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1화 (12/400)

Ep. 11

‘화물칸?’

팀장은 화물칸 앞에서 몇 분간 서성였다. 그는 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문이 열리자 누가 볼세라 잽싸게 들어갔다.

화물칸 관리인은 따로 있지만 물자관리팀장은 직책상 위니까 비밀번호를 아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근데 뭘 저렇게 숨기지?’

그냥 당당히 들어가면 되지 저렇게 주변을 경계하는 태도는 명백히 부자연스럽다.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는 30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보조기관으로 팀장의 움직임을 추적해 보니, 그는 화물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무의미한 행동을 계속하고 화물칸을 떠났다.

나는 아무도 없는 화물칸에 들어갔다. 공기 중에 섞인 먼지와 쇠 냄새가 내 감각으로 훅 들어왔다.

좀 전까지 밟았던 매끄러운 합금판 대신 투박한 그레이팅식 바닥이 나를 반겼다.

덩치가 커져서 그런지 걸을 때마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이래서는 바퀴벌레 사냥은 더 이상 불가능하겠지.

‘뭐 이제는 사람이나 가축을 먹어야겠지만.’

덩치가 커진 만큼 힘도 좋아졌지만 그만큼 열량 소모량도 늘어났으니까 말이다.

나는 팀장이 남긴 잔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가 흘린 땀, 발에 붙은 이물질이 남긴 자국이 이정표가 되어 나를 안내했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소는 어느 컨테이너 앞이었다.

‘ID카드랑 지문인식기가 필요하네.’

팀장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컨테이너는 제법 높은 수준의 보안을 갖추고 있었다. 관리인의 ID카드 정도만 요구하는 다른 컨테이너와는 달랐다.

‘감각으로도 감지가 안 되고.’

판이 어지간히 두꺼운지 강화된 보조기관으로도 안에 뭐가 있는지 파악이 안 됐다.

확실히 팀장은 뭔가 중요한 것을 숨기고 있다.

흥미로 시작하긴 했지만, 이렇게 되니까 호기심이 더 생긴다.

‘다음 타깃으로는 물자관리팀장으로 할까?’

원래는 의료팀장을 노리려고 했다.

다만 현재 상황을 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부하가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엄청 경계할 게 분명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쉬운 먹잇감을 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화물칸 관리인도 그렇고 물자관리팀 자체가 해이한 분위기 같던데.’

그렇다면 팀장님이 사라져도 다들 의심 안 하지 않을까?

그걸로 내 목표가 정해졌다.

-

“팀장님, 이제 그만 마셔요.”

“한 잔만, 한 잔만 더 마실게.”

“아니 이 양반 오늘따라 왜 이리 질척거려?”

물자관리팀장은 요즘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그에게는 물자관리 일 말고도 소소한 부업이 하나 있었다. 거래가 금지된 생물을 구해서 고위층들에게 파는 일이었다.

배에 오르기 전 그가 암시장에서 구한 것이 있었다.

메가콥 데이터베이스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신기한 생물의 알.

온갖 희귀한 동물들을 거래한 그도 난생처음 보는 알이었다. 알을 판 컬트 상인 말로는 잊힌 고대 유적에서 구한 알이라고 했다.

‘고대 생물은 니미….’

기원이야 어떻든 간에 그는 돈 냄새를 맡았다. 알을 산 후 거래처에 연락하니 그쪽에서도 바로 관심을 가졌다.

연구선이 도중에 정박하는 행성에서 거래하기로 약속하고, 그는 몰래 알을 배에다 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 믿었다.

영안실 화재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떤 팀장이 지나가듯 흘린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설마 했다.

외계 생물의 소행이 아닐까 라는 말.

그는 즉시 화물칸으로 가서 확인했다.

컨테이너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안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어야 할 알 중 하나는 내부가 텅텅 비어 있었다.

‘젠장, 진작 확인할걸!’

함선에 탄 뒤에 그는 알이 잘 있는지 딱 한 번 확인했다.

그날 컨테이너 문만 제대로 닫았다면 설령 알이 부화해도 별일 없었을 거다.

아니 그보다 그가 그날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으리라.

“…술이 원수야. 술이.”

“팀장님. 이제 들어가요 좀.”

문단속 한번 잘못해서 사람 셋이 졸지에 고인이 되었다.

게다가 죽은 사람 중에는 노블캐피탈도 있단다.

알에서 깨어나 사람을 죽인 괴물이 지금도 함선을 돌아다니고 있겠지만, 팀장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노블캐피탈의 보복 이전에 선장이 이성을 잃고 자신을 죽일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것이 팀장이 날마다 술로 밤을 지새우는 이유였다.

“어휴.”

팀원들은 고개를 젓고 바를 떠났다. 옆에서는 바텐더가 혀를 찼다.

“문 닫습니다.”

“한 잔만. 딱 한 잔만 더 마시고 갈게.”

“휴. 알겠습니다.”

합성주를 벌컥 들이킬 때마다 고뇌가 희석되어갔다. 입으로는 술이 원수라고 하면서 몸은 평소대로였다.

결국 팀장은 오늘도 만취 상태가 되어서 바를 나섰다.

“쒸이발…끄윽. 눼가 몰 그리 짤뭇해는데…?”

팀장은 욕설이 섞인 트림을 내뱉었다.

그 혼자 서 있는 복도는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함선의 심장인 원자로가 힘차게 뛰면서 만드는 미세한 진동을 제외하고 다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우주에서의 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우주에는 밤낮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인류의 함선들은 일정 시간이 되면 인위적으로 밤을 조성했다. 승무원들의 숙면을 위해서였다.

유성 사뮤엘이 이끄는 연구선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공적인 밤이 선내에 내려앉았다.

팀장이 고요함 위를 비틀거리며 걸었다.

늘 걷던 복도였으나 오늘따라 낯선 느낌이 들었다.

술에 취했기 때문일까. 익숙한 공간에서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졌다.

복도의 밝은 불빛 너머에 끔찍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이 그를 옥죄여 왔다.

“에이 씨이팔…. 째슈업께.”

팀장은 본인의 예감을 부정했다.

혀 꼬인 말투로 욕설을 던진 그는 방으로 향했다.

틈 하나 보이지 않는 고강도 합판으로 이루어진 복도에 그의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응?’

그의 귀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자기 발자국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달랐다.

사람치고는 소리가 너무 작았다. 마치 맹수가 소리를 감추기 위해 발가락을 세워서 걷는 것처럼 작고 낮은 소리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팀장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따라오던 발소리가 뚝 그쳤다.

정적에 휩싸인 복도.

팀장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를 따라오고 있다.

“뉘, 뉘규야?!”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누가 강제로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술이 확 깬 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구두가 단단한 금속 바닥과 부딪치면서 불협화음을 낸다.

뚜벅 뚜벅

이쪽과 경쟁이라도 하듯 뒤따라오는 기괴한 발걸음 소리도 점점 빨라진다.

자박자박자박자박

‘도대체 뭐야?!’

팀원이 장난을 치는 것일지도 몰랐다.

설령 팀원이 아니더라도 이런 역겨운 장난을 치는 상대에게 정면에서 맞서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알코올에 찌든 그의 뇌리 한구석에서 일말의 감이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절대로 저 존재와 맞서지 말라고.

복도의 모퉁이를 돈 뒤 팀장은 뒤를 흘낏 돌아봤다.

팀장은 그 모습을 똑똑히 봤다.

뱀을 연상시키는 긴 꼬리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말이다.

‘이런 니미!’

「그것」이다.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외계 생물.

연구팀장과 경비원을 집어삼킨 우주의 살육자가 그를 노린다.

팀장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알코올 성분 때문에 둔해진 다리를 억지로 끌었다.

그의 모습은 사냥꾼에게 화살을 맞고 도망치는 사슴 같았다.

‘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

그의 얼굴은 침, 눈물, 콧물로 엉망진창이었다. 옷은 이미 식은땀에 젖어서 제 역할을 못 하게 된 지 오래였다.

톡톡 튀는 것처럼 가벼운 소리.

등 뒤로 「그것」의 발걸음이 들린다.

좀 전까지 작게만 들리던 소리가 어느새 그의 숨소리에 섞일 정도로 커졌다.

뒤에서 따라오는 「그것」의 기척이 선명해진다. 인간의 것이 아닌 으르렁거림이 그의 척추를 핥는다.

그 서늘한 감각은 만취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뇌리에 박힐 정도로 확연했다.

팀장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가 소리를 조금이라고 크게 내는 순간, 「그것」이 덮칠 것만 같았다.

간신히 방 앞에 도착한 그는 정신없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배에 탄 이후 이 정도로 빠르게 번호판을 눌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쒸발! 빨뤼 열려라!”

마침내 문이 열리고 그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문을 닫는 순간, 무언가에 들이받힌 듯 문짝이 크게 진동했다. 그 충격에 팀장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는 자빠진 채로 얼어붙었다.

좀 전의 충격이 거짓말이라는 듯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팀장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아직 밖에 있다.

“저, 전화! 전화해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침실에 비치된 비상 전화기를 떠올렸다. 긴장 때문에 다리가 완전히 풀려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굼벵이처럼 바닥을 기었다.

그때였다.

그의 귀에 절대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려왔다.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그의 고개가 삐거덕거리며 문가로 돌아갔다.

「그것」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다.

삑, 삑, 삑, 삑, 삐비빅

상황에 맞지 않게 경쾌한 알림이 울렸다. 도어락이 해제되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

사냥은 쉽게 성공했다.

아니, 사냥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술에 취해 정신 못 차리는 자를 구석에 몰아넣은 것일 뿐이니까.

‘생활패턴이 간단해서 쉬웠어.’

이틀 동안 관찰해 보니 물자관리팀장의 하루 일과는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았다. 낮에는 물자관리실에 틀어박혀 빈둥대고, 저녁에는 선내에 있는 바에서 술로 밤을 지새웠다.

상관이 이렇게 한심하니 팀원들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뭘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성은 자기 부하가 월급도둑이라는 사실을 알까 모르겠다.

그는 내게 감사해야 한다. 내가 월급을 낭비하는 인원을 줄여주고 있으니까.

‘덕분에 내게는 좋지.’

원래는 3, 4일 정도 두고 보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가 만취 상태일 때 습격하기로 했다.

역시 오늘도 그는 바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바에서 물자관리팀장의 방까지 감시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해 뒀다.

남은 건 몰이사냥을 느긋하게 즐기는 일 뿐.

그를 몰아넣기 위해 일부러 덮치지 않았다. 중간에 잠깐씩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내 의도대로 따라줬다. 술 때문에 도망치는 속도가 느리다는 점은 불만스러웠지만 그것 빼고는 모두 만족스러웠다.

열심히 도망친 그는 방에 몸을 숨겼다. 레이저 화기 이하로는 뚫을 수 없는 철문이 그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마 안심하고 있겠지. 티타늄을 기반으로 한 초고강도 합금 재질의 철문이면 자신을 지켜 줄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아직 내 손톱으로 문을 뚫는 것은 무리니까.

하지만 몸이 힘들면 머리를 쓰면 되는 법. 나의 충실한 하수인 보조기관이 번호판에 묻은 지문을 읽어냈다.

물자관리팀장은 절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초대장을 받은 손님이나 다름없었다.

문은 아주 쉽게 열렸고, 그 안에는 공포에 질린 얼굴이 보였다.

아무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은 민간인이 에이모프에게 저항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는 손쉽게 나의 먹이가 됐다.

물자관리팀장의 맛은 솔직히 그저 그랬다. 지방은 풍부했지만 알코올 냄새가 너무 짙어서 감칠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나는 편식하지 않는 주의이기 때문에 지문인식에 쓸 엄지손가락만 빼고 전부 먹었다.

‘ID카드가 어디 있으려나.’

작은 팔로 이를 쑤시면서 방 안을 둘러봤다. 스테인리스강 재질의 침대에는 푹신해 보이는 매트가 놓여 있었다. 벽 쪽에는 캐비닛과 책상이 놓여 있었다.

‘오?’

벽면에 반쯤 헐벗은 여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제법 섹시했지만 몸이 이래서 그런지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포스터에 관심을 끊고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낡은 책상 위에는 빈 술병과 서류 더미가 쌓여 있었다.

‘청소 좀 하고 살지.’

서류를 뒤지다 보니 ID카드가 툭 떨어졌다.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었다. 나는 한 손에는 ID카드, 한 손에는 손가락을 꼭 쥐고 방을 나왔다.

‘바로 가 볼까.’

필요한 물건을 다 챙겼으니 화물칸으로 갔다.

화물칸의 컨테이너 앞에 선 나는 먼저 ID카드를 인식판에 가져다 댔다. 인식판 위 단말기에서 붉은빛이 녹색빛으로 바뀌고 다음 절차를 진행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물자관리팀장의 엄지손가락으로 인식판을 꾹 누르자 덜컹 하고 문이 열렸다.

‘무슨 꿀단지가 있으려나.’

컨테이너에 발을 들이자 차가운 냉기가 내 몸을 쓸고 지나갔다.

안에는 여러 개의 냉동관이 있었다. 냉동관 안에는 여러 종류의 생물들이 들어 있었다.

‘이 양반 밀수꾼이었네.’

선내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으면 남한테 알릴 법도 한데 혼자 끙끙거리더니 이런 속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냉동관을 둘러보는데 그중 하나에 내가 잘 아는 것이 보였다.

‘에이모프의 알?’

냉동관 2개에 에이모프의 알이 들어 있었다.

알 중 하나는 속이 꽉 차서 통통한 형태였고, 다른 하나는 내용물이 비어 있었다.

텅 빈 알. 당황해하며 무언가 찾던 물자관리팀장.

‘이거 설마 내 몸이 나온 알인가?’

어째 이상하다 싶었다.

게임에서 에이모프의 시작 장소는 이런 강철의 배 따위가 아니라 정체불명의 유적지였으니까.

‘나를 밀수하려고 했구나.’

냉동관에 넣은 것을 보니 물자관리팀장은 에이모프의 알을 어디다가 팔아넘기려고 했던 것 같다.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 하나가 부화했고, 컨테이너를 빠져나갔다.

아마 탈출 직후 내 몸의 주인은 죽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의식이 들어간 거고.’

전 주인이 죽은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영양분이 부족했을 테니까.

‘바퀴벌레를 잡아먹은 것도 설명이 되네.’

아무리 내가 에이모프를 좋아해도 인간의 감성으로는 바퀴벌레를 보자마자 잡아먹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 몸이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런 것이었겠지.

‘…….’

몸의 전 주인이 남긴 흔적을 보니 왠지 착잡함이 들었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녀석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 덕분에 나는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녀석이 태어난 알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죽은 녀석이고 인간적인 행위를 이해할리도 없지만, 그냥 하고 싶었다.

‘추모는 여기까지 하고.’

인간적인 행위가 끝났으니 이제 에이모프적인 행위를 할 차례다.

나는 냉동관을 열어서 멀쩡한 다른 알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안에 잠들어 있던 에이모프 해츨링도 남김없이 잡아먹었다.

에이모프는 모든 종족을 적대한다. 그 종족에는 동족도 포함되어 있다.

‘먼저 태어나는 녀석이 다른 알들을 다 잡아먹지.’

어쩌면 에이모프야말로 극한의 생존경쟁의 화신일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서 다른 해츨링이나 알을 먹으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해츨링 상태에서 부족한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 에이모프의 유전자 정수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초감각 같은 특성이 동일한 유전자 정수를 통해 강화되면 초반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

정수 획득을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포식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내 시야에 다른 냉동관이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먹이가 많네?’

컨테이너 안에 있는 냉동관들의 주인은 내 뱃속에 있다.

냉동관의 주인은 밀수꾼이었으니 그 말고 이 컨테이너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이 배에 없을 터.

그 말은 내가 다 먹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냉동관을 열어서 안에 있는 생물들을 하나둘씩 먹어 치웠다. 물자관리팀장은 보기와는 달리 밀수꾼 일은 제법 괜찮게 했는지 희귀한 생물이 많았다.

덕분에 나는 몇 가지 희귀한 유전자 정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종족: 미확인 적대적 우주생물

상태: 유체

목표: 생존하라(진화 1회 성공).

보유 특성: 포식자 감각(융합), 날개, 키틴질 외피, 강인한 생명력, 신경독샘(융합), 강화 외골격, 산성피, 초능력 기관, 각력 강화, 흉내 내기

타입: 미정」

「현재 특성화 가능한 타입은 2가지입니다.」

「육체 강화 타입(8/10), 초능력 강화 타입(2/3)」

‘좋아. 이제 2개만 남았다.’

육체 강화 타입을 얻으려면 특성 2개만 더 확보하면 된다.

키사라기를 먹었을 때는 솔직히 좀 실망했다. 사이킥 파워 능력을 얻기를 희망했지만 쓸모없는 초능력 기관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물자관리팀장이 이런 귀한 선물을 주다니.

특히 게임 속이었다면 중반 이후에나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특성을 일찍 얻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내가 가진 모든 특성 중 승무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특성.

이 능력이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숨어서 장기간 천천히 승무원들을 조여 가는 길도 있지만, 스페이스독과의 접선일도 얼마 안 남았다. 녀석들이 얼마나 위험할지 모르니까 그 전에 최대한 강해져야 했다.

‘유전자 정수들아 기다려라.’

우주에서 비명을 질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다.

이 연구선도 마찬가지다.

승무원들의 애처로운 울부짖음은 저 검은 심연 속에 그대로 묻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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