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3화 (14/400)

Ep. 13

‘통화한 사람은 유진 가문 쪽 같은데.’

내가 알기로 위기관리팀장은 유진 가문 출신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아놀드 러셀. 러셀이란 성(姓)은 노블캐피탈, 프라임캐피탈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평범한 성씨다.

‘가명이려나.’

아니면 통화 상대의 하수인일 수도 있고.

통화 내용만 봐서는 저쪽에서 키사라기의 죽음을 원하는 것 같다.

‘내분인가?’

게임에서도 노블캐피탈은 권력과 돈 앞에서는 가족도 친구도 없는 냉혈한들이었다. 유진 가문도 노블캐피탈인 만큼 가족끼리 서로 죽고 죽일 가능성은 차고 넘쳤다.

이곳은 우주 한복판이니까 키사라기 유진을 제거하는데 제격이고.

‘근데 마침 내가 죽였지.’

대화 내용을 통해 유추해 보면 그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키사라기를 죽이는 것과 C-08로 배를 유인하는 것.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 덕분에 그의 목표는 거의 성공했다.

‘뭐 유진 가문이 싸우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아놀드 러셀 저자를 어떻게 할 것이냐다.

가축은 먹이가 되기 위해 사육되는 존재. 쓸데없이 똑똑한 먹이는 배제해야 한다.

그가 무슨 계획을 갖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녀석은 나를 경계하도록 만들었어.’

그 사실만으로도 그가 죽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유체로 진화했으니까 군인과 싸우는 일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습한다면 저 근육 덩어리도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근데 기회가 마땅치 않네.’

아놀드는 내가 해츨링 때부터 살생부에 기록했던 자지만, 놀라울 정도로 빈틈이 없었다. 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머물렀고, 인적이 드문 곳은 최대한 피했다.

‘물자관리팀장처럼 방에서 죽일까?’

잘 때를 노릴까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몸도 좋은 양반이 뭐그리 겁이 많은지 잘 때도 강화복을 입고 잤다. 병사들과 달리 중급 강화복이어서 기습을 해도 단번에 죽이기가 어려웠다.

기습에 실패하면 아주 귀찮아진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통신기로 함선AI에 연락할 것이 뻔했으니까.

‘할 수 있는 건 결국 하나뿐인가.’

약점이 없다면 발견될 때까지 그를 관찰하면 된다.

강한 사냥감을 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한 번 더 쳐다보고 둥지로 걸음을 옮겼다.

어려운 상대인 것은 맞지만 아놀드는 싸울 상대를 잘못 택했다.

나는 여태까지 내가 노린 먹이를 놔준 적이 없다.

-

어머니의 뱃속보다 배양기에서 나오는 인간이 더 많은 세상이다.

그런 곳에서 신을 찾는다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겠지만, 나는 왠지 신이 진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게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리가 없으니까.

“보안팀장!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요! 찾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아래쪽에서 유성이 소리를 빽 지르고 있다. 철망의 틈새로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이는 보안팀장의 뒤통수가 보인다.

나는 지금 회의실 위에서 저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놈의 죄송하다는 말이 도대체 몇 번째야! 당장 이틀 뒤에 해적놈들하고 접선할 예정인데 해결한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

“그, 그게 카메라랑 경비원을 늘려도 도무지 걸리는 게 없어서….”

“빌어먹을! 항해팀장! 지금 배에 실종자가 몇입니까?”

“…전(前) 물자관리팀장을 포함해 8명입니다.”

“연구팀장이 죽은 뒤 실종자만 7명인데 왜 못 잡는 겁니까? 설마 당신, 그 새끼랑 한패야?!”

“아, 아닙니다!”

현재 함선에 돌아다니는 수수께끼의 살인마는 물자관리팀장인 걸로 되어 있다.

실종되기 전 수상한 행동을 했던 것과 그의 컨테이너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함선 내에 잠입한 밀수업자. 게다가 의문의 살인사건 후 잠적까지.

딱 봐도 수상한 행적을 보인 그였기에 다들 그를 범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범인은 여기 있답니다.’

머리 위에 진범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유성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물자관리팀장은 사람 아닙니까? 사람이 갈 만한 곳은 다 뒤져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그게 일단 카메라 수가 부족한 것도 있고 중요한 곳마다 설치는 해 뒀는데 귀신 같이 다 피해가고 있습니다.”

“휴우, 그러면 시체는요? 시체가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뒀을 텐데 그걸 왜 못 찾습니까?”

“시체를 처리할 만한 곳도 매시간 감시 중입니다. 어떻게 처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보안팀장이 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머리숱이 적어 한층 더 처량해 보였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술팀장. 추적기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제 실력으로는 무리입니다. 설령 만든다고 해도 완성도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젠장, 자신을 추적할 만한 사람부터 죽이다니. 확실히 보통 인간이 아니야.”

게으름뱅이 밀수꾼이 어느새 프로 암살자가 되다니. 내 몸이 에이모프가 아니었다면 폭소할 만한 상황이다.

그때 위기관리팀장 아놀드가 손을 들었다.

“선장님. 보안팀장의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뭡니까 갑자기?”

“제가 카메라의 배치도, 선내에 숨을 만한 곳은 모두 체크해봤는데 보안팀장은 할 만큼 했습니다.”

“범인을 못 잡았는데 지금 옹호나 하고….”

“제 말은!”

역정을 내려는 유성을 억누르려는 듯 아놀드가 큰 목소리를 냈다.

“인간 기준에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인간이면 그렇게까지 숨을 수 없습니다.”

“뭐? 위기관리팀장. 지금 그 이상한 소문 타령이나 하려고 모인 줄 아십니까?”

‘응?’

재밌게 지켜보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아놀드는 아예 작정하고 얘기를 꺼낸 것 같았다. 선장이 면박을 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모르는 존재가 공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보시오. 위기관리팀장. 함선AI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소. 최신 모델은 아니지만 한때 전함으로도 굴린 AI요. 선내에 동물이 싸돌아다닌다면 진작 잡아냈을 거요.”

“저도 군인 출신이다 보니 AI 성능은 잘 압니다. 항해팀장. 하지만 다들 아실 겁니다. 물자관리팀장의 컨테이너. 거기에 있던 냉동관은 모두 비어 있었죠.”

“으음.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럼 거기 있던 녀석들이 모두 어디로 갔겠습니까?”

그의 말에 팀장들 중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자리를 바로 했다.

‘이런.’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이 묘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

내가 제일 경계했던 것. 사람들의 머릿속에 외계 생물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 이상한 우주 괴물이 싸돌아다닌다고 칩시다. 그럼 어디로 돌아다니겠습니까? 복도 중간마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잖습니까.”

“저희가 둘러보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그 말은 한 그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것을 보고 나는 재빨리 철망 옆으로 물러났다.

“환풍구?”

“환풍 통로는 선내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녀석의 크기가 얼마만큼 큰지는 모르겠지만 1m 안팎이면 돌아다니기 충분할 겁니다.”

그의 말은 정확했다.

적을 얕본 것은 아놀드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를 가볍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전략 미스야.’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공략할 계획이었는데, 아놀드는 예상보다 더 뛰어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진작 처리할 걸 그랬다.

“1m라니. 사람을 죽이기에는 너무 작지 않습니까?”

“선장님. 메탈릭 그렘린은 최대 80cm밖에 안 자라지만 전함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크음.”

보조기관으로 느껴진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전부가 아놀드의 말에 설득되고 있다. 불안 때문에 흘리는 식은땀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불규칙한 맥박소리는 안정을 되찾아갔다.

“문제가 있소. 정말 괴생명체가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면 연구팀장 시체는 어떻게 되는 거요? 녀석이 시체를 먹었으면 이래나 저래나 우리는 끝장이오.”

“그 문제는 놈을 생포해서 노블캐피탈에 넘기면 그만입니다. 놈이 연구팀장을 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쪽에서도 넘어갈 겁니다.”

여기저기 질문이 난무했지만 아놀드는 막힘이 없었다.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을 해냈다.

질문의 세례가 그치고 마지막으로 유성이 남았다.

“위기관리팀장.”

“예. 선장님.”

“병사가 얼마쯤 필요하겠습니까?”

“8분대 중 날랜 병사 6명을 뽑아서 환풍 통로를 수색하겠습니다.”

“허가합니다. 부디 좋은 성과를 가져오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회의가 종료된 뒤 나는 둥지로 돌아왔다.

‘…오래 버텼지.’

몸을 사린다고 해도 언젠가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둥지를 버리고 떠나지 않는 이상, 환풍 통로에서 저들을 피할 수 없었다.

‘설령 둥지를 떠난다고 해도 갈 곳이 없어.’

아놀드의 성격상 환풍구 쪽에 뭔가 보안장치를 둘 것이 뻔하다. 그러면 환풍 통로도 사실상 봉인된다.

복도에는 감시카메라가 천지고 환풍 통로는 이용 불가다. 당장 전면전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이제 나에게 중요한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도망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알이 된 이후 말라붙었던 둥지는 봄이 찾아온 것처럼 생명력이 넘쳤다. 그곳에 몸을 기대고 누워 있던 나는 작은 손을 뻗어 포자를 어루만졌다.

포자의 맥동을 느끼며 나는 결심했다.

‘싸운다.’

이 배는 저들의 것이지만 이곳 환풍 통로는 다르다.

이곳은 나의 영지요, 나의 집이 있는 곳이다. 설계도와 지도 한 번 보고 이곳을 노리는 저들과 비교했을 때, 갖고 있는 정보량 자체가 다르다.

‘조건도 나에게 유리해.’

전투 장소뿐만이 아니다. 함선을 둘러싼 상황 자체도 저들한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해적과의 접선일은 이틀 뒤.

시체가 없어진 마당에 유성이 크래딧을 곱게 줄 것이라 보기 힘들었다. 해적들이 해줄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큰 돈을 지불하는 셈이니까.

설령 이쪽에서 불만이 없어도 저쪽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배신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스페이스독 녀석들이 배를 그대로 보낼 리 없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다.

접선을 지시한 자는 유성이지만 지금도 이렇게 아랫사람들을 갈구며 전투를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저들이 해적과 싸우려면 최대한 병력을 온존해야 한다. 나 하나 잡는다고 많은 병사를 투입할 수 없다.

게다가 아놀드는 나를 생포하겠다고 말했다.

‘에이모프를 생포한다고?’

적을 말살하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 존재가 에이모프다. 팔다리가 잘리고 머리만 남아도 상대의 목을 물어뜯는 적대적 외계 생물. 그것이 바로 나다. 아놀드는 나를 얼추 아무 행성에서나 굴러다니는 야생 동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다.

소수의 병사로 불리한 지형에서, 그것도 정체도 모르는 적을 생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우주 공간, 그것도 배 안에서 에이모프랑 싸우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가르쳐 주마.’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이용해 저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우주에서 지옥이란 과연 어떠한 모습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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