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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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의 회의실.
중요한 일이 생기면 팀장급 이상의 함선 수뇌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곳이다.
함선 속의 삶은 대개 정적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은 곧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이 자리에 있는 인원들 모두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핵폭탄이 터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쩌시겠습니까?”
질문한 사람은 승무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팀장이었다. 그의 시선이 텅 빈 의자 쪽을 향했다.
다른 자리면 몰라도 저 자리만큼은 절대로 비어서 안 된다.
빈 의자의 주인은 연구팀장이었다.
“휴, 씨발. 모르겠습니다.”
“…….”
유성이 욕설을 내뱉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그것을 지적하는 자는 없었다.
왜냐하면 다들 똑같은 심정이었니까.
유성은 마른 세수를 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마약이나 맞고 모든 것을 잊고 싶었지만 유성은 이 배의 선장이다.
다들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니 뭐라도 얘기해야 했다.
“큼, 사인은 파악하셨습니까?”
“맨눈으로 봤을 때 연구팀장은 목을 공격당해 죽었습니다. 작은 톱으로 그은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정밀검사를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정밀검사라…. 그 말은 부검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유성의 질문에 의료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검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지만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은 유성과 의료팀장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노블캐피탈을 부검한다니.’
노블캐피탈은 어느 가문을 막론하고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타인의 몸은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주제에 자기 몸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시신에 메스 자국이 조금이라도 보였다간 노블캐피탈이 부검을 주도한 의료팀장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보안팀장님. 범인 수색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선내의 감시카메라는 모두 확인했지만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제1용의자인 경비원은 현재 심문 중입니다.”
“그가 범인인 것 같습니까?”
“현재까지 나온 정보를 보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색 결과가 나오는 대로 보고하세요.”
배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 죽었고, 범인은 모르는 상태.
유성은 배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키사라기의 말을 듣지 않았던 연구원이 어떤 꼴이 됐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연구원은 산 채로 뇌를 적출당하고 실험체가 되었다.
촉망받던 인재가 하루아침에 뇌만 남아 실험관 속에 둥둥 떠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말을 듣지 않은 사람도 그 꼴이다. 노블캐피탈의 죽음에 관계된 자가 어떤 벌을 받을 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다들 실험실에 있었던 일은 아실 겁니다.”
“…….”
“…으음.”
“뇌만 남아서 전기고문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뭐라도 대책을 내놔야합니다.”
뇌, 전기고문이라는 단어에 이 자리의 모두가 몸을 움찔 떨었다.
최악의 미래를 피하기 위해 다들 머리를 맹렬히 굴렸다.
“실험 중 사고가 생겼다고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생각 좀 하고 말하세요. 항해팀장. 연구원 수가 한둘이 아닌데 말을 어떻게 맞춥니까?”
“허어.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그러니까 아직 미들캐피탈이지.”
“뭐라고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음식을 잘못 먹어서….”
“그러면 우리가 뒤집어쓰잖소! 죽고 싶으면 혼자 죽으시오! 기술팀장!”
“뭐라고? 밥말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것들이 감히! 너 어느 캐피탈이야?”
불안감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상태에서 회의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서로 멱살을 잡고,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누군가가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조용!”
그는 군인들을 총지휘하는 위기관리팀장이었다.
“내분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단숨에 전원을 진정시킨 그는 잠깐 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선장님.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은 C-08 행성 근처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C-08은 스페이스독의 영역입니다.”
위기관리팀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한 유성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개새끼들 때문에 사달이 났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네. 습격 때문에 경황이 없어서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는 겁니다.”
유성은 턱을 쓰다듬었다.
스페이스독은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놈들로 메가콥의 주적 중 하나였다.
함대 간 전투에 도가 튼 놈들이라서 베테랑 군인이 이끄는 전함도 그들과 싸우면 피해가 나오기 일쑤였다.
전함도 피해가 나오는 마당에 연구선에 불과한 이 배는 어떻겠는가. 당연히 큰 피해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법.
‘놈들에게 습격받았다고 보고하면 연구팀장의 죽음은 무마시킬 수 있겠지.’
물론 승무원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유성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겠지만, 스페이스독의 위험성을 감안해서 벌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노블캐피탈도 복수의 칼날을 유성이 아닌 스페이스독에게 향할 것이고 말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한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 무장으로는 스페이스독을 상대하기 힘듭니다.”
“그건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예전부터 아는 친구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메가콥 내의 고급 장교 중에는 부패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상층부에 뇌물을 주기 위해 따로 자금줄을 만드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다고 해도 강직해 보이는 위기관리팀장도 그럴 줄은 몰랐다.
‘이 양반, 그렇게 안 봤는데 해적에 줄을 댔구먼.’
다른 이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유성 역시 스페이스독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얼마쯤 필요합니까?”
“최소 100만 크래딧 이상입니다.”
“…….”
유성은 함선 절반 정도 되는 액수에 쌍욕을 내뱉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터무니없는 비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블캐피탈은 스페이스독도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 그쪽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이 정도 비용이면 합리적이라고 봐야 한다.
‘빌어먹을. 피 같은 크래딧을 이런데 쓰다니.’
유성도 그 사실을 알지만 예상치 못한 지출이 좋을 리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모를까,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수락하는 것뿐.
“끄응,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장님.”
“대신 일은 확실히 처리하셔야 합니다.”
“문제없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위기관리팀장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유성이 회의를 종료하려는데 의료팀장이 손을 들었다.
“시신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보관하고 있다가 스페이스독이 오면 넘기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절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더 이상 나오는 얘기가 없었기에 회의는 종료되었다.
유성은 또다시 이 회의실에 모이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회의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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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유체인가.’
게임에서만 보던 모습을 현실에서 직접 보고 느끼니 완전 다른 감각이다.
나는 내 발, 아니 손들을 내려다봤다.
해츨링 때는 4쌍의 다리 모두 땅을 기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맨 뒤에 있는 한 쌍의 다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팔이라는 형태로 진화했다.
먼저 4개의 팔을 보자.
옆구리에 한 쌍, 어깨 부근에 한 쌍씩 튀어나온 팔.
형태는 사람의 팔뼈에 근육을 붙여 연결한 것처럼 생겼다. 팔 끝에 달린 손은 독수리 발을 닮아 손가락이 위아래로 2쌍씩 달려 있었다. 예리한 손톱을 보아하니 사람의 살점 정도는 쉽게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투용 팔.’
적을 공격하거나 몸을 보호할 때 쓰라고 있는 칼과 방패 같은 존재다.
물론 이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못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손가락 사이에 빨판 모양의 돌기들이 남아 있어서 벽을 타거나 천장에 붙을 수 있다.
그야말로 ‘강화’ 혹은 ‘진화’라는 표현에 걸맞은 변화였다.
‘어디 보자.’
4개의 팔을 한번 움직여 봤다.
위쪽의 팔은 어깨를 움직인다는 감각이어서 그럭저럭 익숙했지만, 아래쪽은 매우 이질적이었다.
굳이 인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턱걸이 할 때 광배근 쪽에 힘이 들어가는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그 부분에 뭔가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 달려 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겠지.
‘신선한 감각이야.’
어색한 것은 잠깐이었고 내 몸이다 보니 몇 번 움직여보니까 대충 감이 왔다.
‘전투용 팔은 됐고. 다음은 요 녀석.’
가슴 부근에 있는 앙증맞은 크기의 팔들.
팔의 길이만 보면 해츨링 때의 다리보다 짧다.
손의 생김새는 전투용 손과 달랐는데, 영장류의 손처럼 엄지손가락이 있었다.
‘세밀한 작업을 위해 존재한다는 거지.’
엄지의 유무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 팔은 복잡한 일을 전담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나 단말기를 조작한다거나 무기, 도구를 사용하는 등의 일 말이다.
변한 것은 팔 뿐만이 아니다.
기존에 도마뱀처럼 땅 위를 기는 형태의 몸체가 이족보행 형태로 변화했다. 몸체의 변화에 맞춰 등과 배를 감싸던 외피는 갑주 형태의 외골격으로 진화했다.
가슴과 허리 아래에는 영장류처럼 골반과 지행(趾行)형 다리가 생겼다.
다리는 팔에 비해 훨씬 굵고 근육의 밀도도 매우 높았다. 원래 네 번째 다리였던 부위가 이족보행을 위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꽁무니에 있던 꼬리는 공룡의 꼬리처럼 길고 굵어졌다.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런 형태로 변한 것이겠지.
꼬리와 함께 독침도 같이 커져서 거의 단검 수준의 크기가 됐다.
‘덩치도 커졌네.’
일어서면 높이가 1m가 살짝 안 됐다. 길이를 보면 꼬리까지 합쳐 거의 2m에 달하니 이전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이 자랐다.
‘유체가 됐으니 전략도 바꿔야해.’
그동안에는 적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것이 생존의 핵심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사냥과 생존의 비중이 거의 반반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생존이 얼추 해결됐으니 다음을 생각할 때야.’
배 안의 유전자 정수들은 모두 강탈할 예정이지만 그 뒤도 미리 계획해놔야 한다.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할지 말이다.
「종족: 미확인 적대적 우주생물
상태: 유체
목표: 생존하라(진화 1회 성공).
보유 특성: 포식자 감각(융합), 날개, 키틴질 외피, 강인한 생명력, 마비 독침, 강화 외골격, 산성피
타입: 미정」
텍스트 박스를 띄우자 목표 옆에 새로운 글자가 떠 있었다.
‘진화 1회 성공이면 유체가 된 것을 말하는 거겠지?’
에이모프의 상태는 6단계로 나눠져 있어서 총 5번의 진화를 거친다.
해츨링, 유체, 아성체, 준성체, 성체, 마지막으로 승천.
승천에 도달하면 스페이스 서바이벌을 클리어한 것으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에이모프의 엔딩을 본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엔딩까지 가는 게 무지 어렵다는 거지.’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종족 엔딩을 본 유저는 극소수다. 게임 내에서 클리어한 사람의 목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나를 포함해 20명 정도에 불과하니까.
에이모프 중에서 엔딩, 즉 승천을 달성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승천이라.’
게임에서 에이모프가 승천하면 종족 탄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들이 어디서 왔고, 정체가 무엇인지 등등 숨겨져 있던 떡밥들이 해소된다.
‘현실도 비슷할 가능성이 높아.’
승천에 성공하면 내가 어떻게 에이모프가 된 것인지, 왜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 온 것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거기까지 어떻게 가냐는 건데.’
나는 텍스트박스에 새로 생긴 항목인 ‘타입’을 확인했다.
「해금 가능한 ‘타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성화 가능한 ‘타입’의 후보군을 열람하시겠습니까?」
유체가 되면 에이모프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생긴다. 바로 ‘타입’을 정하는 것이다.
타입은 다른 종족으로 치면 직업이랑 똑같다. 차이점이라면 직업을 얻으면 해당 직업과 관련된 능력이 해금되지만 에이모프는 그 반대다.
조건을 만족하면 타입이 해금되고, 그 타입과 관련된 능력에 시너지를 받는다.
예를 들어 육체 강화 특성을 많이 갖고 있으면 육체 강화 타입이 해금된다. 그러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육탄전 관련 특성들이 훨씬 강력해진다.
‘내 특성을 보면 육체 강화 타입이 되려나?’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던 타입이다. 특히 키틴질 외피가 타입에 의해 강화되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탱크가 된다. 돌진해서 적을 들이받는 것만으로도 고깃덩어리로 만들 수 있다.
‘그래도 뭐가 있는지는 봐야지. 열람 확인.’
「현재 특성화 가능한 타입은 2가지입니다.」
「육체 강화 타입(6/10), 초능력 강화 타입(1.5/3)」
내 예상대로 육체 강화 타입은 조건이 거의 충족되었다. 유체가 되면서 생긴 강화 외골격과 산성피 특성 덕분에 육체 관련 특성 총 6개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근데 이건 뭐지?’
초능력 강화 타입 옆의 숫자가 이상했다.
‘1개는 포식자 감각일 거고. 0.5가 뭐지? 내가 가진 특성 중에 그런 것은 없는데.’
유전자 정수를 얻으려면 시체를 거의 다 먹어야 한다. 0.5라고 표시된 것을 보면 아마 먹다가 남겼거나 모종의 이유 때문에 획득에 실패한 것이라고 봐야겠지.
나는 그동안 먹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거미, 바퀴벌레, 고양이. 이 중 초능력을 가질만한 생물은 없다.
‘애초에 남김없이 다 먹었는…아.’
생각났다.
키사라기 유진.
내가 먹다 남긴 시체는 그녀밖에 없다.
‘확실히 감이 좋다 싶었는데 설마 사이킥 파워 때문이었나.’
게임에서도 메가콥의 인간 중 사이킥 파워 특성을 가진 부류가 드물지만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그녀 자신이 몰랐을 뿐 특성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사이킥 파워는 무조건 먹어야 해.’
육체 강화 타입은 취향의 영역이지만 사이킥 파워는 이야기가 다르다. 있고 없고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시체를 찾자.’
나는 턱의 보조기관으로 공기의 흐름을 체크했다.
온도와 습기, 말라비틀어진 둥지의 상태 등을 고려했을 때, 내가 고치에 있던 시각은 얼추 하루 정도였다.
지금쯤이면 사후경직이 진행 중인 상태일 텐데 시신이 부패하기 전에 빨리 먹어 치워야 한다. 시체에 손상이 늘어날수록 내가 유전자 정수를 온전히 획득하기 어려워진다.
‘시체부터 먹자.’
둥지는 나중에 복구하기로 하고 특성부터 얻어야겠다. 나는 냉각실을 나왔다.
‘제일 먼저 갈 곳은 화장실이지.’
키사라기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화장실 쪽에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그걸 따라가면 된다.
나는 화장실 쪽으로 가다가 도중에 복도로 내려왔다. 커진 몸으로 다닐 수 없는 구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이라서 그런지 아무도 없네.’
촉수 수준으로 자라난 보조기관은 길이만 길어진 것이 아니었다. 범위가 넓어지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세밀해졌다.
반경 50m 이내에 인간의 접근은 감지되지 않았다. 움직임이라고는 침실에서 숙면을 취하는 자들의 잠꼬대뿐이었다.
갈림길 너머로 보조기관이 화장실 앞에 경비가 서 있음을 알려왔다. 그들이 하품하면서 만들어낸 공기의 진동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밤새 경비를 선 병사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은 아니야.’
적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점은 내게 이득이지만 수가 너무 많다.
어차피 시체가 지나간 흔적은 파악했다. 만찬은 나중에 즐기기로 하고 나는 다른 쪽으로 빠졌다.
흔적을 따라 복도를 계속 걸었다. 중요 시설 앞 복도를 제외하고는 감시카메라가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짓이었다.
걷다 보니 환풍 통로가 넓어지는 구역에 접어들었다. 나는 천장으로 기어 올라갔다.
장소가 바뀌어도 내 감각들은 시체의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기어가고 있던 중 고기의 냄새가 아래로부터 확 풍겨 왔다.
시체를 보관하는 영안실. 죽은 자들이 영면을 취하는 공간이 내 발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