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9화 (10/400)

Ep. 9

생명이 귀하지 않은 시대다.

이제는 돈으로 인간의 목숨을 사는 것에 대해 아무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은 그런 디스토피아 사회가 된 지금도 사자를 예우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냥 우주 밖에 버리면 될 시신을 이렇게 고이 모셔두고 있으니 말이다.

영안실에는 내가 만든 두 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지키는 사람만 없었으면 당장 내려가서 뜯어먹었겠지.

‘밖에 3명, 안에 1명.’

사람이 둘이나 죽어서 그런지 밖에 있는 경비원들의 무장이 심상치 않았다. 셋 모두 강화복을 입고 있었다.

‘혼자면 싸울 만한데 셋은 무리야.’

싸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동료들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에 저들과의 전투는 피하는 게 좋다.

‘안에 있는 사람은 민간인이고.’

몸에서 소독제와 포름알데히드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상대는 의사였다. 그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중이었다.

‘기습 말고는 방법이 없나.’

문제는 저자의 얼굴이 환풍구가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

아무리 귀를 막고 있다고 해도 이대로 내려갔다간 바로 걸리겠지.

‘시선을 돌려야겠어.’

사냥감을 교란시키는 것 또한 사냥의 기본. 마침 새로 배운 특성도 있으니 써먹어봐야겠다.

먼저 자리를 옮겼다. 의사의 시각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는 팔뚝을 손톱으로 살짝 그었다. 얇은 상처로부터 타르를 연상케 하는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핏방울들이 팔뚝을 타고 내려와 합금판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합금판이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녹아내렸다.

‘산성피 특성.’

유체로 진화하면서 자동으로 습득한 특성 중 하나다. 피를 산성화해서 근접한 적에게 피해를 주는 특성이다.

강화 외골격도 그렇고 산성피 또한 방어적인 특성으로 보이기 쉽지만 이 특성의 진가는 다른 데 있다.

‘잠입이나 방어구 파괴에 좋지.’

화학무기 이상으로 산성이 강해서 합금 구조물 정도는 쉽게 녹일 수 있다. 초반에 적의 방어구를 녹이는 용도로 쓰거나, 적의 기지나 우주선에 잠입할 때 써먹을 수 있다.

“음? 킁킁, 무슨 냄새지?”

의사가 천장이 녹아내리며 발생한 유독한 기체에 반응했다. 그는 코를 쥐고 고개를 연신 돌렸다.

“저게 왜…?”

그의 시선이 구멍 난 천장에 닿았다. 산성액이 이제는 스테인리스강 카트까지 녹이고 있었다.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녹아내리고 있는 카트 쪽으로 다가갔다.

열매가 적당히 무르익었다. 썩기 전에 수확해야 탈이 없을 터.

나는 환풍구를 열고 뛰어내렸다.

의사는 냄새와 이어폰, 두 가지 때문에 내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산성용액? 어디서 흘러내린 거지?”

코를 찌르는 이 냄새가 유독가스라는 것을 깨달은 의사는 옷깃으로 입가를 재빨리 가렸다.

그가 엉망이 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이, 나는 그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경비…헉!”

몸을 돌린 그의 앞에 내가 있었다. 숨을 삼킨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나의 크기는 1m 남짓. 의사의 키가 나보다 컸지만, 그는 그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모습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심연처럼 새까맣게 빛나는 키틴질 외피.

팔을 뻗으면 땅에 닿을 만큼 길고 거대한 4개의 팔과 두껍고 강인한 다리.

합금도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꼬리.

인간의 뼈쯤은 가볍게 씹어서 부술 수 있는 턱.

악몽의 밑바닥에서 올라온 것 같은 경이로운 공포가 그의 눈앞에 있다.

상대의 입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다. 폐부로부터 공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공기가 성대를 통과해 당장에라도 튀어나오려고 한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1m에 달하는 꼬리가 그의 입속에 처박혔기 때문이다. 예리한 독침이 입 구멍을 통과해서 뒤통수를 관통했다.

“꾸르르르륵….”

그의 몸이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처럼 떨렸다. 입에서 겁먹은 게처럼 피거품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입고 있던 하얀 가운은 사그라드는 생명의 증거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동공의 떨림이 점점 잦아든다. 공포로 가득찬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간다.

그렇게 사냥감은 죽었다.

꼬리를 회수한 나는 숨이 끊어진 의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다행히 문을 지키는 자들은 살인사건이 터진 것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기대하지 않은 사냥이었지만 성공적이네.’

솔직히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덕분에 먹이가 셋으로 늘어났으니까.

나는 의사 시체를 내버려 두고 키사라기부터 찾았다.

시체 보관을 위한 냉동고 대부분은 비어 있었다.

하긴 전함도 아니고 일개 연구선에 불과한 이곳에서 사람이 죽을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덕분에 그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차가운 카트 위에 키사라기 유진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잘린 머리와 목은 접합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노블프라임이라 그렇겠지. 걔네는 시체도 못 건드리게 하니까.’

약품 처리를 하다 보면 시신이 손상될 수도 있으니 의사들도 그대로 놔둔 것이리라.

손을 뻗어 그녀의 잘려 나간 목을 들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머리는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무리 스페이스 서바이벌에 도가 텄다고 해도 나의 정신은 졸업 준비에 한창인 평범한 대학생의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람을 죽였다. 그뿐일까?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먹으려는 지금도 죄책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악이 도사리고 있다더니.’

환경이 바뀌면 그에 맞춰 변한다고 나 또한 에이모프가 되면서 망가진 것일까? 아니면 이 무자비한 살인 괴물이 내 본래의 모습이었던 걸까?

‘고민해 봐야 해결되는 것은 없어.’

사람 세 명이나 죽인 뒤에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애초에 사과를 한다고 해서 저쪽이 나를 내버려 둘 리도 없고 말이다.

살려면 계속 죽여야만 한다.

그것이 에이모프가 사는 방식이다. 내가 적응해야 할 방식이기도 하고.

‘일단 먹고 보자.’

진화를 끝마친 나는 매우 배가 고팠다. 이미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었다.

나는 신축성 있는 턱을 크게 벌렸다. 아나콘다처럼 크게 벌어진 입이 인간의 머리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날카로운 이빨에 살가죽이 찢어졌고, 강철도 우그러뜨리는 치악력이 두개골을 부쉈다. 이미 기능을 정지한 뇌가 으깨지면서 뇌수가 흘러나왔다.

‘…맛있네.’

예상했던 대로 극상의 맛이었다.

사람을 죽이네 마네 고민한 나 자신이 바보같이 여겨질 정도로.

삶은 가재를 먹듯이 두껍고 단단한 두개골을 깨면 그 안에서 부드러운 속살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다. 두 개만 존재하는 눈은 케이크 위의 체리처럼 톡톡 터지는 맛이 일품이다. 머리카락은 좀 거치적거렸지만 그 부분은 개성으로 치기로 했다.

종합해서 평가해 보면 인간의 머리는 제법 흥미로운 맛이었다. 맛이 좋은 거야 당연했지만 고양이랑 비교하면 뭐랄까.

‘다른 차원의 맛.’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무슨 뜻이냐면 고양이는 프렌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 비유할 수 있다. 엄밀한 실험을 통해 검증된 맛으로 승부를 보는 그런 형태다. 먹자마자 뇌리에 바로 꽂히는 그런 자극적인 맛에 가깝다.

그런데 사람은 다르다. 오래된 식당의 장인이 세월을 조리해 만든 것처럼 복잡한 맛이 난다.

장인이 인생을 담아 요리를 만들 듯 인간도 마찬가지다. 지나온 삶이 몸에 녹아들어있으니 그 맛이 단순할 리 없다.

‘쩝.’

머리를 단숨에 먹어 치운 나는 입맛을 다셨다. 종족 단위로 낙인처럼 새겨진 허기가 나를 재촉했다.

남은 시체들까지 모두 해치우라고.

나는 본능에 충실하게 따라 그녀의 남은 부분도 뜯어먹었다.

‘몸은 또 다른 느낌이야.’

다리를 뜯어내서 씹으니까 근육과 지방의 비율이 환상적이다. 내가 먹었던 고양이는 근육과 지방 비율이 1:9에 가까웠는데 키사라기는 먹기 적절한 비율이다.

정말로 누가 유전자부터 개량이라도 시킨 듯 완벽했다.

피부와 근육은 탱탱하고 쫄깃해서 먹는 즐거움을 줬고, 뼈는 단단해서 씹는 맛이 있었다. 뱃속에 있는 장기들은 잘 삶은 토마토처럼 부드러웠다.

‘음?’

잘 먹고 있는데 입 안에서 이물질이 씹혔다. 작은 손 위에 퉤 하고 뱉어보니 단추 모양의 조그마한 기계였다.

‘이거 심장에서 나온 거지?’

심박수 측정기인지 무슨 기계인지 용도를 모르겠다.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혹시 심장이 안 좋았던 건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기계를 밟아 부쉈다.

이후 그녀의 몸에서 인위적인 무언가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고양이를 먹을 때 그랬던 것처럼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았다.

「포식 효과 발동! ‘초능력 기관’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인간’의 생물 특성 중 ‘초능력 기관’을 탈취.」

「‘초능력 기관’을 적용하시겠습니까?」

‘역시.’

초능력 기관이라. 예상대로 키사라기 유진은 사이킥 파워 특성을 갖고 있었다.

컬트와 일부 종족을 제외한 다른 종족이 사이킥 파워를 사용하려면 초능력 기관이 있어야 한다.

‘하필 초능력 기관이야?’

에이모프는 초능력 기관 없이 사이킥 파워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 일부 종족 중 하나다.

안 그랬다면 난 초감각 능력도 쓰지 못하고 금방 죽었겠지.

그런 내게 초능력 기관 특성이라니. 키사라기가 준 카드는 사실상 꽝이었다.

‘…쩝.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지금까지 일이 예상보다 잘 풀린 것이지 원래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타입을 확보하려면 특성 숫자를 채워야하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수락을 선택하니 바로 뒤통수 부근에서 신호가 왔다. 살점이 뜯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안쪽으로부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큰 팔로 뒤통수를 어루만져 보니 작은 촉수다발이었다. 에이모프의 초능력 기관은 인간과 달리 촉수의 형태였다.

‘에이모프 것은 이렇게 생겼구나. 신기하네.’

게임을 플레이할 때도 초능력 기관을 얻은 적이 없다. 필요 없는 특성은 모으지 않는 주의였으니까.

‘혹시 모르지.’

세상일은 모르는 거다. 초능력 기관이 운 좋게 다른 특성과 융합해서 쓸모 있게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포식자 감각의 선례도 있으니까.’

잠시 촉수를 만지작거린 뒤, 나는 다시 만찬에 집중하기로 했다.

키사라기가 보관되어 있던 옆 칸을 여니까 경비원의 시체가 있었다. 키사라기를 경호하다가 내게 죽은 경비원이었다.

시체를 끄집어 내어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흐으음.’

경비의 시체는 뭔가 미묘한 맛이었다. 맛이 별로라거나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그냥 평이하게 맛있었다.

고양이처럼 육즙이 철철 넘치는 식감이라거나 정찬을 맛본 것 같은 키사라기와 달리 그냥저냥 먹을 만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너지를 공급하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래도 근육이 많아서 그런지 씹는 맛이 있어서 곱창을 먹는다는 기분으로 먹으니까 제법 괜찮았다.

‘?’

경비원을 먹던 도중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피범벅 된 보조기관이 꿈틀거리며 바깥에서 일어난 일을 읽어냈다.

‘경비원이 교대했구나.’

함선에 배치된 강화복이 별로 없는지 경비들이 강화복을 새로 온 사람에게 넘겨 주고 있다. 강화복이 별로 없다는 귀한 정보를 얻었지만, 대신 문제가 생겼다.

‘이 의사도 교대하겠지?’

키사라기를 먹기 시작한 뒤로 40분 정도 지났다. 교대하기 위해 누군가가 들어온다면 의사가 사라진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밖에 병사들이 서 있고 안에서 사람이 사라지다니, 누가 봐도 수상하다.

지금은 우주시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이 저 하늘의 별만큼 많은 시대. 그런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괴물이 자신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겠지.’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경계심이 자연스레 높아지니까.

아직 적들과 전면전을 할 만큼 강하지 않다. 강해지기 전까지는 의심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다른 승무원이 되어야 한다.

의사의 시체를 보며 고민하는데 내 눈에 녹아내린 카트가 들어왔다. 산성피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카트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라.’

마침 내가 있는 곳은 영안실. 시체를 처리하기 위한 방부제를 비롯해 온갖 화약 약품들이 비치된 곳이다.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위기를 넘기면서 승무원들도 괴롭힐 수 있는 아주 유익한 방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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