는 형편이었다.

‘반면 저 빌어먹을 털북숭이는 매끼마다 쇠고기를 먹지.’

자신도 고양이가 미워 죽겠는데 병사들은 오죽 하겠는가.

고양이에게 불행이 닥친 것을 보고 좋아하는 병사가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하면 키사라기의 분노가 자신에게 향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기에 유성은 입을 다물었다.

“저도 연구팀장님의 우려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삼아 병사들의 기강을 확실히 잡겠습니다.”

“…두 시간 뒤에 다시 오겠어요. 그때까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 모자는 내려놓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키사라기는 유성에게 경고한 뒤 선장실을 나섰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병사들이 수색하고 있을 때, 그녀라고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방석에 남아 있던 털을 통해 카이사르가 어디로 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추적기를 만들었다.

장치는 성공적으로 작동했지만, 기계가 출력해낸 결과를 본 그녀는 역으로 혼란에 빠졌다.

그녀의 고양이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환풍 통로에 설치된 철망의 나사를 풀었고, 화물칸으로 간 뒤 실종되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개입한 사건이었기에 키사라기는 화물칸 관리인을 호출했다.

관리인은 온종일 동료들과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어서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하지만 본인의 업무를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키사라기는 그를 죽이려고 했다.

선장이 말리지 않았으면 관리인은 암흑 밖에 없는 우주에서 영원토록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됐을 것이다.

간신히 살심을 억누른 그녀는 벌벌 떠는 관리인을 데리고 화물칸 내부를 낱낱이 뒤졌다.

카이사르의 흔적은 컨테이너 근처에서 끊겼다. 그리고 자리에는 정체불명의 생물이 남긴 흔적이 있었다. 그녀는 흔적을 채취해 분석기에 넣고 돌렸지만, 나오는 것은 「정보없음」이라는 메시지뿐이었다.

‘메가콥 데이터 아카이브에도 없는 유전자 정보야.’

그녀라고 해도 정보가 전혀 없는 상대를 추적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못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때보다 시간이 걸린다.

기계를 완성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하루,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추가 작업까지 한다면 이틀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정도 굶는다고 카이사르가 죽을 리는 없겠지만 키사라기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 분명 잘못됐다.

끔찍한 일이 화물칸에서 일어났다고 그녀의 직감이 말하고 있다.

그래서 카이사르를 어떻게든 빨리 찾아내기 위해 죄 없는 선장을 닦달한 것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것을 건드린 자, 잡으면 죽여 버리겠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으득 깨물었다. 손톱 끝에서 흐르는 핏방울이 주인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

‘음?’

둥지에 누워 느긋하게 소화를 시키고 있던 중, 함선의 변화가 느껴졌다.

인간들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부산스럽다. 고양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리라.

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보조기관 덕분에 움직이는 인간의 생김새까지 대략 인식할 수 있었다. 형체가 굵고 움직임에 힘이 담긴 것을 보니 수색에 나선 인간들은 모두 군인이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애완동물을 찾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구르는 병사들이라니. 우주시대가 되도 병영부조리는 그대로였다.

‘전부 예상대로야.’

고양이를 죽이는 것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키사라기 유진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것.

그녀의 행동과 고양이의 영양상태를 고려해 보면, 키사라기는 애완동물에게 많은 애정을 쏟고 있었다. 실험체와 연구원들에게는 악마 그 자체지만 자기가 기르는 동물에게는 천사나 다름없는 여자였다.

자신이 아끼는 것에만 인간적으로 대하는 유형은 그리 드물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빼앗기면 정신이 나가지.’

그녀는 애완동물이 죽거나 위험에 빠질까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물건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뺏겼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일 뿐. 그녀가 가진 가장 하찮은 물건을 빼앗겨도 비슷하게 반응할 거다.

그것은 비이성적 소유욕, 간단히 말해 집착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리고 집착에 빠진 사람은 맨정신을 유지하기 어렵다.

둘째, 키사라기 유진과 병사들 간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

내가 그녀를 습격하는데 최대 장애요인은 경비원들이었다.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 병사들 때문에 기습이 거의 불가능했다.

설령 어찌어찌해서 그녀를 제거하는데 성공하더라도 병사들이 나를 발견하면 이득보다 손해가 더 컸다.

그래서 틈을 만들었다.

그녀와 병사들이 서로를 멀리하도록 말이다.

‘경비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지.’

자신들은 입도 대지 못하는 고기를 고양이 사료로 쓰고 있으니까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

사실 고양이는 구실에 불과하고 본질은 계급에 대한 분노에 가까울 거다. 노블캐피탈이라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부조리를 강요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키사라기 유진에게 직접 항의하기에는 후환이 두렵다.

‘주인은 무섭지만 애완동물은 안 무서우니까.’

간단히 말하면 그녀의 고양이는 일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희생양이 사라진다면?

거기다가 자신들이 미워하던 존재를 찾느라 쓸데없이 고생하게 된다면?

병사들이 과연 이전처럼 그녀를 보호하는데 헌신할 수 있을까?

그뿐만 아니다. 키사라기 유진도 더 이상 병사들을 믿지 못한다.

그녀가 아끼는 것이 없어진 것에는 경비원의 태만이 제일 큰 원인이었으니까.

‘큭큭, 고맙다. 고양이야.’

아무 쓸모없는 살덩어리가 이런 나비효과를 불러올 줄 그들은 몰랐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씨앗을 뿌렸으면 수확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키사라기 유진의 유전자 정수를 취할 때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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